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작가 정문정의 신작 에세이. 전작에서 상처받지 않는 관계 맺기를 알려주었다면, 이제는 거기에 머물러 있지 말고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어른스러운 태도와 감정으로, 능력에 요령을 더해 멋지게 나아가기 위한 매뉴얼을 담았다. - 에세이 MD 김태희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그에 어울리는 선택을 해나가는 일인데, 이 레이스는 너무 혹독해서 처음에는 호기롭게 시작했어도 어느새 남들 사이에 묻혀 편하게 갈 궁리를 하게 된다. 둘러가더라도 목적지는 잊지 않으려면 언젠가 한번쯤 들었던 호의의 말, 진짜라고 믿고 싶은 말을 눈에 띄는 곳에 두어야 한다. 긍정의 말들로 채워진 부적을 많이 지닌 사람들에겐 자기 선택을 믿는 일이 한결 쉬우니까. --- p.18~19
막연한 짐작이 아닌 나의 실감으로 판단하는 경험이 쌓여갈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나라는 사람을 잘 다루는 법도 알아간다. 경험해보지도 않고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고 단정하지 않기, 의견과 편견을 구분하기,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악한 짓만 아니라면 비난하지 않고 다만 궁금히 여기기. 이런 노력을 통해 제대로 좋아하고 분명하게 싫어하고 싶다. 깊어지고 넓어지며 자주 감탄하기 위해서. --- p.37~38
부모의 정보력과 인맥, 매너가 대물림되는 세상이지만 그걸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울고만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압도될 필요도 없지만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애써 무시해버리지도 말자. 내게 주어지지 않은 걸 아예 필요치 않은 것처럼 대하는 식의 대응이 반복되면 시니컬한 자세가 인생을 사는 전반적인 태도가 된다. 그저 담담하게 찾아서 내 근처로 길어오면 된다. 주변에 책 같은 사람이 없다면 책을 통해서라도. 시간이 더 걸릴지라도 견문을 넓혀 그것들을 내 정서적 서재에 꽂아두면 된다고, 아직까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 p.50
재능이란 영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로 돈을 못 벌 것 같으면 해야 하는 일로 돈을 벌어서라도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는 꾸준함에 깃드는지도 모른다. --- p.69
프로는 자신의 기분을 티내지 않는다고, 기분을 업무에 끌고 와서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배웠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도 있지 않나. 회사에 가면 좋은 기분을 유지하며 일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이게 속세의 인간인 내게는 너무 힘들었다. 돈 받고 일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지키고 언제나 배려하는 인간이 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저기에서 우발적으로 사건이 터지는데 내 마음만 고요할 수 없었다. --- p.104
돈이 없을 때나 생기기 시작했을 때나 갈팡질팡한 건 마찬가지였다. 원하면서도 미워하니 불화할 수밖에.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서도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마음. 부자를 부러워하면서도 별것 아니라고 무시하고 싶은 마음. 돈이 중요하다 생각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걸 아는 마음. 그러다가도, 그게 다는 아니라도 어쩌면, 상당 부분이 아닐까 의심하는 마음. --- p.194
자존감은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 같은 불순물을 없애고 순도 높게 벼려낸 보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성정을 발효시켜 오래 기다려 구워낸 빵에 더 비슷할 것이다. 정말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고통에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뛰어넘었고 더이상 그 흉터에 집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승리자들이니까. 과거의 어둠은 베이스캠프에 묻어두고서 더 위쪽 좋은 것들이 기다릴 풍경으로 담대하게 걷겠다고 결심하는 탐험가들이니까.
지금 나의 불행이 벗어날 수 없는 필연처럼 느껴진다면 꼭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기대되기보다 온통 두렵게 느껴질 때, 결핍과 불운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일 때. 그런 상황 속에선 현재를 이해할 힘도, 미래를 대비할 여력도 없다. 이때 네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조언은 상처가 되고 현실을 알려주겠다는 조언은 폭력처럼 느껴진다. 정문정 작가는 섣불리 이상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의 말에 힘이 있는 건 스스로 촘촘하게 경험했던 현실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불행은 필연도, 무능해서도 아니라고. 그러니 거기에 머물거나 좌절할 이유가 없다고. 우리는 분명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거라고. 그의 글이 정말 그리되리란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졌다. 흔들릴 때마다,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을 펼칠 것이다. 흔들리는 건 당연하니 계속 나아가자고 따뜻하게 내미는 손에 한바탕 울고 난 뒤 다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