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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나팔꽃 염소 별자리 파도 여인숙 툇마루 햇빛 구경 엄마 잔소리 분홍빛 바람 누나 얼굴 편의점 눈동자 고양이 라면 심야 영화 느리게 걷는 고양이 서정시의 시간 영통 당산나무의 영혼 서해바다를 지팡이로 적셔 보다 2부 물방울 관음 바보 문답 붉은 눈꽃 호랑이 눈동자 선승의 절벽 경사진 능선 너머 비탈길 요령 소리 부채를 들면 불어라 산바람 유체이탈 가랑잎 부처 에밀레종 불타지 않는 혀 맨발의 쪽배 어머니 범종소리 3부 검은 거미의 사랑 노래 여백의 숨소리 서정적 인간 황야의 별들 낙뢰의 푸른 불꽃들 가을햇빛 지구별 시인 바다를 잃어버린 소년 한 줌 흙 모래 그림자 슬픔을 모르는 사람 수원 남문 돌계단 햇살 붉게 달아오른 찐빵 얼굴 차 없는 공방거리 버스들이 숨을 멈출 때 4부 구름옷 풀꽃 냄새 백지 인간 물 아래 그림자 대구 꼬리 봄바람 산죽나무 뒷모습 생의 날들은 도다리 한 접시 황금빛 돛배 산등성이 다람쥐 정조와 연산군의 시편을 읽으며 박쥐 인간들 등신 하나가 앉아 나미브 사막의 풍뎅이 철새들의 장엄한 투혼 치명적인 죄명 해설 | 맨발의 쪽배로 건너는 구도의 바다 | 이승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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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새벽마다 콩나물시루에서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웃집에 셋방살이하던 아주머니가 외아들 공부시키려 콩나물 키우던 물방울 소리가 얇은 벽 너머에서 기도소리처럼 들려왔다. 새벽마다 어린 우리들 잠 깨울까 봐 조심스럽게 연탄불 가는 소리도 들었다. 불을 꺼뜨리지 않고 단잠을 자게 지켜주시던, 일어나기 싫어 모르는 척하고 듣고 있던 어머니의 소리였다. 콩나물 장수 홀어머니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머니 가시고 새벽마다 콩나물 물 내리는 소리 지나가고 나면 불덩어리에서 연탄재 떼어내던 그 정성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잠 자주 깨는 요즈음 그 나지막한 소리들이 옛 기억에서 살아나와, 산사의 새벽 범종소리가 미약한 목숨들을 보살피듯, 스산한 가슴속에 들어와 맴돌며 조용히 마음을 쓸어주고 간다. ---「어머니 범종소리」중에서 석가모니는 뒤늦게 도착한 제자에게 관을 뚫고 맨발을 보여주었다. 열반에 오른 그가 다비 직전에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맨발이었다. 평생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그의 유언은 맨발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제자들아 맨발로 가라, 맨발 그 이상 나에게 다른 가르침을 찾지 말라. 영산회상의 꽃이 아니라 관을 뚫고 나온 맨발은 망망대해의 쪽배 같아서, 열반으로 가기 직전 석가가 보여주었던 맨발의 길, 구도자는 그 맨발로 어떤 스승도 없이 화탕지옥의 불길을 헤치고 생의 마지막까지 가야 하리. ---「맨발의 쪽배」중에서 탁발 나가 개망초 적적한 절에 천둥 치고 밤새 비바람 불었다 성난 고래 물살 산간 계곡 휩쓸어 바다로 나갔는데 댓돌 모서리 주인 없는 흰 고무신에 고인 모래알 물살에 문 두드리다 떠 있는 황금 가랑잎 부처 ---「가랑잎 부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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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근원성과 존재의 보편성에 대한 극서정의 언어”
치열한 미적 정련의 흔적 2022년 제34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어머니 범종 소리」를 만날 수 있는 최동호의 9번째 시집이다. 최동호 시인이 궁극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형상을 다 떨구어 낸 후의 실재이다. 시집 『황금 가랑잎』은 극서정의 언어, 인간과 세계의 보편적 심층에 대한 탐색의 언어, 기원으로 귀환하여 새롭게 삶의 결정을 구축하려는 근원의 언어라는 세 축으로 최동호 시학의 향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이를 통해 독자들은 서정시의 주체가 보여주는 강력한 주관성으로 사물을 자유자재로 가공, 재배열, 재조합하는 미적 정련의 끝장에 있는 ‘황금’같은 내적 싸움의 처절한 흔적(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극서정시에 대한 탐구의 지속이다. 그 과정에서 확장과 축소를 시도해 보았다. 산문시는 그 흔적이다. 맑고 순정한 세계에 도달하여 생명의 근원을 탐색하는 데 전력투구했다. 귀신의 소리도 듣고, 편의점 인간도 그리고 약한 생명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았다. 백지의 벽 앞 시가 갈수록 어렵다. 2021년 가을 최동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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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시의 여러 가지 상징적 형상들은 세속 도시의 순간적 가변적 사례를 초월의 정념으로 변용하여 영속의 시간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상징적 형상은 덧없고 누추한 세속의 삶에서 영원하고 신성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의 등촉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시적 상징의 포착, 이러한 시적 순간의 정화가 없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시를 읽고 거기서 의미를 찾으려 하겠는가. 최동호의 시는 그런 시적 순간의 초월과 승화를 체험하는 지평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의 시에서 펴져 오는 부드럽고 맑은 음성과 정겨운 손길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이것은 우리에게 드리운 고귀한 축복이다. - 이숭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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