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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4
제1부 어떤 슬픔 11 이별극복 12 털다, 그리움 14 장마 16 버스 정류장에서 18 지하철 연가 19 발굴 22 접시꽃 비밀 24 등대 26 사랑할 땐 섬으로 가자 28 이 계절엔 30 봄날, 그 의혹 32 봄의 단상 34 안개구간 36 전설의 고향 38 일기예보 40 제2부 고사목 45 낙지 46 우시장 48 돌탑 50 회를 치다 52 사蛇의 찬미 54 모기 56 굴비 58 갈대는 알고 있다 60 수박 63 초식동물의 눈물 64 삼겹살 굽다 66 낙락장송 68 북어北魚 70 손톱 72 단풍, 멍들다 73 출조出釣 74 네잎클로버 76 제3부 기우제 81 근황 82 산복도로에서 84 경계를 허물다 86 정지선에서 88 섬 90 정전 92 49재 94 비오는 날의 초상화 96 버린다는 것 98 주말 101 늙어간다는 것 104 점심 105 탄원서 106 유언 108 라면 불리기 110 해설 | 모든 흘러가는 것들에 대한 사유ㆍ한원균 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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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슬픔
살랑살랑 골반 함부로 흔들지 마소. 하염없이 피어나는 길상사 극락전 앞뜰 붉은 상사화 떠나가는 뒷모습에 철퍼덕! 주저앉아 끊임없이 흐르는 피눈물 어이 감당하려고. 살금살금 뒤에서 두 눈 가리지 마소. 천상에서 날아와 손등에 피어난 검붉은 저승꽃 님 볼 수 없음에 덜커덩! 내려앉아 피멍 든 앙가슴 어이 살아가려고. ---------------------------------------- 사랑할 땐 섬으로 가자 섬으로 가자. 2박 3일 월차 내고 외딴섬 민박집에서 ○을 그리자. 쉽사리 넘나들 수 있는 점선 말고 잘 지워지지 않는 유성매직으로 동그란 실선 쿡쿡 눌러 긋자. 끼니는 건너뛰어도 된다. 그 안에서 한눈팔지 말고 허리 휘청대는 야성에 몸을 맡기자. 보름달 거미줄에 걸리면 한 마리 늑대 되어 달빛사냥에 몰두하자. 이성은 부질없는 허상 원초적 본능 적나라하게 끄집어내어 어둠의 급소에 일격을 가하자. 사랑할 땐 인적 드문 섬에서 완전히 고립되자. 살해될 것 같아도 SOS 보내지 말고 지금은 각별한 ♀♂되자. 유혹, 그 치명적 오르가슴 손톱으로 바람의 등을 할퀴며 주도면밀한 비밀을 잉태하자. 사랑할 땐 한 마리 수사마귀 되어 원 없이 산 채로 죽어도 좋다. ---------------------------------------- 단풍, 멍들다 대웅전 노스님 예불을 올리는데 뒷줄에 앉은 동자승 꾸벅꾸벅 부처에게 절을 한다. 가을 햇살이 목탁에 반사되어 동자 머리를 정확히 때린다. 완벽한 득점이다. 부처는 염화미소 짓는데 산사 주변을 서성이던 아무 죄 없는 나뭇잎들 똑똑 또르륵 똑똑 노승의 목탁소리에 붉디붉은 멍이 들고 있었다. ---------------------------------------- 갈대는 알고 있다 갈 때 가더라도 오해는 풀고 가라, 바람은 극복이 아니라 함께 가는 동반이라는 것을. 이른 새벽 맨손 비비며 서성거리는 것들은 결론을 알고 있다, 누가 떠나고 누가 머무는지. 습지에 일생을 발목 묻고 백발 성성히 지켜보는 눈들은 이미 예감한다, 철새들은 조만간 날아가고 결국 빈 둥지만 남는다는 것을. 머리 들어 중천을 봐라, 겨울 상공 제트기 한 대 마른 갈대 이삭 한줌 털어놓고 떠나간다. 올 때 오더라도 진실은 알고 오라, 입들이 내는 소리와 잎들이 우는 소리는 울림이 다르다는 것을. 한 밤에도 눕지 않고 맨발로 서서 잠자는 짐승들은 누가 오고 누가 가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숨차게 달려와 강변에서 헐떡이는 하얀 호흡들 삶은 손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우아하게 착지하는 갈숲의 백로 한 마리 순백의 날개 펄럭이며 균형을 잡는데 구경하던 하중도 갈대들 사각사각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낸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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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섬’의 이미지는 단순히 바다에 머물고 있는 대상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계기적인 무한 질서를 분절하고 내면화합니다. 이는 실재하는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의지작용의 결과물입니다. 삶의 충만한 의미(eros)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죽음은 모든 종말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형식, 다른 기억의 공간으로 향하는 기록(archive)이라는 것도 변문영 시에서 찾아낸 의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해설 한원균 (문학평론가, 한국교통대 교수)?
시인의 말 전문적인 문학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틈틈이 메모도 하고 시인들의 시편도 읽다 보니 시가 좋아졌고 시를 짝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딸 둘을 여의었는데 딸들을 시집보내듯 조심스럽게 몇 편의 어쭙잖은 습작을 모아 살얼음같이 얇은 시집 한 권 조심스럽게 선을 보입니다. 인사말도 그렇고 사는 것도 그렇고 간결해야 하는데 너저분히 길어집니다. 쓸데없이 장식적인 언어들의 조각들 헝클어진 머리카락 자르듯 싹둑싹둑 단정히 잘라야 하는데 아직 단절의 기술이 부족합니다. 죽는 날까지 아름답게 함축할 수 있는 연습을 많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녹으면 보이는 무엇이 있듯 오르면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내리면서 잠들었던 유해들이 속속 깨어나고 푸른 별 지구가 대기오염 바이러스 등 몸살로 많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두가 건강한 예전의 몸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깊은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과 곰곰 시창작반 선생님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직장 동료분들, 가까이서 지켜봐 준 가족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과 따끔한 일침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총 50편의 시를 3부로 나누어 묶어봤습니다. 1부는 이별, 그리움, 사랑 등을 2부는 낙지, 굴비, 북어 등 사물에 대한 느낌을 3부는 코로나, 재개발 등 근황을 다룬 시를 수록했습니다만, 그런 데 개의치 마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2022년 2월 변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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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문영의 시는 소박하다.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들에 대해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백하게 표현한다. 대상의 이면을 파헤치거나 그런 행위에 따르는 복잡한 심리 상태를 구축하는 낯선 언어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익숙한 일상을 친숙한 어법으로 노래하기랄까. 그러나 그 안에 채색된 이미지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하루하루의 삶에 열중하면서 얻은 꼼꼼한 태도, 평범한 이웃과 함께 하는 열림의 자세, 그러면서도 그런 일상을 탈출해 가고 싶은 곳이자 영원히 가닿지 못한 시원의 섬을 그리워하는 본원적인 인간성 등이 그 시에 녹아 있다. 모처럼 만나는 잔잔한 시, 그 꿈과 삶 사이를 즐겁게 유영한다. - 박덕규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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