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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 대한민국 순정만화 전성기를 한 권에 담았다. 신일숙, 황미나, 김혜린, 이빈, 한승원, 박희정, 천계영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게 만드는 그 시절 그 만화의 기억. 순정만화와 함께 한 10대, 20대의 소중한 추억이 어른이 된 우리에게 다시금 위로가 된다. - 에세이 MD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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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 안녕, 나의 순정 · 4
1부 어른이 된 것 같았던 나의 소녀시대 짧은 머리는 보고 싶지 않았다오 (황미나 『굿바이 미스터 블랙』) · 12 삶은 정말 예측불허였다네 신일숙 (『아르미안의 네 딸들』) · 25 인생의 고단함을 엿보고야 말았네 (김혜린 『불의 검』) · 43 2부 제길, 공주가 아니었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이빈 『걸스』) · 62 돋보기를 쓰고 봐도 좋습니다 (한승원 『프린세스』) · 79 그때 그 오빠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이은혜 『점프트리 A+』) · 95 우리의 슬픈 공통분모 (한혜연 『금지된 사랑』) · 111 3부 크게 아프고, 다시 일어서면 됐다 쓸쓸한 날엔 호텔 아프리카를 (박희정 『호텔 아프리카』) · 126 한 세계를 부수고 나아간다는 것 (강경옥 『별빛속에』) · 141 세상엔 다양한 모양의 삶이 있지 (유시진 『폐쇄자』) · 155 어둠도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문흥미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 집』) · 169 4부 거기에 꿈이 있었다 너는 면역체가 형성되지 않는 내 불치의 병 (이미라 『인어공주를 위하여』) · 186 우리의 취향은 괜찮습니다 (나예리 『네 멋대로 해라』) · 203 반짝이는 것에는 슬픔이 있지 (천계영 『오디션』) · 219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거라고? (박은아 『다정다감』) · 237 에필로그_ 순정만화가 나에게 준 선물 · 254 |
저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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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속에서 여자들은 자유로웠다. 원하는 남자를 열망하고, 목숨 걸고 사랑하고, 우주로 가고, 혁명을 하고, 왕이 되었다. 다시 읽어보면 거슬리는 구시대 정서의 표현도 물론 있지만, 만화 밖 세상의 부조리함과 비교하면 사소한 수준이었다. ‘여자니까 하지 말라’는 말을 집에서 학교에서 지겹도록 들은 우리에게 순정만화는 ‘여자니까 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중에서 수업 시간에 이 만화를 몰래 읽던 친구 하나가 “으악! 어떡해!”라며 작은 비명을 지르는 사건이 있었다. 선생님이 잠시 수업을 멈추고 “누구야? 무슨 일이야?” 화를 냈고, 친구는 충격받은 눈빛으로 “아니에요….” 하고 말을 흐렸다. 잠시 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 문을 나가자마자 소리쳤다. “얘들아 어떡해! 서지원이 푸르매였어…!” 이 엄청난 스포일러에 반 아이들은 한동안 충격 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 「너는 면역체가 형성되지 않는 내 불치의 병」 중에서 아주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9시 뉴스가 방송되기 직전 “어린이들은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멘트만 나오면 주문에 걸린 듯 이불 속으로 향하던 어린이는 이 만화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금기를 깨는 짜릿함을 알게 되었다. 복수의 결말이 궁금해 불을 끄고 누웠다가도 슬며시 일어나 만화책을 뒤적이던 밤의 기억이 선명하다. 헤어진 스와니와 라이언(미스터 블랙) 이 런던의 한 저택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이쪽으로, 이쪽으로 와 스와니!”) 은 볼 때마다 심장이 쿵쿵 떨어졌고, 스와니를 짝사랑하는 로제를 보면서 질투라는 감정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야기의 마지막, 복수를 마치고 머리를 짧게 자른 미스터 블랙이 등장했을 땐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으니, ‘이건 아니잖아요, 작가님’ 엽서라도 써야 하나 고민했던 그 시절의 내가 기억난다. --- 「짧은 머리는 보고 싶지 않았다오」 중에서 이 멋진 이야기는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웹에서 5부 연재가 시작되고 비이와 비욘의 딸 세대인 3세대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나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다시 휴재에 들어갔다. 스무 개가 넘는 『프린세스』 관련 팬카페에는 만화의 결말을 보고 싶어 하는 나이 든 팬들의 호소가 끊이질 않는다. “중학교 때 보기 시작한 만화인데 이제 딸이 중학생이 되었어요. 딸 대학 가기 전에는 결말을 알 수 있을까요?” “돋보기를 쓰고 봐도 좋아요. 작가님 제발 연재해주세요.” “언제든 건강히 돌아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등등. 당연히 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 「돋보기를 쓰고 봐도 좋습니다」 중에서 고등학교 서클에서의 꽁냥꽁냥 연애사를 그린 『점프트리 A+』는 여고에 다닐 때, 대학생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블루』는 재수생 시절에 봤던 걸로 기억한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아이들에겐 저런 심쿵할 사건들이 마구 벌어지나 봐, 막연히 동경했지만 실체는 알 수 없었고, 대학만은 꼭 남녀공학으로 가서 승표 같은 남자와 사랑에 빠져보리라 다짐했는데 현실은…. 나와 비슷한 독자 한 분이 『블루』를 떠올리며 블로그에 쓴 글을 봤다. “대학에 가면 『블루』처럼 치열하고 가슴 아픈 사랑을 할 줄 알았죠. 만화 같은 사랑을 하기는 했는데, 순정만화가 아니라 개그만화였다는 것.” 아하. 그러게 말입니다. --- 「그때 그 오빠들은 다 어디 갔을까」 중에서 |
어른이 된 내 마음을 토닥여주는
그 시절 순정만화 이야기 “1980~1990년대 순정만화를 다시 읽으면서, 이 이야기들에 빠져 있던 10대 20대의 나를 만났다. 기억이 안 날 거라 생각했는데, 책을 펼치는 순간 신기하게 많은 장면들이 되살아났다. 어리숙하고 서툴렀던, 그래서 자꾸 움츠러들던 그 시절 나의 등을 어른이 된 내가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괜찮아, 힘내…. 그 시절 순정만화가 나에게 해준 것이었다.” 그렇다. 순정만화 전성기에 10대 시절을 보낸 소녀들 대부분이 비슷했다. 모든 것에 어리숙하고 서툴렀지만, 만화 속에서는 소녀도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별빛속에』를 읽으며, 광활한 이 세상을 휘어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고, 『인어공주를 위하여』, 『점프트리 A+』를 읽고 순정만화 같은 사랑이 나에게도 찾아올지 모른다는 꿈을 꾸고, 『오디션』이나 『네 멋대로 해라』를 읽고 혹시 나도 음악 천재가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해보았을 것이다. 그 시절 나에게 세상을 알게 해주고, 꿈을 꾸게 해주었던 그 순정만화가, 어른이 된 내 마음을 다시금 위로해준다. 이제 우리가 잊고 있던 순정만화를 기억 속에서 불러올 차례다. 저자의 말을 인용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마지막 말을 건넨다. “이 책을 펼친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기를. 그때의 내가 되어 한껏 웃고 한껏 울고, 다시 샤르휘나처럼 시이라젠느처럼 미지의 길을 나설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우리가 순정만화에서 배웠다시피 “삶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의미를 갖는 것”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