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분야에서 ‘영국남자’ 같은 인플루언서들은 기성 언론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다. 영화 시사회에 인플루언서가 언론사 기자들과 동등하게 초대받는 일도 드물지 않다. 한 일간지 문화부 기자는 “특정 매체의 시각이 스며 있거나 기사 문법을 중시하는 기자들보다는 일반인들이 쓴 글에서 진정성이 더 많다고 느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진정성’이야말로 인플루언서들이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데, 구/독자들로 하여금 기존 미디어의 이해관계나 지향과 관련 없이 솔직하고 사실에 가까운 정보 전달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 이유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제도’로부터 비평가란 이름표를 나눠 받았던 이들이 그 이름표에 걸맞게 “위기를 진단하기 위해 위기의 끝에서 첨병이 될 것을” 기꺼이 자처했는가? 오히려 많은 비평가들은 다수의 왓챠 유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이론과 감상과 윤리을 오남용하는 글을 양산했고, 또 하고 있으며, 그 대상 역시 개별 혹은 아트하우스/영화제 용 등 좁은 범위의 영화들에만 한정하고 있다. 위기와는 상관없는 안전함. 그러니까 많은 이들이 외면하는 잔인한 사실은, '제도'의 수혜를 받은 다수의 ‘공식’ 비평가가 ‘일개’ 유저보다 흥미로운 의견이나 전문적인 관점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리뷰와 비평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면, 둘을 먼저 분간하지 못한 건 대중이 아니라 비평가들이 아니었을까?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인플루언서들의 자의식 앞에는 아마 이런 말이 괄호 쳐져 있을 것이다. ‘저런 사람도 하는데.’
--- 윤아랑 「네임드 유저의 수기」
자기 재현의 외적 요소는 작가가 이메일이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독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부분과 관련이 있다. 독자가 최초에 『일간 이슬아』를 접하게 되는 방식이 이메일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작가인 ‘이슬아’는 『일간 이슬아』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에도 드러난다. 『일간 이슬아』 외부의 작가는 ‘연재노동자’로 자기 재현되어 독자가 직접 이메일이나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 ‘독자로서의 불만이나 요구 사항’을 전달할 수 있는 투명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일간 이슬아』를 둘러싼 진정성의 맥락은 오늘날의 인플루언서 현상과 일정 부분 궤를 같이하면서도 ‘친밀하고 투명한’ 진정성이 가져올 파열음에 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끔 한다.
--- 강보라 「『일간 이슬아』의 진정성」
흔히 인터넷에 접근하기 어려운 노년층이나 저소득층을 취약 계층으로 취급하지만, 정반대의 현상도 벌어진다. 오프라인 연결망이 취약한 집단은 다른 방식으로 양질의 정보를 구하지 못한다. 그들이 가진 모든 정보는 온라인 세계에서 얻은 것이다. 직접 사람을 만나서 얻는 오프라인 정보는 구하기도 어렵고 값도 비싸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방적기를 응시해야 했던 노동자들은 이제 현대인이 되었다. 이젠 방적기가 아니라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과 스마트폰을 응시해야 한다. 식사 시간마저도 한 손에는 스마트폰이다. 싸구려 저질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음란한 광고와 터무니없는 황색 기사를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참언(讒言)이 증식하기 쉬운 더럽고 비위생적인 정보 환경이다.
--- 박한선 「인플루언서 vs. 슈퍼전파자」
피드백 운동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소비자 운동에 속하며, 의도적 불매(boycotting)와 의도적 구매(buycotting) 그리고 담론적 운동의 세 가지 유형 가운데 담론적 운동의 일종으로 분석할 수 있다. 담론적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직접 소통의 형태를 통해 기업, 일반 소비자, 정당, 행정기관에 기업의 정책과 관행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피드백 운동의 방식에서 새로이 주목해야 할 점은, 이 행동이 정치적 의견의 표출을 통한 문제의 개선뿐 아니라 기업과의 소통 자체를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피드백 운동에서 충실한 피드백으로 평가되는 요소는 사건의 발생과 책임의 인정, 사건 경위의 해명, 사과, 보상 및 재발 방지 대책과 같은 것들이다. 따라서 운동의 효과성에 대한 자체 평가 역시 이러한 요구 사항과 결과의 내용에 치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 피드백 운동의 과정에서 기업의 피드백이 얼마나 신속하게, 자주, 존중하는 태도로 이루어졌는지는 내용에 대한 평가를 압도하기도 한다. 이는 피드백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에게 정치적 주체로서 지위의 인정과 동등한 소통이라는 요구가 있음을 보여 준다.
--- 이민주 「#피드백 운동의 동역학」
소연(5학년, 여) : 옛날에, 지금 말고 옛날에, 2, 3학년 때? 그때는 편집을 못하니까 목소리 공개를 했는데, 그때 악플 다는 사람들이 많았었어요. 그래서 그때 잠시…….
지민(5학년, 남) : (농담하듯이) 충격을 먹어 가지고 유튜브를 그만두고!
소연(5학년, 여) : 그때 상황에는 제가 유튜브를 잘 못 다루고 사람들이 악플을 다니까 신고를 어떻게 할 줄은 모르고. 유튜브 다룰 줄도 모르니까 그냥 유튜브를 안 한 적도 많고. 이제 편집 좀 하게 됐으니까, 목소리 공개 안 하니까 사람들도, 구독자 수도 좀 되고 그래요.
유튜브는 손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짐과 동시에, 그렇게 콘텐츠를 공유했을 때 겪을 수 있는 위험에 대응하는 방법은 잘 모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위의 사례처럼 자신의 나이나 성별 등이 공개되자 단순히 어리다는 이유로 악성 댓글을 받는 경험을 통해 나의 정보, 나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까지 노출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경계를 갖게 된다.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배우고 있는 것이다.
--- 김아미 「어린이의 유튜브 경험」
내 안의 감정과 관념, 의견을 언어로 표현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해서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 설득이라는 신비로운 현상을 경탄한 시인 헤시오도스는 그것이 음악과 시의 여신 무사들이 인간에게 내리는 선물이라고 했다. 무사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난관을 타개할 지혜로운 의견을 달콤한 목소리와 감미로운 언어에 담아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단다. 심지어 수사학 교사이자 소피스트로 알려진 고르기아스도 “말이란 병든 몸도 치료하는 약과 같은 신비로운 효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연설가의 매력을 그럴싸하게 그려 내는 묘사이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을 신화의 영역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려 지성의 실험대 위에서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여 체계화했다. 수사학이란 rh?torik?의 번역인데, ‘연설가(rh?t?r)의 기술(-ik?)’이라는 뜻이다. 연설가의 목적은 설득이라는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므로 수사학은 ‘설득의 기술’이며, 나아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비결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 김헌 「2500년 전의 인플루언서들」
중세 시대에 문자를 독점하기 위해 엘리트 계층이 보통 사람들에게 성경을 삽화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던 것처럼, 우리 시대 새로운 지배 계층은 평범한 유저로부터 전체 시스템을 ‘보호’하고 그 대신 한없이 친절한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제공해 준다. 실상 우리는 내가 구입하여 사용하는 컴퓨터 운영 체계로부터 ‘신뢰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다운받는 ‘신뢰할 수 없는 사용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단으로 운영 체계의 입력/출력 채널에 액세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위 보호 소프트웨어가 상시적으로 구현되고 있으며, 디지털 네트워크 속에서도 같은 원칙이 작용된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페이지는 매우 친절하게 그래픽과 아이콘으로 조직되어 있다. 우리는 이들이 정한 룰에 따라서 정해진 곳에 사진을 올리고 하루의 감상을 적고 지인에게 쪽지를 보낸다. 모든 곳은 고맙게도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다. --- 유현주 「팔로어에게는 힘이 없다」
조선이 망해 가던 시절, 한반도의 청년들은 근대의 지식을 구하러 현해탄을 건너 도쿄로 향했다. 그들이 도착한 당시 메이지(明治) 일본의 화두는 서구 따라잡기였다. 이를 위해 일본인들은 서양의 개념과 제도를 번역했다. 조선의 유학생들은 일본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철도, 학교, 기업, 언론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위력적인 영향력을 목격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본에서 배운 근대적 경험을 조선에서 실현하기를 열망했다.
그중에서도 당대의 잡지들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SNS이자, 파워 블로그였고, 새로운 지식의 네트워크로 들어가는 포털사이트였다. 대중들은 이곳에서 청년 유학생 인플루언서들이 소개하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였다. 당대 포털 사이트의 하나인 『청춘』에 기고한 글에서, 이광수는 “우리는 선조도 없는 사람, 부모도 없는 사람으로 금일 금시에 천상에서 이 땅에 강림한 신종족”이라 자처했다. 이광수의 주장처럼, 유교적 ‘꼰대’들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지식을 체득한 유학생들은 근대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등장했다.
--- 정종현 「선한 영향력 평가하기」
“학생들, 기특하네.”라는 격려를 많이 받는다. 나쁜 의도가 아니고, 추운 곳에서 시위하는 아이들이 장해서일 거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여러 관계에서 정의와 평등을 둘러싼 위기로 작용한다. 부국과 빈국, 인간과 비인간 동물,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등 위협을 초래하는 집단과 그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게, 오랫동안 받는 집단이 명확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쪽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기특하다는 말은 조금 이상하다. 분명히 존재하는 문제를 얘기하러 나왔는데 모두 격려만 하면 책임은 누가 지는 걸까. (……)
타자의 고통에 좀 더 민감해지면 좋겠지만, 내 일상을 침범해야 인식이 바뀐다면 그 지점을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기후위기의 당사자라 느낀 청소년이 기후행동을 시작했듯, 각자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향한 위협을 절감할 구체적인 순간이 필요하다. 나는 우리 행동이 하나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개인이 변하는 연속적인 과정에 존재하면 좋겠다.
--- 윤해영 「영향, 연결,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