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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꿈이 마냥 달콤하면 참 좋을 텐데 PART 1 나이 오십에 살롱을 열다 대박은 무슨. 지겨움과 기다림만 있을 뿐 전문성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레벨이 높을수록 악당은 더 지랄맞다 꽃상여보다 머리맡에 한 송이 꽃을 기림사에서 빈 마음으로 가득 채우다 멸종이 영생보다 마음 편하다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서다 은퇴 뒤 삶을 예술가에게 배우다 흙장난은 어른에게 더 필요하다 PART 2 슬기로운 지방살이를 위한 셈법 소도시 신참의 패션 스타일 어둠을 사랑할 수 있을까 소리 내 시을 읽다 헤어지면서 나를 들여다 보다 앞니 여섯 개쯤 부러져도 괜찮아? 서울도 비가 오면 괜찮은 도시 심장이 멈춘 날 죽음의 문턱에서 먹고 만지며 두근거리며 에필로그 플랜 B를 살다 은퇴 없는 세상: 크게 달라진 건 없다 |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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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도 모르게 ‘라떼는 말이야’가 튀어나오면 유통기한이 다 된 것이다. 지식은 배울 수 있지만 감각이나 정서는 다르다. 배워서는 쉽게 메울 수 없다. 왕년에 대한 기억과 미련을 버리고 어제와 다른 오늘, 더 이상 전문가가 아닌 평범해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 p. 48 서재는 내 오랜 꿈이었다. 벽마다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이까지 책을 가득 꽂아두고 싶었다. 그 안에 틀어박혀 종일 책만 읽고 싶었다. 그런데 책만 가지고 서재를 만들 수는 없었다. 서재는 부동산이었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 동네에 작은 상가 1층을 샀다. 20제곱미터 밖에 되지 않았지만, 높이는 4미터가 넘었다. 천장까지 선반을 매달고 책을 꽂았다. 드디어 꿈을 이뤘다. 그리고 3년 뒤 스스로 서재를 없앴다. --- p. 83 은퇴를 앞두고 있다면 예술가를 친구로 사귀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감수성을 되살리는 데 무척 도움이 된다. 감수성이란 사람과 사물과 날씨와 지구와 공감하는 순간이다. 예술가는 공감하는 작은 순간들을 모아 성능 좋은 앰프 마냥 크게 키워서 되돌려준다. --- p. 90 살롱 2층 다락방에 마이크와 조명 그리고 고화질 웹캠을 설치했다. 손님이 없는 날이나 마감 뒤에 쓸쓸한 기분이 들면 불 꺼진 계단을 나 홀로 올라간다. 문을 닫고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를 끌어당긴다. 형이 주고 간 시집을 아무 데나 펼쳐 소리 내 천천히 읽어본다. 형이 떠오르고 처음으로 시를 읽었던 상수동의 밤도 떠오른다. 녹화된 영상을 보고 휴지통에 넣은 뒤 다시 내려온다. 그리고 충무교를 건넛집으로 돌아온다. 달빛 아래 다리 밑 운하는 작은 윤슬로 반짝거린다. 형이 했던 말을 소리 내 따라해 본다. ‘내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아픈 사람이야.’ --- p. 158 이혼하면서 알게 된 게 있다면, 깨끗하게 잊지 못할 바에는 대충 넘기거나 참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아내에게 치사할 만큼 꼼꼼하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또 말해야 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새빨간 거짓말이다. 어떤 남편이나 아내에게도 텔레파시란 없다.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입 밖으로 꺼내야 했다. --- p. 164 중환자실에 있는 내내 팔과 다리로 수액을 맞고 소변 줄까지 달아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간호사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 목마르다고 하니까 종이컵에 빨대를 꽂아 아주 조금씩 먹도록 했다. 물이 이렇게 달고 맛있는지 처음 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평범한 물맛으로 돌아왔다. 밥은 처음부터 퇴원할 때까지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다. --- p. 193 이 책에 실린 그림은 모두 그날 이후 새로 그렸다. 아이패드로 그린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 여행일기를 쓸 때 갖고 다니는 사쿠라 펜으로 그렸고 오랜만에 색연필도 썼다. 붓펜은 처음이라서 선이 꽤 거칠고 글씨도 흐트러졌다. ‘이게 밥장 그림이야? 너무 다른데?’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애써 힘을 뺐다기보다는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그릴 수 있는 만큼 그렸다. --- p. 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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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 있고 회복 중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밥장의 은퇴 없는 세상을 위한 진짜 플랜 B가 시작되다! 평범한 회사 생활을 때려치우고 비정규 아티스트란 이름으로 먹고살다 나이 오십에 덜컥 통영으로 내려가 문화살롱을 연 밥장. 2016년의 어느 날, 전국에 벽화를 그리는 일을 하다가 서울을 벗어난 삶을 상상하게 되고, 그 꿈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애당초 자기보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닫고, 기막힌 그림 대신 그림을 통해 할 수 있는 재미나고 가치 있는 일들을 찾아가며 하던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담아야 덜 허무할 거라고 믿으며 살았다. 영원히 살 수 없으니 하고 싶은 일만 하자고 다짐했고, 또 그대로 살았다. 그렇게 살다가 죽는 줄도 모른 채 사라지고 싶었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그림과 여행, 책과 만남으로 일상을 가득 채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심장이 멈추고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간 붙잡으려고 애썼던 삶의 의미나 보람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물었다. 남은 시간 동안 뭘 하며 보내고 싶은지. 눈과 귀, 입과 손끝, 살아 있는 ‘나’이기에 느낄 수 있는 달콤한 감각을 오래도록 만끽하고 싶었다. 그의 플랜 B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과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의미를 숨 가쁘게 쫓아다녔던 삶은 내려놓고 모든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그러자 뜨겁고 확실한 순간의 행복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지금 그는 입금, 원슈타인, 에릭센과 덴마크 경기처럼 확실한 순간들을 레고 부품처럼 삶에 촘촘히 끼우며 산다. 그의 삶은 은퇴 대신 반짝이는 행복의 순간들로 채워지는 중이다.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끝까지 그리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그림이 된다.” 은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이야기! 살롱에서 그림일기 수업을 진행하는 그에게 다들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연필로 밑그림을 먼저 그려도 되나요?”, “그리다가 틀리면 어떻게 해요?”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틀려도 괜찮으니까 바로 그리고 망쳐도 되니까 끝까지 그려보라고. 아무리 꼼꼼하게 밑그림을 그리고 조심스레 따라 그려도 ‘삑사리’는 나게 마련이니, 틀리지 않으려고 끙끙거리기보다는 용감하게 선 하나 긋고 어울리는 선을 하나씩 채우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고 말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다 겪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은 그림에 비유하면 다 어긋난 선이다. 그런데 선 몇 개 그렸다고 그림을 망치지 않는다. 아직도 수없이 많은 선을 그려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빗나간 선에 맞춰 새로운 선을 그려도 되고 아예 그림자로 덮어도 된다. 어떤 선을 그리고, 어떤 색을 칠할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자신의 인생을 그리는 건 결국 자신의 몫인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그 사실을 잊는다. 주위의 시선에, 성공을 향한 조급함에, 내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채 계속 앞으로 달려나가야 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린 채 말이다. 모든 생명이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늙어간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부여잡은 채 정신없이 살아간다. 밥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결코 달콤하지 않은 현실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위해 플랜 B를 세워야 하는지, 어떻게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해야 하는지 말이다. 이 에세이를 읽는 시간은 우리가 심호흡하는 시간이며, 마음을 툭 내려놓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미 방법은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용감하게 선 하나 그으며 살아가면 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