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어의 특징 중 하나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아이(I) 메시지다. 초등생 아들이 말썽을 피우자 동백이는 “그럼 엄마가 힘들어.”라고 말한다. 일상을 방해하는 전남편에게는 “너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고 소나기 피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대꾸하고 사랑을 끊임없이 퍼 주는 용식을 보며 “이 사람이 나를 고개 들게 하니 내가 뭐라도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생을 주체적으로 사는 이들의 특징이 ‘동백어’에 잘 드러난다. 남 탓할 만하고 좌절할 만하고 세상을 향해 온갖 욕을 해도 모자랄 입장의 동백이가 우주의 중심에 자신을 놓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동백이는 위대하다.
--- p. 17, 「《동백꽃 필 무렵》」 중에서
“내 꿈 다 포기하고 살았는데 내 인생이 빈껍데기 같아요.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열세 살 먹은 자식을 외국에 떼어놓고 돌아왔다. 하버드가 뭐길래.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했는데 그 유보는 가족의 찢김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행해진다. 영화 《주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디 갈런드가 이혼하고 아이들과 어렵게 살아가다가 영국에 가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아이를 기르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을 벌기 위해 아이들과 헤어져야 한다. 주디는 매니저에게 말한다.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아이들과 헤어져야 한다고요?”
이게 스카이캐슬 식 욕망의 모순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 부모가 웃기 위해 아이들은 울어야 한다. 남의 희망을 위해 나는 절망해야 한다. 평생 타자의 욕망이 자아의 욕망인 줄 착각하고 살았기에 자식은 물론이고 저 자신마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는 게 스카이캐슬러들이다.
--- p.29~30, 「《스카이캐슬》」 중에서
팬들은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파와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이)파로 갈라져 서로가 원하는 결말을 보길 원했다. 덕선이는 택이를 택했다. 왜?
단적으로 ‘빙신 배틀’이 덕선의 선택을 대변해준다. 덕선이 밥풀을 턱에 묻히고 나오는 등굣길, 정환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정환은 에어 조단 신발을 신고 있다.
“비비화는 선도부한테 바로 잡힌다, 빙신아.”
“오늘부터 선우가 선도부다, 빙신아.”
“좋겠다. 네 친구가 선도부라, 빙신아.”
“너도 좋겠다. 도시락 안 싸가도 되고. 턱에 붙은 거 먹으면 되겠네, 빙신아.”
정환은 비록 덕선을 좋아하지만 표현에는 젬병이다. 비오는 날 우산을 갖다주기도 하고 선물을 하기도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 1988년을 기점으로 무뚝뚝함이 남성의 매력에서 단점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명로진의 멋대로 통계임.) 한복을 입고 올림픽 피켓 걸 연습을 하며 덕선이 “나 어때?”라고 묻자 정환은 “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그게 제일 나아.”라고 쏘아붙인다. 제아무리 사랑이 크다 한들 여자한테 “그 더러운 입으로 이미연(정환이 좋아하는 배우)을 말하지 마라.”는 건 너무했다. …(중략)… 그에 비해 택이는? …(중략)… 늘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예쁘다는 말을 해준다. 선물을 줄 때는 여성의 의견을 묻는다. (정팔이는 그냥 제멋대로 골라서 동생을 시켜 일방적으로 갖다준다.) …(중략)… 무엇보다 택이는 덕선이를 존중하며 그 존중을 표현한다. 이건 앞의 여러 가지 메리트를 다 합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 오스카 와일드가 그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말했다. “남자는 눈으로 사랑을 느끼고 여자는 귀로 사랑을 느낀다.”고. 결국 여성의 사랑을 쟁취하는 이는 언어의 마술사여야 한다. 최소한 “멍충이” 같은 저급한 단어는 쓰지 않아야 한다. 정팔이는 성격이 아니라 세치 혀에서 택이에게 밀린 셈이다. 표현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건 신들의 영역이다. “사랑한다면 지금 말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쑥스러움을 이겨내고 고백해야 한다.”
--- p.39~41, 「《응답하라 1988》」 중에서
《미스터 션샤인》의 명대사는 추리기 어렵다. 극 전체가 명대사로 이루어져 있다. 극 초반 애신은 조선의 미래를 위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글은 힘이 없습니다. 저는 총포로 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애신의 미래는 글(언어)로 이루어진다. 사랑의 단계는 모두 언어다. 인사-악수-허그-그리움…. 유진과 애신은 연서를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키워간다. 한문-일어-영어에 능통한 유진은 한글을 읽지 못하고 사서삼경을 익힌 애신은 영어를 못한다. 둘은 영어와 한국어를 서로 가르치면서 애정도 쌓아간다.
언어가 없다면 인간의 사랑은 본능만 남는다. 그런데 사랑만 언어로 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도 언어로 한다. …(중략)… 마오쩌둥은 총을 든 시간보다 붓을 든 시간이 더 많았다. 육탄전을 벌이기보다 연설을 했으며, 포탄과 전술이 아닌 선전 선동으로 인민을 부추겼다. 한마디로 그는 말로 혁명했다. 왜? 총알은 한 사람을 죽이지만 말은 백만의 가슴을 들뜨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도 혁명도 언어로 하기에 우리 인생은 유진이 말하듯 “러브스토리이면서 히스토리”가 된다. 개인의 스토리가 모여 히스토리가 되는데 사랑 없는 나라는 공허하고 나라 없는 사랑은 허무하다. 러브스토리는 늘 히스토리와 함께 가야 한다. 식민지 백성으로 살면서 사랑만 추구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무용한 일이요, 사랑 없이 독립운동만 하는 것은 유용하지만 허망하다.
--- p.67~69, 「《미스터 션샤인》」 중에서
아름답지만 웃을 수만은 없고 슬프지만 울 수만은 없는 엔딩. 이 장면 때문에 수많은 《미사》 팬들은 며칠을 앓았다. 행복하게 살았든 불행하게 살았든, 부자로 살았든 가난하게 살았든 우린 죽는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무혁은 은채가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을 떠올리며 죽었고 은채는 무혁의 얼굴을 그리며 세상을 떠났다. 삶의 끝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뭘까? 바로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
--- p.81~82, 「《미안하다 사랑한다》」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40이 다 된 딸은 건드리는 게 아니란 거다. 제 인생 제가 알아서 살도록 놔두란 얘기다. 낼모레 마흔인 딸의 사랑을 놓고 이렇게 간섭하는 엄마가 드라마 소재가 되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그리스밖에 없다. 《디마프》에 나오는 여인들은 수시로 완의 휴대전화를 뒤진다. 굉장히 유치한 설정이다. 완은 휠체어를 끌고 슬로베니아에서 날아온 연하를 앞에 두고 수술 마친 엄마에게 달려간다. 그녀도 문제다. 마마걸이다. 이런 태도는 엄마가 심어준 것이지만 완 역시 엄마와 정서적으로 공고히 묶여 있는 상태에서 안정을 느끼는 미성숙인이다. 엄마도 길들여야 한다. 밀당해야 한다. 가끔 무시하고 부탁도 거절하고 해야 한다. 그래야 독립된 삶이 시작된다.
--- p.93, 「《디어 마이 프렌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