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2부 3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상실과 희망의 사운드스케이프 |
Max 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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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비관과 숨죽인 희망이 만들어내는
기이하고 경이로운 합창곡 총 3부로 구성된 소설의 문을 여는 것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자연의 정령 ‘데드 파파 투스워트’다.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존재로서 이 땅의 흥망성쇠를 지켜봐온 그는 먼 옛날 자신이 그저 전설 속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경외의 대상이던 시절, 그가 사람들의 삶 속에 실재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마을의 소리, 인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온갖 잡담과 구설로 어지러이 뒤엉킨 소음 속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소리를 똑똑히 듣는다. 그와 꼭 닮은 어느 소년의 목소리를. “생명체의 숨결로 따스하게 데워진, 그애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내게 선물을 가져다주는, 나의 노래하는 아이.” 그 소년의 이름은 래니. 래니네 가족은 도시에 살다가 최근에 시골 마을로 이사를 왔다. 래니의 엄마 졸리는 은퇴한 배우이고, 지금은 끔찍한 살인이 벌어지는 성인용 범죄소설을 쓰고 있다. 졸리는 어딜 가든 감시를 당하는 기분이 드는 시골에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아빠 로버트는 런던으로 출퇴근을 하고 사실 마을과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소 무료하고 평범한 그의 삶에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골칫거리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아들 래니다. 환상의 존재와 이야기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흥얼거리며 늘 분주하게 숲속을 쏘다니는 이 쾌활한 소년은 부모에게 당혹감을 안길 만큼 특별하다. 졸리는 마을에서 홀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유명한 예술가이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미치광이’라 불리는 피트와 친해지면서 그에게 래니의 미술 수업을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피트는 자신이 예술가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래니의 특별함과 사랑스러움을 알아보고 고민 끝에 졸리의 청을 수락한다. 이렇게 마을에서 괴짜로 낙인찍힌 두 사람, 래니와 피트는 예술을 통해 교감하며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을 키워간다. 그러던 어느 날 래니가 실종된다. 밤늦도록 래니는 집에 돌아오지 않고, 곧 온 마을에 소년의 이름이 울려퍼진다. 경찰은 수색을 시작하자마자 래니가 납치되었다고 판단하고 가장 먼저 ‘미치광이 피트’를 용의자로 잡아들인다. 그들은 동성애자이고 이른바 ‘외설적인’ 미술 작품을 만드는 피트를 범인으로 몰아가며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고 추궁한다. 피트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집에 돌을 던지고 낙서를 하며 비난을 퍼붓는다. 수색은 계속되지만 래니는 발견되지 않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타지의 기자와 구경꾼까지 몰려든다. 그렇게 조용한 시골 마을은 악의적인 소문과 의심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그 혼란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투스워트는 마침내 자신이 행동을 취할 때가 왔음을 느낀다. 페이지 위에서 약동하는 이야기의 힘, 자연의 생명력을 닮은 서사의 물결 “기도를 하고 행실도 바르게 하렴, 안 그럼 데드 파파 투스워트가 널 잡으러 올 테니.”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과 사건 속에 불쑥 등장하는 환상적 요소, 산문과 운문을 넘나드는 문체,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해체하는 과감한 서술 방식은 작가의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야기에 기묘한 활력을 부여한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에서 주인공 가족의 보호자이자 구원자로 말하는 까마귀가 등장했다면, 『래니』에는 식물의 형상을 한 자연의 정령, ‘데드 파파 투스워트’가 등장한다. 흔히 ‘그린맨(Green Man)’이라 불리는 이 전설적 존재는 일반적으로 재생(rebirth)과 봄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 존재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투스워트를 일종의 ‘전지적 관찰자’로서 소설 속에 배치한다. 나아가 이런 환상적인 요소는 단순히 글로서 서술되고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배열을 통해 시각적으로도 구현된다. 투스워트가 마을 사람들의 일상적인 수다를 비롯해 실없는 농담과 험담, 악의적인 비난의 말들을 흡수할 때, 그 분절된 말소리들은 페이지 위에서 제멋대로 뒤엉키며 물결치는 글자의 조합으로 표현된다. 또한 소년이 실종된 뒤에 쏟아지는 온갖 추측과 논쟁과 내적 갈등은 화자를 명시하지 않은 채 따옴표 없이 줄줄이 나열된다. 작가는 이렇듯 ‘시점’이라는 도구를 창의적으로 활용해 작품의 중심으로, 아이의 실종을 둘러싼 생생한 아비규환의 한복판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마치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며 마을을 배회하는 투스워트처럼, 독자는 시시각각 벌어지는 일들을 곁에서 지켜보거나 위에서 내려다보며, 혹은 수많은 인물들의 마음속을 빠르게 드나들며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수많은 목소리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래니』의 세계는 딱딱한 현실에 갇혀 메말라가는 낡고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라,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쏟아져 들어오는 새롭고 강렬하며 살아 있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어린 마음을 위하여, 우리 모두의 래니를 위하여 “나는 옆방에 잠들어 있는 나의 아이를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잠들어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정이나 도깨비들과 정원에서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래니가 보통 아이들처럼 잠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그는 보통 아이가 아니다, 그는 초록나무 래니, 우리의 작은 수수께끼다.” ‘래니’라는 소년은 소설의 제목이자 작품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지만, 한 번도 화자로서 등장하지 않으며 투스워트만큼이나 모호하고 베일에 싸여 있다. 아이의 부모조차 그를 “드넓은 마을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기이한 꿈을 몰고 오는 존재”라 여긴다. 작품 속에서 래니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투스워트뿐이고, “초록나무 래니, 너를 보면 꼭 나를 보는 것 같아”라는 투스워트의 대사로 미루어 래니는 그의 분신 같은 존재다. 다만 투스워트가 환상의 영역에 속해 있다면 래니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 지대에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래니는 특별하다. 환상과 현실 사이의 통로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에. 하지만 엄밀히 말해 래니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마치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공백처럼(실종된 이후에는 말 그대로 공백으로서) 기능한다. 다시 말해 『래니』는 래니에 ‘대한’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래니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래니의 부모와 마을 사람들을 포함해 아이를 찾는 어른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하나의 우화로서, 은유로서 소설을 읽는다면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래니가 상징하는 ‘어린 마음’(동심)일 것이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그 어린 마음은 언젠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던 이야기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믿음이다. 현실의 영역으로 물러나면서 스스로 닫아버린 환상의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한때 ‘래니’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 소설은 이제는 너무 많이 자라버린 우리 모두를 위해, 수많은 래니들을 위해 쓰인 신비롭고 아름다운 회고록인 셈이다. [추천사] 작가는 자연이 지닌 마법성의 극치와 그 무자비한 독립성을 그려낸다. 지난 십 년간 나온 소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꼽으라면 『래니』는 그중 하나다. 북페이지 『래니』를 독서 리스트 맨 위에 추가할 것, 그리고 당신의 숨을 멎게 할 문장들을 맞이할 준비를 할 것. 파이어니어 프레스 내가 『래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렇게 훌륭한 책은 자주 만날 수 없다. 흥미진진하고 조마조마하고 즐거운 독서 경험을 선사하는 독보적인 소설. 이 작품은 당신의 마음속에 손을 뻗어 심장을 움켜쥘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꼭 읽어보라며 손에 쥐여주고 싶은 작품. 매기 오패럴(소설가) 맥스 포터는 어느 누구와도 다른 글을 쓰는 작가다. 이 책을 읽으며 충격에 빠진 채 이야기에 휩쓸려가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래니』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데이지 존슨(소설가) 『래니』에서 맥스 포터는 장르를 넘나드는 창의적인 시도를 확장하면서도 신화와 마법과 우화라는 전통적 스토리텔링에 충실하다. 또한 상실로 파괴된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고통에 대한 참혹한 디테일도 빼놓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상상력, 사랑, 그리고 예술의 가치를 확고하면서도 섬세하게 재건함으로써, 아웃사이더의 허약한 사회적 입지를 멋지게 수호해낸다. 오션 브엉(작가) 『래니』를 읽는 것은 정원 뒤편에서 마법과 위협이 맞닿는 정확한 지점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유쾌한 동시에 어둡고, 직설적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하고, 기묘한 동시에 으스스하다. 클레어 캐머런(소설가) 책 한 권이 이렇게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심장을 뒤흔드는, 맥박이 고동치는 감동을 줄 수 있다니. 하지만 그건 이 경이로운 소설에서 맥스 포터가 보여주는 비범한 재능의 일면에 불과하다. 카밀라 샴지(소설가) 아주 특별한 천재성을 지닌 작가만이 이토록 기이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을 써낼 수 있다. 마크 해던(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