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마지막 페이지
2. 암시 읽기 3. 눈으로만 읽는 독서 4. 기억 속의 책 5. 글 읽기 배우기 6. 찢겨 나간 첫 페이지 7. 그림 읽기 8. 누군가에게 대신 책을 읽게 하기 9. 책의 형태 10. 혼자만의 은밀한 독서 11. 책 읽기의 은유 12. 최초의 시작은 진흙 조각에서 13. 책 분류의 역사 14. 책 읽기와 미래 예언 15. 상징적인 독서가 16. 갇힌 공간에서의 책 읽기 17. 책 훔치기 19. 독서가로서의 작가 20. 독서가로서의 번역가 21. 금지된 책 읽기 22. 얼간이 같은 책벌레 이미지 23. 끝나지 않는 「독서의 역사」 |
Alberto Manguel
알베르토 망겔의 다른 상품
정명진의 다른 상품
|
--- 류혜숙 ruru100@yes24.com
무릎 위에 펼쳐진 두루마기를 읽고 있는 젊은 날의 아리스토텔레스, 틀안경을 잡고 책장을 넘기는 고대 로마의 최대시인 베르길리우스, 활짝 핀 서양협죽도에 파묻혀 시를 낭송하는 17세기 인도의 시인, 앞을 못 보는 보르헤스가 책 읽어주는 사람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운 모습...
『독서의 역사』는 먼저 책 읽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시대를 초월하여 책읽기에 몰두하는 그들의 눈빛과 몸짓은 진지하다. 그리고 대단한 독서광인 망구엘은 독서를 통해 얻는 그들의 기쁨과 책임감을 함께 느낀다. 이 모든 풍경이 바로 '독서의 역사'인 것이다. 각 장마다 몇 명의 작가와 수십 권 사이를 넘나드는 『독서의 역사』는 책장 가득히 꽂힌 책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그윽해지는 사람, 책 냄새를 맡으며 하루 종일 꼼짝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 바로 그들을 위한 책이다. 소년 시절부터 유별나게 책을 좋아했던 망구엘은 마음껏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서점의 점원으로 일하게 되고, 그곳에서 20세기 정신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던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를 만난다.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말년에 눈이 안 보이게 된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게 된 소년 망구엘은 그의 독특한 촌평에 문학적 영감을 받게 되고, 그 후 더더욱 책의 매혹에 사로잡히게 된다. 오늘날 작가이자 번역가, 편집자이기도 한 망구엘은 그의 풍부한 독서량을 자랑이라도 하듯 방대한 자료와 폭넓은 독서경험을 토대로 재미있는 일화와 갖가지 문제들을 술술 풀어낸다. 그는 자신의 독서 편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수십 세기 인류 역사를 거쳐오면서 책읽기를 사랑했고, 이를 삶의 도구로 활용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점점 범위를 넓혀 나간다. 다소 체계 없는 진행이긴 하지만 독서를 통해 얻은 경험과 다양한 독서의 행위, 독서의 방법 등, 그야말로 '독서문화에 대한 변천사'를 읽노라면 현학적이다 못해 관능적이다. 독서광들의 열정에 감탄하고, 심지어 그들의 편집광적인 집착에 기가 질릴 정도이다. 책읽기를 너무 좋아해 길거리에 나뒹구는 종이조각까지 읽었던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 책과 헤어지기 싫어 여행을 할 때면 400마리의 낙타를 동원해 11만 7000여권의 책을 끌고 다녔던 페르시아의 총리 압둘 이스마엘. 걷지 않을 때면 늘 책을 읽었다는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 역시 대단한 독서광이었던 사르트르도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관념의 느낌에 대해 고백을 한다. 책을 읽고 나면 그 책과는 도저히 헤어질 수 없어 책을 훔치는 것조차 용인되는 그들에게 책을 읽는 행위는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또한 인생의 비밀을 푸는 행위이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한 방법이다. 물론 그런 것들이 언제나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독서가가 갖는 특성이 현명하고 유익하게 인식되긴 하지만, 세상의 소란함에 무관심한 듯 구석에 쪼그리고 있는 그들의 이미지는 다소 은밀하고 배타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독서행위를 역동적인 삶과 반대되는 일로 파악한 망구엘의 어머니 역시 그를 의자와 책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리고 열린 공간으로 내보내기 위해 애썼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망구엘은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말을 빌어 당당한 변명을 한다. "편도 마차 승차권으로는 한번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삶이라는 마차에 오를 수 없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책을 한 권 들고 있다면 그 책이 아무리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당신은 그 책을 다 읽은 뒤에 언제든지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음으로써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그것을 무기로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또한 사소한 말 한 마디, 문장 하나에도 현학적인 표현을 즐겨 쓰는 독서광들의 독서방식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스케치한다. 시인 프란체스코가 가졌던 의문처럼, 책이 손을 떠나는 순간 그 책에 대해 느꼈던 모든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지는 독자라면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책 읽는 방식에 대해 상기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책을 읽다가 자네의 영혼을 뒤흔들거나 유쾌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문장을 마주칠 때마다 자네의 지적 능력만을 믿지 말고 억지로라도 그것을 외우도록 노력해 보게나.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이 명상하여 친숙한 것으로 만들어 보라고. 그러면 어쩌다 고통스런 일이 닥치더라도 자네는 고통을 치유할 문장이 마음속에 새겨진 것처럼 언제든지 고통을 치유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걸세. 자네에게 유익할 것 같은 어떤 문장이든 접하게 되면 분명히 표시해 두게. 그렇게 하면 그 표시는 자네의 기억력에서 석회의 역할을 맡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멀리 달아나고 말 걸세." 이렇듯 머리 속 기억의 궁전을 떠돌며 인용구나 이름을 끌어냈던 고대의 학자처럼 문장을 통째로 외워 낼 자신이 없다면, 책을 읽다 머리에 남는 해설이나 메모를 워드 프로세서에 보관하는 망구엘의 방법을 써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언제든지 자유자재로 '가장 정확히 기억된' 모니터 뒤의 텍스트 사이에서 적절한 어휘와 중요한 문구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독서방식은 불안정한 전압, 키 착오, 시스템 결함, 바이러스, 훼손된 디스크 등의 위험을 안고 있긴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독서의 역사를 이어나갈 우리 시대의 지적 수요자라면 나름대로 유용한 독서방법이 될 듯하다. |
|
우리 인류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기호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욕구는 인간의 고차원적인 본능으로, 이로 인해 문자가 발명되고 책이 탄생되었다. 한 개인이 발견한 사상이나 기술을 문자로 기록하고 책으로 만든다면, 그 지식은 그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널리 보급되고 후세에도 오래도록 전해진다. 그리하여 문자를 읽고 의미를 파악하는 독서의 기술은 인류가 문화를 이룩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인간 고유의 기능으로 자리잡았다.
--- p. |
|
에피쿠로스 학파인 오마르 하이얌은 큰 나묵사지 밑의 탁 트인 공간에서 시를 읽을 것을 권했다. 그리고 몇세기 뒤에 격식에 까다로웠던 생트뵈브는 스탈 부인의 [회고록]을 '11월의 나무 밑에서' 읽으라고 충고했다. 셸리는 '옷을 홀랑 벗은 채 바위에 걸터앉아 담이 다 식을 때까지 헤로도토스를 읽는 것이 나의 습관'이라고 쓰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열린 하는 밑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나는 좀처럼 해변가나 정원에서 책을 읽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두 가지 빛, 다시 말해서 햇빛과 책이 뿜어내는 빛을 한꺼번에 답으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언제나 전깃불로만, 방안은 어둑하게 하고 책장에만 불을 밝힌 채 책을 읽도록 해야 한다.' --- p.225 |
|
아득한 옛날 성 금요일에 콘스탄티누스가 발견한 것은 한 텍스트가 갖는 의미는 독서가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확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텍스트를 대할 때 독자는 그 텍스트의 단어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역사적으로 그 텍스트나 저자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의문을 풀어 주는 메세지로 바꿔 버릴 수 있다. 이런 식의 의미 변질은 텍스트 자체를 확장시키거나 퇴보시킬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텍스트에 독서가 자신의 환경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 p.306 |
|
생트뵈브는 스탈 부인의 [회고록]을 '11월의 나무 밑에서' 읽으라고 충고했다. 셸리는 '옷을 홀랑 벗은 채 바위에 걸터앉아 담이 다 식을 때까지 헤로도토스를 읽는 것이 나의 습관'이라고 쓰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열린 하는 밑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나는 좀처럼 해변가나 정원에서 책을 읽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두 가지 빛, 다시 말해서 햇빛과 책이 뿜어내는 빛을 한꺼번에 답으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언제나 전깃불로만, 방안은 어둑하게 하고 책장에만 불을 밝힌 채 책을 읽도록 해야 한다.
--- p.225 |
|
몇 년을 두고, 아마 종잇값을 아끼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인 듯도 한데 그들은 같은 노트를 사용해야 했다. 모르긴 해도 호프만 자신이 학교에서 배움의 점진적 발전을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레비누스의 필체는 몇 해 동안 텍스트를 옮겨 적었는데도 거의 변화를 느끼지 않는다. 페이지 가운데에 집중적으로 적었고, 훗날 해석과 주석물 적어넣기 위해 행간을 넓게 두었고, 각 모서리에도 여백을 충분히 두고 있으며, 필체는 독일의 15세기 필사본에 나모는 고딕체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구텐베르크가 성경을 인쇄하기 위해 글자를 새길 때 우아한 필체이다. 연한 자줏빛 잉크로 쓴 강하면서도 뚜렷한 필체는 레나누스가 텍스트를 점점 더 쉽게 따라잡도록 했다 여기에 상식적으로 쓴 첫 문자가 여러 페이지에 나타난다.
--- p.121 |
|
그렇지만 어느 경우에나 감을 읽어내는 사람은 독서가 자신이다. 어떤 대상이나 장소나 사건에서 해독 가능한 것들을 인지해 내는 것이 독서가 본인이라는 말이다. 하나의 기호 체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판독해야 하는 사람도 독서가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또 어디쯤 서 있는지를 살피려고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읽는다. (p. 15)
--- p.15 |
|
책장 너머의 세상 읽기
이 책은 알베르토 망구엘의 개인적인 독서 편력만을 담고 있지 않다. 수십 세기의 인류 역사를 거쳐오면서 책 읽기를 사랑했고 이를 삶의 도구로 활용했던 모든 이들의 공동의 경험이 묻어난다. 인류 최초로 문자를 남겼던 수메르인 농부에서부터, 오늘날 CD와 키보드로 방대한 도서 자료를 읽는 컴퓨터 앞의 현대인까지, 독서가들은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유대의 끈으로 매어 있다. 저자 망구엘은 자신이 처음으로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일을 독서가들의 집단에 첫발을 내딛는 커다란 사건이라고 회고한다.
하지만 독서란 단지 책이라는 형태를 통해, 문자로 기술된 메시지를 읽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읽고 이해하는 행위, 이것 모두를 독서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독서란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이며, 첫 글자를 읽게 되는 엄숙한 경험은 세계의 한 일원으로 들어가는 통과 의례이다. 실제로 글자를 통해 세상이 이루어졌다고 본 생각들이 있었다. 유대의 전통적인 텍스트인 『창조의 서』는 이 세상이 10개의 숫자와 스물두 개의 글자로 이루어졌고, 이 숫자와 문자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결합을 완전히 정복하기만 한다면 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책 한 권을 소유한 사람은 나름대로 이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망구엘에게는 이런 책 한 권이 매우 소중한 물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처럼 “그대들이 책을 손에 쥘 때는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입을 맞추려 할 때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