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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 7
제1부 그리운 지청구 기도 · 13 냉이를 뽑다가 · 14 파랑새 · 15 단검 · 16 늙은 밤나무 생각 · 17 지청구 · 18 물고기 화석 · 20 빈손 · 21 땅속 두견주 항아리 · 22 노둣돌 · 23 아뜩할 그날 · 24 낙엽 · 25 산다는 것 · 26 양파껍질 · 27 어머니의 봄 · 28 제2부 너무 작아 아픈 우주 줄탁 · 31 우주의 태동 · 32 숲에 시를 심다 · 33 봄의 낮달 · 34 배밀이 · 35 하늘정원 · 36 홀딱새는 울고 · 38 등에 기대어 · 39 거짓 없는 발 · 40 너무 작아 아픈 우주 · 41 별염불 · 42 모래경단 · 43 비단 돌고래 · 44 선인장꽃 · 45 연어의 반조 · 46 제3부 파랑 물결 같은 길 초승달 · 49 썰물 · 50 내 눈물 속엔 · 51 그리움 · 52 그림자 시 · 53 장승골 숯가마 터 · 54 산을 휘돌 듯 · 55 초가을 · 57 산 아래 차방 · 58 안개 산 · 59 호떡 · 60 한산모시 조각보의 꿈 · 61 바다를 응시하다가 · 62 서귀포에서 · 63 구름에 묻은 씨앗 · 64 제4부 삶이 산 산 · 67 버들계곡 · 68 백두대간 불의 고리 · 69 산과 독대 · 70 빗물에 발목 잡혀 · 71 향로봉에서 · 72 새벽 대청봉 · 74 겨울 설악 · 75 귀때기청봉을 나는 새 · 76 나에게 속아 · 77 병풍바위 · 78 구름의 말 · 79 땅안개 · 80 11월 바람 · 81 물꽃 · 82 해설 생명 중심의 여성주의 시 시세계 · 임채우(시인, 문학평론가) · 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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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어머니가 가족의 삶을 주도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여성으로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는 시인은, 다분히 생득적인 여성주의 시각의 소유자가 되었다.
여성주의 시각이란 작금의 여권신장이나 남녀평등의 페미니즘을 말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전통적인 시각에서 여성이 삶의 주체이자 근원이라는 관점이다. 마치 우리 고전소설 〈심청전〉을 보면 주요 서사가 여성에 편중되어 있으며, 남성은 서사의 조연이나 부수적인 인물이다. 여성은 생명의 근원이며 가족이나 자연을 자기 안에 품어 살리는(살림하는) 사람이다. 여성은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삶을 주도한다. 생명에 관한 여성주의 시각은 그의 시 세계에 지대한 의미를 지닌다.(해설에서) 방순미 시인은, 산이 좋아 산에 사는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를 산악인이라고 말한다. 산악인이라는 말에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자연 중심의 사고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등산’이라든가 ‘산에 오르다’, ‘산을 탄다’라는 말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나온 말이다. ‘산악인’이나 ‘산에 간다’는 말은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말이다. 시인은 산에서, 숲에서, 나무와 꽃, 풀, 새, 작은 곤충들까지 모든 생명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준다. 시집 『물고기 화석』에서 시인의 관심은 온통 자연과 생명 활동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 시 전편에 흐른다. 백수를 살아오시면서 한시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시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에게 헌정하는 시집이라고 해도 좋겠다. 시집 『물고기 화석』은 여성으로서 산에 사는 산 사람 방순미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산의 이야기이다. 어머니가 나이고, 내가 자손이고, 산이 나라는 생각은 시인 방순미의 독특한 사고다. 독자들은 『물고기 화석』을 통하여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베갯잇 벗겨 빨려다 녹슨 칼이 나왔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녹이 성성한 무딘 칼이었다 헛간에 놓았다가 다시 꺼내 와 여쭈었다 “니 애비 배질 나가고 없을 때 소금 싣고 다니는 마꾼들이 새댁! 새댁! 부르며 조롱하면 그것보다 겁나는 게 없었지.” 망백 넘은 한 여자의 수절, 그토록 깊은 가슴에 꽂아 둔 단검인 줄 몰랐다 - 「단검」 전문 어머니는 단검을 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단검을 품는다는 것은 단호한 결의를 의미한다. 내 가족은 내가 지키겠다는 선포다. 아버지는 생전에도 바다에 나가 오래 집을 비우는 일이 많으셨던 듯하다. 그럴 때도 집을 드나드는 사내들에게서 자신의 몸을 지켰고, 생계를 책임지며 가족을 지켰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나서는 더욱 단검을 강하게 품으셨으리라. 마지막 연 “그토록 깊은 가슴에/ 꽂아 둔 단검”이 아프게 다가온다. 어머니는 생선 장사꾼이었다 생선에서 나는 비린내보다 더 지독했을 삶 밥상머리에 발라주던 하얀 생선 뼈처럼 야위어 돌돌 말린 가슴으로 가느다란 숨길 고요히 따라가다 돌아서길 몇 밤 말문도 막힌 고통을 견디며 해결되지 않는 병마에 맞서 점점 물고기 화석이 되어 간다 ― 「물고기 화석」 전문 “물고기 화석”으로 비유된 어머니는 아픔과 슬픔의 역사다. 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에서 어머니가 팔던 생선 냄새로 가족의 생계를 잇는다. 이것을 시인은 “비린내보다 더 지독한 삶”이었다고 표현한다. 비린내로 비유된 어머니의 삶이 시인에게는 안쓰럽고 죄송하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가족을 지켜내고 살려낸 어머니는 늙어 병에 걸리셨다. 백수白壽의 어머니가 물고기 뼈처럼 야위어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시는지 숨길마저 가느다랗다. 팔던 생선이었을까? 어머닌 밥상에서 가시를 발라 생선 살을 숟가락 위에 올려 주셨나 보다. 따뜻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어머니의 마른 가슴이 눈에 시리다. 걷고 걸어 박힌 옹이 새살 돋아도 다시 죽는 법 스스로 배워 맨 밑바닥에서 슬픈 삶을 살아 낸 나를 업고 죽은 발바닥 굳은살 앞에서 거짓 할 수 없는 발은 나의 거울 - 「거짓 없는 발」 전문 어머니가 걸었던 삶처럼 지침 없는 길을 시인이 걷는다. 걷고 걸어서 옹이가 박히고 새살이 다시 돋아도 살은 스스로 죽는 법을 배워 다시 죽는다. 살이 죽어 생긴 것이 옹이이다. 발은 어느 길을 얼마나 걸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숱한 너덜겅을 쉼 없이 걷고 걸어 옹이가 박히는 것이다. 발에 생긴 옹이는 치열한 삶의 흔적이다. 게으른 사람의 발에 옹이가 생길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살다 보면 독인 줄 모르고 산다 살다 보면 독에 중독된다 몸 그림자 사라진다 해도 두려움 없을 중독 지친 살모사처럼 가엽고 가여워라 피할 수 없다면 더러운 피의 양이 되리 독으로 받은 상처 별이 될 때까지 - 「너무 작아 아픈 우주」 전문 거대한 우주를 시인은 “너무 작아 아픈 우주”라고 표현한다. 작은 우주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시인 자신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가슴 속에 떠 있는 수많은 작용일 수도 있겠다. 바람만 불어도 생겼다가 소멸하고 다시 생기는 번뇌는 내가 만들어 낸 독이 아닐까? 살모사의 독처럼 치명을 주는 것은 인간의 혀일 수도 있겠다. 말로 주는 상처야말로 가장 강한 독이다. 말이든 행동이든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독은 평생의 상처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부부 사이에 친구 사이에 이웃 사이에 관민 사이에서 우리는 무수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이 상처들이 잘 아물어서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면 독이 별이 되었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새소리 하나 없다 나무와 나뭇가지 부딪쳐 우는 소리만 차다 나무에 발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산을 들어서려니 두렵고 가슴 조인다 꽃잎은 떨어져 분분히 흩날리고 해는 구름에 가려 숲은 깜깜하다 눈으로 본 것이 전부라 산이 감옥처럼 느껴진다 나뭇가지 찢기는 소리 들고양이 덮쳐 할퀼 듯하고 산에 왔으나 오도 가도 못하고 멈춰 섰다 지금 그냥 돌아간다면 다시는 이 길 홀로 들어서지 못할 것 같아 전사처럼 숲을 휘돌아 나왔다 때론 두렵고 숨 막히는 절망과 허탈 산을 휘돌아 나오듯 내 등을 떠밀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 「산을 휘돌 듯」 전문 그렇게 좋아해서 찾은 산이건만, 산은 만만하지 않다. 어떤 때는 자상한 품을 열어 반겨 주지만, 어떤 때는 차디찬 얼굴로 엄한 꾸짖음을 준다. 산에서는 함부로 가볍게 굴면 안 된다. 때론 겁먹은 강아지처럼 조심스럽게 때론 전사처럼 용감하게 길을 걸어야 한다. 산이 인생의 길을 가르쳐 주는 것 같지 않은가? “때론 두렵고 숨 막히는” 인생길, “산을 휘돌아 나오듯/ 내 등을 떠밀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라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대목이다. 폭설 내려 일색이듯 망망한 구름바다 아마존 강물 인도양 바닷물 설악산 계곡물 구름의 고향은 어딜까 뒤섞여 한통속인 물 창공 아래 구름의 말 너도 가고 나도 흘러 우린 어디쯤에서 다시 물로 만나게 될 거야 - 「구름의 말」 전문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평정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을 즐길 줄 알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라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흐르고 인자한 사람은 산처럼 든든하다”라고 풀고 싶다. 방순미 시인은 산을 닮아서 참으로 어질고 든든하다. 매사 신중하고 사람 사이 돈독하며 의를 아는 사람이다. 위 시에서 “우린 어디쯤에서 다시/ 물로 만나게 될 거”라고, 그러므로 사람 사이는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니라고, 구름을 통해 전하고 있다. 시인은 산에서 구름을 보며 이러한 철학을 깨달았다. 아마존 강물, 인도양 바닷물, 설악산 계곡물들이 모두 섞여 구름이 되고 구름이 물로 변하여 다시 강물로 바닷물로 계곡물로 흐른다는 시구 속에는 불교에서 전하는 윤회 사상이 들어 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라는 말은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사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 모든 동물, 모든 사물, 즉 자연 만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