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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생존하기 위해 삶을 버릴 것인가? - 슬라보예 지젝
서설: 聖토요일 혹은 부활의 일요일 너무도 다른 논쟁을 무대에 올리며 - 크레스턴 데이비스 1. 유물론적 신학을 향하여 2. 포스트모더니즘과 신학: 헤겔 비틀기 3. 신학: 정통이냐 이단이냐? 결론: 성 토요일(지젝)이냐, 일요일의 부활이냐(밀뱅크)? 세 마디가 무섭다: 헤겔식 기독교 독해로의 초대 - 슬라보예 지젝 그리스도를 불편해 하는 정교회 … 그리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어둡고 끔찍한 문제 … ” 욥에서 그리스도로 이중적 케노시스 바그너와 함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의 괴물성 유물론적 신학을 향하여 이중의 영광, 또는 패러독스 대 변증법: 슬라보예 지젝에게 다소 반대하며 - 존 밀뱅크 1. 언어에 홀린 동물 2. 가톨릭 메타내러티브 대 개신교 메타내러티브 3. 일의성과 차이, 변증법 4. 패러독스: 안개 은유 5. 기독교와 패러독스, 변증법 6. 역사철학에 관하여 변증법의 확실성 대 패러독스의 모호한 변덕 - 슬라보예 지젝 유물론과 신학, 정치: 논쟁을 위한 전제들 신-죽음의 신학에서 후기 세속적 사상으로, 다시 신-죽음의 신학으로 법과 사랑, 충동 죽은 새가 필요하다 부록: 밀뱅크와 급진 정통주의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
Slavoj Ziz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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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가장 급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과 가장 급진적인 신학자 존 밀뱅크의 대결을 수록한 책이다. 신이 존재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벌인 과학자와 신학자의 논쟁은 화제를 모으고 베스트셀러를 낳긴 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도무지 확신할 수 없는 신의 존재를 놓고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보다, 종교에서 탈출구 없이 파국으로 치닫는 자본주의의 현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을 모색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지젝과 밀뱅크 모두 우리가 처한 곤궁의 원인으로 큰타자의 부재를 꼽는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믿고 의지할 어떠한 굳건한 토대도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개인의 취향과 욕망만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종교와 신학을 불러들이는 것일까? 우리의 노력을 최종적으로 보증해줄 신을 다시 소환하는 것일까? 이 책의 주장은 오히려 정반대다. 지젝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피안의 하나님은 없다는 것을 가장 급진적으로 보여주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이다. 신이 성육신 자체가 이미 신의 분열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는 것은 이 분열을 또 한번 되풀이한다. 기독교의 진정한 계시는 신의 무능함, 신의 비존재를 계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스도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진정한 기독교에서 초월적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그것을 믿고, 이에 따라 실천하는 개인들뿐이다. 오직 성령 공동체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는 무신론이다. 지젝은 이를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위한 논리로 읽는다. 오늘날 급진 좌파에게 필요한 신은 온전하게 인간이 된 신, 그리고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신이다. 그러한 신은 자신의 지워짐을 받아들이며 성령의 구성원을 묶는 사랑으로 온전히 넘어간다는 것이 지젝의 주장이다. 이 책은 다양한 층위에서 읽을 수 있다. 최근의 신학적 논의의 갈래를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헤겔과 라캉의 철학적 사유가 신학과 어떻게 만나는 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또 급진 정통이라는 새로운 신학적 흐름을 낳은 중요한 신학자인 존 밀뱅크를 처음 한국어로 만날 수 있다. 나아가 자본과 권력, 욕망의 도구가 되어버린 한국교회에 대한 냉혹한 비판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