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경성의 삶이 조립된 아파트는 갖은 사람의 욕망을 밟고 서 있다. 이 소설은 빠르고, 예측 불허하고, 통쾌하다. 그리고 재밌다! 퍼즐을 맞춰가는 유희적 즐거움을 넘어서 시간 여행자의 설렘을 느끼게 한다. 손에 잡힐 듯한 일제강점기의 생활상 속에서 입분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경성의 산책자가 된 당신을 발견하게 된다. 선과 악의 빗금 사이로 미끄러져가는 범죄스릴러!
큰 빛이 큰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빛은 저들의 것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P.280 중에서
비밀번호를 하나씩 누르는 손이 떨렸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자 코끝이 간질간질했다. 금세 눈이 매워졌다. 현관의 센서 등이 어두운 집을 희미하게 비췄다. 베란다 창문 앞에서 있는 형체가 낯설지 않았다. 믿기지 않아 눈을 깜빡였다. 감았다 뜰 때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곳에 말뚝이 서 있었다. 낮에 회사에서 본 것과 비슷하면서 또다른 모습이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채였다.P.169 중에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왜 그래야 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어떻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전후 사정이 밝혀질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래야 정확히 조사해 공식적으로 알릴 수 있으니까요. 벌써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이 떠돌고 있습니다. 협조 부탁 드립니다.P.142 중에서
우리는 저주를 두려워하는 게 아닙니다. 말뚝들이 세상에 꺼내놓았을지 모를 불안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게 일종의 저주라면 저주를 두려워하는 게 맞습니다. 과학으로 정체를 밝힐 몇 구의 말뚝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소각하면 되지 않습니까. 말뚝들이 퍼뜨린 바이러스가 이미 당신들의 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공포와 불합리가 그것입니다.P.137 중에서
모태 신앙이라는 말을 이해해기 힘들었는데 롯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생각해보면 그들의 신앙이 이해되었다.일곱 살에 부산을 떠나 30년 넘게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의지로 어쩌지 못하는, 선택한 적도 없는데 마음 끈질기게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벗어나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