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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며
1부 우리 안의 언어, 우리 밖의 언어 1. 우리는 모두 말에 관심이 있다 2. 언어 차이와 그 너머 2부 나를 비추는 언어 1. 시간의 언어 2. 공간의 언어 3. 침묵의 언어 4. 비밀의 언어 5. 이주민의 언어 6. 세계의 언어 7. 한국어 배우기의 어제와 오늘 8. 인공지능과 언어를 문을 닫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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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오늘’의 우리말은 ‘어제’의 우리말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말의 실체는 어제의 말로부터 이어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낯선 이의 시각, 이방인들의 말을 옆에 나란히 놓음으로써 더 또렷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문을 열며」중에서 생각이나 개념의 틀은 어떤 정답과 같은 표준형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틀에 정답은 없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가능한 틀이 내게도 가능한 틀이 될 수 있고, 내게 가능한 틀이 타인에게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틀, 우리의 언어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 태도를 소통의 출발점으로 삼아보면 어떨까요? 여기서부터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이 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어 차이와 그 너머」중에서 타문화권의 사람들이 우리의 시제 체계나 시간에 대한 관념 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탓이 아님을 앞서 여러 사례들로부터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언어 현상이란 애초 내가 가진 최초의 직관 외엔 원초적으로 이해 불가한 영역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표현과 그들 고유의 특별한 말씨에 대한 관용과 수용의 태도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시간의 언어」중에서 옳고 그름이라는 단순한 규범성의 잣대로 “주사가 들어가십니다”를 평가하기엔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온 한국인의 의식 세계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저 무조건 간호사들의 말씨를 이상하다고 폄하할 일만은 아니라는 거죠. 네, 한국어에는 오래전 한국인으로부터 현대의 한국인에 이르기까지 공유되어온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간호사의 “주사가 들어가십니다”에서 그 뭔가의 실체를 여러분도 어렴풋하나마 짐작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공간의 언어」중에서 결혼 이주 여성, 이주 노동자, 귀국 동포(조선인, 고려인 등), 중도 입국 자녀, 탈북자 등 다문화 배경 화자들의 인적 구성이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 이러한 한국어 몸짓 언어가 갖는 의미는 더욱 다채로워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 다문화 배경 화자들의 몸짓언어에 대한 인식이 좀 더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이러한 언어문화 배경의 다양성, 한국어 의사소통의 특성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될 때 비로소 면접을 주관(?)하는 인공지능의 최종 결과 값은 차별이 배제되고 공정을 지향하는 결과 값으로서 우리 모두가 신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침묵의 언어」중에서 내 안에서 진정한 ‘나’에 속했던 부분은 어디까지이고, 또 원래 ‘타인’에 속했던 부분은 어디까지일까요? 타인과의 만남에서 창조된 언어에는 내가 어디까지 어떻게 드러나 있을까요? 타인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이런 문제들을 살피고 다양한 빛깔을 내는 언어를 통해 그 답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를 이해해나가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주민의 언어」중에서 언어에는 개인 차원의 여정과 사회의 변천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한국어라면 한국인 개인의 모험과 한국 사회의 변천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영향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을 테고요. 다만 벽에 걸린 그림처럼 그것이 한순간 뚜렷하게 짠하고 드러나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어찌보면 언어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담고 있지만 어느 한순간도 그 전체가 우리 눈에 훤히 보인 적은 없는 작은 그릇과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어 배우기의 어제와 오늘」중에서 현재가 어떤 시대로 규정되든 우리의 말은 시대의 결을 따라 색색으로 짜여 매듭을 만들고 그대로의 우리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과 더불어 우리가 잘 모르는 한국어의 빛깔, 어제와 오늘을 엮어온 그 모습이 어쩌면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문을 닫으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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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감해진,
우리도 몰랐던 우리말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야, 특히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덜하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말이다. 지금도 일상에서 어려움 없이 잘 쓰고 있고 실컷 향유하고 있는 우리말을 굳이 더 깊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 더 이상 해명할 것이 없어 보이는 한국어를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우리말에 관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의식을 갖게 해준다. 필자는 언어야말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볼 수 있어야 그 안에 숨겨진 고유한 면면을 관찰할 수 있고, 그것이 문화와 결합해서 언어라는 세계가 품고 있는 다채로운 관계를 통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언어’라는 도구로 우리 스스로를 비추어볼 수 있도록 ‘시간의 언어(시제 체계나 시간에 대한 관념 차이)’, ‘공간의 언어(움직임, 방향, 시점, 관점에 따른 공간의 인식)’, ‘침묵의 언어(비언어적 의사소통이 불러오는 해석 차이)’, ‘비밀의 언어(은폐와 전달을 넘어 전승에 이르기까지)’, ‘이주민의 언어(문화와 언어의 만남)’, ‘세계의 언어(세계 속 한글의 가치와 사용의 역사)’ 등 다양한 시각에서 우리말을 조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말 때문에 공부를 잘한다?” 인간의 사고를 결정하는 언어의 속살 “언어가 생각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일례로 이 책에는 우리말의 쉬운 수사 구조 덕분에 우리나라 미취학 아동이 영어권 미취학 아동에 비해 연산 능력이 앞선다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해놓았는데, 이런 연구 결과로부터 우리말의 구조가 구체적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해준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정말 인간의 사고방식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이 책은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느 원주민의 언어에는 ‘왼쪽’, ‘오른쪽’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며 이들은 오로지 ‘동서남북’의 방위만을 사용해 공간과 방향을 표현한다고 한다. 즉 우리라면 “그 컵을 왼쪽으로 조금만 옮겨줘”라고 표현할 것을 이 원주민들은 “그 컵을 남남북쪽으로 옮겨줘”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 원주민들이 언제 어디서든 손가락으로 방위를 가리킬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문화와 언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오랜 기간 훈련시켰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른 언어권 사람들보다 뛰어난 측면(이를테면 연산 능력, 다양한 색깔 표현력 등)이 있다면 우리 언어에 기본적으로 그와 관련된 개념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틀에 익숙한 사람은 의외로 자신이 가진 틀이 감추고 있는 측면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언어라는 세계》는 이런 사례를 통해 같은 사건을 두고도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쓰는 언어에 의해 편향된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해줄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틀, 우리의 언어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의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 지점에서부터 진정한 소통의 출발점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