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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현재’를 기록하고 살아가는 역사학자의 기준
1장 사람의 역사 독립운동가들의 ‘영웅화’보다 중요한 것 _안중근과 이봉창의 평범하게 비범한 삶 결과를 따질 것인가, 인생 전체를 평가할 것인가 _서재필과 윤치호, 운명을 바꾼 그들의 선택 독립운동의 물줄기를 가른 형제의 난 _이승만은 살아남고 박용만은 잊힌 이유 서재필은 독립운동을 대표할 수 있는가? _서재필의 업적과 관련한 역사지식 바로잡기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_반성 없는 일방적 찬양에 반대하며 역사의 법정에는 시효도, 사면도 없다 _전두환에 대한 심판이 끝나지 않은 이유 희생을 치르며 더욱 타오른 민주화의 열망 _박종철과 이한열이 일으킨 6월 항쟁 힘들지만 의연하게, 비판을 넘어 책임으로 _정치인 노무현이 걸었던 길을 회상하며 정부의 통솔력보다는 ‘직접민주주의’를 믿는다 _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를 생각하며 2장 만들어가는 역사 사료 비판 없는 역사는 신화에 불과하다 _역사학자가 제기하는 한국사 ‘팩트체크’ 대한제국과 고종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_자생적 근대화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 역사를 ‘추앙하기’보다 ‘만들어가기’ 위하여 _이승만의 국적 논쟁과 건국절 논란 전쟁에 짓밟힌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_‘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학문의 자유’가 피해자의 권리보다 우선하는가? _‘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입장 철저한 반성 없는 용서와 화해는 기만이다 _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하여 4?3은 제주만이 아닌 현대사의 비극이다 _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이하며 4?3이 일어나기 전 대만에서 벌어진 일 _대만 2?28 사건 70주년을 맞이하며 인생의 패배자라고 슬퍼하지 마라 _역사 속 여성들의 삶을 생각하며 3장 참여하는 역사 역사교과서를 거꾸로 돌리지 않으려면 _냉전을 넘어 통일을 지향하는 역사교육 역사교육을 진정 강화하고 싶다면 _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뀐 교육과정의 실상 누가 편향된 교과서를 쓰는가? _‘역사 공작’을 벌이는 뉴라이트의 실체 역사교과서를 수정하려는 교육부 장관 _‘역사교과서 국정화’ 프로젝트의 시작 유관순과 기독교가 역사교과서에서 빠져 있다? _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려는 꼼수 거짓말과 획책으로 내세운 ‘복면집필진들’ _터무니없는 지원으로 탄생한 엉망진창의 결과물 역사학자들의 교정을 공짜로 받는 정부 _국정교과서의 수많은 오류와 왜곡 “국정교과서는 폐기의 대상이고, 곧 그렇게 될 것이다” _‘역사교과서 국정화’ 프로젝트의 마지막 대한민국에서 역사교과서 집필자로 산다는 것은 _내가 역사교과서를 계속해서 쓰는 이유 4장 이어주는 역사 ‘영광스러운 고립’보다 ‘고통스러운 소통’을 _SNS 시대에 필요한 인문학자의 태도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_‘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을 기념하며 현충일을 기념하는 바람직한 방법 _나라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것 역사콘텐츠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_재미와 고증을 모두 갖춘 역사드라마를 기대하며 영화 〈암살〉에서 만난 ‘백마 탄 장군’의 전설 _‘독립적’ 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의 삶 당신이 ‘밀정’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_경계에 선 인물 황옥이 던지는 질문 “찢어버리는 자도, 주워 모으는 자도 있어야 한다 ” _영화 〈남한산성〉이 놓친 최명길의 명대사 120여 년 전 모스크바에 휘날린 태극기의 감동 _조선 사절단의 여정을 따라, 러시아 여행기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_전염병의 역사가 주는 교훈 나오는 글: 다 하지 못한 연구실 밖의 이야기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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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책에 수록된 글들은 언론에 기고했던 칼럼 일부와 페이스북에 썼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칼럼이야 청탁을 받고 쓴 글이지만, 페이스북의 글들은 제 마음의 울림에 따라 올렸던 것입니다. 부탁을 받은 것도, 원고료를 받는 것도 아니니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내놓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날그날의 생각을 기록하는 하나의 일기가 된 셈입니다. 게다가 ‘과거의 오늘’을 불러오는 기능을 가진 이 새로운 일기장은 좋은 데이터베이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썼던 글이 제법 많아져서, 책에 넣을 내용을 고르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글을 쓰고 올리는 동안 페이스북 친구도 많아졌고, 저를 팔로우하시는 분들까지 합쳐서 거의 2만 명에 가까워졌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저의 글을 모든 분들이 읽지는 않겠지만, 어떤 글에는 ‘좋아요’가 수천 개씩 달리기도 합니다. 아무 대가 없이 저의 생각과 지식을 공유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거꾸로 저 역시 페친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의 제목과 표지도 페친 여러분들의 집단지성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공감과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자는 논문으로 말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학자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 즉 오늘의 역사에 대해서도 발언하고 소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제목을 ‘주진오의 한국현재사’로 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여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재적’ 문제를 역사학자의 시각을 가지고 풀어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7~8 서재필은 독립운동을 대표할 수 있는가?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편안하게 살 수 있었는데도 ‘무모하게’ 항일투쟁을 전개해온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반면에 한때 민족을 위한 태도를 견지했다가 후에 변절해버린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그 가운데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고문과 탄압으로 인해 그 전에 이룩했던 모든 성과를 무로 돌린 채 준엄한 역사적 심판을 받았던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서재필의 경우 조선인으로 살아갔다면 과연 어느 쪽에 속했을까요? 안전지대에서 강대국 시민으로 보호를 받으며 살면서 특별한 과오를 범하지 않았으면 나중에 존경받는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지하에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 분들이 너무도 많지 않을까요? 정부가 순국선열 유해를 모셔오는 이유는 한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삶을 살았을 때 언젠가는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거기에는 확실한 원칙과 우선순위가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 p.46~47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박정희기념관 문제에 대응했을 당시의 저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1년을 ‘방문학자’로, 또 1년을 오스틴의 텍사스대학에서 강의로 도합 2년을 보내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사실 저에게 대통령이란 국민학생 시절부터 대학생을 거쳐 군에서 제대한 직후까지 박정희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고 특별히 고난과 탄압을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일과 좌익활동, 독재와 인권탄압 그리고 파시즘적 문화압살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를 망가뜨린 장본인이 박정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텍사스에 있는 동안 박정희기념관에 200억 원의 국고를 지원한다는 기사를 보고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저는 학자들, 그중에서도 역사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역사비평 편집위원회에 이 문제를 제기했더니 저에게 직접 나서서 대응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순진한 마음에 덜컥 맡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박정희기념관 건립 및 국고 지원을 반대하는 역사학자 모임’이 꾸려졌고 저는 실무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 모임은 원로 교수님들을 비롯하여 역사학자, 역사교사 2천여 명이 참여하는 큰 집단이 됐습니다. --- p.58~59 역사의 법정에는 시효도, 사면도 없다 전두환은 분명히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반성과 사죄도 하지 않았던 그를 쉽게 사면해주고 말았습니다. 역사의 심판을 어정쩡하게 하고 넘어가니, 이런 역사의 죄인들이 국민들을 우습게 알고 망언을 함부로 떠들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전두환은 자신이 광주 시민들을 향한 발포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계속 억지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권한만 무제한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이와 관련해 JTBC 뉴스룸 [팩트체크]에서 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방송에 나간 인터뷰를 다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군대에서 아무 명령도 없이 발포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현장에서 발포명령을 내린 자에게 당연히 책임을 물어 엄중한 처벌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훈장까지 주었다는 것은 그들이 잘했다고 칭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최고 실권자였던 전두환에게 당연히 최종 책임이 있는 것이다.” --- p.63~64 대한제국과 고종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아관파천 이후 척사론자들의 요구에도 단발령의 취소를 거부했고 대한제국 수립 후에는 대신들의 단발을 강요하기까지 했던, 그리고 과거제의 부활과 연좌제의 재도입을 주장하는 보수 세력의 요구에 끝까지 응하지 않았던 고종이 ‘성리학적 도학군주를 지향했다’고 하는 것은 고종의 의미를 철저하게 부정함으로써 식민지화의 필연성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비록 실패했고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고종이 개명군주를 지향했다는 점은 인정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물론 고종의 한계와 대한제국의 개혁사업에 나타난 문제점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반드시 고종 자신에게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간 당시 개화파 관료들의 문제도 함께 지적돼야 합니다. 김재호 교수는 “개화기 선각자들의 고투를 단지 외세에 부화해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권력투쟁으로 폄하하고 있다”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이같이 개화파에 대해 각별한 애정과 이해를 보여주는 김 교수라면 당연히 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사업에 대해서도 왕권 유지를 위한 것으로만 몰아붙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 p.109~110 역사를 ‘추앙하기’보다 ‘만들어가기’ 위하여 1919년 이후에 이승만이 국적 란에 ‘KOREA’라고 적기 시작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국무총리에 임명되었습니다. 참고로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스스로 만들어 부른 것입니다. 이때의 KOREA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 없었다면, 이승만이 한국인이라고 자처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랬다면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승만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1919년 4월 11일)을 대한민국이 시작된 날로 기념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는 보수 세력들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을 ‘건국절’로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이승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승만 자신이 직접 1948년 취임선서에서 제헌국회부터 쓰이고 있던 단군기원을 쓰지 않고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승만이 바라던 것도, 그를 계승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입니다. --- p.123~124 인생의 패배자라고 슬퍼하지 마라 여성사를 강의하면서 더 많이 배운 사람은 강의를 하는 저 자신입니다. 그동안 진보적 역사학계의 한 귀퉁이에서 지배권력 집단의 억압과 차별에 대해 비판적 역사해석을 해왔지만, 정작 체제의 수혜자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가해자였다는 점에 대해 자성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여성에 대한 이해가 있다고 자부해온 것이 처절하게 무너지는 날들이었습니다. 또한 가부장제라는 구조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에게조차 ‘거대한 감옥’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결국 한국여성사를 강의하는 것은 단지 여성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남성 자신을 위해서라도 궁극적으로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확인시켜준 계기였습니다. 더욱이 여성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역사학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여성이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성이 여성사를 강의하고 연구하게 되었을 때 따르는 효과도 크다고 봅니다. 이는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단지 ‘당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내세울 수 있는 논리’라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p.181~182 “국정교과서는 폐기의 대상이고, 곧 그렇게 될 것이다” 국정교과서가 시도하려는 역사왜곡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역사적 사실과도 다르고, 책을 봐도 자기부정적인 설명만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국정교과서를 보면 단원의 제목은 ‘대한민국 수립’입니다. 그런데 첨부된 사진 자료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이라 쓰여 있어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1일부터 시작됐고 이승만도 자신이 임시정부를 계승해 정식 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이것이 역사적 팩트입니다. 학생들은 교과서 단원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이라 해 놓고, 왜 역사적 자료들에서는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지 당연히 의문이 들 것입니다. 또 하나는 박정희와 유신독재에 대한 미화죠. 그동안의 교과서에는 계속해서 5?16군사정변 시절의 박정희가 군복을 입고 서 있던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국정교과서에서는 그걸 뺐어요. 그리고 쿠데타 주역으로서의 이미지를 없애고 경제성장 주역으로서의 박정희를 강조했습니다. ‘박정희’라는 이름을 교과서 한 권에 23번이나 써야 할 만큼 심각한 정치적 편향이 나타납니다. 유신독재에 대해서도 마치 그 시대 우리나라의 가난한 현실을 위해 굉장히 바람직한 것이었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죠. 철저하게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의 흐름을 미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259~261 대한민국에서 역사교과서 집필자로 산다는 것은 저는 대한민국의 모든 검정 중고등 역사교과서 집필자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를 집필하는 과정은 참으로 길고도 힘든 과정이죠. 그런데 모든 교과서가 검정에 합격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과정에 충실하고 내용에 오류가 없는 교과서만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의 최종적 책임은 교과부 장관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이미 몇 년 동안 사용되었던 역사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매도하며 수정하라고 강요했습니다. 물론 그에 앞서서 뉴라이트 교과서포럼과 보수언론이 이미 기존 교과서 집필자들을 ‘종북좌파’라고 매도해왔습니다. 저는 그런 작태에 굴복할 수 없어서 교과서 집필자협의회를 만들고 정면으로 맞서는 데 앞장섰습니다. 결국 대학시절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고 교회 집사이자 성가대원이며 단 한 번도 북한정권에 대해서 옹호하는 발언이나 생각을 해본 적 없었던 저는 그들에 의해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로 낙인찍혔습니다. --- p.275~276 ‘영광스러운 고립’보다 ‘고통스러운 소통’을 인문학은 연구실 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노력은 인문학자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약에 연구실 안에서의 ‘영광스러운 고립’을 추구한다면 더 이상 국가와 사회에 인문학을 지원해 달라는 요구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연구는 학자의 자유이지만 연구에 대한 지원은 학문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할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 체질을 갖고 교수생활을 해 가다 보면, 자신의 학문과 직결된 사회적 이슈가 벌어져도 전혀 참여하지 않고 불의를 보아도 참습니다. 그러면서 권력에 맞서서 힘겹게 저항하고 있는 동료들에 대해 아주 냉정한 비평가의 자세로 양비론을 늘어놓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나서서 피해를 볼 행동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SNS의 활용은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p.291 영화 〈암살〉에서 만난 ‘백마 탄 장군’의 전설 영화 〈암살〉을 보며 비록 사실관계를 조금 다르게 표현했지만, 제작진이 김경천의 일기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에 대하여 역사학자로서 감탄했습니다. 그만큼 충실한 자료 조사가 있었기에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면 영화 속 인물 속사포와 역사 속 인물 김경천은 전혀 닮아 보이지 않습니다. 역사 속의 김경천은 독립군에 가담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꿈꾸었으나 현실은 그럴 만한 조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죠. 사실 김경천이라는 인물은 1990년대가 되어서야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98년이 되어서야 서훈을 받았습니다. 그 후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연구논문이 나오고 최근에 들어서야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오랫동안 철저하게 잊혔던 ‘백마 탄 김경천 장군’의 전설이 다시 소환되어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 p.309~310 당신이 ‘밀정’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실 그동안 독립운동을 다룬 여러 영화들에 등장하는 선악의 이분법이, 관객들로 하여금 오히려 외면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독립운동가를, 평범한 우리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만들어버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하는 이정출의 모습은 선악을 넘나들며 회의하고 주저하는 모습이 다분합니다. 오늘날의 관점에 따라 ‘승리자’와 ‘패배자’라는 구도에 역사적 인물들을 끼워 맞추는 것을 넘어, 영화 〈밀정〉은 그 시대의 공기 속에 관객들을 끌고 들어가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래’라고 묻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현실적인 울림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p.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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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기록된다”
시대와 호흡하며 써내려간 ‘역사학자의 오늘’ 36 각종 이슈의 최전선에서 목소리를 내온 역사학자 주진오가 지난 30여 년간 기록해온 ‘오늘의 역사’ 얼마 전 한 K-POP 그룹의 멤버들이 ‘역사 무지’ 논란에 휩싸였다. 이들이 한 방송 중에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알아보지 못했던 장면이 문제가 된 것이다. 수많은 네티즌과 언론들이 어떻게 역사의 영웅 안중근도 몰라보느냐며 이들에게 비난을 일삼았다. 그러자 한 역사학자가 나서 이러한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정작 ‘역사 무지’로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은 몇몇 연예인이 아니라 고위공직자들이라며 우리 사회가 엉뚱한 곳에 분노를 쏟아 붓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아이돌그룹 질타로는 해결될 수 없는 역사교육의 참담한 현실을 되짚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글은 페이스북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각종 기사와 방송을 통해 전파되었다. 역사와 관련한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일상에 맞닿아 있는 언어로 목소리를 내온 그는 언론계에서 가장 먼저 찾는 역사학자로 손꼽힌다. 《주진오의 한국현재사》는 바로 그러한 주진오 교수의 생각과 실천이 담긴 역사에세이로, 지난 30여 년간 저자가 꾸준히 ‘현재’의 문제와 마주하며 기록해온 SNS 포스트 및 칼럼들을 선별하여 수록한 첫 번째 대중교양서다. “역사 속 인물을 생생한 ‘사람’의 얼굴로 보기” 안중근부터 서재필까지,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저자의 삶과 체험 속에서 묻어난 ‘사람의 역사’ 저자가 본격적으로 역사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이었다. 특히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을 마주하며 저자는 자국민의 시위를 무력으로 탄압하는 군사정권의 폭거를 목격했고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처럼 자신의 삶에서 체험하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역사 속 인물들의 굴곡진 스토리를 소개해온 저자는 1장 ‘사람의 역사’를 통해 격동의 근현대사를 통과해온 여러 인물들의 성과와 한계를 다각도로 짚어낸다. 안중근과 이봉창의 삶을 소개하며 그들이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서 어떤 공과 과가 있었는지 설명하고, 독립운동가 서재필과 친일파 윤치호의 삶을 비교하며 그간 알려진 바와 전혀 다른 평가를 제시한다. 이승만과 박용만 사이에 일어났던 독립운동 노선의 갈등과 그로 인한 분열의 책임을 묻고, 일방적인 찬양 위주로 운영되는 박정희기념관과 여전히 반성이 없는 전두환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권력자들에 대한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음을 밝힌다. 나아가 노무현과 문재인에 대한 솔직하고 대담한 평가를 통해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방향이란 무엇인지 모색한다. “역사학자가 첨예한 이슈에 대응하는 법” 건국절 논란, 한일관계, 한국여성사에 이르기까지 역사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만들어가는 역사’ E. H.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라는 말은 오랫동안 역사학의 본령처럼 여겨져 왔다. 여기서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랑스 역사학자 장 셰노를 따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역동적 관계”라고 규정한다. 이는 역사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현실에서 우리의 세계관과 삶의 태도가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역사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질 때마다 소신 있게 의견을 밝혀온 저자는 2장 ‘만들어가는 역사’를 통해 그간 있어왔던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잡고 새로운 해석과 평가를 제시하고자 한다. 정확한 사료 비판을 통해 그간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팩트체크’를 수행하고, 자생적 근대화를 추구했던 고종과 대한제국 정부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로를 부정하고 이승만 중심의 건국절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비판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각종 사태들에 대항하며 일본의 뿌리 깊은 역사왜곡 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다. 아울러 제주 4?3 사건 및 대만 2?28 사건을 기념하는 의미를 되짚고, ‘인생의 패배자’로만 여겨지던 여성들이 ‘역사의 승리자’로 기억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한국여성사’의 의의를 제시한다. “단일한 역사해석과 역사교과서란 있을 수 없다” ‘역사교육 정상화’부터 ‘국정 역사교과서 철폐’까지 역사교육의 기준을 바로세우는 ‘참여하는 역사’ 중고등학교 검정 역사교과서의 대표집필자로서 모든 교과서를 심사에서 합격시켜온 저자는 그간 역사교육의 방향과 지침, 정책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다. 3장 ‘참여하는 역사’에서 저자는 남북한 공동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논의가 나왔던 김대중 정부 때부터 부실한 역사교육 정책을 내놓은 이명박 정부,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진행한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뀌어온 교육과정의 실상을 밝힌다. 집중이수제를 통해 근현대사 교육을 대폭 축소시킨 이명박 정부는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교과서 수정 지시’라는 초법적 행정조치를 밀어붙였다. 박근혜 정부는 문제가 된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켰고 기존의 검정교과서에 대해서는 ‘좌편향’이라 낙인찍으며 뉴라이트 진영 학자들을 대거 등용해 국정교과서를 탄생시켰다. 이 같은 흐름에 맞서 저자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역사관을 주입받게 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조하면서,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미화의 의도가 짙은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리고 각종 기고문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어떻게 대대적인 반대 여론에 밀려 무산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다” 영화 〈암살〉과 〈밀정〉부터 ‘러시아 여행기’까지 역사에 새로운 상상력과 재미를 입히는 ‘이어주는 역사’ 역사콘텐츠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상명대학교에서 학과 개편을 주도했던 저자는 4장 ‘이어주는 역사’에서 역사와 관련한 각종 영화?드라마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던 이야기를 담아낸다. 특히 〈암살〉과 〈밀정〉 등 대중과 평단에게 고루 후한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 어떻게 역사적인 개연성과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는지 등장인물들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통해 알려준다. 저자는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재미있는 역사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며 지금도 계속 등장하고 있는 역사콘텐츠의 ‘사실왜곡’ 논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준다. 아울러 〈남한산성〉 등의 콘텐츠가 잘 극화하지 못한 역사의 명장면이란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하고, ‘러시아 여행기’를 통해 120여 년 전 조선 사절단이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오늘의 시점에서 생생하게 전달한다. “역사는 추앙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역사학자의 내공 《주진오의 한국현재사》에 수록된 36편의 글들은 1990년대부터 2020년대에 걸쳐 쓰였지만 결코 낡거나 오래된 글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당시로서는 ‘현재’의 시점에서 쓰였기에 현장감과 긴박감이 넘치는 서술을 전개하며, 오늘의 독자에게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어떻게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영향을 끼치며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 주진오 교수는 역사란 과거의 박제된 사실이 아니라 오늘의 시점으로 불러와 항상 소통과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역사는 추앙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자신의 삶을 통해 직접 역사를 만들어가고 또한 그러한 ‘역사적 순간’에 우리를 초청하고자 한다. 이처럼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가는 역사가’, ‘참여하는 역사가’, ‘이어주는 역사가’로서 활동해온 주진오 교수의 시대와 호흡한 결과를 담아낸 이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에게 필요한 태도를 전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