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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8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565g | 140*210*30mm
ISBN13 9791185051093
ISBN10 118505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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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신더는 흠칫 놀라서 책상 밑면에 머리를 부딪혔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보니 작업대 위에 죽은 안드로이드 한 대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신더는 안드로이드를, 그리고 그 뒤의 한 남자를 노려보았다. 휘둥그레 뜬 황동빛의 눈, 귀 뒤로 넘긴 검은 머리카락, 이 나라의 모든 소녀들이 천 번은 꿈꾸었을 입술.
신더의 언짢은 표정이 스르르 녹아버렸다.
남자는 놀란 빛을 금세 거두고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거기에 누가 있는 줄 몰랐어요.”
신더는 멍해져서 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수년간 넷스크린으로 봐와서 너무나도 익숙해진 그의 이목구비를 망막 디스플레이가 스캔했다. 실제로 보니 더 훤칠해 보였다. 옷차림은 공식 석상에서 입는 호화로운 옷이 아니라 회색 후드티였지만, 신더의 스캐너가 그의 얼굴의 특징들을 측정하고 네트워크의 데이터베이스로 전송하는 데에는 2.6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1초 뒤 신더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디스플레이에 출력되었다. 초록색 글씨가 시야 아래쪽을 가로질러 흘러갔다.

카이토 황자, 동방연방제국의 황태자
ID #0082719057
제3시대력(曆) 108년 4월 7일생
미디어 조회 결과 88,987건, 역순 출력
제3시대력 126년 8월 14일 게시: 카이토 황태자가 오는 15일 기자 회견을 열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레투모시스 연구와 치료제에 대한 실마리를 토론하기 위한……

신더는 발 한쪽이 없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두 손으로 작업대를 붙잡고 몸을 가누면서 간신히 절을 했다. 망막 디스플레이가 꺼졌다.
--- pp. 12~13

그때 웬 비명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신더는 청각 인터페이스에 최고 볼륨으로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시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노점들 주위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던 아까 그 아이들이 각자 숨은 곳에서 슬금슬금 빠져나왔다.
비명은 창 사샤의 빵집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더는 당황한 채 의자 위에 올라서서 인파 너머를 내다보았다. 달콤한 꿀빵과 돼지고기빵 들이 늘어선 유리 진열장 안에서 사샤가 쭉 뻗은 자신의 두 손을 망연자실 쳐다보고 있었다. 신더가 손으로 코를 덮는 것과 동시에 광장의 다른 사람들도 사태를 파악했다.
“전염병! 전염병이다!” 누군가가 고함쳤다.
거리 전체가 패닉에 빠졌다. 엄마들은 부랴부랴 자기 아이들을 들쳐 안고 얼굴을 손으로 덮어주면서 앞다투어 사샤의 가게에서 멀어지려 했다. 상인들도 노점 문을 탕 닫아버렸다. 순토가 비명을 지르며 엄마에게 달려갔지만 사샤는 양손을 내뻗었다.
“안 돼, 오지 마!”
옆 가게 주인이 순토를 붙잡아 겨드랑이에 끼고 도망쳤다. 사샤가 뒤에서 뭐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사람들의 아우성에 파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 pp. 22

“도와줄 일이 있을까 해서 왔다. 원래는 통풍구를 청소해야 했는데, 아주머니가 욕실에 있었다.”
“욕실에? 근데?”
“아주머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신더가 눈을 깜빡였다. “그랬어?”
“내가 쓸모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랬구나.”
이코가 일반적인 하인 안드로이드와 다르기는 해도 이 계열 로봇들의 주요한 성격적 특성은 갖추고 있었다. ‘쓸모없음’은 하인 안드로이드에게 있어서 가장 괴로운 감정이었다.
“음, 네가 도와줄 거 있어.” 신더가 손을 맞비비며 말했다. “일단 그 진주 걸고 있는 거 어머니한테 들키지 말아줘.”
이코가 집게손으로 진주목걸이를 벗는데, 피어니가 줬던 리본을 여전히 팔에 감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신더는 벌에 쏘이기라도 한 듯 확 물러났다.
“어, 그리고 불 좀 밝혀줄래?”
이코가 푸른 센서등을 밝혀 나인시의 내부에 조명을 비췄다.
신더는 미소를 지었다. “얘가 왜 이러는 것 같아? 바이러스 걸린 걸까?”
“카이토 황태자가 미칠 듯이 매력적이라서 시스템이 다운된 건지도 모른다.”
“황태자 얘기는 그만하면 안 돼?”
“그건 어려울 것 같다. 너는 결국 황태자의 의뢰로 일하고 있는 거 아니냐. 그 안드로이드가 뭘 알고 있을지, 뭘 봤을지를 생각해봐라. 그리고…….”
이코가 식식거리며 말을 이었다. “혹시 황태자의 알몸을 본 게 아닐까?”
“아, 진짜.” 신더가 장갑을 홱 벗어다가 작업대에 내던졌다. “도움이 안 되잖아.”
“나는 대화를 하고 있을 뿐이다.”
“관둬.” --- pp. 216~217

레바나가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자기보다 키가 더 큰 카이토를 눈을 깔고 내려다보았다.
“그런 식으로 비아냥거려서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시지요, 어린 황태자님.”
카이토는 턱을 실룩거렸다.
“귀국이 찾아낼 능력이 없다면 제가 지구로 수색대를 파견하겠습니다.”
토린이 나섰다.
“아닙니다. 폐하를 의심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만반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다만 즉위식과 축제를 마칠 시간을 모쪼록 허락해주신다면, 그 연후에 가능한 빨리 수색을 개시토록 하겠습니다.”
레바나가 카이토에게 눈을 흘겼다. “항상 고문관에게 결정을 위임할 생각이십니까?”
카이토가 차갑게 미소 지었다. “아니요. 앞으로는 황후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레바나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카이토는 ‘그 황후가 당신은 아닐 겁니다’라는 말을 간신히 삼켜야 했다. 레바나가 시빌 옆자리로 건너가 앉았다.
“좋습니다. 그러면 즉위식 이후 한 달 이내에, 그 여자를 포함해 동방연방에 체류 중인 탈주범들을 루나로 인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지요.”
카이토는 그때가 오기 전에 레바나가 이 일을, 잊어버리기를 바랐다. 신베이징에 루나인이라니?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레바나의 얼굴에서 분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보았던 표정이 꿈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레바나가 얇은 드레스의 옆트임으로 우윳빛 피부가 살짝 드러나도록 다리를 꼬았다. 카이토는 이를 악물고 창밖을 쳐다보았다. 얼굴을 붉혀야 할지 아니면 구역질을 해야 할지 모를 판이었다.
--- pp. 23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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