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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낙타 13 정물화 15 계동과 가회동 사이 16 중세를 적다 18 낮꿈 20 숯 너머 동백 22 코끼리傳 2 4 가릉빈가 26 본색 28 묵음 30 질문 32 너 34 송전탑 35 낚시꾼 36 꽃의 본적 38 나무의 영역 40 2부 의문 45 Y 47 병 48 북극 50 사라진 문자 52 다리의 처음 54 오리배를 읽는 시간 56 그날 58 푸른 코끼리 60 금요일 62 불멸의 사전 63 열쇠 64 화석 66 서쪽의 우산 68 암각화 70 숨은 천사 72 만신 73 3부 다른 형식의 새 77 당신의 컵 79 폭설 80 죽은 인형 82 시 84 방언 86 보라의 방향 88 모과 90 저녁이라는 물질 92 202호 남자 94 독무 96 어느 날의 오후 98 벌새 100 텍스트 92 4부 빵의 양식 105 없는 말 107 픽션들 108 소리의 행방 110 얼음장을 읽다 112 징후들 114 어떤 날 116 돌사자 118 붉은 날 120 클릭 122 빗소리 경전 124 입구 126 설원 128 이상한 오후 130 작품해설 불립문자를 향유하는 시간 133 |
저홍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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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없고 이름만 남아 문맹인 밤이 너의 얼굴을 몰라 본다 너를 열고 들어간다 이름은 젖어서 불이 붙지 않고, 이름 안에서 너는 발굴되지 않는다
너를 부른다 사진 속 웃는 얼굴처럼 봄은 가지 않고 여전히 봄이어서 손닿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있는 붉은 꽃, 봄은 출발하지 않는다 펜 끝에서 흘러나오는 이름을 한 자 한 자 적을 때마다 까르르 웃으며 달아나는 파도, 밤으로 편입된 책상과 의자만 남아 몇 마디 말에 부딪쳐 삐걱거린다 다만 그렇게 이곳에 없는 봄은 ---「너」중에서 복사본에 원본대조필 도장을 찍는다 원본과 같은 거라고 넘칠 일도 모자랄 일도 없다고 안심하라고 불태워 없애야 되는데 도장 찍힌 대낮 한복판에 번뜩이는 햇볕의 광기 강가에 나가 강물의 리듬에 손을 적신다 손에 와 닿는 물의 정직한 감정들이 몸속으로 흘러든다 눈앞엔 죽어서도 오리가 되지 못할 오리배 문장 밖으로 나오는 길을 잃고 오랫동안 오리가 되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기호들 사무실로 돌아와 조각조각 오리배를 찢는다 여러 번 베껴 적은 맹서의 문서들을 파쇄기에 넣고 단 한 번의 사랑만 기억하기로 한다 ---「오리배를 읽는 시간」중에서 술병이 깨졌다 오래된 집을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진 이목구비 여기저기서 말똥거리는 눈 뻐끔거리는 입 몸을 버린 물이 마음 가는 대로 흘러 다녔다 첨도 끝도 좌도 우도 사라졌다 얼마나 오래 견디다 마음 바깥으로 나온 허밍인지 곳곳에서 처음 보는 꽃이 피어나 오늘이 낯설어졌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들 어순도 문법도 없이 반짝거렸다 혀끝에 박혀 발음되지 않던 새들을 지우는 동안 산란하는 약속처럼 말이 말을 버리고 질주하였다 저녁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숨을 곳이 많아진 알몸의 햇볕들 들끓는 피의 방향으로 공터가 넓어지고 색색의 날개 퍼덕이며 무한대의 음악이 시작되었다 ---「방언」중에서 |
세상의 절망과 시 쓰기의 희열
돌도 나뭇잎도 아닌 하느님도 나비도 아닌 너였다가 너의 미래였다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다만 지금은 황홀한 한때 -「화석」에서 홍일표의 시에서 시적 주체인 ‘나’는 자주 사라지거나 최소한 희미해진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또한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성을 지닌다. 코끼리가 되고 돌사자가 된다. 사라진 문자가 되고 야생의 어둠이 된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나’는 그러나 마냥 평안하고 자유로운 상태에 놓인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무엇이든 볼 수 있고, 무엇이든 볼 수 있기에 그 모든 것을 받아 적어야 하는 책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아우성과 분노가 있다. 회한과 탄식이 있다. 보기 싫어도 보이지만 그것이 무언지는 잘 모르겠기에 그것을 적기 위해서 그것을 더 자세히 보아야 하는 운명. 시인은 그 운명을 황홀한 한때로, 희열의 순간으로 받아들인다. 세계의 (비)독해와 다시 삶을 향한 언어 여러 생을 건너와 오직 천지 가득 명랑하게 뛰노는 빗소리 빗소리 -「빗소리 경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시에 등장하는 숱한 ‘나’는 세계를 독해할 수 없다. 독해할 수 없음을 시인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불립문자’를 쓴다. 불립문자는 안개처럼 끝없이 모호하고 계속해서 지워져 쉽사리 읽을 수 없다. 그것은 경직되고 가시적인 인간의 언어와 대비된다. 시작과 끝이 확연한 인간의 세계와는 달리 불립문자의 세계는 한 존재가 다른 존재로 변하고, 끝과 시작이 부드러운 원형으로 맞닿아 있는 듯하다. 마치 윤회하는 삶처럼. 이토록 해석 불가능한 세계의 삼라만상을 독해하려는 시인의 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살고자 하는 의지로 연결된다. 삶의 순간과 편린 들은 돌고 도는 것이기에 그 자리에 멈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원할 처음이기에 새로운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중세를 적다』를 읽는 일은 여러 생을 건너와 천지 가득 명랑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것과 같게 된다. 중세에서부터 이어진 삶의 경전이라고 하여도 감히 충분할 것이다. |
삼라만상의 “모호한 문장”을 읽을 수 없는 곤경에서 출발한 홍일표는 이제 “분명했던 것들이 분명하지 않아서 즐거운 전란”에 도착한다. 지금 그는 ‘분명하지 않은 것’을 해석 불가능성의 궁지가 아닌, 변성과 창조의 가능성으로 하는 자리. 그리하여 모든 것이 변화하는 무상한 세계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상한 ‘나’는 멈추지 않고, 멈출 수도 없이 소멸과 새로운 재탄생을 향해 나아간다. 삶을 새로 출발하는 일은, 내 안에서 새로 돋은 날개를 펼치는 일은 그러므로 언제든지 가능하다.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없는 말들이 자욱해지”(「없는 말」)는 불립문자의 시간에 홍일표는 “이곳에 없는 이름을 지어 부”르는 일부터 시작한다. - 김수이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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