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뜨개가 인생을 어떻게 바꿨느냐고? 한마디로 나는 뜨개 덕분에 속 편한 사람이 됐다. 속 편한 사람이라니…. 조금 다르게 표현해볼까. 느긋해졌다. 조바심을 내지 않게 됐고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힘 빼고 사는 법을 배웠다. 간단하게 들리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인정받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 앞에서 가을 코스모스처럼 한없이 흔들리고, 그러면서도 짐짓 태연한 척 어깨에 힘을 주느라 승모근이 늘 뭉쳐 있지 않은가. 속 편한 사람이 되는 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서점가에 심리 치유 에세이가 쏟아지고 그 많은 사람이 심리상담사를 찾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 「뜨개를 안 해보셨군요」중에서
번역가 지망생 시절, 책날개를 펼쳐 번역가의 약력을 살펴보는 건 내게 퍽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번역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약력을 선호하는 추세이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약력이라고 하면 어느 학교 무슨 과를 졸업하고, 유학파라면 외국 대학의 이름까지 적은 뒤 번역한 책의 제목을 길게 나열하는 것이 관례였다. 내가 좋아한 책을 번역한 사람은 대부분 SKY 출신이거나 외국 학위가 있거나 둘 다였다. 그도 아니면 대학교수이거나 최소 박사는 됐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법학을 전공한 유명한 작가들을 보며 희망을 느낀 만큼, 나는 고급한 학력을 가진 번역가들의 약력을 보며 절망했다. 만화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장벽만큼이나 아득하게 높아 보이는 그 진입 장벽을 결코 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외국어를 읽는 게 좋았고, 그걸 한국어로 바꾸는 일에 애정을 느꼈다. 2011년, 영업 사원이 된 심정으로 거의 모든 번역자 모집 공고에 지원했고 운 좋게 첫 책을 계약했다. 하지만 출간된 책에 찍힌 번역자의 이름은 내가 아니라 어느 환경단체였다.
--- 「뜨개는 실로 하는 번역이다」중에서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만의 우주를 가진 사람이다. 우주를 부유할 때만 알 수 있는 가치와 시간이 있다. 지구에서 보기에는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거리를 하염없이 떠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를 몸소 가로지르는 이들은 정교하게 계산한 시간표에 맞춰 도착 지점에 근접하겠다는 목표 하나로 온 하루를 쓴다. 그런 하루가 모여 달이 되고 해가 된다.
--- 「뜨개라는 우주」중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남 일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 와중에 가물에 콩 나듯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었다. 나는 그저 해온 것들을 말했을 뿐인데 그는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라며 평생 좁히지 못한 내 관심사를 그 자리에서 수렴하기를 독촉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세상을 잘 몰랐고 자연스레 내 성향을 탓했다. 나는 왜 다른 사람처럼 한 가지만 좋아하지를 못해서….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문제는 한 가지를 고르도록 강요한 그의 태도였다는 사실을. “지금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번역을 하고 있고, 그것 말고도 좋아하는 여러 일을 하려고 준비 중이에요”라고 당당하게 응해야 했다는 사실을.
--- 「기꺼이 잡스럽게 거침없이 산만하게」중에서
뜨개를 하면서 내 안의 인지 부조화를 느낀 경험은 또 있다. 뜨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뜨개를 한다는 사실을 안 주변인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네가 그걸 왜 해?” 사람들이 아는 나는 여성스러움과 거리가 먼 반면, 그들이 아는 뜨개는 퍽 여성스러운 취미였기 때문이리라. 나는 뜨개를 하면서도 뜨개를 해도 되나 생각하는 이상한 생각에 종종 빠지고는 했는데, 그 이상함의 정체란 내가 성 편견을 굳히는 데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행여 그렇다 해도 뜨개를 멈출 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재미있었으니까. 하지만 뜨개를 할수록 궁금했다. 뜨개에는 왜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많을까. 지금까지 해본 어떤 취미도 이토록 자기 분열적이지 않았다. 애초에 뜨개는 어쩌다 여성만 즐기는 취미가 됐을까. 나는 왜 뜨개를 순수하게 즐기지 못할까.
--- 「자기 분열적 뜨개와 존재의 증명」중에서
그날의 〈놀면 뭐 하니?〉는 제주에서 올라온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유재석이 만든 유산슬 라면을 맛보며 이런저런 토크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한 가수 이효리가 평소와 달리 유재석의 말을 따뜻하게 받아주자 웃음이 터진 유재석이 물었다. “오늘 왜 이렇게 따뜻하니?” 그리고 이효리의 대답. “니트 입어서.” 실제로 그날 이효리는 연한 오트밀 색감의 터틀넥 니트를 입었고, 멋쩍어하며 대답하는 그의 얼굴 옆에는 “아무 말”이라는 자막이 띄워졌다. 흠… 과연 아무 말이었을까. 아마도 〈놀면 뭐 하니?〉 제작진 중에는 뜨개를 즐기는 사람이 없나 보다 생각했다. 적어도 니트의 장점을 아는 사람이 없는 건 분명해 보였다.
--- 「의외의 니트」중에서
혹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기호 도안을 사용해온 것도 여성 문맹률과 관련이 있을까. 뜨개가 우리나라에 퍼지기 시작했던 1900년대 초 동양과 서양의 여성 문맹률은 어땠을까. 당시 서양에서도 가부장제가 위세를 떨치기는 했지만 제인 오스틴이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인정받은 여성 작가들이 존재했고, 그렇다는 건 이들이 쓴 소설을 읽는 여성 독자 시장이 존재했다는 뜻이리라. 반면 동양의 상황은 녹록지 못했다. 1930년대 조선의 여성 문맹률은 92퍼센트에 달했다고 한다. 여성 작가는커녕, 여성 작가의 글을 소구하는 시장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일본도 여성 문맹률로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터.
--- 「꽈배기의 진짜 이름」중에서
무언가를 좋아해온 시간이 좋아하는 정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고, 무언가에 관한 책을 쓰려면 얼마만큼은 알아야 한다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뜨개에 관한 글을 쓰는 행운이 내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실감할 때마다 내 앞의 무수한 뜨개인에게 부끄러워진다. 오랫동안 뜨개를 해온 사람에게 뜨개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묻는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는 아마 훌륭한 뜨개 실력과 마음의 평화를 얻었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사업적으로 성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뜨개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좋을 뿐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실에 파묻혀 뜨개를 하는 시간이 좋다고. 뜨개 말고 다른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왜 에베레스트에 올랐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었기에”라고 대답한 조지 말로리처럼 그저 ‘실과 바늘이 있었기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햇빛에도 바람에도 부력에도 구애받지 않는 심해에서 오랜 시간 무심히 뜨개를 해온 그들에 비하면 내 뜨개 예찬은 수면 위에서 부서지고 흔들리며 온갖 소리를 내는 파도 같은 것이 아닐까.
--- 「짐머만을 읽다」중에서
나는 마음 편한 뜨개인인 줄 알았다. 기계가 뜬 것처럼 완벽하고 매끄러운 편물을 뜨는 게 목표라면 매장에 가서 사 입지 무엇 하러 힘들게 뜨개를 하느냐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한 실수는 넘어갔고, 못 입을 정도가 아니면 풀지 않았다. 이제야 생각한다. 혹시 틀리고도 틀린 줄을 몰랐던 게 아닐까. 또는 고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일부러 모른 체했던 때도 있지 않았나. 그러면서 완벽해지고 싶지 않다고 자기합리화를 했던 게 아닐까. 완벽한 뜨개를 지향하는 사람은 강박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와 최대한 가까운 편물을 완성하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뜨던 편물을 과감히 풀 수 있는 이유는 틀린 부분이 어디인지 정확히 짚어내어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 「지코지기면 백전백승」중에서
만약 방직기가 발명되지 않았고 뜨개가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하는 일이었다면, 뜨개가 직업인 남자들이 여전히 많았다면 지금쯤 우리는 뜨개 분야의 세계적 위인 몇 명쯤은 알고 있거나, 매년 뜨개 문화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을 올해는 누가 받게 될지 기대하며 한 해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라마다 뜨개 문화를 장려하는 정부 부처가 있고, 뜨개의 과거와 미래를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고,‘사’ 자나 ‘가’ 자를 붙여가며 뜨개 하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문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역사에 만약은 없는 것을.
--- 「뜨개 하는 남자들」중에서
저는 언젠가부터 뜨개를 할 때 머릿속에 한 가지 장면을 떠올립니다. 뇌에 갇혀 소동을 일으키던 무수한 생각이 손끝에서 나와 가느다란 바늘 위를 줄 맞춰 걷는 장면입니다. 뜨개는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습니다. 고민에 답을 주지도 않지요. 그저 내면을 질서 있게 할 뿐입니다. 손끝에서 바늘을 타고 걸어 나온 생각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잊게 해주고, 부딪쳐야 할 일이라면 집중할 힘을 주는 것이 뜨개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랬으니까요. 해결해야 하는 일에 용기 내어 부딪친 일, 소모적인 의구심을 미련 없이 털어버린 일은 모두 뜨개를 시작한 뒤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당신이 뜨개를 하면 좋겠습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