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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4
개정판 시인의 말 7 1994년 8월 1994년 8월 28일 일요일 15 1994년 8월 29일 월요일 22 1994년 8월 30일 화요일 26 1994년 8월 31일 수요일 30 1994년 9월 1994년 9월 1일 목요일 32 1994년 9월 2일 금요일 35 1994년 9월 3일 토요일 37 1994년 9월 4일 일요일 41 1994년 9월 5일 월요일 43 1994년 9월 6일 화요일 46 1994년 9월 7일 수요일 50 1994년 9월 9일 금요일 53 1994년 9월 10일 토요일 56 1994년 9월 11일 일요일 61 1994년 9월 12일 월요일 66 1994년 9월 13일 화요일 67 1994년 9월 14일 수요일 71 1994년 9월 15일 목요일 75 1994년 9월 16일 금요일 80 1994년 9월 17일 토요일 83 1994년 9월 18일 일요일 88 1994년 9월 20일 화요일 90 1994년 9월 21일 수요일 92 1994년 9월 22일 목요일 96 1994년 9월 23일 금요일 100 1994년 9월 24일 토요일 105 1994년 9월 25일 일요일 107 1994년 9월 27일 화요일 109 1994년 9월 28일 수요일 112 1994년 9월 29일 목요일 114 1994년 9월 30일 금요일 117 1994년 10월 1994년 10월 1일 토요일 120 1994년 10월 3일 월요일 124 1994년 10월 4일 화요일 127 1994년 10월 5일 수요일 133 1994년 10월 7일 금요일 137 1994년 10월 8일 토요일 140 1994년 10월 9일 일요일 147 1994년 10월 10일 월요일 150 1994년 10월 12일 수요일 152 1994년 10월 13일 목요일 154 1994년 10월 14일 금요일 157 1994년 10월 15일 토요일 160 1994년 10월 17일 월요일 163 1994년 10월 18일 화요일 167 1994년 10월 19일 수요일 169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170 1994년 10월 22일 토요일 173 1994년 10월 24일 월요일 175 1994년 10월 27일 목요일 177 1994년 10월 28일 금요일 182 1994년 10월 29일 토요일 184 1994년 10월 30일 일요일 185 1994년 11월 1994년 11월 1일 화요일 189 1994년 11월 2일 수요일 193 1994년 11월 3일 목요일 198 1994년 11월 4일 금요일 201 1994년 11월 5일 토요일 207 1994년 11월 6일 일요일 210 1994년 11월 7일 월요일 217 1994년 11월 8일 화요일 227 1994년 11월 9일 수요일 235 1994년 11월 10일 목요일 236 1994년 11월 11일 금요일 240 1994년 11월 12일 토요일 248 1994년 11월 13일 일요일 249 1994년 11월 14일 월요일 252 1994년 11월 15일 화요일 254 1994년 11월 16일 수요일 262 1994년 11월 17일 목요일 268 1994년 11월 18일 금요일 275 1994년 11월 19일 토요일 280 1994년 11월 20일 일요일 284 1994년 11월 21일 월요일 287 1994년 11월 22일 화요일 290 1994년 11월 24일 목요일 292 1994년 11월 25일 금요일 294 1994년 11월 26일 토요일 296 1994년 11월 27일 일요일 302 1994년 12월 1994년 12월 2일 금요일 307 1994년 12월 4일 일요일 310 1994년 12월 5일 월요일 315 1994년 12월 6일 화요일 320 1994년 12월 7일 수요일 323 1994년 12월 8일 목요일 328 1994년 12월 9일 금요일 332 1994년 12월 10일 토요일 336 1994년 12월 11일 일요일 344 1994년 12월 12일 월요일 349 1994년 12월 13일 화요일 352 1994년 12월 14일 수요일 355 1994년 12월 15일 목요일 361 1994년 12월 16일 금요일 368 1994년 12월 20일 화요일 372 1994년 12월 23일 금요일 379 1994년 12월 24일 토요일 382 1994년 12월 30일 금요일 383 1995년 1월 1995년 1월 5일 목요일 385 1995년 1월 6일 금요일 387 1995년 1월 8일 일요일 391 1995년 1월 9일 월요일 393 1995년 1월 10일 화요일 397 1995년 1월 11일 수요일 399 1995년 1월 14일 토요일 405 1995년 1월 16일 월요일 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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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창작자로서보다는 시 번역자로서의 즐거움이 더 컸다. 어쨌거나 내가 번역한 시가 그들에게 얼마큼 통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그리고 그들이 나이든 한국 여성 시인들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언젠가 김혜순에게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원로 여성 시인이 무슨 상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추천을 위해서 김혜순과 내 시집을 어렵사리 구해 읽었는데, 김혜순의 시집을 펼쳐보니 첫 페이지부터 이놈 저놈 소리가 나오고 최승자의 시집을 펼쳐보니 첫 페이지부터 웬 배설물(그 시인은 차마 똥이라는 말도 발음하지 못하고 배설물이라는 단어로 대치했다) 타령이 나오는가, 그래서 자기 낯이 뜨거워져서 추천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나누면서 김혜순과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더랬다. 베릴은 굉장히 늙어 보이긴 하지만 어딘가 성격 강한 배우 같은 인상을 준다. 그건 그녀의 악센트가 아주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녀의 차림새가 언제나 허름한, 그야말로 한국으로 치면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는 할머니 같은 차림새임에도 불구하고 형형한 눈빛과 쉬지 않고 퍼부어대는 얘기들, 그런 것들이 한데 뒤엉켜 굉장한 에너지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그녀는 첫번째 남편과는 사별했고 두번째 남편과는 이혼했고 지금 함께 사는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고 그냥 친구처럼 함께 산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냥 페미니스트’라고 했다. 그냥 페미니스트라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되. 그녀는 또 그 남자의 중풍 걸린 어머니를 돌보아주고 그 대가로 그에게서 돈을 받는다고 했다. 그건 어쨌거나 노동이니까. 그렇게 늙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활력을 갖고 있다는 게 부럽다. 나도 저 나이에 저런 활력과 생기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 p.39~40, 「1994년 9월 3일 토요일」 중에서 내 원고 읽기가 끝나고 질문과 대답 시간에 클라크가 내게 특별히 무엇을 위해서, 무슨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쓰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쓰지는 않는다, 내가 쓴 것이 무슨 ‘이즘’이나 무슨 이데올로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좋은 이즘이나 이데올로기라면 내 시를 이용하는 것은 양해할 수 있지만 내게 무슨 이즘이나 이데올로기를 위해서 쓰라고 한다면 나는 쓰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대뜸 네덜란드의 아스트리드가 시를 쓰고 출판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인데 그렇다면 너는 뭐 때문에 시를 써서 출판하느냐고 따졌다. 한국에서도 너무나 자주,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본 질문이다. 그러니 내 대답은 즉각적일 수밖에.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라는 데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것이 ‘physical communication’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에 알맞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피지컬이라는 단어가 느닷없이 튀어나왔는데 어디서나 반박하고 물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아스트리드가 금세 아, 알겠다, 질문을 철회하겠다라고 말했다. 아스트리드는 어디서나 반박을 위한 반박, 반대를 위한 반대를 좋아한다. 저번에도 쇼나가 화가 나서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메이플라워 8층 코먼 룸에서 작가들끼리 무슨 문제를 갖고서 토론을 벌였는데 거기서 아스트리드가 쇼나의 견해에 집요하게 공격을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때 아스트리드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그런 거니까 신경쓸 것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반박이랄까 반대가 신선한 것이냐 하면 너무나 많이 들어온 소리였다. 그 점이 그녀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더 강하게 심어주는 것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내 시집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첫번째 시집은 몇년(1981년)에 나왔고 지금 21쇄를 찍었으며, 라고 말할 때 거의 모든 사람이 탄성을 질렀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시집이라는 게 초판이 다 팔리면 잘 팔리는 거라니까 놀랄 수밖에 없다. 한국 작가들에게 자기 시집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몇 쇄를 찍었는지 이야기하라는 말을 전해주어야겠다. 우리나라야 워낙 시집이 잘 팔리니 어느 시인의 시집이든 그 정도는 팔릴 수 있으니까. 나중에 내가 우리나라에서는 문자 그대로 밀리언셀러 시집도 심심찮게 나온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더욱 놀라는 것 같았다. 그러자 클라크가 자기가 서울에 갔을 때의 체험을 이야기했다. 아마 교보문고에 갔던 모양이다. 무슨 책방이 어찌나 큰지 완전히 지하철만큼 큰데다 책을 사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부딪치면서 다녀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사람들이 진짜 놀라는 눈치였다. 그건 인구가 지나치게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텐데 말이다 --- p.72~74, 「1994년 9월 14일 수요일」 중에서 보이가 가방에서 종이를 부스럭부스럭 꺼내더니 내게 시를 읽어주었다. 전에 수영하러 코럴빌호수에 갔던 날 쓴 시라고 했다. 거기 함께 갔던 모든 사람에 대한 언급이 한 구절씩 나왔다. 그 모든 언급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고, 다만 아미르에 관해서는 보이 역시 그의 섹시한 특성에 주목하고 있었고, 마크에 대해서는 “자연의 수도승 마크”라고 표현했고, 승자에 대해서는 “승자는 행복을 두려워한다”라고 쓰여 있었다는 게 기억날 뿐이다. 내가 보기엔 보이가 행복을 두려워하는(두려워한다기보다는 거부하는) 것 같은데, 바로 그 보이가 나에 대해 그런 말을 하다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도 우거지상을 하고 다니는 건가? 나의 미소 마스크를 다시 한번 윤나게 손질해야겠다. --- p.99, 「1994년 9월 22일 목요일」 중에서 어젯밤 늦게 쇼나가 뉴욕에서 돌아왔다. 얼굴이 반쪽이 되었고 몹시 지친 표정이었다. 며칠 동안인가 혼자 지내다가 그녀가 돌아오니 무척 반가웠다. 철들고 나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었던 터라 사실 공동생활이라는 게 은근히 걱정이 되기까지 했는데 나로서는 아주 성공적으로 적응을 한 셈이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내가 그렇게 반가워할 정도가 된 것을 보면 말이다. 하긴 내 평생에 이렇게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사를 해대면서 사는 이런 생활은 이전에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런 생활에 중독될까 오히려 겁난다(내가 너무도 잘 적응을 하니까). 쇼나는 내가 반가워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반가운지, 으음 키스 키스 하면서 내 턱밑에 키스를 했는데(그 크고 육중한 몸을 굽히고서), 그게 말이다,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지 영화 같은 데서 그런 장면을 볼 땐 쟤네들은 왜 번거롭게 저렇게 인사를 하나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그 키스라는 게 너무도 기분 좋은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답례로 그녀의 볼에 키스하는 일은 하지 못했다. 쇼나는 나라는 사람을 이젠 아주 잘 알게 되었으니까 이해해줄 것이다. 언젠가 그녀와 키스의 종류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인사로 하는 키스 대목에서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보통은 한쪽 뺨에 키스해도 되지만 보통보다 더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양쪽 뺨에 키스한다는 것이다. 그게 더 예절 바르다는 얘기였다. 키스의 스킨십. --- p.194, 「1994년 11월 2일 수요일」 중에서 오늘 파티에서는 나도 처음으로 춤을 추었다. 사람들이 내가 춤을 못 추는 사람인 줄 알고 있다가 열심히 추니까 모두들 깜짝 놀란다. 앰브로즈가 승자 좀 봐, 승자가 제일 잘 춘다라고 말했다. 파티장에 늦게 나타난 마틴이 내가 신나게 춤추는 것을 보고서는 안 찍는 척하면서 사진기를 눌러댄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나가, 마틴 나 여기 있어, 클로즈업해서 찍어라고 말하니까 웃는다. 언젠가 마틴이 춤추러 가자고 해서, 나는 춤 못 춘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마틴은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계속 춤을 추니까 놀랄 수밖에. 피터도 놀랐는지, “You are the one”이라고 하면서 자꾸 중앙으로 떠밀었다. 한참 춤을 추다보니까 다들 나가떨어졌는데 계속 지치지 않고 추는 사람이 헬레나와 나였다. --- p.292~293, 「1994년 11월 24일 목요일」 중에서 나는 언제나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내가 다 늙어서 이제 아무것도 시작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현재가 감옥이라고 생각했고, 미래도 닫힌, 출구 없는 감옥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시간이 감옥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내가 무의식적?집단적으로 프로그램화된, 그렇게 보도록 짜여진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역사, 전통, 계급, 통념, 상식, 권력, 학교가 그렇게 보도록 프로그램화시킨, 그리하여 내 세포들의 유전자와 내 감수성과 내 사고력에 내가 일생토록 그렇게 보고,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프로그램화시킨 것에 충실히 순응했기 때문에(라기보다는 내가 거기에 과잉반응을 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이제 나는 그 프로그램을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나는 더이상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내가 나를 불행하다고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내게 강요되었던 가치관의 정체를 내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런 가치관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나를 불행하다고 보지 않을 때, 내가 현재를, 미래를, 시간을 더이상 감옥으로 보지 않게 될 때 나는 어떤 가능성의 입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제는 거꾸로의 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내 세포가 내 무의식에게 내 무의식이 내 의식에게 상향 전달하는 과정의 반대 과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 내가 분명하게 내 의식으로 의식하게 되었으므로, 나는 내 의식으로 내 무의식에게, 나의 감수성과 나의 사고 방식에게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내 세포들에게 하향 전달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너희들이 느꼈던 게 옳다고,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가라고. 마침내 그것들이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 p.370~371, 「1994년 12월 16일 금요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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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의 두번째 산문집『어떤 나무들은』을 펴낸다. 1995년에 출간된 책이었으니 26년 만에 갈아입는 새 옷이다. 미국 아이오와주 아이오와시티 아이오와대학에서 주최하는 인터내셔널 라이팅 프로그램(IWP)에 참가하게 되어 첫 외국 여행을 떠난 시인이 1994년 8월 26일 일요일부터 1995년 1월 16일 월요일까지의 여정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낸 일기 형식의 산문이다.
첫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가 비장미를 볼모로 삶과 죽음의 널 끝에 결국 ‘시’를 태운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러스함으로 무장한 시인의 일상, 그 소소하면서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최승자라는 사람의 문학적 본령이라 하겠다. 꿈틀거리며 새로 태어나려는 인간 최승자의 ‘살이’ 일찍이 시인은 “일기라는 형식으로 쓰인 이 주체할 수 없이 풀어진 글에서 독자들은 아마도 ‘밥 먹고 잤다’밖에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라며 염려했다지만 품위와 격식과 규격을 싫어하는 시인이 하루하루 있는 그대로의 제 삶을 고스란히 옮겨 적어놓은 이 글들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건 아마도 진짜배기 ‘살아 있음’의 현장일 거다. 우리들 누군들 하루하루 흔들리지 않겠는가. 그 ‘와중’의 흔들림을 가감 없이 고스란히 기록한다는 일. 시인은 이렇게 썼다. “어떤 나무들은 바다의 소금기를 그리워하여 그 바다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바다 쪽으로 구부러져 자라난다”. 그의 첫 산문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두고 죽음을 들여다보고 죽음 속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죽음으로부터 돌아나온 ‘삶’의 자리라 할 때, 『어떤 나무들은』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변화해가는 나, 새로 심어진 내 새로운 의식의 씨앗들”이자 “꿈틀거리며 새로 태어나려” 애쓰는 한 인간의 기록, ‘살이’라 할 것이다. ‘인간 최승자’의 기록이 겹겹으로 쌓인 이 두툼한 페이지야말로 내 ‘살이’를 흔들림 없이 비춰줄 만한 전신거울이니까. 앞선 이의 삶으로 나를 비춰보고 돌아보게 하리라는 안도에서 한 발도 뒤로 물러서게 하지 않으니까. “승자, 너 너무도 행복해보인다. 너 웃는구나.” 무엇보다 이 책은 재밌다. 너그럽고 소탈하면서도 정확한 유머 감각을 구사하는 시인 최승자의 인간적 면모다. 무심한 하루의 기록과 유심한 삶의 고찰 사이사이 태연하고도 신랄한 유머가 식탁 위 후추나 소금처럼 당연하게 놓여 있으니, 혹여 심심할 수 있는 타지의 이야기와 으레 낯설 수 있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적당하게 향을 돋우고 간을 맞춘다. 삶을 채우는 것이 도저한 절망과 허무만은 아닌 까닭에, 치열하게 죽음을 생각하면 삶에도 불씨가 트고 웃음이 피는 까닭에, 우리는 27년 전 시인 최승자가 “웃음이 쿡 난다” 말했을 유머의 순간, 아이오와의 겨울을 한순간 따뜻하게 지폈을 웃음의 순간을 만나게도 된다. 내가 내 시를 읽으면서도 시가 너무 어두운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청중에게 내 시가 좀 어둡지요라고 말했더니 여러 사람이 예스라고 했다. 그런데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한 늙은 노신사는 계속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시가 너무 절망적이어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낭독이 끝나고 질문받는 시간이 되었을 때 바로 그 양반이 내게 “Do you have a hope?”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내 대답인즉슨 절망이란 전도된 희망이다, 당신이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절망할 수 없다였다. 그런 상투적인 말 이외에 뭐라고 대답할 수 있으랴. 그런데 이 사람은 나중에 모든 게 다 끝나서 밖으로 나갈 때에도 나를 보면서 “You must have a hope”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Yes, I have a hope, I have a dream”이라고 대답해주었다. 나중에 레스토랑에서 마크와 리오넬에게 그 얘기를 해주었더니 둘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질문과 응답 시간도 다 끝나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청중 중의 몇 명이 내게 와서 정말로 잘 들었노라고 말해주었다. 리딩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뭐하러 사람들이 그렇게 즐겨 리딩을 할까 생각했는데 바로 이런 맛 때문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_1994년 11월 11일 금요일, 243쪽 자기에게 속아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 가림이나 까탈보다는 받아들임과 뒤섞임의 성정이 빛을 발하는 건 아마도 문학이라는, 특히 시를 중심에 두고서 생활이 반복되고 대화가 이어지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이 책이 최승자의 연대기에서 갖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된다. 시인인 동시에 번역자의 삶을 꾸려온 최승자이기에, 자신의 시 번역도 스스로 행해보며 “시 창작자로서보다는 시 번역자로서의 즐거움”을 더 크게 느꼈다 한 고백을 들어보게도 되어서다. 최승자는 8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면서 20권 이상의 책을 번역한 번역자이기도 했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알프레드 알라베즈의 『자살의 연구』 등 걸출한 저작들이 그의 번역을 거쳤다. 그마저도 무심히 “영어책은 좀 읽고 번역으로 밥 먹고 살았다” 말할 뿐이지만 언어를 다루고 말을 옮기는 일에 진지하지 않았던 적 없으며, 작심하여 세심하고 골몰에 유심하였음 또한 물론이었다. 1994년의 이 미국행이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던 탓에 입말과 회화에는 능숙지 못하고 그 덕에 고생도 고행도 없지 않았으나, 자신의 시를 제 손으로 번역하며 이 타국에서 말로 나누고 말로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언어의 힘이 문화 발전에 갖는 역량,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언어가 견인할 일 등 말의 힘을 가늠하고 한국문학의 과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도 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던 것은 「내게 새를 가르쳐주시겠어요?」였다. 이건 보이한테서도 무지 공박을 당했던 구절이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이해가 안 갈까 하고서 쇼나에게도 물어보니까 쇼나도 좀 이상하다고 대답했다. 그때 마침 마틴이 내 영역 시들을 보고 있던 참이라 그에게 그 구절을 잘 고쳐봐라 했더니, 나중에 그가 돌려준 내 시들 중 그 구절에는 지금 그대로가 완벽하다라는 코멘트가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마틴 한 사람만 그 구절을 좋다고 한 거다. 이 구절을 나는 그대로 “Would you teach me a bird?”라고 번역했는데, 캐럴라인 역시 그 구절이 몹시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about being a bird’ ‘a birdness’ 등 여러 가지 다른 단어들을 제시하면서 고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고치면 이 시는 죽어버린다고 주장했다. (……) 결국 나중에 캐럴라인이 묘책을 내놓았다. 그 묘책이란, “Would you teach me; a bird?”였다. 세미콜론 하나를 집어넣은 것이었는데, 캐럴라인은 자기가 고친 게 흡족스러운지 아주 좋아했다. 나는 번역자의 그런 마음을 안다. 내가 번역하는 사람이니까. 한 구절을 멋있게 번역해놓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_1994년 10월 17일 월요일, 164~165쪽 그 물빛 흔들리는 강가에 다다르고 싶다 네 달이 조금 넘는 이 기록에는 첫 타지살이를 앞둔 최승자의 설렘과 불안부터 다음 생으로 나아가려는 들뜸과 각오가 고루 담겼다. 그 사이를 빼곡히 채운 것은 시이고 문학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이며 사람이다. 26년 만에 새로 펴내는 책에서, 우리는 이전의 최승자와 이후의 최승자를 모두 알고서 안고서, 그의 한때를 만나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 앞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세계의 뿌리를 감각하는 것이 시인의 천명인 듯이, 그의 1994년과 1995년에 이미 시인의 미래가 녹아 있고 나아갈 길이 들어 있는 듯도 하다. 가야 할 길이 이미 당도한 길이어서, 시인은 어떠한 욕망 없이 욕심 없이 꿈꾸듯 흐르듯 내일로 발을 뗀다. 최승자는 “이 욕망의 거리에서, 아무 것도 쌓아둔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는 사람”만이 얻는 “슬픈 어깨”의 주인이면서,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마지막 기대야 할 어깨”(황현산)이기도 하지 않겠나. 흔들리는 오늘과 밀려오는 미래 사이에서 울적하고 외로운 감정에 빠질 때면, 그는 이런 시인의 이런 책 구절에서 힘을 얻어 저를 일으키곤 하였다. 어쩌면 그를 버티게 하고 살게 한 것이 시이며 책이었을 것이므로. 흘러가며 자신이 내어놓고 나누어줄 것 또한 시이며 글일 것이므로. 오늘은 메이플라워 맞은편 잔디밭을 가로질러 아이오와 강변으로 갔다. 잔디밭에 달맞이꽃들이 피어 있었다. 강변 벤치에 누워 오리들이 떠 있는 강물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건 로드 맥퀸이라는 싱어송라이터가 쓴 시집 중에 나오는 구절로 대학교 1학년 때 그의 시집을 읽다가 기억해둔 것인데, 이상하게도 몇십 년이 지나면서 그의 다른 시들은 다 잊어버렸으면서도 그 구절만큼은 잊히지 않고 내 기억의 서랍 속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글쎄 오늘은 좀 외로웠나, 아니면 나의 앞날이 불안해졌나. 그 구절은 이렇다. “Lonely rivers going to the sea give themselves to many brooks.” 이건 내가 슬며시 외로운 생각이 들 때마다 나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다시 되살려보곤 하는 구절이다. “바다로 가는 외로운 강물은 많은 여울에게 저를 내준다.” _1994년 9월 6일 화요일, 49쪽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생의 ‘효모’를 닮았다 싶다. 필요할 때에 간절한 이들을 위해 저를 부풀려 비단 문학과 시의 허기뿐 아니라 삶과 사람 사이의 허기를 달래주는 책이 아닐까 하는. ‘사랑’을 정의할 때 가장 근접한 풀이의 말이 ‘호기심’ 아니겠나. 최승자라는 문인이 어떤 시인이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이들이라면 무조건 이 책을 통과하십사 감히 말씀을 드려보는 바이다. 우리가 최승자를 기억하므로, 우리가 최승자를 기억하기 위하여, 그의 사진을 표지에 담았다. 스스로를 “커피 중독자”라 여겼던 최승자이니까. 바다의 소금기를 그리워하여 그 먼 쪽으로 구부러져 자란다는 나무, “나는 나무다” 말했던 최승자이니까. 엷푸르고 흐린 가운데 시리도록 투명한 아이오와의 하늘, 거기서 시인 자신의 얼굴을 보기도 했을 최승자이니까. 책을 집어든 손으로 한번쯤 살로 닿고 또 만나, 그 살가움 이 살결 같음 느껴도 보면 좋겠다. 우리가 최승자를 기억함에, 시인은 아무런 욕심 없이 욕망 없이 ‘쿡’ 웃을 것이다. 가만히 바라보며 ‘끝’,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투명하게 말할 것이다. 문득 다시 살아나는 이 책의 소식을 들었다고. 그리하여 시를, 삶을, 그리고 아이오와를, 좋아했었다고. ● 개정판 시인의 말 청춘이 지난 지 하많은 세월이 흘렀다. 문득 소식이 와서 묻혀 있던 책이 지금 살아나고 있다. 그것을 나는 지금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아이오와는 좋아했었다 2021년 11월 15일 최승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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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가 아이오와에 남긴 것은 비명과 점성술과 신비였다. 요리를 좋아한 그가 쓰던, 밑이 까맣게 탄 프라이팬과 독서대였다. 그리고 뼈로 만든 악기에서 울려오는 바람소리 같은 시인의 목소리…… 그는 상실과 비애 속에 ‘꿈틀거리며 새로 태어나려고 애쓸 때’ 가장 힘을 준 곳이 아이오와라고 썼다. 뜻밖에도 아이오와는 그에게 최초로 뜨거운 해방의 기억과 사랑을 안겨준 것 같았다. 등 푸른 물고기들처럼 불온하게 파닥거리는 세계 작가들 속에 노출되어 ‘살아 있다는 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며 벌에 쏘인 듯이 따가운 시를 읊던 최승자여! 어서 일어나 우리를 쏘아다오. - 문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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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최승자’라는 이름은 작은 벽보로 기억되어 있다. 대학교 2학년 무렵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신입생들이 문창과 숙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시를 붙여두기로 했는데, 그때 내가 적은 시가 최승자 시인의 「청파동을 기억하는가」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입생들에게는 어지간히 처절한 전망이었겠지만, 나는 문학적 공동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면 그것은 응당 최승자 시인의 시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2015년 여름 아이오와에서 열리는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김민정 시인이 원고 하나를 보내주었는데, 그것이 최승자 시인의 이 책이었다. “돌아다니길 싫어했고 돌아다닐 일도 없었던” 시인은 1994년 여름 처음으로 외국 땅을 밟는다. 아이오와대학에 모인 외국 작가들 틈에서 그들의 너무 빠른 영어를 한 귀로 흘리며 담배를 피우고 강을 거닐며 오리를 보던 시인. 나는 3개월의 체류 기간 동안 혼란스러울 적마다 20여 년 전 같은 장소에서 먼저 당황한 그의 모습을 통해 큰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그의 무심한 위안은 낯선 세계에 홀로 놓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효할 것임을 믿는다. - 김유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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