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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무구하고 다정한 안부]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으로 등단한 오정연의 첫 소설집. 우주와 지구를 거침없이 오가며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사소한 순간‘을 포착한다. 단어가 운명처럼 내려오는 세계, 화성 이주 후에도 이어지는 명절과 제사 등 현재의 자국이 새겨진 미래는 우리에게 무구하고 다정한 안부를 전한다. -소설MD 김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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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로그ㆍ7
단어가 내려온다ㆍ53 분향ㆍ93 미지의 우주ㆍ113 행성사파리ㆍ159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원ㆍ211 일식ㆍ225 작가의 말ㆍ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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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로지 나인 상태로 지금과 여기를 버틴 뒤, 두려움 없이 모든 것을 뒤로하자. 그것이 우연히 주어진 인생이라는 게임의 주도권을 내게로 되찾아오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 「마지막 로그」 만 15세 즈음, 사람에겐 단어가 하나씩 내립니다. 주지의 사실이지요. 어느 날 갑자기 턱 하고 내린다지요? 많은 분이 동의하시겠지만, 그게 사실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잖아요? ‘턱’보다는 ‘짠’이나 심지어 ‘쾅’에 가깝다는 사람들도 있고요. 내리는 게 아니라 흡사 들러붙는 느낌이었다는 분도 있더군요. 중요한 건 이게,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는데 도저히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거 아니겠어요? --- 「단어가 내려온다」 몇만 년 동안 인류의 터전이었던 지구가 ‘창백한 푸른 점’으로 멀어지는 모습은 이주 1세대 모두에게 각인된 극단적인 공허 그 자체였다. 문화·민족적 정체성을 ‘뿌리’라고 부르며 과거와 이어지기를 원하고,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인류에게, 어떻게든 채워야 할 구멍이 생긴 것이다. 어딘가에 자신을 붙들어 맬 수 있는 마음의 중력이 절실했다. --- 「분향」 이제는 안다. 아무리 멀리멀리 나아가도, 아무리 오래오래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새롭게 아프고 생생하게 고마운 마음이 있다는 걸. --- 「분향」 미지는 우주에게서 몸을 떼어내기 전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어루만지는 동안에는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풍경. 미지에겐 아이의 이마와 볼이 만들어내는 올록볼록한 굴곡이 화성의 깊고 긴 협곡만큼 묵직하고 경이로웠다. 미지와 우주, 둘이 함께라면 세상의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주를 낳고 “엄만 엄마 애기만 책임질 테니, 너는 네 애기 책임져”라던 엄마 말대로 둘이서 각자의 아기만 돌봤던 2주. 온 세상이 고즈넉하던 그 무렵 생긴 버릇이었다. 미래가 불안하고 사람이 무서울 때의 가장 확실한 응급 처치, 우주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든 얼굴을 쓸어주는 것. --- 「미지의 우주」 “확실한 건, 지금 그들이 우리와 같은 세상에 있건 없건 상관없이, 그들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분명한 차이를 가져온다는 점이에요. 그 차이가 바로 의미 아닐까요?” --- 「행성 사파리」 절체절명의 무작위에 사소한 까닭을 부여하는 애틋함이 없었다면 그들의 기억은 이렇게 멀리까지 올 수 없었으리라. 어쩌면 나는 이를 부러워하고 있는 걸까. 밤하늘의 아무 별이나 가리키며 그것이 내 것이려니 믿어버릴 수 있는 무구한 대상화를,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으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멀리멀리 보내겠다는 무해한 욕망을.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원」 나에게 한 명 한 명 이름 없는 천체와도 같았던 그들이 더 이상 이 우주에 없어도 나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원」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과거를 재생再生, 말 그대로 다시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우리가 재생하는 과거는 시험, 취직과 승진, 결혼과 출산 등 보험 회사 광고 몽타주에 등장하는 순간이 아니었다. 반복 재생 1순위 순간은 언제나 작고 순하며 비어 있다. 그저 함께 웃기 위해 시작한 농담, 고장 난 드라이어를 대신하던 너의 손길, 귓속말로 전해진 시시한 비밀의 간지러움, 여름 바람이 불 때 허벅지에 휘감기는 쉬폰 원피스의 감촉, 너와 함께여서 완벽했던 낮잠, 저만치 떠나갔다 당연하다는 듯 돌아와 손바닥을 간질이는 너의 작은 손, 중환자실 머리맡에서 하염없이 이마를 짚어주던 뜨거운 너의 손, 발목을 스치고 지나가던 너의 꼬리, 손을 떠나자마자 하늘로 솟구치던 방패연의 인력을, 우리는 거듭 살았다. --- 「일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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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륙, 4개국, 5개 도시를 유랑하며 작가의 꿈을 꾸다
‘한국과학문학상’ 출신 작가, 오정연 첫 소설집! 인간의 사소한 기억과 우주의 장엄한 풍경이 맞물리며 빚어내는 환상적인 순간 책을 읽으며 무언가가 무척 그리워졌다. 아주 먼 어딘가에 놔두고 온 감정, 기억, 잔상들이 하나둘 스쳐 지나간다. 이제는 놓쳐버린 모든 현재, 지나가 버린 아름다운 찰나들이 인사를 한다. 작가는 세심히 보지 않으면 빠져나가는 일상의 진귀한 순간들을 소복소복 모은다. 여리지만 단호한 문장들 속에 미래에서 온 빛나는 ‘현재’가 있다. 그가 구축한 아득한 먼 미래의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안심한다. 먼 미래에도 우리는 결국 지금처럼 느끼고 다투고 사랑하고 있겠구나. 먼 미래에도 우리가 그리워할 것은 결국 사랑하는 이의 숨소리일 것임을. -김보라 〈벌새〉 감독 김보라 감독이 추천의 문장에서 말했듯, 오정연의 소설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눈부시고 경이로운 순간들에 주목한다. 그저 함께 웃기 위해 시작한 농담, 고장 난 드라이어를 대신하던 너의 손길, 귓속말로 전해진 시시한 비밀의 간지러움, 여름 바람이 불 때 허벅지에 휘감기는 쉬폰 원피스의 감촉, 너와 함께여서 완벽했던 낮잠, 저만치 떠나갔다 당연하다는 듯 돌아와 손바닥을 간질이는 너의 작은 손, 중환자실 머리맡에서 하염없이 이마를 짚어주던 뜨거운 너의 손, 발목을 스치고 지나가던 너의 꼬리, 손을 떠나자마자 하늘로 솟구치던 방패연의 인력. (「일식 中」) 이처럼 오정연의 사소한 순간들은 가늘게 눈을 뜨고 나뭇잎 아래 비치는 햇살을 바라보는 것처럼, 고요하고 무구하다. 인간의 기억을 파일로 변환하여 보관할 수 있는 먼 미래를 배경으로, 저마다의 소중한 기억을 싣고 우주를 영원히 떠도는 무인우주탐사선의 독백을 다룬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원」에서는 인간의 사소한 기억과 우주의 장엄한 풍경이 맞물리는 환상적인 순간이 탄생한다. 또한 「일식」에서는 ‘기억 관리자’ 하진이 목격한 여러 인간 군상들의 어긋나는 기억을 통해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인간이 간직해야 할 가장 소중한 기억은 과연 무엇인지를 진중한 필치로 되묻는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나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도록 때로는 ‘존엄한 죽음’을, 때로는 ‘새로운 삶’을 선택한 사람들 “사이버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상적인 자살의 풍경을 은은하게 그려냈다”(김보영_소설가)는 심사평을 받으며,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가작에 당선된 「마지막 로그」는 안락사, 존엄사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스스로의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이의 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그리고 있다. 안락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조이’와 교감하면서, 주인공은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내가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자문한다. 「행성사파리」는 언니를 잃은 소녀 ‘미아’가 지구보다 50만 년 늦게 태어난 ‘쌍둥이지구’를 여행하며, 지구의 과거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이야기다. 어릴 적 죽은 언니의 복제인간으로 태어났다는 태생적 콤플렉스를 가진 열세 살 소녀 미아는, ‘쌍둥이지구’를 여행하면서 ‘쌍둥이지구’와 ‘지구’가 그 탄생은 비슷하지만 각자 다른 가치를 지닌 개개의 행성임을 깨닫게 되고, 언니와는 다른, 자신의 고유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한층 더 성장하게 된다. ‘모국어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빚어낸 이야기 본격 ‘국어학 SF’의 첫 단추를 꿰다! 오랜 해외 유랑생활을 통해 오정연 작가는 늘 ‘모국어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었고, 그 욕망을 원천으로 삼은 소설이 바로 표제작 「단어가 내려온다」이다. 「단어가 내려온다」는 모든 인간들이 만 15세 즈음, 자신만의 단어를 받는다는 흥미로운 설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지학’이라고 부르는데, 열여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아직도 단어를 받지 못한 주인공은 초조함과 불안함 속에서 하루하루 ‘지학’의 때가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단어가 내려온다」는 ‘지학’과 ‘단어’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단어 덕후’ 주인공 1인칭 시점과, ‘지학’을 다룬 여러 가상의 논문, 인터뷰, 신문 기사, 논평, 신화 등을 교차로 서술한다. 마침내 주인공이 받게 될 단어가 무엇인지를 상상하는 재미와, 작가의 풍부한 국어학 제반 지식 등이 어우러져 독자의 지적 탐구심을 자극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