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임종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고 싶어요. 저희를 믿으시죠?”
삶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는 완화의학 의사의 일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다.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고 병을 낫게 하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의학도 발전하면서 인류는 무수히 많은 질병을 극복해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멈춘 지금도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 의학 연구자와 보건·방역 종사자들이 이 병을 극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이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사의 일이다.
그런데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누구도 죽음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의사의 일, 생명을 살리는 일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건은 필멸의 죽음이다. 그렇기에 그 어떤 의학적 처치와 의료 서비스도 어느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 무의미한 연명 행위에 불과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늘 그 순간을 두려워하며 병원을 찾는다.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원제: With the End in Mind)』을 쓴 캐스린 매닉스는 완화의학 의사이다. 40년 전 완화의학이라는 신생 분야에 뛰어든 그가 그동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연명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이들이 그의 환자였다. 통증을 관리받으며 곧 다가올 죽음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이들의 남은 삶을 계획하는 90대 노인부터, 고통과 공포에 잠식되어 환각에 빠져 있는 10대 소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자가 모여 있는 호스피스 병동이 그의 일터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죽음은 슬프지만 평화롭고, 아프지만 존엄하다. 이 책은 말한다. 이것이 보통의 죽음이라고.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죽음에 관하여 대화하기 시작하라고.
완화의료의 대상은 단지 임종이 머지않은 환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증상 관리는 어떤 질환을 가진 사람이든 경중에 상관없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것이 넓은 의미의 완화의학이다. … 나의 환자는 살날이 몇 개월 남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로부터 나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특별한 통찰을 얻었다. 바로 이 부분,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내가 들려주고자 하는 바다. _「들어가며」 중에서, 9쪽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바라는 죽음에 관한 대화를 기피하지만 언제까지나 피해서 될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 늦기 전에 소중한 이들과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한다. _「예상 밖의 일」 중에서, 299쪽
“우리는 죽음 조산사다. 그리고 늘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대화-최선의 치료법-신뢰-존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지은이가 환자와 나누는 무수히 많은 대화다. 죽음을 납득시키기 위해, 공포를 덜어내고 통증에서 해방되어 마지막까지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힘쓰는 완화의학 의사의 노력은 낯설지만 부럽다. 동시에 의학과 치료라는 행위의 본질을 고민하게 한다.
“호흡 패턴이 바뀌었죠. 자, 들어보세요. 이제 깊이 숨을 쉬지 않죠. 때때로 호흡이 멈추는 걸 눈치챘나요?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얘기입니다. 아주 깊이 이완된 상태지요. 삶의 마지막은 이런 모습이랍니다. 매우 조용하고 평화롭지요. 이제 홀리가 다시 깨어날 것 같진 않군요.” _「작은 댄서」, 48쪽
“제가 보기엔 비록 병에 걸린 사람은 넬리이지만 두 분 다 이 병으로 고통받고 계신 것 같습니다. 두 분 다 홀로 고통받고 계세요. 넬리는 위층에서 조를 걱정하고, 조는 아래층에서 넬리를 걱정하고.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고통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_「침묵의 소리」, 186쪽
“이것은 어머니가 의식 불명이라는 징후예요. 하지만 어머니가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에요. 이것은 뇌가 작동을 멈출 때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랍니다. 우리가 삶의 끝에 당도할 때요.” _「당신의 모든 숨결을」, 193쪽
지은이는 환자에게 그가 앞으로 겪게 될 죽음의 과정을 이해시키고, 환자의 가족이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환자의 마지막 숨을 배웅할 수 있도록 이끄는 완화의료 과정을 ‘죽음 조산사’에 빗댄다. 조산사가 산모에게 힘을 줘야 할 때와 심호흡을 할 때, 기다려야 할 때를 알려주며 출산 과정을 안내하듯이, 자신 또한 임종 과정을 그렇게 안내한다는 뜻이다. 이 일에 사려 깊은 대화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사례들은 대화가 최선의 치료법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환자와 의사 사이의 이해와 신뢰로 이어지는 선순환 속에서 삶과 죽음 양쪽 길 모두 존엄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감을 증명한다. 나아가 이 장면은 이런 대화가 생략된 채 증상에만 몰두하는 현대의학 전반에 대한 고민과 반성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정부 시절 메르스가 유행했을 때, 대통령이 방문한 서울대학교병원 격리 병동에 걸려 있던 “살려야 한다”라는 말이 당연히 읽히지 않고 우스꽝스러웠던 이유도 환자와 맥락은 지워진 채 행위만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훌륭한 팀입니다. 당신을 잘 보살펴줄 거예요.”
죽음으로 가는 길에 나란히 서주는 사람들
존엄한 죽음을 향한 길은 의사와 환자 두 사람의 대화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환자를 위해 함께 일하는 동료 의료진, 환자 곁에서 배웅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길에 나란히 서 있다. 이 책은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와 상호 작용을, 때로는 갈등까지도 자세히 비춘다.
그들은 하루 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일하지만, 혈액 샘플의 혈소판 수와 나가는 혈액 백 수로 실비를 비롯한 환자들의 상태를 꾸준히 챙기고 있다. 그들은 치료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본다. 실비가 죽어가고 있으며, 곧 혈액 검사가 필요 없어지리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20살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녀에게 안부 전해줘요!” 기술팀장이 외친다. 그는 실비를 만나본 적도 없을 테지만, 실비가 아침 일찍 수혈을 받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새벽같이 출근하여 혈소판제제를 해동시켜두었다. _「바늘과 핀」, 332쪽
“왜 약을 거부하는지 아나요?” 내가 묻는다.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수간호사가 말한다.
“처음에는 바늘을 무서워하는 줄 알았는데, 변비약이나 기침약도 거부해요.”
“전통 의학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성직자가 묻는다.
“그것도 아니에요.”
“때로 독실한 무슬림은 고통을 신의 의지로 받아들이지요. 우리 입장에서는 손 놓고 지켜보기 힘들겠지만, 그녀로서는 타당한 결정일지도 모릅니다. 회진 때 물어봐야 할 것 같군요.” …
“그가 말하길, 그가 말하길, 도착하기 전에 아내가 죽을 거라고 했어요. 살날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요. 3개월보다 더 오래 살 수는 없다고요. 하지만 오직 신만이 생명을 주고, 또 거둬 가십니다. 오직 신만이! 우리는 감히 신의 뜻을 안다고 생각하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신성 모독이에요. 그럴 수는 없는 겁니다!”
나는 신앙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이 신실한 가족의 고통을 헤아려본다. 얼마나 참담한 딜레마인가. 얼마나 대단한 용기이며 자제력인가. _「완벽한 날」, 387, 394쪽
이 모든 일의 바탕에는 “개인의 삶의 질과 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개인뿐”이라는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의료진의 노력은 그 판단을 정확히 이해하고, 환자를 그가 ‘선택한 죽음’으로 안전하고 평화롭게 이끌기 위해서라는 점을 밝힌다. 때로는 환자를 대신해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주변에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환자가 자신의 선택을 자신의 입으로 설명할 수 없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도 2018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를 도입했다. 질병이나 사고로 의식을 잃어 본인이 원하는 치료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한 사람이 그새 5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때 ‘무의미한 연명 치료’가 어디까지를 뜻하는지가 중요한데, 일찍이 이 제도를 도입한 영국에서 이 서류를 작성하는 데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눈여겨볼 만하다(「예상 밖의 일」, 286~299쪽).
그 밖에도 안락사를 놓고 환자와 의사가 느끼는 두려움과 무력감, 죽음에 관한 청년 세대와 노인 세대의 인식 차이, 사후 부검이 필요한 이유 등 죽음을 놓고 생각해야 할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죽음의 질과 방향을 가리키는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좋은 죽음이란 어떤 죽음이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살아갈 이들을 위한 ‘죽음 수업’
이 책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들려주지만, 그 모든 이야기는 세상에 남은 우리에게 향해 있다. “누군가와 사별한 사람은 설사 그것이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하더라도 그 경험을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기억으로 바꾸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67쪽)라는 문장에는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하지에 관한 핵심이 담겨 있다.
‘고통을 기억으로 바꾸라. 그리고 항상 끝을 염두에 두고 살아라.’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 말을 남긴다. 끝을 생각하며 살아갈 때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있다. 지은이는 각 장의 끝에 수록한 「생각해봅시다」에 임상 연구를 통해 얻은 최신 지식, 환자와 가족이 병과 죽음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찾은 교훈, 그리고 삶과 작별할 때 채워야 할 빈틈을 적어놓았다. 이를 통해 당신도 당신의 마지막 날을 상상해보기를, 가족과 그 얘기를 나누며 매일 눈뜨는 아침을 새로 쓰기 바란다. 죽음 너머에 남아 있는 삶은 바로 이것이다.
[독자의 말]
‘죽음이라는 난제에 매료되었다’고 고백하며 환자와 가족 앞에서 담담하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라니, 수십 년 동안 ‘완화의학’ 분야에서 목격한 수많은 죽음을 이렇게 나지막하게 평온히 이야기하는 의사라니! _김신애 독자님
죽음의 시기를 ‘죽어가고 있음’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음’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한결같은 목소리가 두려움에서 벗어나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게 만들어주었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끝을 염두에 두고’ 더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기를 바란다. _이지현 독자님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고 눈물이 흘러 한 장 한 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수천 편의 드라마, 영화에서 생의 마지막에 선 이들의 이별 장면이 나온대도 이 책만큼 죽음에 관해 사실적이고 때론 담담하게, 때론 가슴 저리게 표현해낼 수는 없으리라. _안지현 독자님
이 책을 덮는 순간 좀 더 인간적이면서 따뜻한 임종의 시간을 가지길 원하게 될 것이다. 삶과 죽음이 멀지 않다고 알려준, 삶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죽음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알려준 고마운 책이다. _정모아 독자님
한 번에 넘어가지 않는 책이다. 한 번에 넘어갈 수 없는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많은 고통스러운 죽음을 함께했다. 매 순간 돌아가신 아버지를 마주했다. _정현이 독자님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죽음을 만났지만 그 말을 꺼내는 게 좀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 책을 통해 의료팀이 환자와 그 가족에게 죽음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미안해. 용서해줘. 괜찮아. 사랑해.”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그 말을 지금부터 해야겠다. _염선영 독자님
창문 밖의 풍경이 창을 열기 전까지는 그저 풍경에 불과한 것처럼, 죽음 또한 그러해서 분명한 사실임에도 우리는 애써 모른 척, 남의 일인 듯 살아간다. 그런데 이 책은 애써 닫은 창문을 살짝 열어놓는다. 그리고 그 틈새로 들어온 이야기들이 과거의 기억과 섞이며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_김형찬 독자님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죽음을 배우거나 말해본 적이 없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죽음이 ‘점’이 아닌 ‘선’이라는 통찰을 주었다. _변민아 독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