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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 시문학선

책소개

목차

등불 아래서 글을 보면
배천 시냇가에서 달빛에 술잔을 기울이며
성산에서 강릉을 향하여 가다
예안을 지나가다 퇴계 이선생을 뵙고
국화 꽃잎을 술잔에 띄우고
강복사의 석불
시를 재촉하는 비
고산 황기로의 죽음을 슬퍼하며
청송 선생의 은거를 찾아가서
개천으로 돌아가는 토정 이지함을 송별하다
상산동에서
청송 선생을 곡하다
오원역에 쓰다
하수에 이르러 탄식하다
연경 가는 길에서 아우에게 부치다
늙은 스님의 시축에 쓰다
유명 스님이 매우 귀찮게 시를 지어 달라고
금강연
다시 월정사에서 노닐다
내산에 들어가려다 비를 만나고
산인 에게
산인의 시축에 차운하다
다시 충악산에서 노닐고 내산으로
산인 설의 에게
상산동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옛일이
어떤 스님이 시를 지어 달라고 하기에
심장원에게 주다

율곡전서 권2
정철이 약속을 해 놀고도 집에 있지 않아서
구월 보름밤에 달을 보고
퇴계 선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의령감 윤조의 죽음을 슬퍼하며
퇴직을 간청하여 허락받고 임금 은혜에
세 번이나 상소한 뒤에 물러나길 허락받고서
황해도 관찰사로 나가면서 안뇌경이
김장생이 석담에 찾아와 글을 배우다가
인감 스님이 시를 지어 달라고 하기에
사암 상공께 올리다
비오 ㄴ뒤에 송대립이 보낸 시에 차운하다
배 안에서 남산을 바라보며
눈 속에 소를 타고 성혼을 찾아갔다가
한데 앉아 달빛에 술을 마시다
소리꾼 벽도가 홍을 돋우어
호연정 술자리에서 운수 스님에게 지어 주다
스님에게 주다
은병정사의 학도들에게 부치다
서울을 떠나 해주로 내려가면

율곡전서 습유 권1
청감당에서 중온의 시에 차운하여
보산역에 쓰다
국화를 심다
인정과 법은 나란히 하기 어려워
고향으로 가는 길에
스님의 두루마리에 차운하다
경혼에게 주다
승지 정유일을 곡하다
천연스님에게 지어주다

부록
연보

저자 소개 1

율곡 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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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珥, 석담, 숙헌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는 1536년(중종 31) 오죽헌에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강릉이고, 고향은 파주 율곡으로, 그는 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모두 아홉 번의 과거에 합격하고 그중 일곱 번 장원하였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적인 정책 제안서인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제출하지만 그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망한 그는 관직을 떠난다. 이후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는 1536년(중종 31) 오죽헌에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강릉이고, 고향은 파주 율곡으로, 그는 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모두 아홉 번의 과거에 합격하고 그중 일곱 번 장원하였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적인 정책 제안서인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제출하지만 그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망한 그는 관직을 떠난다. 이후 은거와 출사, 사직을 반복하다 38세에 홍문관 직제학으로 다시 중앙 정치에 복귀한다. 이듬해 정3품 우부승지가 된 율곡은 기상 이변으로 인해 당황한 선조가 신하들에게 제언을 구하자,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 [만언봉사萬言封事]라는 상소문을 올린다. 그 밖에도 평생 학문과 저술에 힘써 제왕의 지침서인 『성학집요聖學輯要』, 선비들의 기본 교육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 등 많은 저술을 남긴다.

158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해 7월에 「인심도심설」을 지어 바쳤고 『김시습전』을 지었다. 8월에는 형조판서가 되고, 9월에는 의정부 우참찬이 되었다. 선조의 신임을 받아 고위직을 두루 거친 율곡은 병조판서로 있던 1583년(선조 16), 조정에 나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군정을 마음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이유로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개혁안들은 당시 거의 채용되지 못했으나 그의 학문과 경세 사상은 조선 후기의 학자와 정치인들에게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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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63쪽 | 210*297*20mm
ISBN13
9788994678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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