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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백지 위에 실황으로백지상태별들의 속삭임낮눈밤눈천국행 눈사람눈사람 신비눈사태 연주명동대성당불광동성당계산동성당길음성당리틀 드러머 보이백색소음썰매와 아들맑은 종이제2부 · 틴티나불리거울 겨울틴티나불리대합실의 밤신비한 로레토 교회돌아가셨다는 말향빵의 맛무언어상선약수언중유골겨울 거울Summa유리잔 영혼제3부 · 하얀 사슴 연못사슴과 유리잔흰 종이에 물로 1하얀 사슴 연못에릭 사티흰 종이에 물로 2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거울 속의 거울워터스톤사슴벌레아이스크림의 황제에스컬레이터평화 여백사슴 머리 여인숙에서제4부 · 볼륨은 제로가 적당합니다켜진 불포카라아침작은 종들오토리버스담배가게 성자air supply2D 마음자명종휴관올해 가장 시적인 사건에어플레인 모드아르보 패르트 센터Z치는 물결해설|조강석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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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극장에서 공명하는 존재와 시의 하모니개념으로 채우고 공백으로 비우는 백지의 미학황유원의 시는 쉽게 읽힌다. 하지만 평이한 문장 속에 담긴 감각과 사유는 광활하고 또 심원하다. 현대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존재는 소음으로 가득하다”라는 의미심장한 명제를 던졌던 시인은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소리들”이 현실이 되어 사위에 울려 퍼지는 “소리 극장”(최우정, 추천사)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예컨대 시인은 사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섬세한 시선과 예민한 감각으로 우리가 일상의 풍경에서 미처 지각하지 못했던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 “가혹해서 아름답고/아름다워서 가혹한 lo-fi 사운드”의 “별들의 속삭임”과 “하늘의 입김이 얼어붙는 소리”(「별들의 속삭임」)를 듣기도 하고, “실수로 건드린 유리잔”이 울리는 순간 “영혼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느낌”(「유리잔 영혼」)을 감각하기도 한다. 시로 연주되는 다양한 감각들은 줄곧 시인의 학문적 탐구 대상이기도 했던 철학과 종교적 사유로 이어진다. “밤의 텅 빈 플랫폼”에서 뒤집힌 채 “홀로 발버둥 치는”(「사슴벌레」) 사슴벌레와 나뭇가지에 매달린 “텅 빈 말벌집”을 보면서 “안에 든 저 어두컴컴한 것은 또 대체 무엇일까”(「낮눈」) 질문하고 여린 존재들의 숨소리와도 같은 “누군가가/또다른 누군가에게/마음을 쏟는 소리”(「거울 겨울」)에 귀 기울이며 사물(존재)과 세계의 내밀성을 발견한다. 시집에 등장하는 여러 종교의 자취는 특히 다채롭고 흥미롭다. 실존하는 교회, 성당, 네팔 등을 배경으로 한 시들을 따라 읽다보면 문화적 경계에 갇히지 않고 모든 종교에 녹아드는 시인의 폭넓은 공감능력을 느낄 뿐 아니라, 웅숭깊은 관념적 체험에 맞닿게 된다. “지금도 생명을 소진해 타오르는 중인/어둠 속 나의 빛”(「길음성당」)을 응시하며 깨우치는 “무류적(無謬的)”(「에릭 사티」) 삶에 대한 지향이 그것이다. 마치 천상의 신을 우러르며 상승하는 바흐의 음계처럼, 황유원의 시는 멀고 높은 곳, 눈부신 깨우침을 향해 힘차게 다가간다.거장들의 길을 되짚으며, 새로운 길을 열어젖히며맑고 투명한 종소리 같은 “단단하고 청명한/울림”(「언중유골」), 감미로운 “소리의 향기”(「2D 마음」)로 충만한 이 시집에는 오마주 또한 가득하다. 시집 제목과 표지화부터가 정지용의 『백록담』을 오마주 한 것이며, 정지용의 시 중 「장수산 1」의 형식을 섬세하게 흉내 내거나(「흰 종이에 물로 1」) 「인동차」를 변용하기도(「아침」) 한다. 소리나 리듬 같은 음악적 요소의 활용 또한 탁월하다. 바흐, 에릭 사티, 아르보 패르트, 에어 서플라이 등의 음악가를 호명하며 언어의 반복과 변주로 이들의 음악을 편곡하여 들려준다. 앞서간 위대한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되살려낸 오마주 시편들은 풍요로운 문화적 체험을 향유하게 하는 한편, 수려하면서도 치밀하게 짜인 음악적 장치들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초월적 상상력으로 시세계의 지평을 확장한다. 사려 깊게 큐레이션 된 전시회가 그렇듯, 시집에 인용된 예술 작품과 거장 들이 낯선 이들에게도 일상적인 표현으로 격조 높은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는 섬세함 또한 이 시집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황유원의 시를 읽는 것은 “최고 음역대에서도 뭉개지거나 찢어지지 않는 맑은 사운드”(「air supply」)를 듣는 듯 즐겁다. “‘하얀(백색)’과 ‘사슴(+사슴벌레)’과 ‘연못(물)’이라는 세 요소의 협력”이 어우러지면서 언어와 이미지 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주되는 ‘시 전시회’를 둘러보며 우리는 “요소들의 생성과 변환”(시인의 말)을 만끽한다. 특히 “백록담,이라고 발음할 때마다/살이 오른 사슴들이/빈 표지 같은 내 가슴속으로 다시 뛰어 들어”(「하얀 사슴 연못」)오는 장면. “청명한 공기”(「air supply」)를 들이마신 듯 머릿속이 청량해지는 이 장면을 우리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아마 오래오래 간직할 것이다. 시인이 말했듯이 “아무거나 시가 되지는 않는다”(「올해 가장 시적인 사건」). 그렇기에 시인은 끊임없이 언어의 음률을 가다듬으며 시의 길을 찾아 나선다. 길 아닌 곳도 걸어가다보면 길이 되어 있을 터, 새로운 시의 길을 찾아 발길 닿는 대로 노래하며 걸어나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도한 그곳, “소리로 충만한 시”(추천사)에 깃든 “물 샐 틈 없는 고요”(「불광동성당」)와 “무심한 아름다움”(「별들의 속삭임」)이 눈부시게 황홀하다!시인의 말 언젠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존재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따라서 내 앞에는 두가지 시의 길이 주어져 있다. 존재의 소음을 최대한 증폭시켜보는 길과 존재의 소음을 최대한 잠재워보는 길. 나는 이 두 길을 모두 가보기로 한다.” 첫 시집 이후 대략 육칠년 동안 두 작업은 완전히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전자의 결과물이 『초자연적 3D 프린팅』이고 후자의 결과물이 『하얀 사슴 연못』이다.형식 면에서 『초자연적 3D 프린팅』이 세상의 신비를 종이라는 평면 위에 입체적으로 출력해보는 한밤중의 작업이었다면, 『하얀 사슴 연못』은 제목이 말해주듯 주로 ‘하얀(백색)’과 ‘사슴(+사슴벌레)’과 ‘연못(물)’이라는 세 요소의 협력을 전시해보는 개념적 작업이었다. 이 시집이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회 공간처럼 읽혔으면, 그래서 독자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요소들의 생성과 변환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이제 앞서 말한 두 길을 모두 가본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시의 길을 두가지로 한정한 것도 좀 우습군. 길 아닌 곳도 걸어가다보면 길이 되어 있겠지. 나는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갈 것이다. 계속.2023년 입동황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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