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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의미에서의 간신, ‘왕의 남자’가 된 간신들>
임금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얻은 후 권력을 휘두른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도 유독 간신이라고 낙인찍힌 이들이 있다. 그들은 총애를 받고 권력을 휘두른 것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안위까지 불안하게 만들어버렸기에 간신이라 칭해진다. 1회 - 백제의 멸망을 불러온 간신 공작원 ‘도림’ 고구려 장수왕의 밀사로 백제에 들어가 뛰어난 바둑 솜씨로써 개로왕의 신임을 얻고, 개로왕을 설득하여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여 국고를 탕진하도록 하여 백성을 곤궁에 빠뜨리고, 장수왕으로 하여금 백제를 쳐서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게 한다. 2회 - 공민왕을 죽이려 했던 희대의 간신 ‘김용’ 고려말기의 무신으로 공민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갔을 때 시종한 공으로, 공민왕이 즉위하자 왕의 측근에서 여러 차례 고위직에 오른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정세운과 안우 등이 홍건적을 격퇴하여 공을 세우자 모략을 써서 이들을 죽인다. 그리고 죄상이 폭로될까 두려워 공민왕을 시해하려다 실패한 뒤 사형당한다. <진정한 간신인가, 역사의 희생자인가 - 간신의 누명을 쓴 사람들> 역사에는 간신으로 남았지만, 간신으로만 불리기엔 아까운 사람들을 대변해 그들의 속사정을 공개한다. 3회 - 개혁가와 간신의 갈림길에 섰던 인물 ‘신돈’1부 고려말기의 중이자 개혁적 정치가로써 공민왕에게 등용되어 국정을 장악하고 강력한 개혁정책을 추진한다. 권문세가들이 부당하게 소유하고 있던 토지를 원 소유주나 농민에게 되돌려 주고, 억울하게 권세가의 노비가 된 사람들을 희망에 따라 자유화 시키는 개혁으로 기득권의 반발을 산다. 4회 - 개혁가와 간신의 갈림길에 섰던 인물 ‘신돈’2부 신돈은 개혁 기반세력이 미비한 가운데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되는데, 공민왕은 더 이상 신돈의 개혁을 뒷받침할 힘이 없어진다. 때마침 누군가가 한림거사란 가명으로 신돈이 반역을 꾀한다는 내용의 투서를 보내게 되고, 그로 인해 신돈은 의문의 역모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왕의 남자’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 왕권까지 넘본 세력가> 흔히 간신이라고 하면 손바닥 비비기에 능숙한 아첨꾼 2인자를 생각한다. 역사에 나타나는 간신들 중에는 아첨꾼의 수준을 넘어서 왕권까지 유명무실하게 만든 ‘대단한’ 간신들도 존재한다. 5회 - 권력에 취한 권력 중독자 ‘한명회’1부 조선전기의 정치가로써 마흔이 되도록 연거푸 과거에 낙방하고 친구 권람의 도움으로 겨우 관직에 오르게 된다. 결국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에서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공신이 되고, 재위기간 중 북방의 안보에 힘을 쓴 공로로 세조에게 신뢰를 받으며 권력의 핵심으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시애의 난으로 인해 그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치게 된다. 6회 - 권력에 취한 권력 중독자 ‘한명회’2부 이시애의 난으로 인한 반란의 혐의를 풀게 된 한명회는 세조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공신에 4회 책록되고 두번의 영의정이 되는 등 권력의 단맛을 모두 맛보게 된다. 하지만 성종때 이르러 한명회의 권세가 기울게 되자, 그 동안 숨죽이고 있던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불어오는 바람에 방향을 바꾼 철새파 - ‘대세’를 따른 소인배들> 대부분의 정치가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물론 국제 정세 등의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사상을 바꾸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상과 함께 자신의 신념과 인간성, 그리고 가까운 사람까지 하루 아침에 져버리며 부화뇌동 하는 모습은 결코 미화될 수 없다. 역사는 일정한 노선을 견지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하며 나라의 미래보다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했던 인물을 간신이라고 불렀다. 7회- 조선시대 최고의 트러블메이커 ‘유자광’ 조선 전기의 정치가로, 이시애의 난에서 공을 세우고, 남이의 옥사를 일으켜 일등공신의 자리에 오른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 갑자사화에 관련되어 사림의 원한을 사고 연산군과 함께 몰락하게 될 위기에 처하지만, 또다시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으로 봉해진다. 하지만 대간의 탄핵을 받고 유배되고 결국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죽게 된다. 8회 - 친일 매국의 상징 ‘이완용’ 가난한 양반의 가문에서 태어난 이완용은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부잣집 도령으로 여러 학문을 공부하며 결국 과거에 급제하여 순조로운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다. 1896년 아관파천 후 친러내각에서 대신을 역임했으나, 시대의 대세가 일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시 친일파로 변신. 1905년 을사조약에서 주도적인 역할로 을사오적이라 불리게 된다. 1907년 내각총리대신이 되고 고종 퇴위와 정미 7조약 조인, 그리고 1910년 한일병합을 주도하였고, 국권 상실 후 일본에 의해 작위를 받고, 매국의 원흉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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