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최초의 역사적 시기에 로마인들은 무엇보다도 소박하고 건전한 심성을 지닌 실용적인 민족이었으며, 문명 민족의 가장 오래 되고 단순한 활동인 농업과 목축을 하는 장소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로마인들의 전반적인 사상은 그들의 생활처럼 소박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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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로마는 남성을 위하여, 남성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국가였으므로, 아내는 남편과 이혼할 수 없었지만, 남편이 주로 간통이라는 이유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12동판법 속에서 결혼의 무효화는 남편에 의한 아내와의 이혼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ValeriusMaximus)에 따르면(ii, 9, 2), 그러한 이혼이 B. C. 306년에 일어났었다고 한다. 간통, 음주, 특정하게 묘사할 수 없는 사악하고 혐오스러운 행위 등은 남편에게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권리를 줄 수 있는 비행들이다. 많은 것들이 남편의 판단에 맡겨져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막시무스의 글은 남편이 이혼을 하기 전에 친구나 가족들로 구성되는 평의회를 소집해야 할 의무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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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전쟁을 위해 젊은 병사들을 공급해야 할 필요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기원 후 첫 번째 세기에 오랫동안 계속된 평화 속에서 로마는 그 위치를 유지하거나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더 이상 창을 들고 진군하는 병사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 시기에는 플리니우스(ep., iii, 14)가 묘사했던, 정부를 거느리고 별장에서 유유자적하며 지내는 전직 집정관처럼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쉬웠다(물론 그는 미혼이다). 그리고 남자가 드디어 철학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가족은 무거운 짐에 불과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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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예를 통해서 우리는 로마 여성의 해방이 대단히 다양한 성격을 나타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순전히 도덕적인 관점에서만 해방을 비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모든 과정을 여성의 성적 해방이라는 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자유는 성생활에서만 표현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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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로마에서 매춘이라는 이름 아래 나타난 현상들을 보다 자세하게 논의할 차례가 되었다. 물론 매춘이라는 개념 자체가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상당히 일방적인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우리가 오늘날 매춘이라고 부르는 것과 로마의 자유로운 성관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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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 대한 숭배는 몇 가지 상이한 의미를 지닌다. 여신은 명예로운 결혼의 수호자며, 그런 점에서 가문의 부인들에게 존중을 받았다. 반면에, 그녀는‘메레트리케스(Meretrices)’즉 매춘부의 여신이기도 했다. 또한 비너스는 어떤 측면에서는 로마 민족의 어머니로 여겨지기도 했다. 술라는 그녀를 비너스 펠릭스(행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자신의 수호여신이라고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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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의 이상은 극단적인 행복으로부터 극단적인 슬픔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으며, 모든 사태의 여러 양상 속에서도 고요한 마음가짐을 간직할 수 있는 지혜로운 현자이다. “결코 놀라지 않는다.”고 호라티우스는 그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우주가 파괴되고 멸망할지라도, 그 파편이 때리고 지나가는 동안에도 그는 의연하게 버티고 서 있다.”라고 좀더 분명하게 현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스토아 철학은 고통과 삶의 유혹에 대
한 남성적인 단호한 의지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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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문명의 발전에 관한 많은 현대적인 해석 중에서 고대 로마인(도시적인 나약성으로 퇴보하여 약화되지 않은 진정한 로마인)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간결하며 순수했다는 믿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목욕을 하고 몸에 기름을 바르거나 장식을 하는 데 있어서 매우 간결하고 건강미 넘치도록 발전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군주정 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 시기부터 이 같은 고상한 성격은 호화스러운 욕조에서 따뜻한 물로 몇 시간 동안이나
목욕을 하거나, 또 피부나 머리에 바르는 향수를 몸에 바르는 여자처럼 육감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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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로부터 우리가 인용한 것은 모두 에트루리아에서 유래한 무도 연극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을 지적해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외의 다른 것들도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이다. 이렇듯 유사한 내용을 갖는 공연은(춤이 유사하거나, 관능적인 면에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텔라네스, 마임, 팬터마임 등의 구분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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