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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 클럽/백채널링/알래스카는 아니지만/풀하우스/바이킹의 탄생/인어의 시간/●Live/ 첨이 아닌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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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같은 무게로 여기는 것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그도 그럴 것이 고기를 잡았다고 해서 왜가리가 특별히 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왜가리에게는 그저 매번 잘 노려서 잘 내리꽂는 것만이 중요했고 그 뒤의 일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두 같았다. 그것이 멋있었다고, 가슴이 뻐근하도록 부러웠다고 말하고 싶었다.
--- 「왜가리 클럽」 중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절멸에 가까운 인구절벽 위에서 태어나는 이들의 ‘다름’을 ‘장애’로 규정하지 않고 ‘신경다양성’이라는 개념으로 포괄하며 최대한 사회 구성원으로 포섭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이들의 사회화를 위해 필수인 대면 훈련이 감염병 시대에 이르러 더는 당연하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 「백채널링」 중에서 복수가 끝나면 나는 알래스카로 떠날 생각이다. 신호등보다 빙하가 많은 곳. 영영 녹지 않는다는 만년설이 반짝이는 곳. 그곳에서 남은 시간을 인간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얼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얼음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 「알래스카는 아니지만」 중에서 이 넓고 아름다운 곳에 아무도 없이 우리만 있으니 좋았다. 멀리 왔지만 이곳이 새로운 집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겉옷을 벗고 걸었다. 햇빛이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처럼 습도가 우리 옷을 벗게 하였다. --- 「풀하우스」 중에서 노벨은 바이킹이지만 에디슨은 바이킹이 아니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바이킹이지만 레닌은 바이킹이 아니었고, 이소룡은 바이킹이지만 성룡은 바이킹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갱스터 힙합은 바이킹이었고 감성 멜로디 힙합은 바이킹이 아니었으며, 순풍산부인과는 바이킹인데 논스톱은 바이킹이 아니었고 심지어 홍대에 있는 프리모바치오바치의 빠네파스타는 바이킹이지만 신촌 쏘렌토의 카르보나라는 바이킹이 아니었다. 마찬가지 논리로 민형은 바이킹이지만 규영은 바이킹이 아니었다. 규영은 언제나 그 이유가 궁금했다. --- 「바이킹의 탄생」 중에서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아까처럼 고개를 기괴하게 꺾은 상태로 다가왔다. 물 아래로 언뜻 비치는 몸은 인간과 물고기 그 경계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팔이 달려 있는 상반신은 인간의 형태였으나 온통 비늘로 덮여 살갗이 보이지 않았다. 꼬리를 유연하게 움직이며 가까이 다가온 인어는 수면 위로 천천히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 위엔 잃어버린 혜민의 손목시계가 놓여 있었다. --- 「인어의 시간」 중에서 나는 단 몇 분 만에 그의 계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정보는 알 수 없었다. 그의 계정은 비공개 계정이었다. 나 또한 비공개 계정으로, 그에게 팔로우 신청을 해보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의 의심이거나 망상일 수도 있다. 둘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 그냥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일 수도 있다. 보고 싶다는 말과 하트 정도는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 --- 「●Live」 중에서 식탁에서의 마지막 날은 갑자기 찾아왔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창피하다. 그날따라 유달리 열에 들떠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첨이 손을 들었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Q&A 시간이었다. 나는 기자의 질문을 받는 거만한 배우인 양 어디 들어나 봅시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는 어떻게 질의응답 시간은 때마다 좋을까, 생각했다. 누가 나를 궁금해하고 나의 눈길을 끌고 싶어 손을 치켜드는 것이 못 견디게 좋았다. --- 「첨이 아닌 시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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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 8색, 각자의 색으로 빛나는 이야기들
〈내러티브온〉1 소설편에는 신예 소설가 8인의 작품이 실렸다. 이유리 작가의 〈왜가리 클럽〉은 원룸촌 인근에서 운영하던 반찬가게를 ‘말아먹고’ 하릴없이 천변을 걷는 양미의 이야기다. 양미는 천변을 걷다 무심코 앉아 왜가리의 사냥을 구경하게 되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오정연 작가의 〈백채널링〉은 비대면/가상 활동이 일상화된 전염사회 한 세대 이후, 인구절벽이 심각한 가운데 비율이 치솟은 신경 및 정신장애인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가르지 않고 사회운영에 동참시키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다름을 장애가 아닌 ‘신경다양성’이라는 개념 아래 두고 정상 범주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AI 개발 등 기술적?인술적 노력을 담은 근미래를 그려낸다. 임선우 작가의 〈알래스카는 아니지만〉의 ‘나’는 더 이상의 사회적 자아로서의 희망이 사라진 고립된 자아가 집과 집 사이에 난 작은 틈을 통해 새롭게 관계를 맺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꿈꾸던 설경을 만나게 되는 과정이 환상적으로 그려진다. 김해슬 작가의 〈풀하우스〉는 직장에서는 기획력이 뛰어나야 하고 부업(알바)를 해야 지금의 생계와 미래를 그릴 수 있으며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도 집주인 때문에 기를 수 없는 세대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스스로의 삶을 다독이고 즐기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윤치규 작가의 〈바이킹의 탄생〉에서는 스웨덴어를 할 줄 모르는 스웨덴어과 학생이 ‘바이킹’이 뭔지도 모른 채 ‘바이킹’이 되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의 분투를 보여준다. 평범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세상을 꿈꾸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지 화자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배예람 작가의 〈인어의 시간〉은 풀지 못한 관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삶을 얼마나 무겁게 누르는지, 다음의 삶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다이내믹한 상상이 펼쳐진다. 서이제 작가의 〈●Live〉는 소셜네트워크가 일상화된 관계에서는 성찰보다는 만들어낸 자아가 타자를 자기화해서 살아가는 공허의 시대를 세 명의 화자가 교차로 서술하며 구조적으로 풀어냈다. 이별의 아쉬움이 사랑이 아닌 나누어 져야 할 ‘집세’에 있는 현세대의 자화상이 반복적인 텅 빈 박스 이미지와 함께 교차된다. 이미상 작가의 〈첨이 아닌 시간〉 학대받는 모성이 학대의 주체가 되는 상황에서 그 안에 담긴 희마한 유대가 극복의 의지를 마련해 주기도 하는 다소 모순된 상황을 아프게 보여준다. 후회 없는 실패를 위한 열렬한 시간―우리의 왜가리 클럽을 위해 자유로운 방식으로 쓰인 여덟 편의 소설이 담긴 《왜가리 클럽》은 묘하게도 인물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실패’의 체험을 전한다. 그것은 단지 어젯밤에 세웠던 계획을 지우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들었던 2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실패를 체감한 이후에 이들은 무엇을 할까. 무작정 걷기, 오늘의 새로운 계획으로 대체하기, 그저 하던 일을 마저 계속하기 등 실패 이후에도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별거 아니라면 아닌, 그저 새가 물고기를 잡는 모습일 뿐인데 신기하게도 그 모습에는 감동, 그래 감동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만한 감흥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 감흥을 나만 느낀 게 아니라 여기 모인 네 여자가 동시에 느꼈다는 것, 이게 범상한 반응이고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그 사실이 왠지 재미있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왜가리 클럽〉, pp. 25~26)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이들 곁에는 이웃과 친구, 동료가 있다. 삶에는 절차나 순서가 있는 게 아니다. 실패를 딛고 나서 반드시 성공이 오는 것이 아니듯 모든 과정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을 위로하고 다독여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견딜 수 있다. 《왜가리 클럽》은 모두에게 이런 다정한 ‘클럽’ 하나쯤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