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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얼키고설킨 가슴 한 올 한 올 거미줄 같이 풀어내어 얼기설기 종이집 한 채 짓는다 2021년 가을 중메골 효명산방에서 제1부 포항 조감도 함께 13 짝 14 아랫부조 장시場市 16 모가지 18 동을배곶 말목장성에서20 개똥벌레 22 홍두견 꽃길 24 죽도어시장 26 형산강 27 화려한 만남 짧은 인연 28 호미반도 둘레길 30 역류 32 묵 34 동행 36 포항부추 38 제2부 사방연속무늬 동그라미 41 대니얼 송 크리스프 42 36 · 77 44 애마 46 꽃할배 바리스타 48 시인과 묵객 50 흙으로 돌아보다 52 간지럼 타는 나무 54 찔레꽃 55 용 귀를 뚫다 56 저녁 강변 58 1004 60 선인초 62 여덟시꽃 63 백일천하 64 동거 66 우주로 열리는 아침 68 보이차 69 흙으로 행복빚기 70 아버지와 땅콩 72 올해 벚꽃은 어찌 저리도 고울까 74 뚱딴지 75 옻 76 연극 77 벚꽃 마라톤 78 아내의 푸념 80 제3부 바람의 산 자은도 85 달 걸린 봉우리 86 바람의 산 88 비렁길 90 황매산* 철쭉 92 다탁 왕버들 94 계룡산 95 대청호 오백 리 길 96 시월 청도 98 은행나무와 낮달 100 창수령 102 어산불영산수유 106 무섬 108 불갑산석산화 109 도마령 110 월류봉 111 좌이산 112 은자 113 | 해설 | 여국현 세상을 유영하며 쓰는 삶의 노래 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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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규 시인 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일상 속 현상에서 평범한 듯 보이지만 귀중한 삶의 비밀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인생은 연극이라 하던가. 시인은 우리 인생의 긴 이야기를 간명하게 무대 위에 올려 보여주고 있다. 1막에서 2막으로 옮겨 가며 주연이 바뀐다. 나에게서 당신에게로. 나라는 주체가 제일이었던 우리 인생의 첫 단계.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세계는 오롯하게 자신이 주인공인 세계인 셈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내가 주연인 무대가 아니라 당신이 주연인 무대도 있음을 알게 되고, 기꺼이 당신이 주연인 무대의 조연이 되어 함께 연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돌문을 드나들던 말의 행렬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말봉재를 울리던 말발굽 소리를 찾아 말 잔등에 오른다 여명의 바다를 지나 반 바퀴나 기운 태양이 청보리 물결로 출렁이는 구만리 푸른 등줄기를 내달리는 말갈기가 시간의 벽을 허문다 군마들이 내달리던 드넓은 목장 조형물이 된 세 마리 말이 돌울타리를 지키고 서있는 말목장성 능선마루에 가만히 귀를 대본다 갈기 세운 말발굽 두두두…… 군마들의 기상이 지평선을 가르자 동을배곶 호랑이 꼬리가 출렁거린다 멀건 풀죽에 쑥버무리로 끼니를 때우던 험준한 보릿고개는 또 어디로 갔을까? 청보리 나부끼는 구만리 언덕에서 나는 풍차처럼 오월의 푸른 달력을 넘긴다 - 「동을배곶 말목장성」 전문 화자는 동을배곶 말목장성―경북 포항시 호미반도에 자리하고 있던 말목장성의 옛 이름―에서 이 시를 쓴다.“군마들이 내달리던 드넓은 목장”은 그대로인데 “돌문을 드나들던 말의 행렬”도 “말발굽 소리”도 사라진 곳에 “조형물이 된 세 마리 말”들만 서있다. 화자는 군마들의 “말발굽 소리” 우렁찼던 말봉재에서 “푸른 등줄기를 내달리는 말”들을 그리워하며, “시간의 벽” 저편으로 사라진 그 공간의 과거를 아쉬워한다. 하지만 과거는 모두 우렁차고 힘차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멀건 풀죽에 쑥버무리로 끼니를 때우던/ 험준한 보릿고개”도 그 시간과 함께 말목장성에서 사라졌다. 지금 “청보리 나부끼는/ 구만리 언덕” 말목장성에는 “오월의 푸른” 바람이 불고, 화자는 “풍차처럼 서있다.” 송준규 시인의 시는 이처럼 단순히 장소에 대한 묘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의 시간과 역사성을 자신의 시속으로 끌어들여 한 공간에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끼며 담아낸다. 다음 시를 보자. 황금 삼족오 설화 얽힌 금오산 와불 북극성을 바라보네 내 유년의 푸른 꿈 키운 현월봉 불빛이며 온 산 울리는 명금폭포 그 옛날 추억 잠긴 산정호수는 은비늘 찰랑찰랑 흰 나비 되어 숲으로 날아간 어린 조카 숨결 남아있고 벽옥혼식 맞은 아내와의 천년사랑 맹세 담고 하늘로 우뚝 솟은 스물한 기 돌탑 초성으로 불린 고산의 필법 알고 싶고 충절공의 혼을 닮고 싶어 찾아온 산모롱이 담벼락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북쪽 향해 피어난 백목련 진향이 가던 발길 멈추게 하네 - 「달 걸린 봉우리」 전문 경북 구미시에 있는 금오산 와불을 제재로 한 이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고향의 공간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현월봉 불빛” “명금폭포” “산정호수”. 그곳에는 “흰 나비 되어 숲으로 날아간/ 어린 조카 숨결 남아있고” “아내와 천년사랑 맹사” 담긴 돌탑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고산의필법” “충절공의 혼” 찾아 찾아온 그곳에는 옛 고향의 정취 대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북쪽 향해 피어난/ 백목련 진향”만이 화자를 붙들 뿐이다. 이처럼 송준규의 공간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실질적인 물리적 공간이자 사념속 관념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모습은 다음 시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 곳에는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많다 바람이 내달려 구름 여는 운문호 깊은 수심에 파리낚시 던져두고 밤 새워 별 헤던 그 시간들 벚꽃 고운 고향마을 잠긴 물 위에는 그리움만 일렁인다 신라에 대적하던 이서국 자취 없고 말울음소리만 귓속을 맴돈다 800년 묵은 은행나무에 맹아랑 유주가 길어나온 적천사에는 목어가 없고 내호리 시인의 마을엔 시인이 부재 중 청도역 골목골목 추어탕집 탕 속에 미꾸라지 없고 천지사방 붉게 열린 감에는 씨가 없다 묵언수행 중인 박곡리 석가여래 부처 눈도 코도 귀도 없다 - 「시월 청도」 전문 수몰지구가 되어 물 밑에 잠겨버린 옛 고향 마을을 품고 있는 운문호 호수 위에 낚싯대 던져둔 화자가 낚는 것은 물고기가 아니다. 사라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하지만 그 그리움은 반밖에 낚이지 않는다. 고향은 물 속에 있으나 갈 수 없으니 없는 것이고, “신라에 대적하던 이서국”은 없고, “적천사”는 있으나 “목어”는 없고, “추어탕집”은 있으나 “탕 속 미꾸라지 없고” “시인 마을”은 있으나 “시인”은 없고, “감”은 있으나 “씨”는 없다. 그리고, “박곡리 석가여래 부처”는 있으나 그 부처 “눈도 코도 귀도없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가 찾는 고향은 흔적은 있으나 실체는 없다. 송준규 시인의 공간은 여기서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포함하는 매개물로 존재한다. 소백이 낳은 서천과 태백의 내성천이 만나 태극으로 휘돌아나가는 육지 속 섬 학교 가던 먼 길 꽃가마 탄 새색시 꽃상여도 건너던 외나무다리 물살 센 발밑으로 나도 여울물 되어 흘러가고 뭉게구름 걸린 미루나무 아래 외딴집 한 채 물 건너 코스모스 꽃길 한복판에서 아직도 책보를 둘러멘 내가 손 흔들고 있네 - 「무섬」 전문 무섬.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시인이 어린시절을 보냈을 곳으로 짐작되는 곳. “소백이 낳은 서천과 태백의 내성천이 만나/ 태극으로 휘돌아나가는/ 육지 속 섬”과 같은 공간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지지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시인은 지금 그 공간의 과거 속으로 걸어들어가 있다. “꽃가마 탄 새색시/ 꽃상여도 건너던/외나무다리”도 그 아래 “여울물”도, “뭉게구름 걸린 미루나무 아래 외딴집 한 채”도 모두 지금 여기 있다. 그리고 거기, “물 건너 코스모스 꽃길 한복판에서/ 아직도 책보를 둘러멘” 시인이, 지금 노년의 그 자신에게 “손 흔들고 있네.” 과거와 현재, 서로 다른 두 시간은 이 공간 속에서 완벽하게 공존하면서 시인의 과거와 현재를 대면시켜준다. 워즈워스의 「틴턴 사원」이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변한 모습을 명료하게 인식하는 매개물이 되는 것과 달리 송준규 시인의 「무섬」은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오롯이 만나는 매개물로 기능한다. 한편, 공간은 때로 그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고성 자란만 내려다보며 길게 누운 용 왼쪽 귓바퀴를 타고 올랐다 바다 바둑판에는 섬 바둑돌들이 옹기종기 내려오는 옷자락을 붙잡고 큰 나무에 기대 선 장승이 말을 건넨다 ―무한불성無汗不成 지당한 말씀 ― 땀을 흘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오 - 「좌이산」 전문 경남 고성군에 자리한 ‘좌이산’을 오른 화자는 멀리 남해의 “바둑돌들” 같은 섬들을 바라보며 섰는데 “장승이 말을 건넨다…… 땀을 흘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없다오.” 교감이고 깨달음이다. 공간은 화자에게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대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대화는 곧 하자 자신의 내면의 성찰에 다름아니다. 이 글의 앞에서 언급했던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의 공간에 대한 시, 자연에 대한 시는 자연시라 불리지않고 명상시, 성찰의 시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그 까닭이다. 그렇듯 자연과 공간은 그곳을 찾는 이들이 스스로를,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하는 기제가 된다. 워즈워스의 명상시적 요소가 송준규 시인의 자연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성찰의 매개 역할을 한 송준규 시인의 공간은 이윽고 깨달음의 공간이 된다. 머리에 서리꽃을 인 소백산 비로봉 칼바람을 맞아보지 않고 어찌 쓰다 달다 인생을 논할 수 있을까? 초병같이 눈만 빼끔 과메기 되어 꾸덕꾸덕 걷는다 산행길 마라톤길 인생길 모두 대신 갈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길 설원에 홀로 우는 까마귀야 왜 그리 슬피 우느냐? 달밭골 외딴집 저녁연기처럼 냉동됐던 옛 추억이 머리 풀고 나온다 바지에 칼날 세우고 쇠구슬 링 차고다니던 푸른 군복의 추억도 캥캥 불여우도 치렁치렁 긴 머리 옥이도 내성천 금모래로 인연 따라 흘러가고, 죽령옛길 그 주막은 오늘도 길손 기다리지만 비로봉 다시 오르며 비로소 깨달았다 끝난 인연은 다시 찾지 말아야 한다는 걸 - 「바람의 산」 전문 “소백산 칼바람을 맞으며……꾸덕꾸덕 걷는” 시인은 그 걸음 속에서, 그 칼바람 속에서, 그 산 위이 길에서 문득 깨닫는다. “산행길 마라톤길 인생길 모두/ 대신 갈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길”임을. 일견 당연한 이 깨달음은 그 하나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과거의 모든 것들이 “인연 따라 흘러가” 것이라 “끝난 인연은/ 다시 찾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화자는 이제 다시는 “설원에 홀로 우는 까마귀”처럼 “슬피 우”지 않을 수 있을까?일상에서 깨닫는 비밀의 노래 송준규 시인의 시가 공간적 지지시의 요소만 지니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그 위를 걸어가며 보고 느끼고 명상한다. 하기에 송준규 시인의 시에서는 짙은 흙내음이 난다. 땅을 밟고 땅을 걸으며 땅 위에 서서 그 땅의 역사와 그 땅 위에서 살아낸 사람들의 자취를 느끼는 유영자의 모습이 보인다. 「호미반도 둘레길」 같은 시는 그런 그를 잘 보여준다. 종일 영일만을 안고 돌았다 몰개월 들머리부터 호미반도 해파랑길 둘레둘레 걷는다 봄비와 함께 해송림과 육사 청포도 밭 지나 철썩철썩 파도 따귀 얻어맞아가며 먼저 떠난 연오랑 찾아 바위 타고 바다 건넌 세오녀는 귀비 되었고 나는 젖은 솜 되어 발바닥 불 나도록 걸었다 아홉 마리 용 서린 구룡소 지나면 바람 부는 구만언덕 청보리밭 까실까실한 추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상생의 손 박수 받으며 길 재촉하는데 다무포 빨간 보이스피싱호는 무얼 낚으러 가는 걸까? 왼쪽에는 바다를 펼쳐두고 오른쪽 산을 끼고 도는 37.5km 길 산 닮은 인자가 못 되면 인자가 찾아오는 산이 될까? 한편, 그의 시에 두드러진 또 하나의 특징은 일상 속 현 상에서 평범한 듯 보이지만 귀중한 삶의 비밀을 깨닫는다 는 것이다. 제1막 내가 있고, 당신이 있었다 제2막 당신이 있고, 내가 있었다 막 내릴 때 우리는 함께였었다 - 「연극」 전문 인생은 연극이라 하던가. 이 짧은 시를 통해 시인은 우리 인생의 긴 이야기를 간명하게 무대 위에 올려보여준다. 1막에서 2막으로 옮겨 가며 주연이 바뀐다. 나에게서 당신에게로. 나라는 주체가 제일이었던 우리 인생의 첫 단계.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세계는 오롯하게 자신이 주인공인 세계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내가 주연인 무대가 아니라 당신이 주연인 무대도 있음을 알게 되고, 기꺼이 당신이 주연인 무대의 조연이 되어 함께 연기한다. 그 과정을 거친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올곧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벚꽃바다 된 보문호…/ 벚꽃길을 달”리며 전하는 시인 의 깨달음도 울림이 크다. “나 대신 남이 달려”줄 수 없는 것임을 아는 시인은 (인생이란) “내 목표치에 맞춰/ 내 페 이스를/ 내가 조절하며/ 달리는 코스”라는 걸 다시 확인 한다. 마라톤과 인생의 비유은 유사 이래 수도 없이 언급 되어 온 것. 그러나 … 중략 … 마라톤은 반드시 결승점 있고 가장 빠른 한 사 람만 일등이 되지만 누구든 완주할 수 있고 누구든 새로 시작할 수 있지 그렇지만 인생길, 무턱대고 가야하는 길, 정해진 코스 없고 결승점 없는 길, 누가 완주했는지 누가 일등인지 모르면서 가는 길, 누구든 두 번 다시 시 작할 수 없는 길 나는 오늘 두 길을 한꺼번에 달린다 - 「벚꽃 마라톤」 부분 이런 깨달음은 평범하면서도 귀하다. 아니, 그래서 귀하다. 세상은 특별한 깨달음으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평범한 깨달음을 묵묵히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 그런 깨달음의 시간을 건너온 시인은 이제 이렇게 살고싶어 한다. 동-글이 징글맞게 듣기 싫던 어릴 적 내 별명 다시 듣고 싶다 돌아보면 살얼음판 건너 모난 돌밭길 걸어온 삶 이제는 파도에 쓸리고 바람에 깎인 몽글몽글 몽돌이고 싶다 저 둥근 돌도 부딪히고 절망하며 끊임없이 모난 살점 덜어냈으리라 본디 아픔과 고통을 주고받던 모난 돌이었을 테니 하늘에 뜨고 지는 해와 달, 딛고 선 지구, 굴러가 는 모든 것들, 황소의 눈깔, 어머니 눈물방울까지 온통 동그라미 세상이다 마음밭 깊이 동그라미 하나 음각으로 새겨야겠다 - 「동그라미」 “어릴 적 별명”을 다시 듣고싶어 하는 시인의 마음은 워즈워스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던 바로 그 마음일 터. “아픔과 고통을 주고받던 모난” 돌로 지내온 자신의 삶을 벗어나 “파도에 쓸리고 바람에 깎인/ 몽글몽글 몽돌이고 싶다”는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하늘에 뜨고 지는 해와 달, 딛고 선 지구, 굴러가는 모든 것들,황소의 눈깔, 어머니 눈물방울까지 온/ 동그라미 세상”이라는 걸. 그렇게 “마음밭 깊이 동그라미 하나” 새긴 그는그만큼 더 깊은 진실을 알게 되었다. 흙에서 태어난 나는 흙장난하며 자라고 흙에서 키운 양식으로 살았다 흙으로 빚은 옹기에 장을 담고 흙을 빚어 만든 그릇으로 흙담 너머 사랑과 행복을 나누며, 흙과 볏짚을 섞어 반죽해 지은 집 흙바람벽엔 벽지 대신 흙앙금을 가라앉혀 칠하고 흙벽돌 위 구들장 바른 흙에 누워 쉼을 찾았지 흙길 이십리를 내달려 학교를 다니고 흙을 일구며 한 생을 살다가 흙 한 줌 되어 돌아가리라 흙내 진동하는 삶이었지만 콘크리트 옹벽 속에 서처럼 옹색하고 메마르진 않았다 - 「흙으로 돌아보다」 이처럼 그의 시에는 장소와 공간을, 땅과 그 위에 살고 살아온 사람들을 그리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포항 조감도」 같은 연작으로 구성하고 있는 듯한 시는 그가 담고자 하는 한 방향을 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공간과 장소에 천착한다는 이유만으로 지지시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이제 시작하는 한 시인의 시를 특정한 호명의 좁은 틀에 가둘 일도 아니다. 하지만 장소와 공간에 흐르는 시간,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평범한 삶에서 비범한 삶의 통찰을 끌어내는 것은 시인에게 주어진 한 몫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