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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빛을 향한 순례를 시작하며 6
침묵의 빛: 르 토로네 수도원 빛 속으로 19 어둠 속에 드러나다 26 숲속의 공동체 33 회랑을 걸으며 40 빛 너머의 빛 45 예술의 빛: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미술관 가는 길 59 이상한 숲속의 앨리스 65 하늘은 미술관 천장 72 라브린트 79 빨갛고 노란 맛 85 치유의 빛: 테르메 발스 온천장 낯선 이름의 온천장 97 깊은 그늘 속 목욕 104 산, 돌, 물 110 밤을 바라보는 밤 117 무엇이 옳은 길일까 122 생명의 빛: 길라르디 주택 열기 133 빛과 색의 향연 139 평온으로의 여정 148 고독과 영성 154 TV와 옷장은 없지만 160 지혜의 빛: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도서관 갈망 171 공간의 안무 177 세 개의 도넛 184 빛과 침묵이 만나는 성소 189 갈망의 역설 195 기억의 빛: 911 메모리얼 그날 207 부재를 반추하며 214 빛의 헌사 221 기억의 구름 227 밤 비행 234 구원의 빛: 마멜리스 수도원 당신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요 245 스스로 드러나다 252 수도사 건축가 259 크립트 268 수도원을 떠나며 277 안식의 빛: 우드랜드 공원묘지 공원묘지의 펑크족 289 내밀한 산책 296 우드랜드 공원묘지의 탄생 307 죽음을 마주하며 312 어디로 가나요? 318 참고 문헌 328 도판 출처 330 |
Jong-J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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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기설기 짜여진 나무널 사이로 빛줄기가 들어왔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를 먼지가 빛의 환영 속으로 날아올랐다.
--- p.6 여행을 계속하며 빛의 유형들은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빛과 어둠의 세계는 언어와 개념으로 설명하기 힘든 고유하고 신비로운 현상이었다. --- p.8 토로네 예배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하고 검박하다. 벽면에 일체의 장식이 없고 창문 크기도 작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아이보리색 암석을 깎아 만든 건물처럼 보인다. --- p.26 숙소의 창문들은 침상 머리맡에 하나씩 위치했다. 하나의 생명에게 하나의 빛을. 그렇게 수도사들은 달빛과 별빛을 받으며 잠들었고, 새벽빛을 받으며 일어났다. --- p.39 낯선 세계에 우리를 더 열어 놓을수록 우리 존재의 층위는 더 깊어진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여행한다. --- p.61 파빌리온 사이 오솔길은 미술관 복도다. 하늘은 미술관 천장이다. 그렇게 홈브로이히 섬은 보이지 않는 미술관, 미술관 너머의 미술관, 하나의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 p.77 어둠 속에서 빛나는 어둠. 매력적이다. 이렇듯 언제나 동일한 백색 조명 아래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하늘빛 아래에서도 그림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 p.83 바깥 풍경을 보며 사과를 한입 깨물었다. 껍질이 거칠었다. 홈브로이히 섬에서 자란 빨갛고 노란 빛은 새콤달콤했다. 오늘 경험한 색과 감각이 콜라주로 떠올랐다. --- p.88 온천장 입구로 들어갔다. 그늘진 회색 복도가 나타났다. 묘한 냄새가 풍겼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였다. 삶은 달걀 노른자에서 나는 누린내 같았다. --- p.105 중앙 목욕탕은 동굴 안에 고인 물 같았다. 밝은 빛에 이끌려 나가니 노천탕과 테라스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동굴 안팎을 돌아다닌 셈이다. --- p.114 온천욕을 마치고 산 쪽 테라스 선베드에 앉았다. 산과 마을이 어둠 속에 잠겼다. 거리의 가로등과 몇몇 오두막집 불빛만 띄엄띄엄 빛났다. --- p.119 페인트칠한 건물은 관리가 어렵다. 자꾸 칠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 다시 도색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새로 화장을 한 것처럼 쨍한 얼굴을 드러낸다. --- p.136 간단한 설명을 마친 루크 부인이 하얀 문을 열어젖혔다. 노란빛으로 가득 찬 복도가 나왔다. 벽도, 천장도, 바닥도, 가구도, 꽃과 조각도 모두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꿈 속에 있는 듯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 p.139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은 혼자 조용한 공간에 있을 때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여러 사람 속에서 끝없는 대화가 이어질 때 금방 지친다. 어서 자기만의 방으로 숨고 싶어 한다. --- p.158 칸은 건축을 인간과 사회에 바치는 봉헌이라 생각했다. 필요한 기능을 가지는 실용적인 건물이 아니라 세상에 봉헌하는 장소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p.181 세 번째 도넛에는 가장 많은 빛, 모두를 위한 빛을 유입한다. 책과 사람이 빛을 중심으로 모인다. --- p.188 여행을 하면서 점점 내가 어떤 내면을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 답사를 위해 여러 장소를 여행 중인데 아이러니였다. 답사의 끝에 발견하는 것이 건축 속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을 포함한, 규정할 수 없는 차원의 세계였다. --- p.199 늘어선 나무와 사람들이 보였다. 그곳으로 다가갔다. 물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일렬로 서 있는 곳을 향해 가니 물소리가 점점 커졌다. 지하로 파인 커다란 수공간이 드러났다. --- p.216 기억은 경험을 물들인다. 만약 이 물벽이 전혀 다른 장소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세워졌다면 사람들의 경험과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 p.219 빛이 워낙 높게 치솟기 때문에 맑은 날에는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동일한 빛 기둥을 세우면 천안, 원주, 춘천에서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 p.223 수목 사이로 오래된 농가들이 보였다. 들판에 소 몇 마리만 보일 뿐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얕은 언덕길로 올라갔다. 정상에 이르니 십자가 탑과 아이보리색 벽돌로 지은 건물이 나타났다. --- p.248 미사가 끝났다. 수도사들이 예배당 여기저기의 문을 열었다. 내부에 가득 찼던 향이 문을 통과해 회랑으로 서서히 흘러갔다. --- p.255 람베르투스 수도사가 책장에서 서류함 하나를 꺼냈다. 안에는 빛바랜 종이가 가득했다. 종이들을 책상에 나열해 보았다. 반 데어 란이 마멜리스 수도원 설계를 하며 그렸던 스케치들이 펼쳐졌다. --- p.280 고요한 아침 공원묘지에서 펑크족을 만나는 것이 낯설었다. 저들은 이곳에서 밤을 새운 것일까? 아니면 근처 타운에서 술을 마시고 바람을 쐬기 위해 묘지로 온 것일까? --- p.292 정상에는 느릅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가운데 작은 화덕이 놓였다. 길고 긴 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하늘로 피어오르는 불이다. 수평이 수직으로, 땅이 하늘로 승화한다. --- p.306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록은 없지만 오래전 공원묘지가 조성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묘비들은 동향으로 세워졌다. 이는 망자에게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빛을 선사하기 위한 배려였다. --- p.313 열린 터로 들어섰다. 석양빛이 그의 뒤에서 비쳤다. 그는 아름다운 오렌지빛 속에 있었다. 순간 그 역시 하나의 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321 이곳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내 안에, 세계의 안에 가득찬 의식이다. 그토록 먼 길을 달려 그 끝에서 마주한 장소는 내면의 풍경이었다. --- p.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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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빛'을 담은 다채로운 공간을 답사하고 그곳에서 경험한 사색의 세계를 보편성으로 끌어올린 영혼의 에세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오롯이 빛과 어둠이 지닌 음영의 건축 공간만 찾아다녔다. 삶과 죽음이 일상 속에서 이웃하며, 희로애락이 뒤섞이며 갈등하고 치유하는 공간이 아름답게 비춘다.
책에는 저자의 사례 작품에 대한 소개도 있지만, 방문하고 머물면서 느꼈던 감정과 경험, 그리고 마주쳤던 풍경과 사람들이 색색의 실로 짜인 퀼트처럼 콜라주되어 있다. 건조한 건축 용어가 이어지는 문장이 아닌, 차분하게 다듬어진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같은 공간에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실감하고 저자의 사색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때로는 웅장한 교향곡처럼, 때로는 감미로운 실내악처럼 공간에 대한 공명이 문장을 통해 내면을 울린다. 심연으로부터 차오르는 자아의 목소리, 그 떨림을 전하는 빛과 어둠으로 채워진 공간. 결국은 빛도 어둠도, 찬란함도 그림자도 우리 모두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그림자의 위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