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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본집]
길 선생 정려를 지나면서
월영대에서
서당에서
태안에서 새벽에 거닐며 경명 형님이 그리워
독서당 뒷산에 올라 임형수에게
저물녘에 거닐며
황중거의 방장산 유록에다
농암 선생께
반악의 전기를 읽고서
백운동 서원의 여러 학도들에게
도연명의 시집에서 [음주]이십 수를1ㆍ2ㆍ3
화담집 뒤에다
붉은 복사꽃 아래에서 김계진에게 1ㆍ2
셋집에서 일찍 일어나
꿈속에서도 날 보고 싶어 시르르 지었다는
용수사에서 농암 선생께
인간 세상의 참된 사내
도학을 가론하며
연말이라 집으로 돌아가는 제자들에게
서재에서 1ㆍ2
도산서당
언덕을 넘어 서당에 이르며
김을 빨리 맨다고 뿌리를 남겨서야
꿈속에 궁궐 들어가
잘못된 책을 불태웠다는 소식을 듣고
역동서원이 이루어졌기에
말세의 학문들은
고향 서재에 작은 매화가 피었다기에 1ㆍ2
서울에서 내가 매화에게
매화가 나에게

[외집]
조사경이 병 때문에 청량산으로 1ㆍ2
들못
김유지의 탁청정에 걸라고 시를 지어 부치다
율곡에게 지어 주다
산에서 나온 다음날 황중거에게 1ㆍ2
계재에서 정자중에게 부치다
신해년 이른 보에
금문원의 심경 절구에 차운하다 1ㆍ2
조사경을 생각하며
정원의 매화
조사경에가 부치다 1ㆍ2
조사경이 부용봉을 읊은 1ㆍ2
유이득이 그린 두 마리의 소 그림에다 쓰다
한사형과 남시보의 시에 차운하여 답하다
계장에서 백강이 찾아온 것을 기뻐하다 1ㆍ2

[별집]
곤양에서 관포 어득강 선생이 지은 1ㆍ2ㆍ3
곤양에서 어관포 선생을 모시고
꿈속에서 지은 시에 보태어 짓다
형님이 진홀경 차관의 임무를 띠고
전의현 남쪽을 가다가 산골에서
남경림이 원접사의 종사관이 되어
청심루에 묵다
꿈을 적다
양생론
선조의 묘에 술을 뿌려 제사지내며
한윤명이 내 글씨를 구하기에 1ㆍ2ㆍ3ㆍ4ㆍ5

[부록]

저자 소개 1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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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 李滉 (1501-1570)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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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79쪽 | 210*297*20mm
ISBN13
9788994678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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