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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서문 감사의 말 미주 참고 문헌 |
Kathleen Stewart
辛海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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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론적인 범주들과 실제 세상 간에 조심스럽게 연결선을 그어주는 믿음직한 안내서가 아니라, 충돌과 호기심과 마주침의 지점 자체다.
---「서문」중에서 일상은 늘 어딘가의 어떤 사소한 일에 주파수가 맞춰진 회로다. (…) 일상은 자아, 의지, 집, 삶이라는 진부한 표현들을 통해 흐른다. ---「주파수 고정」중에서 어머니와 함께 길을 걸으며 다른 집 창문을 힐끔거리던 밤들이 있다. 휴식의 현장 또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사소한 증거 같은 것을 포착하려 애쓴다. 독서용 의자 옆 램프나 자질구레한 것들이 놓인 벽 선반, 뒤집힌 의자 같은 것들. 한 장의 엽서처럼 너무나 고요한 것들. ---「조각들」중에서 기묘하게도 집단적인 감수성은 눈에 잘 띄는 곳에서 펄떡이는 듯하다.어중간한 오후 시간에 어떤 여자가 여자의 집을 방문한다. 방문한 여자와 그 남편은 길 건너에 있는 큰 집을 살까 고민 중이다. 방문객이 여자에게 이웃 중에 잔디에 제초제를 뿌리는 사람이 있는지, 아니면 건조기용 섬유 유연제를 쓰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여자는 먼저 건조기용 섬유 유연제가 무엇인지 방문객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러고 나자 그녀의 머릿속으로 이미지들이 몰려온다. 구름 한 점 없는 날 산들바람에 실려 오는 건조기용 섬유 유연제의 달콤한 냄새, 쨍하니 파란 하늘과 앞뜰에 핀 꽃들, 학교 운동장 잔디밭에 꽂힌, 제초제를 뿌렸다고 경고하는 주황색 작은 깃발들, 윗동네 위도스힐의 잔디밭 넓은 집들 앞에 주차된 잔디밭 제초 회사 트럭들. 여자가 문간에 선 방문객에게 이런 얘기들을 짤막하게 중얼거리지만, 여자의 표정만 봐도 충분한 일이다. 방문객은 곧 싹틀 작은 불안의 씨앗들을 남기고 가버린다. ---「건조기용 섬유 유연제」중에서 여자의 친구인 대니가 한동안 자살예방긴급전화센터에서 야간 담당으로 일했다. 그는 경계선 인격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관심을 받으려고 자꾸만 전화를 걸어댔다. 그들이 벌이는 지루한 놀이에 맞춰주다 보니, 또 그들이 멀쩡하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어떻게든 도우려 하다 보니, 대니는 그들 모두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빠져나가서는 다시 전화를 걸어 와 쥐와 고양이 놀이를 반복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새벽 네 시가 되면 모든 전화가 멈추었다. 대니는 교대할 때까지 남은 두 시간 동안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곤 했다. 경계선들도 얼마간은 잠을 잘 수밖에 없으려니 짐작한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게 시계처럼 정확한 걸 보면, 기묘한 일이었다. ---「경계선들」중에서 세상은 여전히 실험적이고 강렬하고 압도적이고 살아 있다. 좋고 나쁘고의 일이 아니다. 세상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게 아니라, 세상이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나는 세상의 한복판에 있으려 노력하면서, 어쨌든 딱히 믿은 적도 없는 권위 있는 해답들을 손에서 내려놓으려 애썼다. ---「시작」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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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과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마음의 중력
이름도, 실체도 없는 그 힘을 관찰한 실험 일지 이 책은 어떤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실험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세계상世界像에 부합하는 사실들을 밝히고 해명하기보다 다양한 추론과 호기심, 구체적인 상황에 집중함으로써 (…) 가시화되는 여러 힘의 존재에 주목하고자 한다. 하나의 사건이자 하나의 느낌으로서 ‘무언가’가 순식간에 구성된다.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동시에 다른 것을 품어 살릴 수 있는 ‘무언가’가. _서문 중에서 어떤 세계나 체계를 깊이 파고들다 보면 언젠가 미지의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인간은 ‘거기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게 무엇인지 이해하지는 못한다. 대개 사람들은 그런 신비한 물질이나 힘이 대개 저 먼 곳에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주의 총에너지 중 27퍼센트나 차지하고 있지만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암흑 물질’처럼 말이다. 실제로, 반쯤은 눈을 감고도 해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일상 속에도 불가사의한 힘이 숨어들어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류학자 캐슬린 스튜어트가 쓴 『투명한 힘』은 우리의 일상에 (심지어 무수히) 존재하는 작은 미스터리들을 관찰하고 보고한다. 미스터리한 힘들은 거의 무의식적인 단계에서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지만, 너무 작고 순간적인 데다 형태조차 무한히 다양해서 이름을 붙일 방도가 없다. 비유하자면 그 힘들은 인생이라는 우주의 암흑 물질이다. 여기서 무의식적인 원동력이라는 단어는 반사적으로 정신병리학이나 임상심리학을 떠올리게 하지만, 『투명한 힘』은 인간 의식의 내면보다는 그 체계에 공급되는 동력원을 추적한다. 더 정확히는 현대 자본주의 세계의 외곽 부근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내면을 자극하고 이끌어 가는 다양한 반짝임을 관찰한다. 각성의 순간을 텍스트로 재현하며 새로이 탄생시킨 이야기 문학 그렇다면 『투명한 힘』은 자본주의와 인간 욕망의 상호작용을 분석한 책일까? 그렇지 않다. 이름을 얻고 분류까지 마친 사회적·심리적 동력 사이의 역학을 계산하는 일은 사회학자의 몫이다. 인류학자인 스튜어트는 선배 학자들이 새로운 부족을 찾아 정글로 떠난 것처럼 중산층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미개의 순간 속으로 떠난다. 훗날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킬, 그러나 아직은 너무 미약해서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작은 불꽃이 태어나는 순간 말이다. 그 순간을 점화시킬 수 있는 동력원은 자본주의, 가족, 친구, 동네와 도시, 날씨, 학력, 거시경제와 미시경제, 미디어, 독서량 따위를 포함한, 말 그대로 한 인간을 둘러싼 환경 전체다. 그리고 그 순간 태어나는 불꽃 역시 감정, 기시감, 깨달음, 회상, 정신적 발작, 몽상, 희망, 체념 따위의 모든 ‘형태’로 피어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불꽃은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촉발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각성이다. 이 각성의 순간을 담으려는 스튜어트의 도전은 심각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공통점을 찾을 수 없어서 규정지을 수도 없는, 따라서 통칭할 이름조차 가질 수 없는 그 힘들을 어떻게 언어로 담아낼 것인가. 스튜어트는 발터 베냐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필요한 도구들을 가져왔음을 밝힌다. “물질적 세계에서도 여전히 공명하는 꿈의 세계에 관한 그의 파편적 기록, 느슨한 아상블라주로 모인 오브제 조각들, 단편들에 해설을 붙이는 그의 글쓰기 과정, 그리고 대상들로부터 영향을 받기 위해 사고를 대상에 밀착시키는 그의 방식.” 스튜어트는 이와 닮은 도구들을 이용해 자신의 직관을 스냅사진과 같은 현실-광경 속에 침투시키고, 그럼으로써 그 광경 속의 디테일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한다. 이어서 자신의 내면에서 소화시킨 디테일이 하나의 불꽃을 피워올리는 과정을 감지하고 기록한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가 탄생한다. 즉, 이 ‘인류학 저서’ 속의 이야기-서사는 (인류학 학술 도서에서 기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채집된 것이 아니라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문학이라 보아야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 시와 소설의 아름다움을 가져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류학 보고서 『투명한 힘』은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촉발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각성’을 텍스트의 형태로 재현해야 했고, 따라서 텍스트가 품은 가능성을 최대한 넓게 열어 놓아야 했다. 이 책의 텍스트는 세계를 포착해 욱여넣지 않고 반대로 세계 속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스튜어트의 글쓰기는 이 주제 의식에 완벽히 부합한다. 그녀의 글쓰기는 특정 순간의 뼈대를 빠르게 파악하고 스케치하면서 독자에게 그 이면에 흐르는 심리적인 에너지를 예감케 한다. 이 글쓰기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산문이나 현대 작가들의 시를 떠올린 사람이 그토록 많았던 건 우연이 아니다. 그렇게 『투명한 힘』은 미국 인류학계에, 나아가 인문학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전공 교재로 채택될 정도로 과감한 실험을 완수한 인류학 프로젝트인 동시에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글쓰기의 전범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독특한 책은 틀에 박힌 세계 안에서 맴도는 사고를 깨부술 도끼가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