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어른인 걸까. 어렸을 때부터 반복해온 고민을 마흔 중반이 되어서까지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어른이 덜된 어른으로서 여전히 어른이 되고 싶다. 아니, 이제는 좀 되어야 할 것 같다. 더는 우기며 살 수 없다.
‘어른’이라는 말은 얼핏 밖을 향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내 안에서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어른이란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 행동하는 존재, 좌절이나 후회 또는 실패도 감당하는 존재, 자신에게 단호하면서도 너그러운 존재. 내 안에서 그게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사회에서의 어른 역시 될 수 없다. 어른이 되려면 일단 나에게 먼저 어른이어야 한다.
--- 「어른이 되고 싶은 어른」 중에서
“자신을 사랑하나요?”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일단 반문할 것 같다. “꼭 사랑해야 하나요?”
그리고 딱히 사랑하지 않지만 미워하지도 않는다고 대답할 것 같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니까. 사랑 말고도 나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은 많다. 놀라움, 대견함, 또는 아무 생각 없음. 꼭 스스로를 사랑해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건 아니다. 나를 사랑하는 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태도는 소중하다. 자신을 아름답다 여기는 마음도 좋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아름답건 아름답지 않건, 자신을 사랑하건 사랑하지 않건, 그저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아름답지 않으면 어떤가. 내가 날 사랑하지 않으면 또 어떤가. 나는 내가 미워도 살 것이고, 좋아도 살 것이다. 나에 대해 딱히 이렇다 할 생각이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도, 아름답다 생각하지 않아도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는 나를 존중하고 싶다.
--- 본문 중에서
어느새 나는 관계에 노력 같은 거 안 하는 사람이 됐다. 누구든 갑자기 나에게 올 수 있었던 것처럼, 언제든 떠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런 게 관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시간이 없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들이다.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서 내가 책임지려고 했던 무언가를 생각한다. 상대의 단점 앞에 눈을 감는 것.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 내 마음에 거짓말하는 것. 그럼으로써 관계를 내려놓지 않는 것. 그러느라 너덜너덜해진 마음마저 감당하는 것. 이제 그런 거 안 하고 싶다. 관계 또는 누군가를 책임지기에 앞서 필요한 것은 먼저 내 마음에 책임감을 갖는 일이니까.
--- 「연애노력주의자」 중에서
“계속 괴로워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이제껏 충분히 괴로웠는데, 똑같이 살 수는 없잖아요.”
몇 년 전 뒤늦게 심리학 전공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학교에 다닐 때, 수업에서 들은 말이다. 심리상담사로 활동하시는 교수님은 심리 상담을 통한 변화에 회의적인 내담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했다.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는다 해도, 적어도 괴로웠던 과거나 여전히 괴로운 지금처럼 살 수 없지 않냐며 반문하신다고 했다. 얼핏 평범한 그 말이 그날따라 가슴에 사무쳤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 새로운 걸 배워보겠다며 낯선 교실에 앉아 있었던 이유도, 더는 이렇게 못 살겠으니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다짐 때문이었으니까. (중략)
책임에서 도망치기 위해, 책임감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더는 책임감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몇 년을 보낸 지금,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말해주고 싶다.
“책임감을 생각하면 숨도 못 쉬겠지? 달아나고 싶어 미칠 것 같지? 다 됐고, 일단 좀 느긋해져봐. 실수해도 그러려니 하고, 방황하는 것 같아도 좀 기다려보고, 남에게 상처 주거나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게 곧 너라는 사람 전체를 규정짓진 않는다는 걸 믿어봐. 늘 만회할 기회는 있다? 적어도 알려고 하거나 인정하거나 마주하는 사람에게는 말야. 그러니 도망치지만 말자구. 일단 너에게 먼저 관대해져보자구. 네가 너를 봐주지 않으면 누가 널 봐주겠니.”
--- 「에필로그_책임감의 다른 이름은 관대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