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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한영우
효형출판 1998.09.30.
베스트
동양사/동양문화 top10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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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1795년 화성행차의 배경

정조는 어떤 나라를 만들려고 하였는가
정조는 왜 화성(華城)을 건설하였는가
정조는 왜 화성을 자주 방문하였는가
1795년(정조19) 화성행차에 대한 자료

2. 1795년의 화성행차
행차의 준비과정


8일간의 화성행차
- 첫째 날: 윤2월 9일
· 새벽에 창덕궁을 떠나다
· 노량행궁(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들다
· 시흥행궁에서 하룻밤을 묵다
- 둘째 날: 윤2월 10일
· 시흥 출발, 청천평에서 휴식
· 사근참 행궁에서 점심을 들다
· 진목정에서 휴식
· 저녁에 화성행궁 도착
- 셋째 날: 윤2월 11일
· 아침에 화성 향교 대성전에 전배하다
· 오전에 낙남헌에서 문무과 별시를 거행하다
· 오후에 봉수당에서 회갑잔치를 예행연습하다
- 넷째 날: 윤2월 12일
· 아침에 현륭원에 전배하다
· 서장대에 친림하여 주간 및 야간 군사훈련을 실시하다
- 다섯째 날: 윤2월 13일
· 오전에 봉수당에서 회갑잔치를 하다
- 여섯째 날: 윤2월 14일
· 새벽에 화성주민에게 쌀을 나누어주다
· 오전에 낙남헌에서 양로연을 베풀다
· 한낮에 방화수류정을 시찰하다
· 오후에 득중정에서 활쏘기를 하다
- 일곱째 날: 윤2월 15일
· 귀경길에 오르다―화성을 떠나 시흥으로
- 여덟째 날: 윤2월 16일
· 시흥에서 백성들과 대화를 나누다
· 노량 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들다

* 행차의 뒷마무리
- 각종 시상
- 『원행을묘정리의궤』 제작
- 6월 18일의 연희당 회갑잔치

* 끝을 맺으면서

[부록]

- 1795년 원행 배종(陪從) 신하명단 및 직책
- 행차에 쓰인 모든 물품 및 지급된 돈 등의 재용(財用)

저자 소개 1

韓永愚

193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다. 서울대 사학과 교수, 하버드대 객원교수, 문광부 사적분과위원장, 한국사연구회장, 서울대 규장각 관장과 인문대학장 등을 역임하고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이화학술원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경암학술상, 수당학술상, 민세안재홍상 등 학술상을 아홉 차례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정조평전: 성군의 길』(상·하), 『조선 수성기 제갈량 양성지』,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 『꿈과 반역의 실학자 유수원』, 『
193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다. 서울대 사학과 교수, 하버드대 객원교수, 문광부 사적분과위원장, 한국사연구회장, 서울대 규장각 관장과 인문대학장 등을 역임하고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이화학술원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경암학술상, 수당학술상, 민세안재홍상 등 학술상을 아홉 차례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정조평전: 성군의 길』(상·하), 『조선 수성기 제갈량 양성지』,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 『꿈과 반역의 실학자 유수원』, 『과거, 출세의 사다리』(전4권), 『한국 선비지성사』, 『역사학의 역사』, 『다시찾는 우리역사』, 『세종 평전: 대왕의 진실과 비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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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98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18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6361209

책 속으로

조선시대 연구자에게 가장 매력 있는 군주 두 사람을 들라고 하면 아마 세종과 정조를 드는 데 거의 이의가 없을 것이다. … 그런데 세상 사람들에게 세종은 매우 친근한 반면, 정조는 아직 낯설다. 그것은 국문자를 창제한 세종의 위업이 너무나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국문자 창제의 업적을 제쳐두고 생각한다면, 정조는 결코 세종에 뒤지는 군주가 아니다. … 세종의 애민정신이 위대한 국문자를 만들어냈다면, 정조의 애민정신은 철저한 기록문화를 남겼다는 것도 서로 비교된다. 왕조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기록정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조시대의 기록문화는 그야말로 기록문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내면서」 중에서

1776년 미국이 독립선언을 하고 신생국가로 탄생해 가던 그해 3월, 우리나라에서는 정조(1752년 생, 재위 1776~1800)가 22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임금의 나이 25세요, 미국이 독립하기 4개월 전이다. … 정조 24년간의 치세는 왕조문화의 절정기인 동시에 5천년 한국문화의 정점이기도 하였다. 전 세계사적인 18세기 문명의 화려한 불꽃이 한반도에서도 피어올랐다.

---「정조는 어떤 나라를 만들려고 하였는가」 중에서

출판사 리뷰

* 조선왕조 르네상스의 진수, 정조의 화성행차
정조의 반차.충효의 배다리 건너기 등 화성행차의 모든 과정을 풍부한 도판과 흥미로운 역사 해설로 함께 담았다.

애민군주 정조, 조선의 르네상스를 선포하다

조선 왕조사 연구의 권위자인 한영우 교수가 쓴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은, 정조가 야심차게 펼쳤던 8일간의 정치 이벤트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8세기 조선의 문예부흥을 이끌며 강력한 왕권중심의 나라를 꿈꾸던 정조(재위 1776~1800)는 1795년 윤2월 9일,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묘시(새벽 5~7시)에 창덕궁을 나섰다. 115명의 기마악대가 연주하는 웅장한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1,800여 명의 신하가 뒤따랐고, 그 행렬은 무려 1킬로미터에 이르렀다.

이 거대한 행렬의 목적지는 화성. 화성은 뒤주에 갇혀 숨을 거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현륭원과, 정조의 설계에 따라 건설한 신도시가 있는 곳이다. 아버지 묘소를 옮긴 뒤 정조는 해마다 화성을 방문했지만, 그중에서도 1795년의 화성행차는 각별했다. 겉으로는 어머니의 회갑을 경축하기 위한 나들이였지만 실은 그간의 위업을 과시하고, 내외 신민의 충성을 결집시켜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숨은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정조는 무엇보다 기록을 중요시해, 화성건설에 대한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와 1795년 화성행차에 대한 보고서인 《원행을묘정리의궤》등을 남겼는데, 그 자세함과 방대함이 ‘무서울 정도’이다.

화성행차의 준비 과정부터 그 이후까지를 집대성하다

화성행차를 성공리에 마친 뒤 5년 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정조이지만, 이 책에 담긴 그의 실학사상과 이용후생 정책 그리고 애민정신은 21세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은 18세기 조선의 문화적 역량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현재 《원행을묘정리의궤》 속 [반차도]는 청계천의 방대한 도자벽화와, 서울과 수원시에서 열리는 화성행차 행사로 재현되어, 정조시대의 화려한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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