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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밥맛

회사 밥맛

리뷰 총점9.2 리뷰 15건 | 판매지수 126
베스트
그림 에세이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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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0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4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90g | 130*190*13mm
ISBN13 9788950987152
ISBN10 895098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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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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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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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의 아침 배식 시간은 정규 출근 시간 20분 전까지다.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입 때만 해도 일찍 출근해서 열심히 챙겨 먹었다. 그땐 밥을 다 먹고도 시간이 남아서 화장실로 가서 이를 닦은 후 사무실을 한 바퀴 돌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안녕하냐는 말을 꼭 죄송하다는 말처럼 뱉던 때였다. 예의 바른 것과 주눅 든 것을 구분할 줄 모르던 시기였다.
--- p.27

사무실에 들어서자 먼저 출근한 과장님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따로 복장 규정이 없어서 평소에도 편하게 입지만, 주말 특근을 하는 날에는 최선을 다해 더 후줄근하게 입고 싶어진다. 나도 소매가 해진 후드티와 고무줄 바지를 입고 왔다. 동네 백수 같은 차림을 하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왠지 회사에 복수하는 기분이 든다.
--- p.45

푸른 하늘을 뒤로 하고 회사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신발 밑창에 접착제가 붙은 것처럼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특근수당을 받으면 청재킷을 사겠다고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근데 청재킷을 사면 무얼 하나? 기껏해야 회사에나 입고 오겠지. 이대로 정류장까지 쭈욱 걸어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싶어졌다.
--- p.48

이제 나는 밤새 잠을 설치고 새벽 내내 울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사랑을 잃었다고 직장도 잃을 수는 없었다. 퀭한 눈으로 출근을 했더니 사람들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왔다. 회사 사람들의 공연한 관심이 싫어서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도 말한 적 없는데, 헤어졌다는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대충 몸살 기운이 있다고 둘러댔다. 점심시간에는 아예 식사를 거르고 지하 수면실로 내려왔다. 어둡고 건조한 그곳에서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누웠다.
--- p.53

큼직한 뼈다귀 두 점이 올라간 갈비탕이었다. 숟가락으로 기름이 둥둥 뜬 누르스름한 국물을 먼저 떠 올렸다. 입술 주변이 번들번들해질 수 있으니 주둥이를 쭈욱 내밀어 꼴딱 삼켰다. 혀와 식도가 환호성을 지르는 듯했다. 기름! 너무! 좋아! 이제 흑미가 섞여 얼룩덜룩한 밥을 담뿍 떠서 혀에 올리고, 시간차공격으로 뼈에 붙은 살코기를 뚝 끊어 입에 넣을 차례. 촉촉하고 야들야들한 살점이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목구멍을 넘어갔다. 보드랍게, 한없이 보드랍게, 솜사탕처럼 갈빗살이 위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느껴질 듯 말 듯 코끝을 스치는 풋풋한 대파 향과 알싸한 후추 향. 좋아, 오늘의 갈비탕은 브이아이피다. 베리, 임폴턴트, 피...... 피스. 마음의 평화.
--- p.64

“집이야?”
“아니. 아직 퇴근 못 했어.”
“고생하네.”
“엄마가 회사에 전화해서 나 야근시키지 말라고 좀 말해줘.”

엄마가 깔깔 웃었다. 옆에서 듣다가 전화를 바꿔 받은 아빠는 안절부절못하는 말투로 일이 많을 때가 좋은 거라고 말했다. 야근이 싫다는 이유로 내일이라도 직장을 때려치울까 봐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다.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은행 어플에 접속해 남은 대출금을 확인했다. 금방 갚을 수 있다, 27년만 더 일하면.
--- pp.69-70

아침 비행기로 광저우에 도착하자마자 미팅이 시작됐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오후 네 시였다. 여태 점심을 먹지 못해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가까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려는 나를 선배가 막았다.

“이렇게 개처럼 일했는데 아무거나 먹으려고?”
--- p.93

“커피, 당분간 드시면 안 돼요.”

태어났을 때부터 커피를 마시진 않았다. 이 한약 같은 음료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어쩌다 하루에 투샷 아메리카노를 세 잔씩 마시는 헤비 드링커가 되었는가. 모든 게 돈 때문이었다.
--- p.123

눈에 보이는 대로 쓸어 담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샐러드와 회, 초밥부터 차곡차곡 담았다. 첫 접시는 차고 담백한 음식, 두 번째는 따뜻하고 간이 센 음식, 세 번째는 앞서 먹었던 음식 중에서 맛있는 것만 골라서. 네 번째는 과일과 디저트. 뷔페에 임하는 나의 순서는 제법 엄격하다. 자리에 앉아 광어초밥을 막 간장에 찍으려는데 옆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모 부장님이 말을 건넸다.

“서 대리. 왜 야유회는 늘 뷔페야? 내년엔 좀 다른 거 먹자.”

어머나, 그럼 내년에는 부장님이 준비하시면 되겠네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꾹 누르고 웃었다. 어디서 본 얘긴데 입에 음식물을 넣은 채로 ‘뒤질래요?’라고 말하면 ‘드실래요?’처럼 들린다고 한다.
--- p.130

“아, 퇴근하고 싶다.”
“난 출근할 때부터 퇴근하고 싶었어.”
“난 일어날 때부터.”
“난 어제 퇴근할 때부터.”
“난…….”
이러다 태어날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 같아서 말을 줄였다.
--- p.183

만약 내가 아니라 상무님이 마려웠다면? 회의를 중단하고 잠깐 쉬자고 했겠지. 싸고 싶을 때 쌀 수 있는 게 바로 권력이구나. 배설과 권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을 마친 나는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발을 애써 밖으로 옮겼다. 앞으로는 회의를 앞두고 절대 라테를 마시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 p.198

말복의 수상쩍은 점은 입추 다음에 온다는 것이다. 근 몇 년 동안 입추에 나눈 대화는 이랬다. “오늘이 입추래.” “미친. 이렇게 더운데?” 또 근 몇 년 동안 말복에 나눈 대화는 이랬다. “오늘이 말복이래.” “응? 얼마 전에 지나지 않았나?” 입추는 이름값을 못 하고 말복은 존재감이 없었다. 그런 말복을 기념해서 컵빙수를 주다니.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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