‘아빠’라는 친근한 호칭을 ‘아버지’라는 다소 거리감 느껴지는 호칭으로 바꾸게 된 건 다 제창이 때문이었다. 나는 고등학생이 다 되어갈 때까지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제창이는 그런 나에게 아기처럼 아빠가 뭐냐고 놀리기를 밥 먹듯 했다. 아니, 밥 먹는 횟수보다 더 한 듯싶다. 10년이 넘도록 “아빠”라고 불렀던 자연스런 내 습관을 한순간에 억지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니 친구가 아니라 원수다. 어쨌든 놀림감이 되는 게 싫어서 그때부터 내 입으로 ‘아빠’라는 단어를 내뱉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 심부름을 가다가 제창이네 집 앞을 지나가는데 “아빠” 하는 제창이의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고, 범인을 잡은 형사처럼 내 입가엔 엷은 미소가 번졌다. 잡았다, 요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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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일이 아버지는 시골 장터에서 약장수를 하셨고 그 집에는 원숭이를 키웠다. 약 판매율을 높이는 데는 똬리를 멋지게 트는 뱀이나 끼 많은 원숭이만 한 게 없으니까 말이다. 현일이가 원숭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우리는 현일이에게 ‘원시’라는 별명을 붙여주고는 주구장창 이름 대신 ‘원시’를 불러댔다. 물론 현일이의 의사는 중요치 않았다. 어느 날 경숙이가 현일이네로 전화를 했다. “아지매, 저 경숙인데요. 원시 있어요?” “아… 원시? 며칠 전에 우리 원시 팔았는데….” 아지매가 팔았다는 원시와 경숙이가 찾던 원시가 달라서 참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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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매 집 근처에 조그만 과수원이 있었다. 과수원에는 사과나무, 배나무, 자두나무가 있었고 콩을 심기도 했고, 여름엔 딸기도 심었다. 과수원 가운데 커다란 돌무더기 위에는 작은 원두막이 있었는데 할매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그곳에서 지내셨다. 하교 후 가방은 대충 던져 놓고 할매가 있는 원두막으로 달려가면 “우리 새끼 왔나” 반겨주시며 잘 익은 딸기를 내주셨다. 딸기를 배불리 먹고 할매 다리를 베고 누우면 살짝 열어놓은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내 코끝을 간질이고 할매 부채질은 내 눈을 감게 했다. 시멘트 블록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허술한 원두막이었지만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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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네는 담배 농사를 지어서 높고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는 만기네 담배 창고에 모여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하고 심지어 축구도 했었다. 우리에게 담배 창고는 서울의 실내체육관이 부럽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흙바닥으로 된 창고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축구를 하다 보면 해가 넘어가는 줄도 모른다. 만기 아버지가 오셔서 “야 이놈들아! 인자 고만 놀고 집에 밥 묵으러 가라.” 호통을 치시면 우리들의 놀이는 그제서야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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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이는 술도가(양조장) 옆에 살았다. 학교가 끝나면 성진이와 신나게 놀다가 4~5시 즈음 양조장으로 달려간다. 막걸리를 만들기 위한 고두밥이 나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자나무 아래에서 양조장 아재를 부른다. “아재! 아~재! 고두밥 좀 주이소~” “아이고 요놈들 또 왔네.” 하시며 고두밥 한 덩이씩을 담 너머로 던져주신다.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뛰어놀다 먹는 고두밥 한 덩이는 처음 먹어봤던 바나나만큼이나 달콤한 최고의 간식이었다. “아재, 고맙습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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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가게 현대건재사에는 ‘츤데레’ 아저씨가 있다. 토끼장, 닭장, 썰매 만들 때 꼭 들리는 곳이다. 만들기 재료를 사서 나가는 내 뒤꼭지에 대고 아저씨가 한마디 툭 던진다. “그거 가지고 부족할 낀데.” 아저씨 생각이 틀렸다는 표정으로 가게를 나온다. 만들기를 하다 갑자기 자존심이 상한다. 재료가 부족하다. 정말 가게에 다시 가야 한다. 가게에 들른 날 보고 츤데레 아저씨가 흘리듯 말한다. “그랑께 내가 머라카드노? 진작에 더 마이 사가라켔제?” 그래요. 어른들의 말씀은 항상 옳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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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 손재주가 제일 좋은 진구형은 못 만드는 게 없었다. 그중에서도 활을 제일 잘 만들었다. 굵은 싸리나무를 잘라 양쪽 끝에 홈을 판 후 나무가 잘 휠 수 있도록 불에 살짝 달구어주고 나일론실을 매어주면 로빈훗도 울고 갈 멋진 활이 탄생된다. 마른 마줄기 끝에 칼집을 내고 그 사이에 못을 넣어 실로 꽁꽁 묶어주면 화살도 완성! 진구형, 만기, 제균이, 나.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마냥 한쪽 어깨에 활을 매고 호기롭게 동네 호박밭으로 향한다. 뒤늦게 뛰어오는 윤성이형은 활이 없으니 망을 보고 우리는 누렇고 탐스럽게 잘 익은 호박 과녁에 활시위를 당긴다. ‘퍽!’ “요놈들, 호박에다 무슨 짓이고!” 밭주인 할매가 내 등짝을 후려친다. 따가워 웅크린 내 등짝이 활처럼 구부러진다. 아파할 새가 없다. “도망가자!” 할매에게 혼날라 얼른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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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과 합천군에 걸쳐 있는 비계산. ‘비계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느끼하다고 말하는 큰딸아, 비계산은 돼지비계의 비계가 아니라 산세가 마치 닭이 날개를 벌리고 날아가는 것처럼 보여 비계산이라고 부른단다. 아빠 어릴 때 성구형, 선기형이랑 비계산에 나무도 하러 갔었고 올무에 걸린 토끼 보러 뛰어가다 고무신을 잃어버려 울기도 했었고, 잡은 토끼를 팔아서 핫도그도 사먹었단다. 아빠 이야기 들으면 너는 분명 “아빠 조선시대 사람이야?” 하고 이 아빠를 놀릴 테지만 네가 친구들과 버블티 먹으러 가는 것만큼 아빠에겐 신나는 일이었다. 세대 차이 난다고 말하지 말아줄래? 내 입에도 버블티 맛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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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굣길에 밀밭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밭주인 몰래 밀을 한 움큼 꺾어 눈썹이 휘날리도록 홍이네로 뛴다. 홍이네 부뚜막은 우리만의 밀 껌을 만드는 공장으로 사용되었다. 밀을 살짝 구운 다음 손으로 비비면 껍질이 벗겨지면서 탱탱한 밀알이 나오고 밀을 한입에 털어 넣고 꼭꼭 씹으면 껌처럼 쫀득해진다. 밀 껌의 생산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러나 달콤한 향 없어요. 예쁜 포장지도 없고요. 커다란 풍선이 불어질 리가 있나요. 혹시나 자일리톨처럼 충치가 예방되는지 궁금해 마세요. 그럴 리 없잖아요. 그래도 우리는 맛있게 씹었다. 턱이 빠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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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규네는 농기계를 고쳐주는 공업사를 했다. 원규 아버지는 못 만드는 게 없었다. 특히 아재가 만든 원규의 썰매는 람보르기니였다. 우리의 썰매 날이 굵은 철사였다면 원규의 썰매 날은 ‘ㄱ’자 모양의 각진 철재 날이었고, 우리의 스틱이 아카시아 나무에 대못을 꽂아 만든 거였다면 원규의 스틱은 쇠막대와 둥근 쇠파이프를 용접해 세련미가 넘쳤다. “원규야, 니꺼 한 번만 타보자.” “안 되는데…” “나중에 미미분식 가서 핫도그 한 개 사주께.” “알았다. 그라믄 딱 10분만 타라이.” 스틱을 잡는 순간 이거다 싶다. 썰매에 앉았을 때 느껴지는 안정감, 썰매가 달릴 때의 그 묵직함. ‘역시 썰매는 람보르기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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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매, 우리 외할매. 그냥 ‘짠’하다. 그냥 보고 싶다. 쪽진 하얀 머리 하시고 마루에 앉아 피우시던 곰방대. 자그마한 몸으로 비계 넣고 끓여주시던 돼지국밥. 그냥 한 번씩 생각이 난다. 언덕 밑에 있던 외갓집. 마당 한편에 서있던 무궁화나무. 시원하게 등목을 하던 우물. 군불 넣으면 나던 장작불 내음. 그냥 한 번씩 생각이 난다. 오늘도 내 맘 한 켠에 외할매 얼굴 새겨둔다. (우리 외할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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