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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_‘배움의 기본’을 불교에서 배우다
1장 부처의 배움이란 배움_삶을 가꾸어 가는 것 오가닉 러닝_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싯다르타_존재를 자각하다 출가_문을 열고 진리를 찾아서 실망_명상은 근원적인 진리에 다다를 수 없다 고행_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기술 싯다르타_서른다섯 살, 붓다가 되다 깨달음_‘내가 바로 악마’라는 사실 좌선 수행 1_인생의 풍경이 바뀌는 경험 좌선 수행 2_선에서 답을 발견하다 불교_유쾌한 삶을 배우기 위한 참고서 2장 배우는 것은 바뀌는 것이다 발보리심_모르는 세계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 생로병사_유쾌한 인생의 조건 선禪 1_상식을 뒤집다 선禪 2_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여라 좌선_순수한 놀이 같은 수행 깨달음_배움을 계속 이어가는 것 수행_배우며 살며 알아가는 것 배우는 기쁨_존재의 풍요로움을 배우는 길 3장 수행은 즐겁고 유쾌한 것이다 좌선의 반전_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 실천 나무 아래 좌선_살아있음이 유쾌한 방향으로 좌선의 향기_지금 자신의 심신으로 행하는 일 패러다임의 전환_힘을 빼고 마음을 평안하게 두잉에서 빙으로_지금 여기에 존재하라 하지 않기_유쾌한 인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 수행_즐거운 탐구가 끝없이 이어지는 길 불교를 배운다는 것_나를 배운다는 것 4장 유쾌하게 사는 법 유쾌한 삶의 조건_사는 것 자체가 기쁜 전생 두카_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받들겠습니다_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각오 근본에 있는 나_지금 필요한 것을 하라 유쾌한 빙 모드_문을 활짝 열어야 통할 수 있다 수행의 완성_불방일하자 위파사나_깨어 있는 얼굴로 그대로 보는 것 초심_아는 것부터 내려놓자 맺음말_나는 어떻게 삶을 배워나갈 것인가 |
藤田一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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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행行의 종교’다. ‘행’이란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행하는 수행을 가리킨다. 특히 내가 배워온 선禪의 세계에서는, 좌선은 물론이고 청소나 식사 등의 일상생활 전반을 수행으로 간주한다. 삶 그 자체에서 배우는 일이 바로 수행이다. 당연한 일상이 성스러운 도량道場이 되도록 힘쓰는 것이 바로 불교다. 그런 점에서 신에 대한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와는 유형이 다르다.
--- p.13~14 ‘나만의 사문유관 체험’이 없으면 불교에서 배움을 얻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불교란 ‘나에게 말을 걸어 주는 배움’이 아니라 그저 ‘옛날에 누군가가 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는 ‘삶은 즉 고뇌’라는 커다란 문제를 자각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 p.23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아직 악마가 붙어 있다는 것은, 붓다의 수행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오히려 깨달은 뒤에 진정한 수행이 시작되고, 사는 것이 오롯이 수행이며 계속해서 오가닉한 배움이 이어진다. 즉 붓 다가 더욱 원숙한 붓다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그의 인생이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 p.42 그렇다면 붓다처럼 수행하며 사는 것은 과연 어떤 삶일까?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마디 하자면, 그것은 ‘유쾌한 삶의 방식’이다. 불교는 각자가 자신만의 유쾌한 삶의 방식을 배우기 위한 참고서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 p.52 ‘고뇌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생로병사 그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깊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다. 붓다는 생로병사라는 사실을 두려워하거나 그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대신, 오히려 연기라는 진리를 깊이 배우기 위해서 그것과 제대로 마주하고 이해하려 했다. 인생의 엄숙한 사실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조건으로써 솔직히 받아들이는 것은 유쾌한 삶의 방식의 포인트다. --- p.60 배우는 것은 바뀌는 것이며, 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배움 없는 성장은 없으며 성장 없는 배움은 없다. 성장한다면 미지의 것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어 풍요로워진다. 그것이 즉 즐거움이다. 인간은 ‘배우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 태어난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 p.82 유쾌하게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 전생(全生, 생을 다하는 것이다. 축축 하게 숨을 쉬면 전생은 불가능하다.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유쾌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사소한 이해나 체면을 위해 그 유쾌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하다. 심지어 자신의 유쾌를 잃는 것뿐 아니라 타인의 유쾌를 빼앗기도 한다. 이는 악이다. 자신의 유쾌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타인의 유쾌도 소중히 여기고 상처 주지 않도록 하자. 이것이 전생의 길이다. --- p.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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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질문에서 ‘그래서’라는 간이역에 도착할 때까지,
그래서 붓다가 정말로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붓다는 자유롭게 살았던 ‘깨달은 사람’이었다. 붓다는 자연과 인간을 만나며 ‘배우는 사람’이었다. 불교적 공동체 승가는 ‘자유로움’과 ‘즐거운’ 삶에 매료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불교의 가르침은 인생을 유쾌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배움 불교에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배움의 방법이 있다. 붓다에게는 완성된 형태의 ‘불교’ 따위는 없었다. 그저 인도의 대지 위에서 ‘깨달은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살았을 뿐이다. 자연이나 인간을 통해 평생 수행을 이어간 ‘배우는 사람’이었다. 그런 붓다를 보며 ‘자유롭고 즐거워 보인다’며 매료된 사람들의 모임이 승가였다. 자유롭고 즐겁기 위해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그와 함께 수행했을 뿐이다. NHK 출판사의 배움의 기본 시리즈의 베스트셀러 『유쾌하게 산다는 것』 25만부라는 판매고를 올린 『유쾌하게 산다는 것』은 종교적 측면의 불교가 아니라 사람이 궁긍적으로 추구하는 즐거운 인생에 관한 책이다. 불교의 기초 지식이 아닌 ‘불교적으로 배우는 법’을 말하고 있다. 배움은 인간에게 커다란 기쁨이다. 불교의 가르침을 길잡이로 삼는다면 유쾌한 인생에 가까워질 수 있다. 깨어있는 삶, 유쾌한 삶이란 살아 있는 우리는 고통과 행복이 맞부딪친다. 유쾌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서 솟아나는 저항과 집착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붓다는 그것을 실행하고 수행했던 사람이었다. 불교의 지나친 엄숙주의와 종교는 다시금 살필 이유가 있다. 철학과 종교 그리고 모든 학문은 더 행복하고 나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유쾌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배움을 청하곤 한다. 붓다와 불교의 가르침을 즐거운 삶을 위한 참고서로 바라보고 인생을 위해 적용해보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