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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건설
김해선 | 파란 | 2021년 01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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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53쪽 | 234g | 128*208*20mm
ISBN13 9791187756897
ISBN10 11877568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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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를 반으로 가른다
긴 통로가 보인다

통로 밖으로 콘크리트 기둥이 서 있다
아이들이 강물을 건너간다
머리에 옷을 이고 간다 통로에서 멀어질수록 까만 씨앗처럼 떠다닌다
큰비가 오면 돌아오지 못한다

잠에서 깨어날수록 현재도 미래도 아닌 소리들이 모여든다
바람개비처럼 돌아간다 강바닥 밑에서 물길을 잡아당기며
누군가 가느다란 줄을 감고 있다
바닥이 갈라진다
아직도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머리카락이 무성하게 자란다

모두 날아다닌다고 말하는
막다른 길들이 꼬리를 흔든다
시간을 막는다
다이빙을 금지해

새로운 피임약을 복용한다
어둠보다 캄캄한 대낮
끝을 향해 더 연습하고 싶어
이틀째 꼭대기에 서 있다

유리 조각에 못을 박고 뽑아낸다
머리카락이 올라온다
알 수 없는
피부에 둘러싸인 강
이마가 뜨겁다

활활, 벽지를 벗긴다
---「중동 건설」중에서

평면은 비밀이다 평면은 뜨겁다 오후 세 시 해를 받고 있는 나무와 그네가 평면 위에서 흔들린다 한꺼번에 매미가 운다

운동장에 아이가 서 있다 검정 비닐봉지 속에서 아이스크림이 녹고 있다 아이는 자전거를 기다리고 있다 새로 산 자전거를 키가 큰 형이 한번 타 보겠다고 가져갔다 오지 않는다 까맣게 탄 얼굴과 목으로 땀이 흐른다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뚝뚝 바닥으로 떨어진다 평면의 한가운데서 오래전 아이가 뼈처럼 솟아 있다 대낮 속으로 사라진다

순간 벽을 뚫고 가면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을 것 같다 평면의 벽은 어디에 있을까 벽은 오후 세 시도 아니고 형도 아니다 운동장 왼쪽에 있는 나무는 사각이다 누군가 긴 각목으로 사각 틀을 만들어 나무 둘레에 세워 두었다 평면과는 관계가 없다 자전거는 나무 속으로 들어가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라색 안장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려놓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제자리인 줄 모르고 돌아간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아이와 평면이 무슨 관계니 왜 평면의 자전거야? 큰소리가 들린다 귀를 막아도 쫓아다닌다 흰 눈이 오면 모두가 평면이 된다고 중얼거려도 너를 이해할 수 없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 귓속을 울린다

신경 쓰지 않을 거야 평면이 말한다 모두가 이해하는 말만 할 수 없잖아 어떻게 모두의 입맛에 맞는 말만 해야 해? 언제나 알 수 없다는 말로 납작하게 기죽이는 말 위에서 아이가 자전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어

낯선 새들과 바람이 자전거를 몰고 지나가 버릴 것 같다 아니야 오지 않는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어 사라진 아이 돌아오지 않는 아이에게 보라고 녹아 흐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작은 손이 밀려오고 있어 맥박이 뛰고 있잖아 수위 아저씨가 긴 호스를 끌고 학교 운동장과 잔디밭에 물을 뿌린다

평면은 식지 않는다
---「평면의 자전거」중에서

흰 접시 위에 토마토
손으로 만지자

컹컹 짖는다
물고기를 찾으며
입술을 흔든다

토마토 눈동자 안에서 물고기가 떠다닌다 푸른 개다
지느러미에서 긴 복도가 나타나자 여기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둠을 밀고 팽팽해진다
껍질을 물고 웃는 연습을 하는
토마토가 토마토에서 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부레를 달고 새벽을 달려도
잠이 쏟아진다
복도가 익어 간다

왼쪽 가슴에서 어젯밤들이 떨어져 나온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붉어지는 해골들
연기를 향해 맹렬해진다
현실과
비구상을 붙잡고

온다
오지 않는다
바트가 숨겨 놓은
아이
자주 잊는다

물고기는 토마토의 태반이라고 말한다
폭포가 희부옇게 떨어져 나간다
푸른 개 등 뒤에서
흔들리는 새벽
흔들리는 아이들

*바트: 히브리어로 ‘딸’이라는 뜻.
---「히브리 소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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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선의 시는 시공간을 거침없이 넘나든다. 한자리에서 벵골만과 진도를 가로지르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가 살고 있는 이백 년 전 마을”에 ‘군산’을 덧입힌다. ‘대파를 가득 실은 1톤 트럭’은 ‘제네바’와 ‘남원’을 질주하는 초현실이면서 ‘덕천식당 운봉요양소’에 다다르는 극사실이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는 “더블”이다.

그가 이와 같은 비약의 스포츠를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자서전’이 질료이기 때문. “스무 살이 되기 며칠 전 긴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감행한 ‘사과 던지기’는 다름 아닌 ‘사과 견디기’였던 것. 반복된 이 고투를 통해 알게 된 지점은 불가능의 돌파구는 가능이 아니라 불가능이라는 것. 불가능은 불가능으로 갱신된다는 것. 그래서 “자두가 자두를 들고” “뿌리를 파면 작은 바다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모두가 이해하는 말만 할 수 없”다는 담담과 단단에 이른다.

김해선에 의해 발굴된 감각은 나의 증명인 동시에 세상의 증명이라는 면에서, 즉, “내 안의 폭포”로 새로운 검정의 세계를, 반으로 가른 토마토로 현실의 통로를 만들어 냈다는 면에서, 유의미하다. “중동 건설”의 비밀은 평면이다. “평면은 뜨겁다”, “평면은 식지 않”기에 “끝을 향해 더 연습하고 싶”다고 쓸 수 있다. 김해선 시의 특별함은 여기에 있다.
-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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