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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찬 소년
2. 동국역사 책을 등사하다 3. 비밀결사대 ‘구세단’을 조직하다 4. 독립선언문 등사 사건 5. 상해에서 돌아온 재혁 6. 의형제의 죽음 7. 시련, 다시 시련 속으로 8. 회유, 고문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 9. 해방, 그리고 다시 고난의 길 10. 평화통일 되는 그날까지 특별 부록. 깊이 보는 역사/ 최천택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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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혁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친구는 눈빛을 주고받은 뒤 등사기를 꺼내서 준비했다. 푸른색 밀랍종이를 가리방이라고 부르는 철판에 얹었다. 그리고는 연필보다 약간 굵으면서 끝이 뾰족한 철심이 박힌 철필로 옮겨 썼다. 그리고서 잉크를 등사용 롤러에 골고루 묻혀서 등사판에 붙인 밀랍종이 위를 등사기로 한 장, 한 장 밀었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모아서 묶었다.
--- p.28 공중에 매달아 놓고 매질을 했으며, 손발을 묶고 호스를 입에 연결하고 뱃속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 배 위에 널빤지를 놓고 밟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건을 얼굴에 펼쳐놓고 그 위로 물을 부었다. 그리고는 몇 초 동안 버티는지 시간을 재기도 했다. 견디기 힘든 고문이 계속됐지만 천택은 입을 다물었다. 혼자 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 p.38 “그래. 친구가 많으믄 좋다. 인쟈부터 우리는 구세단이데이. 청년구세단.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조선인을 차별하는 쪽바리놈들과 싸우는 기라. 우리가 대항해서 싸우다 보믄,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처럼 일본에 대항하는 학생들이 생길지 모르는 기다.” --- p.46 천택이와 세 친구는 독립만세운동에 쓸 벽보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기 시작했다. 새벽녘이 되어서 등사가 끝났다. 친구들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가졌다. 천택은 세 친구를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 p.62 그때 철장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천택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죽은 목숨인데 음식을 먹어서 무엇하랴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다시 철창 문을 ‘툭툭’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천택은 고개를 돌렸다. 관식을 나르는 사원이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천택과 눈이 마주쳤다. 사원은 눈길을 바닥으로 돌리며 뭔가를 떨어뜨렸다. 천택은 몸을 민첩하게 움직여 무엇인지 모를 그것을 얼른 발로 밟았다. 천택이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사원은 사라지고 없었다. 천택은 밖의 동정을 살핀 뒤 발밑을 살폈다. 붓 대롱이었다. 붓 대롱에는 구멍이 있었으며, 구멍 안에 쪽지가 들어있었다. --- p.78 부산청년동맹을 결성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일본 경찰은 부산지역 청년들의 모임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친일 청년 단체들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기자들과 짜고 부산청년동맹에서 하는 일을 그들이 발행하는 신문기사와 각종 논설 등을 통해 사사건건 방해했다. 천택은 매일신보 기자들이 하는 짓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매일신보 부산지사를 찾아갔다. --- p.98 군화발들이 뛰어들었다. 이 층 방에 혼자 있던 천택은 갑자기 들이닥친 헌병대에 체포되어 잡혀갔다. 전쟁이 나자 정부에서 전국 경찰과 헌병대를 동원하여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상가와 좌익혐의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다 처단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 p.112 1960년 4·19학생의거가 터져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자 최천택은 민주의정에 참여하여 민족통일을 위한 포부를 펼치려고 했다. 하지만 선거에 낙선하면서 그의 뜻을 펼치지 못했다. 민족이 분열되어 싸우는 것을 보면서, 그는 아무 욕심 없는 야인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 p.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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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민족의 독립과 민주화, 평화통일에 바친
부산의 독립운동가, 최천택 최천택(1896~1961) 선생의 일생은 숱한 고문과 고통으로 점철돼있다. 어린 시절 단짝이었던 친구 박재혁이 부산경찰서 폭파 의거를 일으킨 뒤 스물일곱의 나이에 형무소에서 단식 사망하자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고, 때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친구 박재혁을 떠올리며 다시 의지를 불태웠다. 18세에는 박재혁을 비롯한 친구들과 우리나라 역사책『동국역사』를 손수 제작해 비밀리에 배포했고 이것이 발각되어 10여 일간 구속됐는데 어렸을 적부터 독립정신이 강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후 최천택 선생은 ‘구세단’을 조직하여 일제의 부당함에 항거하고 해방 후에는 통일운동에 투신하는 등 민족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한 긴 여정에 나서게 된다. 일제에 항거하는 의열투쟁과 청년운동에 참여하며 구금 및 구속된 것이 모두 54차례. 그때마다 모진 고문과 회유를 받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동지를 팔거나 자백한 적이 없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독립투사였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군사 정권이 들어서자 민주화운동을 하다 수개월간 구금되었는데 이때의 후유증으로 그해 11월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의 저자는 최천택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았지만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최천택은 독립운동가 혹은 통일운동가로서 위대한 삶을 살았지만 그 생의 가치에 비해 자료와 기억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발자취를 좇는 동안, 저자는 이름 없이 죽어간 독립운동가들이 또 얼마나 더 많을까 의문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삶을 지금의 우리는 너무도 무심하게 잊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반성하며, 역사를 기록하고 바라보는 작업의 중요성을 힘주어 강조한다.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했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많은 독립운동가가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밤잠을 설친 날이 많았습니다. 최천택처럼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항일운동과 민주화, 평화통일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분들을 마음에 새기고 계승하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천택을 알게 된 것이 이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얻은 가장 소중한 성과입니다.” - 작가의 말 中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인물로 만나는 부산정신] 시리즈, 그 마지막 이야기 도서출판 호밀밭과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박재혁, 박차정, 안희제, 이종률, 최천택까지 총 5권으로 구성된 [인물로 만나는 부산정신] 시리즈를 기획했다. 개성고등학교 출신 박재혁 의사는 부산경찰서 폭파 의거를 통해 3.1운동 이후 침체된 독립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다시 살려놓았고, 박차정 여사는 남편인 의열단 김원봉 단장과 함께 평생을 바쳐 민족과 여성의 해방을 위해 싸웠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교육과 무역, 언론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일제에 항거했고 산수 이종률 선생은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민족혁명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으며 박재혁 의사의 오랜 친구였던 최천택 선생은 숱한 고문과 고통 속에서도 죽는 날까지 일생을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