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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1. 이 글을 쓰는 연유
2.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3. 왕양명의 생애
4. 「대학문」과 「발본색원론」
5. 양명학의 계승자들
6. 조선의 양명학파
7. 글을 마치며
[부록] 양명학연론 교주(校注)
참고 자료 『양명학연론』 및 그 재출간본들의 오류 연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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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

鄭寅普

근대 국학자,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시조시인, 언론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동래, 호는 담원(?園), 위당(爲堂). 189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한학 수학 후 1910년 조선 강화학파의 거두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의 제자가 되었다. 1910~1914년 중국 안동, 봉천, 서간도, 상해 등을 수시로 다니며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김규식, 문일평, 홍명희 등과 교유. 독립운동 비밀결사조직인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였다. 1920년대 연희전문 교수와 동아일보, 시대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발한 저술활동 벌였다. 1930년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역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일제
근대 국학자,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시조시인, 언론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동래, 호는 담원(?園), 위당(爲堂). 1893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한학 수학 후 1910년 조선 강화학파의 거두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의 제자가 되었다. 1910~1914년 중국 안동, 봉천, 서간도, 상해 등을 수시로 다니며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김규식, 문일평, 홍명희 등과 교유. 독립운동 비밀결사조직인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였다. 1920년대 연희전문 교수와 동아일보, 시대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발한 저술활동 벌였다. 1930년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역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우리고대사 왜곡과 말살에 분노, 1935년~1936년 동아일보에 〈오천년간 조선의 얼〉 제목으로 우리역사를 집필, 연재하였다. 위당은 고조선의 전역사를 우리민족사로 체계화하였으며, 단재(신채호)사학을 계승, 발전시켰다. 해방 후 국학대학 초대학장, 대한민국 초대감찰위원장을 지냈다.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제헌절 등 주요 국경절의 노래말을 지어주신 분이다. 1950년 6.25동란으로 납북.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저서로는《조선고서해제》(1931), 《양명학연론》(1933), 《조선사연구상하권》(1946-1947), 《담원시조집》(1948), 《담원국학산고》(1955), 《담원문록》(1967), 《담원정인보전집》(1983), 《담원문록(번역본)》(2006)이 있다.

정인보의 다른 상품

성균관대 대학원 미술학과(동양미술사, 석사)와 같은 대학원 유학과(동양미학, 박사)를 졸업했다. 장안대ㆍ성균관대 겸임교수, 서예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내고 현재 신안산대 겸임교수로 인천대ㆍ단국대 등에서도 강의하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인 「조선후기 예술론의 심학미학적 연구」를 쓰면서 양명학에 관심을 가지고, 양명학 입문서인 『양명학연론』을 현대어로 다듬었다. 이 책과의 인연을 계기로 홍대용(洪大容)의 『의산문답(?山問答)』(번역 제목 『우물 안 학문을 버려라』)과 『대학(大學)ㆍ중용(中庸)』(번역 제목 『학문은 왜 하는가』)을 번역했으며, 「조선 후기 성리학의 심학화 경향과 예
성균관대 대학원 미술학과(동양미술사, 석사)와 같은 대학원 유학과(동양미학, 박사)를 졸업했다. 장안대ㆍ성균관대 겸임교수, 서예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내고 현재 신안산대 겸임교수로 인천대ㆍ단국대 등에서도 강의하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인 「조선후기 예술론의 심학미학적 연구」를 쓰면서 양명학에 관심을 가지고, 양명학 입문서인 『양명학연론』을 현대어로 다듬었다. 이 책과의 인연을 계기로 홍대용(洪大容)의 『의산문답(?山問答)』(번역 제목 『우물 안 학문을 버려라』)과 『대학(大學)ㆍ중용(中庸)』(번역 제목 『학문은 왜 하는가』)을 번역했으며, 「조선 후기 성리학의 심학화 경향과 예술적 지향」 등 조선 후기 예술에 끼친 양명학의 영향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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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공부하고, 한국방송(KBS)·내외경제(현 헤럴드경제)·중앙일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역사와 언어·문자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재편집해 번역한 『태조·정종본기』, 『태종본기』(3권)를 펴냈으며,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한자의 기원에 관한 글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를 연재하고 『한자의 재발견』, 『가장 빨리 외워지는 한자책』, 『기발한 한자사전』, 『처음 읽는 한문』 등을 썼다. 번역한 책으로는 『달러』, 『나사, 그리고 거짓의 역사』, 『신들의 전쟁, 인간들의 전쟁』, 『엘도라도 혹은 사라진 신의 왕국들』, 『시간이 멈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공부하고, 한국방송(KBS)·내외경제(현 헤럴드경제)·중앙일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역사와 언어·문자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재편집해 번역한 『태조·정종본기』, 『태종본기』(3권)를 펴냈으며,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한자의 기원에 관한 글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를 연재하고 『한자의 재발견』, 『가장 빨리 외워지는 한자책』, 『기발한 한자사전』, 『처음 읽는 한문』 등을 썼다. 번역한 책으로는 『달러』, 『나사, 그리고 거짓의 역사』, 『신들의 전쟁, 인간들의 전쟁』, 『엘도라도 혹은 사라진 신의 왕국들』, 『시간이 멈추는 날』, 『초목전쟁』,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 『맹자』, 『순자』 등이 있다. 또한 정인보의 『양명학연론』 교주본(校注本)을 펴내고, 신채호·박은식·최남선 등 근대 인물들의 한문 투 저술들을 현대어로 풀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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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476쪽 | 686g | 152*225*30mm
ISBN13
9788952243089

책 속으로

그러니 시대가 지나고 사회 분위기가 흐트러짐에 따라 그 학문은 ‘빈껍데기 학문’밖에 남지 않았고, 그 행동은 ‘거짓된 행동’뿐이었다. ‘참마음’의 입장에서 보면 그 학문은 빈껍데기이니 개인적인 계산으로 보아 꽉 찬 것이라는 얘기일 뿐이고, ‘참학문’의 입장에서 보면 그 행동은 거짓된 것이니 위선적인 습속으로 보아 꽉 찬 것이라는 얘기일 뿐이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조선 사람들의 참마음과 참행동은 학문 영역 이외에 구차스럽게 간간이 남아 있었을 뿐이며, 온 세상에 가득 찬 것은 오직 거짓된 행동과 빈껍데기 학문뿐이었다.
--- p.15

사람이란 예나 이제나 자신과 자기 집안을 중심으로 삼는 이기심에 의해서 부림을 당하는 존재다. 참마음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해 제지하거나 절제하지 않은 채 오직 ‘남의 말’에만 의지한다면, 그 ‘남의 말’은 언제나 밖에서만 빙빙 맴도는 것이니 참마음을 만만히 보는 그 속에는 이기심이 쉽사리 들어서게 되고 그럴수록 참마음에 대한 경시는 더해지며, 참마음에 비추어 살피지 않은 남의 말이기 때문에 어느덧 이기심의 이용 대상으로 변하기까지 한다.
--- p.18

옛사람들의 책을 보면, ‘우리 대명(我大明)’이라고 한 것이 있다. 허어, 대명이 우리 대명이란 말인가.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수(隋)나라 군대를 섬멸했다고 상국(上國)을 범한 죄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허어, 그대로 두 번 절하고 죽음을 맞이했으면 기분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인가. 어린애는 고사하고 바보천치에게 물어봐도 나와 남, 내 나라와 적을 구별하지 못할 리 없건만, 학문이 본심의 ‘애틋함’에서 떠났으니 본심 아닌 말, 본심 아닌 일을 해도 일시적으로 울리는 ‘본심 아닌 헛소리’를 추종하고 부르짖는 것을 도리어 빛나는 일로 안 것이다.
--- p.42

그러므로 별달리 양지에 대해서 연구할 생각은 하지 말고, 자신이 홀로 자신만 아는 가운데 스스로 속이지 못할 곳이 있다면, 그것이 분명하다면 양지로 생각하라. 이것을 깨달았다고 해도 그대로 바로잡지 않으면 점점 빛이 흐려진다. 속이려는 그‘것’이 근절될수록 속일 수 없는 그 자신의 본체가 점점 더 뚜렷해진다. 속이려는 ‘것’을 뽑아내고 속일 수 없는 그 자신의 본체를 완성하는 것을 ‘치지’라고 한다.
--- p.46

아들을 위하는 어머니의 그 마음에 온갖 보육의 방법이 샅샅이 미리부터 들어 있다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함에 있어서 정신을 집중한다면 이 마음에 한순간의 쉼도 없다. 포대기의 지푸라기 하나라도 혹 껄끄럽지 않을까. 자다가 굴러가 맨바닥에 몸이 닿지 않을까. 우는 소리만 들으면 저절로 걸음이 빨라지고 병나려는 그 기미도 어머니가 가장 잘 알 때가 많다.
--- p.108

이렇게 말하면 이를 반대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도 있을까? 혹시 있다면 이는 특수한 일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그 사람도 자기의 사사로운 꾀가 단단히 봉하지 않은 어느 곳으로부터 갑자기 외부의 사물을 접할 때 상관도 없는 남의 일에 짠한 것이 스스로 당한 것 같은 때가 있을 것이다.
--- p.112

큰 종기를 앓는 사람은 보약을 먹으면 보약이 결국 피고름만 돕는다는 것처럼, 세상에 나오는 것 쳐놓고는 옳은 것이건 그른 것이건 모두 개인적인 속셈을 키우는 것이다. 어떠한 뿌리가 있다면 그 뿌리가 반석 같을 것이요, 어떠한 샘이 있다면 그 샘이 장강이나 황하와 같을 것이다. 그렇듯 근원이 깊고 크지 않다면 어찌 저렇듯이 천고를 집어삼킬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이 뿌리를 뽑지 않고 이 샘을 막지 않는다면 이른바 정치와 교화도 없을 것이며 이른바 학문도 없을 것이다.
--- p.122

이제 가까운 예를 들어 보면, 친구가 잘한 것을 들으면 겉으로는 좋은 체하면서도 한 점 질투가 가만히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이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내가 이렇게 천박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천박함을 스스로 말하는 속에는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좀 우월해지려 하는 속셈이 있다. 간혹 이것까지 다 말해 조금도 숨김이 없는 듯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까지 말하는 것으로 더 우월하자는 속셈이 또 있다.
--- p.123

양명이 일생 동안 역설한 내용과 그 후학들이 힘껏 주장하고 애써 지킨 내용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가릴 수 없는 선천적인 이 지식에 의해 조금도 유감이 없게 하자는 것뿐이다. 이러한 것은 근본적으로 지적 활동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고 해도 이 지식은 없으란 법이 없는 것이지만, 또한 아무리 수많은 책을 읽었더라도 이 지식에 의지할 줄을 모른다면 모든 것이 빈껍데기일 뿐이다.
--- pp.211-212

이 지식이란 매우 엄격해서 추호의 구차함도 없으므로, 어떠한 재주나 계교로도 이를 속이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나 혼자만이 아는 것이므로 가장 은미해서 소리와 냄새도 없는 곳이니 마음조차도 비교될 수는 없지만, 나 혼자만은 아는 것이므로 가장 절실해 목숨이 맡겨져 있는 곳이다. 이것을 제쳐 두고 인간의 옳고 그름에 대한 표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 p.212

그러므로 누구나 내 본밑 마음의 천부적인 지식을 찾으려면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곳을 조용히 살펴보라.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그곳의 진실한 모습을 찾으려면 민중과 감통하는지 아니면 간격이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해 보라. 이 밝음은 어디에서든지 찰나 동안이라도 멈추는 일이 없으므로, 뜻 있는 사람들이 한번 깊고 멀리 생각해 보면 결코 대충대충 하고 말 일이 아니다.

--- p.213

출판사 리뷰

국난 극복을 위한 정인보의 외침
정인보가 겨냥했던 이 책의 1차적인 대상은 일반 대중이다. 그가 일제 치하인 1930년대에 이 글을 『동아일보』에 연재한 이유다. 그는 엉망이 되어 버린 사회가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지침으로 양명학의 창시자인 왕수인(호 : 양명)의 가르침을 식민 치하 조선 민중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왕수인이 제시한 양명학의 핵심은 주자학처럼 고도로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양심에 따라 살라는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자학에 맞선 ‘학문’이긴 했지만 복잡한 이론 탐구가 필요 없는 간단명료한 실천 지침이었다. 양명학에서 제시하는 간단한 원리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더 나은 사회를 기약할 수 있다는, 식민 치하 지식인 나름의 처방이었다.

지행합일, 아는 것은 느끼고 통하는 것
왕수인과 그의 생각을 이어받은 정인보가 주자학을 비판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주자학의 핵심적 방법론인 ‘즉물궁리(卽物窮理)’(모든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탐구한다)가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사변적 작업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렇게 얻은 지식이 실천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명학에서는 첫 번째 문제를 복잡한 탐구가 아니라 ‘양지(良知)’, 즉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두 번째 문제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즉 지식과 실천이 별개가 아니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학문’에 대한 이런 양명학의 관점은 이 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정인보가 글을 연재하던 시점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양명학연론』은 또 하나의 의미를 키워갔다. 연구자들을 위한 양명학 연구 자료로서의 의미이다. 양명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명학 입문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양명학의 기본 개념, 창시자 왕수인과 그 후계자들에 대한 소개, 그가 양명학의 핵심 논문으로 본 두 논문의 번역 및 해설, 여기에 한국(조선)의 양명학사까지 망라해서 길지 않은 글 속에 양명학의 기본 내용들을 짜임새 있게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명학연론』은 간행본들이 절판된 뒤에도 ‘제본복사’를 통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읽혔다. 특히 한국 양명학사 부분은 정인보가 인용한 조선 양명학자의 글들을 연구자들이 자주 인용할 정도로 중요한 지침서 역할을 했다.

현대어본으로 다시 탄생한 양명학연론
그러나 책의 가치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잊힌 고전’이 되어 갔다. 출판이 지속되어야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것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당대 일급 한학자 정인보가 어려운 한자어를 한껏 구사해 쓴 글이어서 시대가 흘러 한자가 낯선 세대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난해한 글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신문 연재 이후 저자의 교정에 의한 재출간이 이루어지지 않아 텍스트가 엉망인 채 방치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두 번째 문제였다. 옛날 신문에서 오탈자가 많은 것은 당연했고, 당시에도 글이 어려웠으니 더욱 엉망이었다. 심지어 정인보의 서술과 왕수인의 글 인용 구분이 명확치 않아, 후대의 재출간본에서 필자를 뒤바꾼 부분도 수두룩했다. 그것을 바로잡아 재출간하기 전 6·25전쟁이 발발했고, 정인보는 납북되어 사망했다. 잡지 『사상계』에 다시 수록하고, 다른 글들과 묶어 단행본으로 펴내는 등 몇 차례 재출간됐으나, 엉망인 텍스트의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일부 명백한 오류를 바로잡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옛날 어투가 점점 낯설어져 새로운 오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책은 『양명학연론』의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다. 이 책은 석학이자 우리나라에 희귀한 양명학자 계보의 끝자락을 지켰던 위당 정인보가 남긴 명저를 인멸 위기에서 건져내, 묵은 때를 말끔하게 벗겨내고 다시 대중 앞에 내놓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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