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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7
1장 봄날은 간다 서른아홉, 나의 삼십대가 저물어간다 17 이미 사표를 던졌고, 통장 잔고는 0을 향하고 있었다 26 봄에는 혜화동을 걸어야겠다 43 가장 높은 경지의 유머 감각 51 빛과 그림자가 있다면, 그림자 쪽 57 네가 말하면 꼭 반대로 되더라 61 집보다 방 69 나는 어디론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75 2장 버스를 타고 이상하다.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85 36.5도보다 더 온기 있는 것들 91 남의 얘기를 하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여자 96 사랑이 고독을 말끔히 해결해주진 않는다 102 그러니 우리 너무 힘들어하진 말자 108 고속터미널의 한 극장에서 엄마와 영화를 봤다 114 가장 사랑했던 것들이 가장 먼저 배반한다 123 기적처럼 헤어진 옛 연인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므로 127 3장 기억의 습작 이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들 139 삶은 결국 코미디라니까 144 서른여덟에 읽는 안나 카레니나 147 친밀함의 거리는 45.7cm 152 사라지는 가게들의 도시 159 어른스런 밤 167 4장 어른의 시간 걷는 여행은 울퉁불퉁해진 삶을 위로한다 177 마흔이 되면 나만의 방을 찾아 정착할 수 있을까 184 Enjoy Your Flight 194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206 불행해지지 않는 게 아닌, 행복해지는 삶에 대하여 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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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스러진다. 서른 살 내내 누군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던 내가, 마흔이 넘고 쉰을 넘으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더 귀 기울일 수 있을까. 나의 옛 친구가 좋아하는 건 눈이 쏟아진 뒤 드물게 빨간 하늘. 눈이 오면 하늘이 빨개진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나는 “그럴 리가!”라고 반문했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올해도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의 색깔을 헤아리고 있을 것 같다. 하늘이 정말 빨개지는지. 잔뜩 울고 난 후 충혈된 눈처럼 발갛게 서글퍼지는지.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는 나이에 대해 생각하면서.
--- p.25 직장생활 6년 차쯤이었다. 누군가는 사표를 내고 긴 여행을 떠나거나, 직업을 바꾸거나, 백수가 되거나, 결혼을 하는 나이. 애매하게 불안하고, 불안해서 신경질적이고, 터무니없이 자신에게 화가 나고 다시 두려워지는 나이. --- p.29 청춘은 꼭 배고프고 허기져야만 하는 걸까.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스물의 너희들이 아프다고 말했던 의미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허기가 그저 물리적인 배고픔을 뜻하는 것일 리 없다. 그것이 사랑에 고프고, 우정에 고프고, 삶에 고픈 것이라는 걸 알 만한 나이. 진짜로 배가 고팠던 날을 떠올리면 언제나 그 시절, 천 원짜리 주먹밥이 떠오른다. --- p.40 분명한 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연예인들이 자신의 비극적인 개인사를 더 많이 털어놓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이 더 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내심 불편했던 건 왜일까. 벌 만큼 벌면서, 성공할 만큼 성공했으면서 자신의 비극과 슬픔을 과장하는 특유의 몸짓에 힘들었던 걸까. 어쩌면 웃어야 할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게 부대꼈던 건 아닐까. --- p.54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던 해,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다. 그때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몇 반의 누가 죽었고, 몇 반의 누구는 구조되어 살아났다는 소식을 내게 풍문처럼 들려주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일들이 그렇게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무심히 말해질 수도 있다는 것과, 삼풍백화점이 사라진 자리에 어마어마하게 큰 주상복합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가 죽음과 결코 무관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토록 많은 노인들이 죽고 나서야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삶이라는 걸 알 리 없는 스물 몇 살의 일이었으므로. --- p.74 돌이켜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나이 많은 여자들의 선의에 의지해 살아왔던 게 분명하다. 그들은 지갑을 가져오지 않아 곤란해하던 내게 정류장 어딘가에서 돈을 내어주었고, 저혈압 때문에 지하철에서 비틀거리던 내 손을 제일 먼저 잡아주었다. 버스 안에서 술 취한 아저씨가 어린 여자에게 욕을 해대며 윽박지를 때, 가장 크게 항의하고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던 것도 우리가 ‘엄마’라 부르는 그녀들이었다. --- p.120 그때 나는 제주의 울퉁불퉁한 길을 멈추지 않고 걸으며 스스로에게 말했었다. 나는 ‘대신’이라 써 붙일 수 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얼마간 알고 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는 대신 요리책이나 연애상담서를 읽었다. 소설을 쓰는 대신 소설의 리뷰를 썼다. 소설가가 되는 대신 소설가를 인터뷰했다. 완벽한 대신 인생. 나쁘지 않았다. 아주 좋지도 않았지만. --- p.181 2011년은 내게 그런 해였다. 무언가로부터 실연당하거나, 어떤 것을 상실한 사람들과 함께한 365일. 공항에서 어떤 도시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도 없이 헤맨 건 나였다. 나는 내 주인공 모두를 머릿속에 넣고 그들과 함께 유령처럼 인천공항을 배회했다. 그곳에서 사제를 만났다면, 화장실이 아니라 결국 이런 걸 물었을 거다. 전 뭘 써야 하죠?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있을까요? 전 언제쯤에야 제 소설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까요? --- p.205 나는 더 이상 ‘꼴찌에게 박수를!’ 따위의 말을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말 역시 믿지 않는다. 누군가의 꿈이 꼭 위대한 작가나 홈런왕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이십 대와 삼십 대에 걸쳐 쓴 인생의 오답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세상엔 죽도록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꿈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좌절된다. 하지만 내가 쓴 틀린 답을 조금씩 고쳐 나가며 사십 대에 이르러 마침내 꺼낼 수 있는 이야기 속에는 이런 것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허황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행복한 쪽으로 바꾸기 위한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 중요한 건 불행하지 않은 쪽이 아니라, 행복해지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상엔 ‘행복’ 이외에 ‘다행’이 있다는 걸 발견해내야 한다. 행복이 어딘가로부터 오는 게 아니듯, ‘다행’ 역시 끝없이 찾아내는 일에 가깝다는 걸 말이다. 삶을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행복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니다. --- p.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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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알 것 같다. 지금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삶의 어느 때는 너무 커 보이기도 한다는 걸.” 5년 전,『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통해 35만 ‘어른이’들의 마음속에 빨강머리 앤과 나눈 어린 시절 추억을 되새기게 했던 백영옥 작가. 그가 2012년 출간한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를 10년에 다시 선보이며, 쳇바퀴 도는 일상에 지친 독자들의 하루를 위로한다. 이번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작가의 오랜 독자들이 꾸준히 바랐던 재출간 요청에 따른 화답의 결과이다. 백영옥 작가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국판이라는 소설 『스타일』로 화려하게 등단한 이후 『다이어트의 여왕』, 『아주 보통의 연애』,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등의 장편소설과 에세이를 꾸준히 선보이며,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많은 사람들은 백영옥 작가를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심리를 세밀하게 그리는 작가, 사랑과 연애와 말랑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 TV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연예인처럼 화려한 작가로 기억하지만 이 책을 통해 이십 대와 삼십 대 시절의 작가를 만난다면 그가 얼마나 많이 실패하고 절망했는지, 그 혼란스러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고 오늘에 이르렀는지 알게 될 것이다. 뭔가를 포기하는 것이 가장 익숙하다는 지금의 청춘들이 백영옥 작가의 작품을 유독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자신보다 먼저 불안과 실패의 시간을 혹독하게 지나온 이의 진솔한 고백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기 때문에. 내게도 잠깐의 노량진 시절이 있었다. 이미 사표를 던졌고, 통장 잔고는 0을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 꿈이었던 신춘문예를 준비하겠다고 고시원을 알아보러 다녔다. 꿈이 있었다. 매번 실패한 꿈이었지만. 절박했다. 2평짜리 좁은 방에 젖은 빨래처럼 나를 처박아둘 만큼. (중략) 참으로 애매한 인생. 아빠가 고향 집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고시원을 잡고 새벽부터 줄 서서 강의 듣는 삶. 엄마가 계를 타 몰래 찔러준 돈으로 학원 끊고 문제집 푸는 삶. 만성 변비환자처럼 얼굴이 달떠 내장 속에서 썩고 있는 단어를 밀어내려던 그때, 그런 안간힘으로 ‘힘내자, 될 거다, 꿈, 이루어진다’ 같은 문장들은 많이도 튀어나왔다. 37~38p 나는 서른세 살이 되고 나서야 한 문예지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습작 시절 “수줍게 낸 첫 작품이라 미흡하고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같은 당선 소감에 더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던 터라, 당선 소감란에 작정하듯 1993년부터 내가 떨어진 신문과 잡지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나 같은 문학의 루저 역시 존재한다는 걸 기회가 생겼을 때 세상에 소리 높여 증언하고 싶었다. 결국 내가 그것을 다 적지 못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지면 부족. 그러므로 내가 성공보다 실패에 더 깊게 감응하는 사람이라는 건 당연지사. 사람에게 빛과 그림자가 있다면, 그림자 쪽으로 기울어져버린 것도 그런 까닭이다.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아는 일이, 한 사람의 내면을 훨씬 더 깊게 들여다보는 일임을 나는 거의 확신한다. 57~58p “내가 가장 예뻤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있는 지금의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청춘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힘겹다. 어떤 가게를 좋아하게 되면 어느새 폐업해 사라져버리고, 오랜 고민 끝에 고백한 사람에게는 보란 듯이 거절당한다. 면접은커녕 서류전형에서 매번 탈락하다 보면 이 넓은 세상은 왜 내 자리 하나를 허락하지 않는지 자꾸 억울해진다. 서로의 꿈과 목표를 응원하던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가 어느새 먹고사는 고단함, 주식과 부동산, 노후 대비로 바뀐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밀려오는 씁쓸함에 익숙해지는 동안 우리는 행복보다 불행에, 성취보다 실패에, 나의 오늘보다 SNS 속 타인의 하루에 더 깊게 감응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지방의 작은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추억의 영화를 보고 옛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책 속의 한 문장에 깊이 공감한다. 소박하고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을 먹으며 지친 하루를 위로받는다. 그 지난한 시절을 건너 어느 날 문득 세상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나의 자리를 발견하고 안도한다면, 바로 그때,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들 속에서도 낡아가는 시간의 주름들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눈에 보일 리 없는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리 없는 것들이 들리기 시작하면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을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내느라, 우리는 매일 좌불안석과 전전긍긍을 오간다.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 모든 게 허무하다고 느껴지는 날,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 속 작은 여행이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면 이 책에서 혜화동 벚꽃 길을, 고픈 배를 채워주던 포장마차 주먹밥을, 혼자 걷던 제주의 올레 길과 한적한 바닷가를, 그 시절에 즐겨 보던 드라마와 영화를 만나보자. 마음이 답답할 때, 하루가 고단할 때, 지금은 멀어져버린 누군가의 소식이 궁금할 때,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 밀려올 때 백영옥 작가의 따뜻하고 다정한 문장들에 위로받다 보면, 어느새 어른으로 살아가는 지금도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청춘은 이제 내게 돌이키고 싶은 과거가 아니다. 노안 때문에 책 읽기가 다소 불편해지고, 오래 앉아 있으면 좌골 신경통에 어김없이 다리가 저릿한 지금의 내가, 나는 감히 더 좋다. 안경을 벗으면 글자가 더 잘 보이는 당혹스러움이, 허리가 아파서오래 작업할 수 없어 더 자주 걷게 된 지금이 싫지 않다. 10년 후의 지금을 늙었다기보다 낡았다 부르며 가죽이나 와인, 남편처럼 낡아가며 애틋하게 아름다워지는 것들의 이름을 호명하게 된다. 그러니 10년 전 이 책을 읽고 내게 위안받았노라 말하던 그 수줍은 청춘의 눈빛들이 지금을 그리 슬퍼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이테 같은 그 묵묵한 시간들이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들리지 않던 많은 것을 듣게 한 것이다. 꽃피는 4월도 아름답지만 낡아가는 나무가 떨군 10월의 단풍과 낙엽도 좋다. 그것이 내가 청춘을 그리워하나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다. _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