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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산문 세트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 어떤 나무들은
최승자
난다 202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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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1부 배고픔과 꿈
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 13
배고픔과 꿈 16
산다는 이 일 20
시를 뭐하러 쓰냐고? 24
도덕 하는 사람들 28
성년成年으로 가는 여행 35
맹희 혹은 다른 눈眼 39
죽음에 대하여 47
떠나면서 되돌아오면서 56
가수와 시인 61
머물렀던 자리들 66

2부 헤매는 꿈
나의 유신론자 시절 75
호칭에 관하여 79
헤매는 꿈 83
둥글게 무르익은 생명 88
짧은 생각들 92
한 해의 끝에서 97
비어서 빛나는 자리 100
유년기의 고독 연습 103
없는 숲 109
양철북 유감 113

3부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폭력을 넘어서 119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124
1980년대의 시에 관하여 130
‘가위눌림’에 대한 시적 저항 135

4부 모든 물은 사막에 닿아 죽는다
여자가 여자에게 145
일중이 아저씨 생각 150
새에 대한 환상 154
H에게─모든 물은 사막에 닿아 죽는다 159
최근의 한 10여 년 172
신비주의적 꿈들 176

시인의 말 183
개정판 시인의 말 187


『어떤 나무들은』

시인의 말 4

개정판 시인의 말 7

1994년 8월
1994년 8월 28일 일요일 15
1994년 8월 29일 월요일 22
1994년 8월 30일 화요일 26
1994년 8월 31일 수요일 30

1994년 9월
1994년 9월 1일 목요일 32
1994년 9월 2일 금요일 35
1994년 9월 3일 토요일 37
1994년 9월 4일 일요일 41
1994년 9월 5일 월요일 43
1994년 9월 6일 화요일 46
1994년 9월 7일 수요일 50
1994년 9월 9일 금요일 53
1994년 9월 10일 토요일 56
1994년 9월 11일 일요일 61
1994년 9월 12일 월요일 66
1994년 9월 13일 화요일 67
1994년 9월 14일 수요일 71
1994년 9월 15일 목요일 75
1994년 9월 16일 금요일 80
1994년 9월 17일 토요일 83
1994년 9월 18일 일요일 88
1994년 9월 20일 화요일 90
1994년 9월 21일 수요일 92
1994년 9월 22일 목요일 96
1994년 9월 23일 금요일 100
1994년 9월 24일 토요일 105
1994년 9월 25일 일요일 107
1994년 9월 27일 화요일 109
1994년 9월 28일 수요일 112
1994년 9월 29일 목요일 114
1994년 9월 30일 금요일 117

1994년 10월
1994년 10월 1일 토요일 120
1994년 10월 3일 월요일 124
1994년 10월 4일 화요일 127
1994년 10월 5일 수요일 133
1994년 10월 7일 금요일 137
1994년 10월 8일 토요일 140
1994년 10월 9일 일요일 147
1994년 10월 10일 월요일 150
1994년 10월 12일 수요일 152
1994년 10월 13일 목요일 154
1994년 10월 14일 금요일 157
1994년 10월 15일 토요일 160
1994년 10월 17일 월요일 163
1994년 10월 18일 화요일 167
1994년 10월 19일 수요일 169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170
1994년 10월 22일 토요일 173
1994년 10월 24일 월요일 175
1994년 10월 27일 목요일 177
1994년 10월 28일 금요일 182
1994년 10월 29일 토요일 184
1994년 10월 30일 일요일 185

1994년 11월
1994년 11월 1일 화요일 189
1994년 11월 2일 수요일 193
1994년 11월 3일 목요일 198
1994년 11월 4일 금요일 201
1994년 11월 5일 토요일 207
1994년 11월 6일 일요일 210
1994년 11월 7일 월요일 217
1994년 11월 8일 화요일 227
1994년 11월 9일 수요일 235
1994년 11월 10일 목요일 236
1994년 11월 11일 금요일 240
1994년 11월 12일 토요일 248
1994년 11월 13일 일요일 249
1994년 11월 14일 월요일 252
1994년 11월 15일 화요일 254
1994년 11월 16일 수요일 262
1994년 11월 17일 목요일 268
1994년 11월 18일 금요일 275
1994년 11월 19일 토요일 280
1994년 11월 20일 일요일 284
1994년 11월 21일 월요일 287
1994년 11월 22일 화요일 290
1994년 11월 24일 목요일 292
1994년 11월 25일 금요일 294
1994년 11월 26일 토요일 296
1994년 11월 27일 일요일 302

1994년 12월
1994년 12월 2일 금요일 307
1994년 12월 4일 일요일 310
1994년 12월 5일 월요일 315
1994년 12월 6일 화요일 320
1994년 12월 7일 수요일 323
1994년 12월 8일 목요일 328
1994년 12월 9일 금요일 332
1994년 12월 10일 토요일 336
1994년 12월 11일 일요일 344
1994년 12월 12일 월요일 349
1994년 12월 13일 화요일 352
1994년 12월 14일 수요일 355
1994년 12월 15일 목요일 361
1994년 12월 16일 금요일 368
1994년 12월 20일 화요일 372
1994년 12월 23일 금요일 379
1994년 12월 24일 토요일 382
1994년 12월 30일 금요일 383

1995년 1월
1995년 1월 5일 목요일 385
1995년 1월 6일 금요일 387
1995년 1월 8일 일요일 391
1995년 1월 9일 월요일 393
1995년 1월 10일 화요일 397
1995년 1월 11일 수요일 399
1995년 1월 14일 토요일 405
1995년 1월 16일 월요일 407

저자 소개 1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자기만의 시언어를 확립하며, 기존의 문학적 형식과 관념을 보란 듯이 위반하고 온몸으로 시대의 상처와 고통을 호소해온 시인이다. 1952년 충청남도 연기에서 태어났다. 수도여고와 고려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했으며, 계간「문학과 지성」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최승자는 현대 시인으로는 드문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박노해, 황지우, 이성복 등과 함께 시의 시대 80년대가 배출한 스타 시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2001년 이후 투병을 하면서 시작 활동을 한동안 중단했으며 2006년 이후로 요양하다 2010년, 등단 30주년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자기만의 시언어를 확립하며, 기존의 문학적 형식과 관념을 보란 듯이 위반하고 온몸으로 시대의 상처와 고통을 호소해온 시인이다. 1952년 충청남도 연기에서 태어났다. 수도여고와 고려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했으며, 계간「문학과 지성」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최승자는 현대 시인으로는 드문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박노해, 황지우, 이성복 등과 함께 시의 시대 80년대가 배출한 스타 시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2001년 이후 투병을 하면서 시작 활동을 한동안 중단했으며 2006년 이후로 요양하다 2010년, 등단 30주년 되는 해에 11년의 공백을 깨고 신작을 발표하였다.

저서로 시집『이 시대의 사랑』,『즐거운 일기』,『기억의 집』,『내 무덤 푸르고』,『연인들』등이 있고, 역서로『굶기의 예술』,『상징의 비밀』,『자스민』,『침묵의 세계』,『죽음의 엘레지』,『워터멜론 슈가에서』,『혼자 산다는 것』『쓸쓸해서 머나먼』『빈 배처럼 텅 비어』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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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600쪽 | 130*195mm

책 속으로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그러나 나는 이제 이 자리를 뜨고 싶다. 눈길을 돌리고서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 너무 오랫동안 주저앉아 있어서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펴고서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고 싶다. 움직이고 싶다. 다른 많은 것을 보고 싶다. 내가 아닌 다른 아름다운 것들을. 썩은 웅덩이로부터 눈을 들어올리기만 하면 저 들판과 길에 나도는 수많은 아름다운 것이 내 눈의 수정체 속으로 헤엄쳐 들어오고 어느 순간 나는 엉덩이를 탈탈 털고 일어나 걷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순간을 꿈꾸고 있다. 내가 첫발을 떼어놓는 그 순간을.
그러니까, 언제나 내 꿈을 짓밟아오기만 한 인생아, 마지막으로 한판만 재미있게 잘 풀려줄래? 그러면 그다음에 내가 고이 죽어줄게. 꽃처럼 피어나는 모가지는 아니지만, 고이 꺾어 네 발밑에 바칠게. 이번에도 네가 잘 풀려주지 않으면 도중에 내가 먼저 깽판 쳐버릴 거야. 신발짝을 벗어서 네 면상을 딱 때려줄 거야. 그리고 절대로 고이 죽어주지 않을 거야.
--- p.26~27, 「시를 뭐하러 쓰냐고?」 중에서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 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 인간은 강하되, 그러나 그 삶을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아주 떠나지는 못한 채, 그러나 수시로 떠나 수시로 되돌아오는 것일진대,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한번 물으면 어느새 비가 내리고,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두 번 물으면 어느새 눈이 내리고, 그사이로 빠르게 혹은 느릿느릿 캘린더가 한 장씩 넘어가버리고, 그 지나간 괴로움의 혹은 무기력의 세월 위에 작은 조각배 하나 띄워놓고 보면, 사랑인가, 작은 회한들인가, 벌써 잎 다 떨어진 헐벗은 나뭇가지들이 유리창을 두드리고, 한 해가 이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러나 그 헐벗음 속에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살아 있다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 차례일지도 모른다.
--- p.59~60, 「떠나면서 되돌아오면서」 중에서

시에 대한,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한 믿음과 환상은 애초부터 없었다 하더라도, 그러나 최소한 데뷔 시기를 전후하여 시를 쓰고 싶다는 열정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갖고 있었던 한 시인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시에 대한 신앙도 믿음도 열정도 없고, 시를 쓰고 나면 다시 읽어보기도 싫고, 시를 쓰고 나서도 마뜩지가 않고, 그러면서도 결국은 뭔가 미진하고 뭔가 아쉬워서 뭉기적뭉기적 시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시인, 메마른 불모의 시인. 그런 시인은 시인으로서 존재할 가치도, 존재할 자격도 없다는 비난의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 듯도 하다. 그런데도 시를 쓰는 한 나는 시인인 것일까? 어쩌면 내 시를 읽는 독자들 중에서, “무슨 시가 이래? 맛있는 살코기는 하나도 달려 있지 않고 먹을 수도 없는 뼈다귀만 남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영양분이 담뿍 들어 있는 맛있는 살코기를 제공하지 못하는 시인. 살점 하나 붙어 있지 않고 먹을 수도 없는 불모의 딱딱한 뼈다귀만을 내놓는 시인(혹시나 그 뼈다귀를 푹푹 고아 맛있는 국물이라도 우러나온다면. 제발 그럴 수라도 있다면).
--- p.127~128,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중에서

한번 생긴 공포는 무수한 세포분열을 하며 뚱뚱하게 살찌고, 그렇게 해서 우리 존재의 바탕에 자리잡은 공포는 우리의 저 깊은 안쪽에서 보이지 않게 우리를 조종하면서 우리 삶을 이끌어가고, 그 궁극적인 목적지는 죽음이며, 거기까지 가는 동안 많은 죽음의 형식을 실험하고 시연하지. 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공포가 꽃수레에 올라타고 자신의 목적지인 죽음에 이르는 과정인지도 몰라. 공포가 자신의 파괴성을 못 이겨 죽음으로써 자신을 파괴해버리기 때문이지. 한번 생겨나 확장하면서 힘을 얻은 감정은 그 자신의 힘과 무게를 주체 못해 바깥으로 쏟아져나올 수밖에 없어. 그렇게 바깥으로 쏟아져나옴으로써 생기는 갖가지 사건과 관계와 상황으로 이루어진 감옥 같은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condition’의 정체일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마지막, 최후의 ‘condition’이 한 사건으로서의 죽음일 수도 있다. 아마도 나는 공포와 더불어 그것의 목적지인 죽음에 대해서 얼마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그 공포가 나를 잡아먹기 전에/지레 질려 먼저 앙앙대고 위협하는 쥐였다./어쩌면 그 때문에 세계가 나를 잡아먹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지레 질려 먼저 앙앙대고 위협하면서, 끊임없이 죽음과 불행과 절망을 토해내던 쥐, 그 쥐의 울음, 그것이 내 시들이었을까?
--- p.162~163, 「H에게─모든 물은 사막에 닿아 죽는다」 중에서

나를 병에 지치게 한 것들에서 손을 뗀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시는 그대로 쓸 것이고, 그러나 문학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나는 이미 옛날의 내가 아니어서 다른 꿈을 슬쩍 품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시원성始原性에 젖줄을 대고 있는 푸근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이상하고 슬픈 설화 형식의 아주 짧은 소설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 p.175, 「최근의 한 10여 년」 중에서


『어떤 나무들은』

시 창작자로서보다는 시 번역자로서의 즐거움이 더 컸다. 어쨌거나 내가 번역한 시가 그들에게 얼마큼 통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그리고 그들이 나이든 한국 여성 시인들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언젠가 김혜순에게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원로 여성 시인이 무슨 상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추천을 위해서 김혜순과 내 시집을 어렵사리 구해 읽었는데, 김혜순의 시집을 펼쳐보니 첫 페이지부터 이놈 저놈 소리가 나오고 최승자의 시집을 펼쳐보니 첫 페이지부터 웬 배설물(그 시인은 차마 똥이라는 말도 발음하지 못하고 배설물이라는 단어로 대치했다) 타령이 나오는가, 그래서 자기 낯이 뜨거워져서 추천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나누면서 김혜순과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더랬다. 베릴은 굉장히 늙어 보이긴 하지만 어딘가 성격 강한 배우 같은 인상을 준다. 그건 그녀의 악센트가 아주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의 차림새가 언제나 허름한, 그야말로 한국으로 치면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는 할머니 같은 차림새임에도 불구하고 형형한 눈빛과 쉬지 않고 퍼부어대는 얘기들, 그런 것들이 한데 뒤엉켜 굉장한 에너지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그녀는 첫번째 남편과는 사별했고 두번째 남편과는 이혼했고 지금 함께 사는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고 그냥 친구처럼 함께 산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냥 페미니스트’라고 했다. 그냥 페미니스트라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되. 그녀는 또 그 남자의 중풍 걸린 어머니를 돌보아주고 그 대가로 그에게서 돈을 받는다고 했다. 그건 어쨌거나 노동이니까. 그렇게 늙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활력을 갖고 있다는 게 부럽다. 나도 저 나이에 저런 활력과 생기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 pp.39~40

내 원고 읽기가 끝나고 질문과 대답 시간에 클라크가 내게 특별히 무엇을 위해서, 무슨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쓰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쓰지는 않는다, 내가 쓴 것이 무슨 ‘이즘’이나 무슨 이데올로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좋은 이즘이나 이데올로기라면 내 시를 이용하는 것은 양해할 수 있지만 내게 무슨 이즘이나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쓰라고 한다면 나는 쓰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대뜸 네덜란드의 아스트리드가 시를 쓰고 출판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인데 그렇다면 너는 뭐 때문에 시를 써서 출판하느냐고 따졌다. 한국에서도 너무나 자주,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본 질문이다. 그러니 내 대답은 즉각적일 수밖에.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라는 데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것이 ‘physical communication’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에 알맞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피지컬이라는 단어가 느닷없이 튀어나왔는데 어디서나 반박하고 물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아스트리드가 금세 아, 알겠다, 질문을 철회하겠다라고 말했다. 아스트리드는 어디서나 반박을 위한 반박, 반대를 위한 반대를 좋아한다. 저번에도 쇼나가 화가 나서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메이플라워 8층 코먼 룸에서 작가들끼리 무슨 문제를 갖고서 토론을 벌였는데 거기서 아스트리드가 쇼나의 견해에 집요하게 공격을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때 아스트리드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그런 거니까 신경쓸 것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반박이랄까 반대가 신선한 것이냐 하면 너무나 많이 들어온 소리였다. 그 점이 그녀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더 강하게 심어주는 것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내 시집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첫번째 시집은 몇년(1981년)에 나왔고 지금 21쇄를 찍었으며, 라고 말할 때 거의 모든 사람이 탄성을 질렀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시집이라는 게 초판이 다 팔리면 잘 팔리는 거라니까 놀랄 수밖에 없다. 한국 작가들에게 자기 시집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몇 쇄를 찍었는지 이야기하라는 말을 전해주어야겠다. 우리나라야 워낙 시집이 잘 팔리니 어느 시인의 시집이든 그 정도는 팔릴 수 있으니까. 나중에 내가 우리나라에서는 문자 그대로 밀리언셀러 시집도 심심찮게 나온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더욱 놀라는 것 같았다. 그러자 클라크가 자기가 서울에 갔을 때의 체험을 이야기했다. 아마 교보문고에 갔던 모양이다. 무슨 책방이 어찌나 큰지 완전히 지하철만큼 큰데다 책을 사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부딪치면서 다녀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사람들이 진짜 놀라는 눈치였다. 그건 인구가 지나치게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텐데 말이다

--- pp.72~74

출판사 리뷰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비어서 빛나는 자리,
최승자의 40여 년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는 ‘오랜 묵힘’을 지난 최승자 시인의 기별이다. 출간 소식으로는 2016년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 이후 5년 만이다. 지난 시집과 전작 『물 위에 씌어진』 사이에도 5년의 침묵이 있었다. 다섯번째와 여섯번째 시집의 간격은 11년으로 더 길었다. 좀처럼 자주 기별하지 않는 시인. “내가 살아 있다는 것,/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일찍이 나는」) 말했던 시인.

4부로 추가된 근작 중에는 아예 「최근의 한 10여 년」이라 머리를 달았다. 어떠한 욕심도 없으므로 꾸밈은 더 없는 근황이다. 1998년 시집 『연인들』을 펴내던 중 발병한 조현병으로 정신과 병동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서양 점성술과 신비 체계, 지나서는 노자와 장자 사이 “어떤 비밀스러운 다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그러나 해체는커녕 구조를 보는 것조차 허락해주지 않는 그 다리 위에서 “어린아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고, 시인은 무심히 말한다. 나를 병에 지치게 한 것들에서 이제 그만 손을 떼야겠다고, 다만 ‘letting go’ 해버렸다고.

그리하여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물으면 시인의 대답은 그저 무심하다. “문학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나”, 그러므로 “시는 그대로 쓸 것”이라고. 이미 예전의 자신과는 돌이킬 수 없이 달라졌다고 말하지만 그 돌아올 곳이 문학임에는 의심이 없다. “어떤 시원성(始原性)에 젖줄을 대고 있는 푸근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이상하고 슬픈 설화 형식의 아주 짧은 소설들을 써보고 싶다”는 비전을 슬며시 내비치기도 했다. 다시금 문학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다짐으로, “그래서 요즈음은 문학책들도 부지런히 읽고 있다”고, 무심하여 의심 없는 맑은 언어로(「신비주의적 꿈들」).
그렇게 ‘최근의 한 10여 년’을 돌아본 때로부터 다시 10여 년이 흘렀다. 그사이 2014년에 출판사가 시인에게 이 산문집의 재출간을 요청했고 2019년 허락을 받았다. 2021년 11월 11일, 재출간을 앞두고 병원으로 거처를 옮긴 시인에게 새 ‘시인의 말’을 받아적었다. 수화기 너머 또박또박, 섞박지용 순무 써는 듯한 큼지막한 발음이었다.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 「개정판 시인의 말」 전문


잡균 섞인 절망보다는
언제나 순도 높은 희망을

이 책을 말할 때, 아니 최승자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죽음’일 것이다. 시인이 문득 과거를 돌아볼 때 죽음은 태연히 거기에 있다. 아예 책 속에 「죽음에 대하여」라는 글도 있다. 외할머니댁 머슴 일중이 아저씨의 ‘스스로 나선’ 죽음, 첫 하숙집 주인아저씨의 ‘농담 같은’ 죽음, 슬픔 가운데 ‘위안이 된’ 할머니의 죽음.

그러나 그리하여, 최승자는 죽음을 넘어, 죽음의 다음으로, ‘죽음의 죽음’에까지 나아간다. 그저 덤덤히 “죽음은 깊고 짙고 강렬하며 무르익은 관능과 연결된 것”이었다 고백하며, 그것이 “내가 나의 삶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 곧이 반성하는 것이다. 마침내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관능이라 믿었던 ‘죽음’의 실체마저 죽임을 당할 때, 시인은 자신의 네번째 시집 『내 무덤, 푸르고』의 제목을 다르게 읽어본다. “하긴, 그것은 내 죽음을 담은 무덤이었는지도 모르겠다.”(「H에게」)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했다”던 시인. 그러나 최승자는 끝내 절망으로, 죽음으로 들어가는 대신 번번이 삶으로 돌아나온다. 홀연히 삶이라는 루머 속으로 되돌아온다. “어차피 한판 놀러 나왔으니까, 신명 풀리는 대로 놀 수밖에” 없다고(「산다는 이 일」) 선언하며, 한판 인생 재미있게 풀려주지 않을 바에야 먼저 “깽판” 쳐버리겠다고, 절대로 고이 죽어주지 않겠노라고(「시를 뭐하러 쓰냐고?」) 다짐하며.

시인은 죽음 쪽으로 꺾인 것이 아니라 죽음을 직시하여 너머를 본다. 거기서 성큼 더 나아가 우주와 신비, 정신의 세계로 훌쩍 떠나버린 듯도 보인다. “세계를 관념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차라리 근원적으로 이해하려는”(황현산) 시도라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이 그를 절망하게 하더라도, 시인이 끝까지 붙잡고 있는 ‘오직 그것’이란 결국 만질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이곳, 다시 삶의 자리다. “눈 가린 절망과 눈 가린 희망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습성”으로, 삶과 맞서면서도 삶을 아주 벗지는 않고, ‘떠나면서 되돌아오면서’ 단단해지는 삶의 기록을 써내려갔다.

인간은 강하되, 그러나 그 삶을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아주 떠나지는 못한 채, 그러나 수시로 떠나 수시로 되돌아오는 것일진대,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한번 물으면 어느새 비가 내리고,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두 번 물으면 어느새 눈이 내리고, 그사이로 빠르게 혹은 느릿느릿 캘린더가 한 장씩 넘어가버리고, 그 지나간 괴로움의 혹은 무기력의 세월 위에 작은 조각배 하나 띄워놓고 보면, 사랑인가, 작은 회한들인가, 벌써 잎 다 떨어진 헐벗은 나뭇가지들이 유리창을 두드리고, 한 해가 이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러나 그 헐벗음 속에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살아 있다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 차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시인이 말했듯 결국,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발음해야만 한다’.
─ 「떠나면서 되돌아오면서」 중에서


나는 지금 그 순간을 꿈꾸고 있다.
내가 첫발을 떼어놓는 그 순간을.

시원에의 그리움으로 “시원병(始源病)”을 앓고 있다는 시인(『물 위에 씌어진』 시인의 말).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여성으로서 출생신고를 한, 우리 시대의 첫번째 시인”(김소연). 그는 시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고, 문 뒤의 문을, 문 너머의 문을 거듭 열어젖히며 나아왔다. 살아짐으로 살아남았고, 그리하여 우리에게 사라지지 않을 이름이 되었다. 그 이름대로, “최승자가 어디에 있건 그는 이기는 자이다. 그는 한 번도 항복한 적이 없다”(황현산).

25세에 자신이 썼던 “다시 나는 젊음이라는 열차를 타려 한다”라는 문장을 마주하고 웃음이 나올 뿐이라던 38세의 시인. 다시 32년 만에 돌아보게 된 자신의 말을 앞에 두고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는 70세의 시인. “웃을 일인가” 스스로 물으며 “그만 쓰자” 스스로 답하는 시인. “끝”, 그렇게 말하고 이렇게 마침표를 두는, 한 게으른 시인. 최승자라는, 부단히도 게으른 한 시인의 이야기.

시에 대한 신앙도 믿음도 열정도 없고, 시를 쓰고 나면 다시 읽어보기도 싫고, 시를 쓰고 나서도 마뜩지가 않고, 그러면서도 결국은 뭔가 미진하고 뭔가 아쉬워서 뭉기적뭉기적 시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시인, 메마른 불모의 시인. (……)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게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보자면 나는 낭만주의자이다. 그러나 그 단 한 가지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것임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믿지 않는 것들 속으로 천연덕스럽게, 어기적거리며 되돌아온다.
─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중에서


● 개정판 시인의 말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2021년 11월 11일
최승자


『어떤 나무들은』

최승자 시인의 두번째 산문집 『어떤 나무들은』을 펴낸다. 1995년에 출간된 책이었으니 26년 만에 갈아입는 새 옷이다. 미국 아이오와주 아이오와시티 아이오와대학에서 주최하는 인터내셔널 라이팅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어 첫 외국 여행을 떠난 시인이 1994년 8월 26일 일요일부터 1995년 1월 16일 월요일까지의 여정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낸 일기 형식의 산문이다.

첫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가 비장미를 볼모로 삶과 죽음의 널 끝에 결국 ‘시’를 태운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러스함으로 무장한 시인의 일상, 그 소소하면서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최승자라는 사람의 문학적 본령이라 하겠다.

일찍이 시인은 “일기라는 형식으로 쓰인 이 주체할 수 없이 풀어진 글에서 독자들은 아마도 ‘밥 먹고 잤다’밖에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라며 염려했다지만 품위와 격식과 규격을 싫어하는 시인이 하루하루 있는 그대로의 제 삶을 고스란히 옮겨 적어놓은 이 글들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건 아마도 진짜배기 ‘살아 있음’의 현장일 거다. 우리들 누군들 하루하루 흔들리지 않겠는가. 그 ‘와중’의 흔들림을 가감 없이 고스란히 기록한다는 일, “어떤 나무들은 바다의 소금기를 그리워하여 그 바다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바다 쪽으로 구부러져 자라난다”라 했듯 “이 일기에 나오는 필경은 “변화해가는 나, 새로 심어진 내 새로운 의식의 씨앗들”의 현현임이 아닐 수 없다. “꿈틀거리며 새로 태어나려” 애쓰는 내 자신의 모습만큼 건강한 하루의 ‘살이’는 없을 테니까, 그것이 겹겹으로 쌓인 이 두툼한 페이지야말로 내 ‘살이’를 흔들림 없이 비춰줄 만한 전신거울이라는 안도에서 한 발도 뒤로 물러서게 하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이 책은 재밌다. 너그럽고 소탈하면서도 정확한 유머감각을 구사하는 시인 최승자의 인간적 면모가 식탁 위 후추나 소금처럼 당연하게 놓여 있음에 혹여 심심할 수 있는 타지와 으레 낯설 수 있는 타인과의 관계 속 적당하게 향을 돋우고 간을 맞춘다. 가림이나 까탈보다는 받아들임과 뒤섞임의 성정이 빛을 발하는 건 아마도 문학이라는, 특히 시라는 중심에서 생활이 반복되고 대화가 이어지는 까닭일 텐데 예서 최승자 문학의 연대기에 있어 이 책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된다. 시인의 삶인 동시에 번역자의 삶을 꾸려온 시인이기에 제 시 번역도 스스로 행해봄으로 “시 창작자로서보다는 시 번역자로서의 즐거움”을 더 크게 느꼈다 한 고백을 들어보게도 되어서다.

울적하고 외로운 감정에 수시로 빠지기도 한 시인이었다지만, 그는 이런 시인의 이런 책 구절에서 힘을 얻어 저를 일으키곤 하였다. 어쩌면 그를 버티게 하고 살게 한 것이 시이며 책이었다는 생각.

오늘은 메이플라워 맞은편 잔디밭을 가로질러 아이오와 강변으로 갔다. 잔디밭에 달맞이꽃들이 피어 있었다. 강변 벤치에 누워 오리들이 떠 있는 강물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건 로드 맥퀸이라는 싱어송라이터가 쓴 시집 중에 나오는 구절로 대학교 1학년 때 그의 시집을 읽다가 기억해둔 것인데, 이상하게도 몇십 년이 지나면서 그의 다른 시들은 다 잊어버렸으면서도 그 구절만큼은 잊히지 않고 내 기억의 서랍 속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글쎄 오늘은 좀 외로웠나, 아니면 나의 앞날이 불안해졌나. 그 구절은 이렇다. “Lonely rivers going to the sea givethemselves to many brooks.” 이건 내가 슬며시 외로운 생각이 들 때마다 나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다시 되살려보곤 하는 구절이다. “바다로 가는 외로운 강물은 많은 여울에게 저를 내준다.”
-p49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생의 효모를 닮았다 싶다. 필요할 때에 간절한 이들을 위해 저를 부풀려 비단 문학과 시의 허기뿐 아니라 삶과 사람 사이의 허기란 게 있다면 그걸 달래주는 역할을 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사랑’을 정의할 때 가장 근접한 풀이의 말이 ‘호기심’ 아니겠나. 최승자라는 문인이 어떤 시인이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이들이라면 무조건 이 책을 통과하십사 감히 말씀을 드려보는 바이다.


● 개정판 시인의 말

청춘이 지난 지 하많은 세월이 흘렀다.
문득 소식이 와서 묻혀 있던 책이
지금 살아나고 있다.
그것을 나는 지금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아이오와는
좋아했었다

2021년 11월 15일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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