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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무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그 시간을 축제처럼 만끽하는 수밖에 없다.
황정원
코난북스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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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Crazy for You
내가 속한 곳을 찾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무대
이자람과 바다
무대 너머 당신에게
균형 잡힌 항해
아름다움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

저자 소개 1

과학도의 삶을 살다 음악에 매료되어 진로를 수정했다. 이후 뮤지컬 제작 회사에서 뮤지컬을,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와 콘서트를 기획, 제작하며 무대와 극장을 경험했다.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교를 거쳐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 과정을 수학했다. 유럽 최고의 무대들을 부지런히 다니며 그 경험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한편 다양한 공연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공연 일정 사이사이 마라톤을 끼워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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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69쪽 | 188g | 110*178*13mm
ISBN13
9791188605231

책 속으로

우리는 모두 같은 대본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스태프들이 그 안에서 찾은 포인트는 제각각이었다. 지문을 만난 그들은 벌떡 일어나 우르르 옷장 문을 통과해 데드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훈련된 전문가의 눈으로, 각자의 인생을 쌓아온 방식으로 무대를 둘러보고 연습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스태프들이 그은 밑줄들은 서로 충돌하고 섞이다 맞물렸다. 가려져 보이지 않던 관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여러 층위가 생겼다. 그리고 각자의 해석들이 모여 하나의 장면을 만들고, 그 장면들이 모여 하나의 극이 되고,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 p.21

그 세계는 출발 전에 내가 꿈꾸던 세계와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 또한 괜찮았다. 나 또한 갈등과 마찰로 모양이 바뀌고 색이 달라져 새로 찾은 세계와 아귀가 맞물리도록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결정에 의해 다시 헤매게 되더라도 불안에 내몰리지 말고 헤매는 데 몰두해보자. 그렇게 나 역시 내가 겪고 있는 갈등에서 조금씩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 p.39

준비가 되었든 아니든,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되면 막은 올라가야 하고 공연은 시작되어야 한다. 도망칠 수도 없고 늦출 수도 없는 것이 시간이다. 카드 돌려 막듯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해야 할지라도 막은 올리고 봐야 한다. 그리고 막이 오른 공연은 반드시 끝까지, 마지막 음표까지 불러야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다.
--- p.72-73

무대 밖 일상이 사라지고, 마침내 공연을 관람하는 나마저 사라지면 그 진공으로 무대라는 우주가 빨려 들어온다. 그 속에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유영하다 현실로 돌아오면,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긴 시간이었나 놀랐다가 아니, 순식간에 끝난 것도 같아 재차 시간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저 깊은 어딘가에서 생명력이 움터온다. 나의 일상과 전혀 무관한 무대 위 이야기가 지친 일상을 추스르고 버틸 힘을 준다.
--- p.101

나도 그럴 것을 그랬다. 터무니없는 말을 하게 될까 두려워 침묵만 지키고 있지 말걸 그랬다. 완벽하자고 욕심 부리지 말걸, 그래서 지금 완벽하지 못함에 늘 움츠려 있지 말걸 그랬다. 남들을 따라잡으려 오버하지 말걸, 처음부터 내 페이스대로 갈걸, 타인의 선함을 믿고 내 부족함을 선선히 보여줄걸, 그들이 설사 선하지 않아 내 부족함을 비웃더라도 내 잘못이 아니니 크게 흔들리지 말고 뚝심 있게 행동할걸…. 무엇보다 스스로를 믿어줄걸. 그렇게 천천히 내 이야기를, 내 세계를, 나만의 바다를 만들고 넓혀갈걸 그랬다.
--- p.111

슬픔, 원망, 외로움, 두려움, 증오…, 어두운 감정들이 엉망으로 뒤엉켜 찰랑찰랑 차올라 위험 수위에 접근하면 떨리는 손으로 약장 속 진통제 찾듯 오페라를 찾았다. 지난 10여 년간 오페라를 찾아 유럽 전역을 부지런히 돌아다닌 보람이 있었다.
나는 나락에서 몸부림치는 인물들이 가장 비참한 순간 부르는 노래들을 꿰고 있었다. 그러므로 내 감정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최대한 증폭시키는 데 가장 적절한 아리아를 세심하게 골랐다. 나는 나의 가장 믿을 만한 바텐더이자 소믈리에인 동시에 주치의였다. 감정에 적절한 장작을 넣고 불을 지펴 끓어 넘치게 만들면 당분간 버틸 수 있었다.

--- p.146

출판사 리뷰

이야기 그리고 그 모든 감정과 에너지가 폭발하는 곳, 무대

음악과 춤, 이야기가 있는 곳, 그 위에서 에너지와 감정이 순간 폭발하고 머물다 사라지는 곳, 그렇기에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배우, 스태프, 연주자, 관객만이 가질 수 있는 기억과 감정, 경험이 공유되는 곳이 바로 무대다.

저자는 바로 그 무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애정과 진중한 생각들을 골라 담았다. 무대 위의 감동뿐 아니라 무대 뒤 스태프들의 진땀 나는 순간들, 또 커튼이 내려지고 난 뒤에 흐르는 안도와 성취의 공기들도 충분히 전한다. 음악의 길로 들어선 후로 맞닥뜨린 갈등과 고뇌의 순간들, 그 결과로 마음에 차곡차곡 쌓은 깨달음들 또한 단정한 글로 써내려갔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겪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무대에 관한 이야기면서도 객석에서 바라보는 무대 위의 황홀한 순간이나 찬탄할 수밖에 없는 빼어난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위에서 일하는 이들의 기쁨과 슬픔이 소중하게 담겨 있다.

오페라 〈돈 조반니〉에 관한 글, 아니 〈돈 조반니〉를 공연을 무사히 올리기 위한 스태프들의 백스테이지 이야기가 특히 그러하다. 런던에서 공수한 무대세트가, 클라이맥스에서 터져야 할 불꽃이, 승강기가, 공연에 올라야 할 배우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지는 사건사고를 관객들은 전혀 알지 못하도록, 오로지 완벽한 공연을 즐겼다 느끼도록 스태프들이 동분서주한다. 그것이 쇼이기 때문이고, 쇼는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공연을 준비하며 배우와 스태프가 만나는 대본 리딩 날 풍경, 오페라 자막을 고르고 고르는 그린룸 풍경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커튼 뒤, 무대 뒤 내밀한 이야기의 매력이, 자기 일에 흠뻑 빠져 몰두하는 이들의 매력이 이 에세이에 담겼다.


‘정답’을 찾아 떠나온 길에서 발견한 것들

이 책은 무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사랑을 찾아 돌고 돌아온 한 사람의 긴 여정의 기행문과도 같다.

저자는 과학도의 길을 착실히 걷다 돌연 음악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바꾼 경로를 따라 공연 기획 일을 하다가 또 오페라를 공부하러 유학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전혀 쓸모없는 것이 아님을, 기억과 경험으로 삶에 차곡차곡 쌓여 있음을 발견한다.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휘청거리더라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믿음도, 스스로를 믿어주고 천천히 내 이야기를, 내 세계를, 나만의 바다를 만들어 넓혀가겠다는 결심도 방황과 고뇌 속에서 얻은 결론이다. 누구나 생에서 거듭 겪을 이 좌충우돌 이야기를 저자는 무대 위에서 만난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 등과 교차하며 글의 깊이를 더한다.

절벽이 아니라 넓게 펼쳐진 바다를 앞에 두었다면 물속으로 뛰어들 때 큰 결단이 필요하긴 해도 의외로 할 만하다. 순간적으로 바짝 마음을 굳게 다지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믿음은 도약 이후로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물이 깊어지고 뜻밖의 해류를 만나 휘청이게 되더라도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믿음을 간직할 때라야만 우리는 헤엄치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다. _‘내가 속한 곳을 찾아’,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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