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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손안의 죽음

그녀 손안의 죽음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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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13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384g | 135*194*19mm
ISBN13 9788954678575
ISBN10 8954678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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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겨운 인간이 자기 개에게 중성화 수술을 안 해줄까요? 어떤 비뚤어진 인간이……” 사실 순진한 거지, 겨우 서명 하나에 그런 구속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종이에 묻힌 잉크 몇 방울, 휘갈긴 글씨 몇 자, 그냥 내 이름일 뿐인데.
--- p.27

커다란 집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러밴트의 오두막집이 나타났을 때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조금 숨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내 정신이 배회할 세계가 좀 작아질 필요가 있었다.
--- p.30

내게는 과학에 대한 감성이 없었다. 월터와 그의 이성적인 정신에 시달리다보니 그런 종류의 정신적 야단법석에는 인내력이 바닥났다. 그가 죽은 뒤로 나는 좀더 시적으로 사고하게 됐다. 마법이 차가운 논리에 뭉개져버릴 때가 너무 많았으니까.
--- p.37

나는 단순한 일들을 하면서 기쁨을 느꼈다. 개에게 음식을 해 먹였고, 서재 창문 밖으로 아침 햇빛을 받은 고요하고 희끄무레한 물을 바라보았다.
--- p.40

시내를 느릿느릿 돌아다니며 진짜 목적도 없으면서 바쁜 척했다. 그게 인생인 것 같았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할일을 찾는 것. 시계를 본 횟수가 적었다면 그 하루를 더 즐겁게 보냈다는 뜻이었다.
--- p.42

나는 책을 좋아했다. 책은 조용했다. 내 얼굴에 대고 소리지르지 않았고 읽다가 그만둬도 화내지 않았다. 내용이 맘에 들지 않으면 책을 방 저편으로 내던져도 괜찮았다. 벽난로에 넣고 태워도, 책장을 찢어내 코를 풀거나 화장실에서 사용해도 괜찮았다. 물론 그런 짓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읽은 책 대부분이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었으니까.
--- p.44

죽음은 생각만 할 때는 괜찮더라도 지나치게 가까이 가면 내가 어떤 식으로든 감염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이 나를 변화시킬 거라고.
--- p.76

알고 보니 지역 주민 중에 경찰이 가장 재수없었다. 그들은 양손을 옆구리에 올리고 문가에 서서, 마치 내가 자기들에게 위협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이들은 나를 겁주려고 내 집에 왔구나, 나는 생각했다.
--- p.78

죽음은 해묵은 푸석한 레이스 같았다. 섬세한 망사 바탕에서 곧이라도 분리될 듯 너덜거리며 간신히 버티는, 해체 직전의 아름답고 섬세한 아플리케. (…) 생명은 여간해서는 파괴되지 않았다. 인정사정없이 다뤄야만 몸밖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
--- p.89

여기저기에 조금씩 비밀을 심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면 자기 자신에게 계속 관심을 쏟게 된다.
--- p.97

실로 작가의 일이란 이 지구의 기적을 하찮게 만들고, 삶의 무한한 미스터리에서 질문 하나를 떼어내 투덜대는 방식으로 답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 p.101

그는 품위 있고, 잘생겼고, 정말이지 준수했다. 외모가 준수한데도 주위 사람들을 매우 불편하게 하는 남자가 있다면 성격이 끔찍이도 가혹할 게 뻔하다. 월터가 못생긴 남자였다면 멸시를 받았을 것이다.
--- p.156

그는 삶의 사소한 문제들이 뭔지도 몰랐다. 이미 결혼생활 초기에 그런 문제는 전부 내게 떠넘겼다. 죽을 때까지 삼십 년 동안 그는 한 번도 식료품점에 가본 적이 없을 것이다.
--- p.251

존재론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우울해졌다. 내가 꿈속에서 살고 있다고 느껴졌고, 내 정신에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데도 그 정신에 의지해 나를 둘러싼 현실 전부를 상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느껴졌다. 나는 눈앞의 광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를 탓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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