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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_누가 죽였습니까_7
01_그 몸, 옷 아래 감춰진 그 몸을 원하나이다_9 02_지금 제 마음이 그러합니다_93 03_너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_121 04_성품이 업이라_160 05_너의 새끼손가락_188 06_내 이름을 불러다오_241 07_왜 울새가 죽어야 합니까?_305 08_언젠가 너와 함께하는 꿈을 꾸었다_354 작가의 말_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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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프로메테우스, 이름은 황진이
처음 조선스팀펑크연작선 《기기인 도로》를 함께 쓰기로 했을 때, 성수역 근처의 한 호프집에서 박애진 작가가 쓰고 싶다고 했던 이야기는 ‘황진이’ 이야기였다. 나는 너무 좋다고 박수를 쳤다. 조선 중기에 활동했다던 황진이라는 기표는 박애진 작가가 평생 소설을 쓰면서 꾸준하게 가져온 서사의 고갱이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황진이는 물론 실존 인물이겠으나, 그 자체로 중요한 상징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 태어난 여자라면 황진이라는 기표를 대할 때 복합적인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억압되고 해방된, 성녀이자 창녀인, 모든 한계 속에서 가능한 주체적이었던 사람. 남성 중심적 사회 속에서 지적 존재인 여성이 어떤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지의 모든 것. 자발적으로 기생이 되는 길을 택했다는 이야기부터, 지족선사에 청산리 벽계수까지 수많은 소문으로 둘러싸였던 여자. 어느 국문학과에서건 기생 시조를 다루면 반드시 다룰 수밖에 없는, 그 엄격하던 유교 사회에서 쓴 글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에로티시즘에 관해 논의하게 하는 여자. 그런데 몇 달 후에 박애진 작가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다시 말을 꺼내 왔다. “쓰다 보니까 너무 길어졌어요. 이건 그냥 장편으로 써야 할까 봐요.” 왕성한 창작력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마찬가지로 응원을 보냈다. 《기기인 도로》 속에 있는 〈군자의 길〉은 황진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박애진 작가다운 글이었다. 시스템 속에 갇힌 뛰어난 개인이, 그 온갖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능을 가능한 범주 안에서 펼쳐 보이는, 그래서 결국은 시스템을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초월해버리고 마는 이야기. 박애진 작가가 모두가 기대하는 방식의 속 시원한 사이다 결말을 낸 적은 없다. 그러나 그 나름의 치열한 규칙 속에서 작가는 통쾌한 결말을 만들고 만다. 독자의 기대를 완벽하게 부수고 배신하면서. 독자는 그 통쾌함 앞에서 말을 잃고 만다. 장편이고 단편이고 할 것 없이, 박애진 작가가 그리는 서사의 가장 큰 특징은 ‘극한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박애진 작가의 주인공들은 적당한 단계에서 절대 머무르지 않는다. 물론 앞뒤를 돌아보고 상황에 대해 인지도 하고 있지만, 그 인식이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들에게는 가야 할 길이 있고, 그 길로 가기 위한 여정을 멈출 생각은 없다. 아무리 버겁고 힘겨운 일이 나타나더라도 이를 악물고 그들은 다음 발자국을 짚어낸다. 박애진 작가의 주인공은 모두가 극기한다. 시스템과 맞닥뜨려 무릎 꿇지 않고, 자기 자신과 맞닥뜨려서도 마찬가지다. 끝내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마는 주인공들이다. 스팀펑크다운 스팀펑크 전작 《기기인 도로》를 읽고 스팀펑크적 요소가 아무래도 좀 부족하다고 느낀 독자라면, 《명월비선가》에서는 반드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태엽장치와 기계, 톱니를 둘러싼 기묘한 세계관이 《명월비선가》에서는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소설에서는 단순히 배경 장치로서가 아니라 아주 중요한 하나의 주인공으로서 증기기관이라는 기술이 존재한다. 갓과 패랭이를 쓰고 쓰개치마를 두른 19세기적 인물들이 선연하게 드러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전작에서 나타난 가장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였던 ‘도로’ 역시,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뤄진다. 도로가 없이 이 소설은 성립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도로에 함몰되지도 않았다. 연작소설로서의 매력을 전혀 놓치지 않은 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해 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스팀펑크’적 요소는 이런 태엽장치와 기계에 관한 부분이 아니다. 이 소설은 스팀펑크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 바로 과학을 통해 한 걸음 나아가고자 하는 이성적이고 계몽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조선 중기에 만나는 근대적 인간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 황진이, 명월은 바로 이 부분에서 무엇보다도 스팀펑크적이다. 그는 전근대적 세계 속에 오롯이 서 있는 근대적 인간이다. ‘모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성에 대한 강력한 신뢰다. 명월은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합리적으로 판단하고자 하며, 세계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것으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는 얼기설기 얽힌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동시에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 손을 내밀어서 상황을 파악하고자 하고, 뒤틀린 문제를 절망 속에 버려두지 않으며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고 만다. 1500년대에 사는 사람 속에 이미 1700년대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이런 존재가 떨어진 곳은 모순으로 가득한 유교적 질서다. 그러므로 그에게 가혹하고 엉망진창인 세상은 탐구해야 할 어둠이고, 그 어둠을 하나씩 밝혀가는 것으로 세상은 ‘이해’된다. 가보지 않은 길을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명월은 세계를 해체하고 파악하며 자기 내부로 수렴한다. 기생이 되고, 천민으로서 차별을 받고, 누군가의 후처로 들어가고, 유교적 질서 안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맞고, 괴롭힘을 당하고, 한계를 절감하고, 실망하고, 시스템 밖으로 내쫓기는 그 모든 과정은 오롯하게 세계를 새로이 해석하는 과정이 된다. 공포가 이해할 수 없음에서 온다면, 오로지 이해하고자 하는 이는 두려운 것이 없다. 그러므로 비합리적 세계에 놓인 합리적 정신은 두렵지 않다. 몽매한 세계 속에서 명월은 홀로 “스스로 생각하는” 눈뜬 사람이다. 기계장치나 톱니바퀴가 아니라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이 소설을 스팀펑크로써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는 함께 차별받는 이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해내고 만다. 명월이 인격적으로 뛰어나거나 고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1500년대 조선에 떨어진 임마누엘 칸트기 때문에. 전근대의 프로메테우스 최초의 SF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는 부제가 달려 있다. ‘모던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 자체가 ‘먼저 생각하는 자’, 즉 선지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에게 불을 주고 신의 저주를 받아 끊임없이 고통받게 된 슬픈 선지자다. 메리 셸리의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은 인류의 마지막 숙제인 죽음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소설 속, 1500년대의 임마누엘 칸트는 끝내 조선의 프로메테우스가 되고자 한다. 소설 마지막의 반전은 박애진 작가 특유의 독자 뒤통수 치기가, 지금까지 내가 본 방식 중에 가장 훌륭하게 완성된 버전이다. 뒤통수가 쨍 깨질 것처럼 얼얼하지만,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기꺼워서 프린트해서 읽은(서평 작성자의 권한으로 PDF 파일을 받았다) 소설 마지막 페이지를 몇 번씩 손으로 쓰다듬었다. 수많은 사랑 이야기 속에서 인간은 종을 뛰어넘는 사랑을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차원을 한 단계 넘어섰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울음이 터질 것 같고,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만다. 인간이 ‘의식’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과학’이란 무엇인가. 그 극한을 떠올려보면, 이 소설은 SF라는 장르가 궁극적으로 가 닿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주제마저 던지고 있는 셈이다. 황진이의 여러 시조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벽계수에게 불러주었다던 시조를 좋아한다. 청백리라던 벽계수가 유혹에 절대 지지 않으리라 고개를 꼿꼿이 들고 황진이의 옆을 지날 때, 황진이는 이 시조를 읊었다고 한다. 벽계수는 이 시조를 듣고 그만 말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더라.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 하면 돌아오기 어려운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만지면서, 이 시조는 나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고 말았다. 이미 그의 세계는 바다로 건너갔지만, 오늘 밤에도 이 세계는 비선을 타고 저 창해를 날아가는 명월로 만공산하지 않은가. - 이서영, 소설가 작가의 말 《기기인 도로》는 ‘조선시대에 증기기술이 발달했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쓰인 조선 스팀펑크 앤솔러지입니다. 정명섭, 김이환, 박하루, 이서영 작가와 함께 참여했습니다. 앤솔러지에 넣을 글로 《명월비선가》를 구상했는데 쓰다 보니 도무지 단편으로 풀어갈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해서 출판사에 양해를 구하고 〈군자의 길〉이라는 단편을 새로 써서 보냈습니다. 《명월비선가》와 〈군자의 길〉은 설정은 공유하되 독립된 이야기라 어느 이야기를 먼저 읽든 상관없습니다. 《기기인 도로》 앤솔러지 기획에 참여하기로 한 뒤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할지 고민했습니다. 당시 제가 바란 인물상은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바로 알 유명한 사람일 것, 하위 계층일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황진이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전래동화 형식으로 혹은 역사 속 야사로 황진이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텐데요. 황진이는 아리따운 외모와 더불어 시화에도 능하고, 학문도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기생이기에 많은 사내들의 여인이 될 수 있었으나 또한 한 사람만의 여인이 되지도 않았던 신비로운 존재, 성적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황진이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학문을 익혔을까요? 천민이자 여인이었던 그가 학문을 익힌다 한들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요. 그리고 황진이는 어느 날 홀연히 관노청을 떠나 길에서 떠돌다 죽었다고 합니다. 생몰 연대가 불분명하고 야사로만 전해지는 이라, 그가 왜 명성을 떨친 기생이 누릴 수 있는 화려한 생활을 버리고 떠났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착안해 나온 인물이 바로 소설 속 인물 ‘진이’입니다. 글 안에서 황진이의 기명인 ‘명월’은 사용하나 황진이라는 전체 이름은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영화나 드라마로 재탄생한 인물인지라, 자칫 기존의 이미지에 갇힐까 우려되어서였습니다. 같은 이유로 야사 속에서 명월과 얽힌 인물들도 일부러 잘 알려지지 않은 자(字)나 호(號)를 사용했습니다. 더불어 이 이야기를 통해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가장 하위 계층인 천민에 속한 기생의 시선으로 당시 조선 시대를 그려보고자 했습니다. 한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만큼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본 찰리 채플린을 소재로 한 한 컷 만화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극장 화면에서 찰리 채플린이 구두끈을 포크로 둘둘 말아 스파게티처럼 먹는 장면이 나오자 일등석 자리에 앉은 부유한 관객들은 박장대소하고, 이등석에 앉은 보통 관객들은 적당히 웃고, 삼등석에 앉은 가난한 이들은 눈물을 글썽입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개그가 아닌 현실이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어릴 때 읽은 위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참으로 한결같았습니다. 착하고,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고, 자라서는 여색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극 로맨스에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남자 주인공이 아리따운 기생을 앞에 두고 무심한 모습을 보이는 겁니다. 흥미로운 건 여색을 탐하지 않는 이를 칭송하면서도 조선은 일부다처제를 끝까지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노비는 개인 소유인 사노비와 국가 소유인 공노비로 나뉘었는데, 기생은 국가에 소속된 노비, 즉 관기였습니다. 유흥 때 흥을 돋우기 위한 노비 제도를 국가 차원에서 갖추어 운영했던 겁니다. 놀랍게도 관기와 간음하거나 첩으로 들이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아무도 지키지 않았을 뿐이었죠. 심지어 서로 한 기생을 차지하겠다고 무관들이 자기 휘하의 병사들을 동원해가며 벌건 대낮에 몽둥이 싸움을 벌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우동에게는 간음죄를 물어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국가 소유의 노비인 기생의 시선으로 본 조선은 잔혹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였습니다. 2022년 1월 박애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