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 『이 왕관이 나는 마음에 드네』, 『초자연적 3D 프린팅』, 『하얀 사슴 연못』, 『일요일의 예술가』 등을 썼다.
같은 만년필 세 자루를 갖고 교정지로 쳐들어가는, 번역가라는 ‘프리랜서’. 지속적인 고양감 속에 머물 수 있는 ‘고원’의 상태를 시 쓰기라 말하며 이를 꿈꾸는 시인. 소속란을 쓸 일이 있으면 거침없이 ‘무소속’이라고 쓰지만 그 쓸쓸함 앞에서는 뭐라도 붙잡고 아침까지 버티기를 바란다. 그래서 가끔 ‘초’를 켜는 낭만적인 짓을 하는 것일지도. 참 ‘senescence’를 보면서 단어의 숙명을 생각했다면 조금 이상한가? 뭐 어쩌겠느냐마는.
켄 리우의 『도덕경』은 그간 내가 읽은 그 어떤 『도덕경』과도 달랐다. 켄 리우 자신이 “중국인으로 자란다는 것은 공기 중에서 노자를 들이마시는 일과 같았다”고 말할 만큼 도덕경 원문과 친숙한 작가라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었고, 텍스트에 대한 자신감과 장악력을 느꼈다. (...) 그의 『도덕경』은 끊임없이 생생히 말을 걸고, 우리는 자연히 더듬더듬 한마디씩 읊조리게 된다. 점점 말이 줄어들어 언젠가 편안한 무의의 상태에 이를 때까지.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특히 이 책을 읽는 데는 정해진 답이 없다. 중요한 것은 알 듯 모를 듯한 『도덕경』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실제로 변화하는 일일 것이다. “바다처럼 평범하면서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아득히 넓어지는” 일일 것이다. 켄 리우가 말하듯 “이해는 독자의 정신이 죽은 텍스트를 살아 있는 이야기로, 자기 고유의 이야기로 변형시키는 순간 발생”한다. 『도덕경』을 살아 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일은 노자도 번역자도 아닌, 순전히 독자 자신의 몫이다.
평범하게 보이진 않았어요. 다만 그리 특이한 인상은 아니었다는 말이죠. 하지만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어요. 그 사람이 뭐라고 말하면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죠. 팔의 피부 밖으로 뼈가 튀어나와 있었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더라고요.P.322 중에서
나는 그 문제에 있어 아무 권한도 없소. 삶의 모든 순간이 갈림길이고 선택이지. 당신은 어느 시점엔가 선택을 했소. 그게 이 순간으로 이어진 거지. 계산은 정확하오. 그림은 이미 그려졌지. 어떤 선도 지울 수 없소. 당신에게 마음대로 동전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는 믿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 있겠소? 한 사람의 행로는 좀처럼 변하는 법이 없고 갑자기 변하는 법은 더더욱 없지. 그리고 당신의 행로는 처음부터 뻔히 정해져 있었소.P.284 중에서
이해 못하는 거 알지만 그래도 한 번만 더 설명해주마. 너는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어제뿐이지. 어제 말고 또 뭐가 있겠니? 너의 인생은 인생을 이루는 그 하루하루의 날들로 이루어져 있어. 어제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 너는 그저 도망쳐서 이름을 바꾸고 어쩌고 하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말이지.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천장을 쳐다보며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야. 여기 누워 있는 사람은 대체누 구지?P.250 중에서
루리를 발견했다. 루리의 빛도 닦기 나름. 나도 닦으면, 열심히 갈고닦으면, 빛이 날까, 반짝일까. 내가 앞으로 살면서 무엇을 하게 될지,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나도 빛나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도,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책상 서랍 속에서라도, 빛이 날 수 있다면.#리딩스타트
겹소원, 겹슬픔, 겹유감, 겹기억, 겹설렘, 겹기회, 겹행운. 좋아하거나 원하는 것, 잊어서는 안 되는 것, 그러나 자꾸만 잊게 되는 것, 꼭 바라는 것 앞에 겹을 붙이고 가만히 지켜본다. 그 모든 것에 해당하는 ‘소망’ 앞에 겹을 붙이고 분열하는 겹소망을 사람들에게 송부할 방법을 찾는다.#리딩스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