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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의생활과 도구
18…제1절 쓰개와 모자/ 29…제2절 옷/ 43…제3절 바느질 도구와 빨래 도구/ 52…제4절 신발/ 62…제5절 비옷/ 68…제6절 옷감 짜기 도구 제2장 식생활과 도구 74…식생활과 도구/ 75…제1절 저장에 따른 도구/ 90…제2절 취사도구/ 105…제3절 식품 가공 도구/ 144…제4절 식기(食器)/ 147…제5절 양조(釀造) 도구/ 154…제6절 담배에 따른 도구 제3장 주생활과 도구 162…주생활과 도구/ 168…제1절 주먹돌과 정주석/ 171…제2절 지붕 이기와 도구/ 182…제3절 청소 도구/ 188…제4절 난방 도구/ 197…제5절 조명 도구 제4장 생산·생업과 도구 206…제1절 산야의 생활에 따른 도구/ 219…제2절 사냥 도구/ 225…제3절 가축 사육 도구/ 235…제4절 밭갈이와 파종 도구/ 262…제5절 밭매기 도구/ 270…제6절 거름에 따른 도구/ 275…제7절 수확과 탈곡 도구/ 305…제8절 그물질 도구/ 333…제9절 낚시질 도구/ 352…제10절 해녀들의 도구와 어부들의 도구/ 379…제11절 잔손질에 따른 도구 제5장 운반과 도구 392…운반과 도구/ 396…제1절 육상 운반과 도구/ 436…제2절 해상 운반과 도구 제6장 사회생활과 도구 454…제1절 계량(計量) 도구/ 456…제2절 놀이 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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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은 ‘새’(띠)로 엮어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이다. 제주도 동부지역 사람들은 밤에 ‘바령밧’에서 마소를 돌보는 동안 잠잘 때 야외 침구로도 사용하였다. ‘바령밧’은 봄부터 가을까지 소를 밤에만 일정한 밭에 가두어 놓고 소의 배설물로 거름을 얻는 밭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장’은 제주도 동부지역 남자들이 입는 수가 많았다. 구좌읍 송당리 김영근(1933년생, 남) 씨에게 ‘우장’에 대하여 가르침받았다. ‘우장’을 만들 ‘새’(띠)를 음력 9, 10월 중에 베어냈다. 눈[雪] 맞았던 ‘새’는 여려서 ‘우장’을 만들 수 없었다. ‘새’는 ‘배설’(고갱이)과 ‘너울’(잎)로 구성되었는데, ‘배설’을 제거하였다. ‘배설’을 제거하는 일을 ‘너울 볼른다’고 하였다. ‘우장’ 안쪽에는 ‘선코’와 ‘고른코’가 있는데, ‘선코’는 20∼25개, ‘고른코’는 40∼45개 정도였다. 그리고 우장 ‘짓’(옷깃)에는 수꿩 ‘장꼴리’(꼬리깃) 3개를 곁들어 넣었다. 이는 ‘바령밧’에서 밤잠을 자는 동안에 벽사(?邪)의 힘을 발휘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 p.64 ‘미녕솔’은 ‘미녕’(무명)을 짜려고 베매기할 때 실올에 풀을 먹이는 솔이다. 이것은 안덕면 감산리 오임규 씨의 어머니(1916년생)가 감산리 민속자료실에 기증한 것이다. ‘미녕솔’은 순비기나무 뿌리를 뭉뚱그리고, 손잡이 자리에 베 조각을 씌우고 ‘촘정동’(댕댕이덩굴의 일종) 줄로 묶어 만들었다. 1950년대에 안덕면 사계리 김 씨에게 하루 품삯을 주고 만들었다. ‘미녕솔’에 해조류인 가시리 풀을 적시고 ‘미녕실’(무명실)에 먹이는 경우가 많았다. --- p.71 ‘배수기’는 죽을 쑤는 동안 고르게 끓게 하려고 죽을 휘젓는 나무 방망이인 죽젓광이이다. ‘배수기’를 달리 ‘남죽’, ‘날술’이라고 일렀다. 이것은 안덕면 감산리 민속자료실에 있는 것이다. ‘사오기’(벚나무)로 만들었다. 제주도 ‘배수기’는 죽을 쑤는 동안에는 물론 보리밥을 짓는 동안 물이 골고루 감돌게 하려고 저어줄 때, 보리나 콩을 볶으면서 골고루 볶아지게 저어줄 때, 그리고 콩죽을 쑬 때 죽이 솥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저어줄 때도 쓰였다. 그리고 ‘배수기’는 이사할 때 가지고 가지 않는다는 속신(俗信)도 전승되었다. --- p.96 ‘방엣귀’는 ‘남방아’에서 곡식 따위를 빻거나 찧을 때 쓰는 절굿공이다. 이것은 서귀포시 대포동 이지환(1925년생, 남) 씨 집에서 대물림받아 쓰던 것이다. 두 개 모두 ‘가시낭(가시나무)’으로 만들었다. 가운데 목 좁은 데가 손잡이다. ‘방엣귀’ 두 개의 길이가 다르다. ‘큰 메누린 큰 방엣귀, 족은 메누린 족은 방엣귀’라는 노랫말이 제주도에서 전승되듯 사람의 키에 가늠하여 ‘방엣귀’를 만들었다. --- p.117 ‘낭갈레죽’은 나무로만 만든 가래라는 말이다. ‘눌’(露積)이나 지붕의 모양을 내려고 튀어나온 데를 때려주는 도구로 쓰이는 수가 많았다. 이것은 제주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낭갈레죽’은 ‘솔피낭’(쇠물푸레나무)으로 만든 것이다. 지붕을 이기 전에 ‘어욱’이나 ‘새’ 따위를 한 줌씩 지붕 밑에 욱여넣었다. 이런 일을 ‘집알 박는다’라고 하였다. ‘집알’은 지붕 아래쪽이라는 말이다. ‘집알’이 들쑥날쑥한 데를 ‘낭갈레죽’으로 때려주며 일정하게 끝을 맞추어주었다. 이런 일을 ‘집알 거시린다’라고 하였다. ‘낭갈레죽’은 더러 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도구로도 쓰였다. 한 사람이 이것의 날로 흙을 먹이면, 두 사람은 목에 묶인 줄을 잡아당기며 흙을 파헤치는 수도 있었다. 특히 무덤의 봉분을 만들 때 이런 일을 많이 하였다. --- p.180 ‘글갱이’는 나뭇잎이나 검불 따위를 긁어모으는 갈퀴이다. 애월읍 상가리 변○○(1922년생, 남) 씨 집에서 쓰던 것이다. ‘글갱이’ 자루에 6개의 철사를 끼우고 끝을 구부리고 부챗살 모양으로 휘어 철판으로 고정하였다. 그리고 그 중간에 나뭇조각을 가로 붙이고 칡넝쿨로 얽어매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것으로 땔감으로 쓸 솔잎을 긁어모으는 도구로 쓰이는 수가 많았다. 이 마을 ‘동노왓’·‘앞동산’·‘뒷동산’에는 소나무가 울창하여 솔잎도 많이 떨어졌다. 이웃 마을 사람들도 솔잎을 구하러 이곳까지 왔을 정도였다. 음력 9월부터 섣달까지 ‘글갱이’로 솔잎을 긁어모으고, 크게 뭉뚱그려 묶어 지어왔다. 그것을 두고 ‘보달’이라고 하였다. --- p.216 ‘멜망텡이’는 주로 남자들이 씨앗을 흩뿌려 파종할 때, 씨앗을 담고 둘러메고 다니는 망태기이다. 이것은 제주대학교박물관에 있는 것이다. 억새꽃 껍질로 망태기를 짜듯이 만들었는데, 부리에는 끈이 달렸다. 달리, ‘씻망텡이’라고도 한다. ‘멜망텡이’를 왼 어깨에 걸어 메고, 오른손으로 씨앗을 집어내며 뿌린다. 제주도 농작에서 메밀만 점점이 파종하고, 나머지는 거의 흩뿌렸다. 씨앗을 뿌릴 때는 다섯 ‘고지’(이랑)를 한 폭으로 잡고 뿌렸다. 이런 일을 ‘고지 잡앙 삔다’고 하였다. 특히 씨앗을 뿌릴 때만은 다섯 ‘고지’ 중 좌측으로 두 번째 ‘고지’와 세 번째 ‘고지’ 사이의 고랑을 따라 걸어가며 어깨 밑에서 위로 반원을 그리며 뿌렸다. --- p.261 ‘검질조갱이’는 조천읍 북촌리와 구좌읍 행원리 일부 농경지에서 ‘조갱이검질’을 매는 자그마한 전복 겉껍데기이다. ‘조갱이검질’은 ‘조갱이’로 매는 ‘검질’(김)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구좌읍 행원리 홍복순(1931년생, 여) 씨가 가르쳐 준 것이다. 조천읍 북촌리와 구좌읍 행원리에서는 ‘조갱이’로 밭에서 김을 매는 수도 있었다. 구좌읍 행원리 ‘질왓’ 지경과 조천읍 북촌리 서우봉(109.5cm) 지경의 밭은 흙이 차졌다. ‘질왓’은 물이 고이는 ‘물왓’보다는 물 빠짐이 좋기는 하나 점토질의 밭이어서 질었을 때는 몹시 흙이 차지는 밭이라는 말이다. ‘골갱이’(호미)로 ‘검질’을 매려고 해도 그것이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미끄러질 뿐이었다. 곡식의 줄기가 상하지 않게 그 틈새로 긁어야 했으니, ‘조갱이’로 긁어 매는 수가 있었다. --- p.267 ‘덕그물’은 갯가 언덕에서 물고기를 잡는 그물이다. 낭떠러지 해변으로 이루어진 마라도에는 천연 포구가 없었다. 그러니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면서도 섬사람들은 먼바다로 나갈 수 없었다. 때문에, 마라도 사람들은 조간대와 그 가까운 어장에서, 그리고 뭍에 올려 두었던 0.5t 정도의 배를 타고 가까운 바다에서 어로 활동을 펼치는 게 고작이었다. 대신 낭떠러지를 이용한 그물이 전승하였으니, 이를 ‘덕그물’이라고 하였다. 낭떠러지도 굽이가 있다. 뭍 쪽으로 들어온 곳이 있으니 쑥 내민 곳도 있다. 쑥 내민 두 곳에서 그물을 드리우거나 끌어올렸다. 이와 같은 곳은 모두 ‘덕그물’ 어장이나 다름없었다. 마라도에는 ‘덕그물’ 밭이 많았다. ‘덕그물’은 ‘자리덕’, ‘남대문’, ‘물내리는덕’, ‘섬비물’, ‘고래미통’, ‘알살레덕’, ‘남덕’, ‘올한덕’에서 이루어졌다. 그물 양쪽에 줄을 묶어 돌출 점 한쪽에서 드리워가는 대로 맞은편에서 잡아당겼다. 저녁에 그물만 ‘덕’ 아래 물속에 쑥 잠기게 밧줄을 좌우 돌출 지점에 묶어 뒀다가 아침에 잡아당기며 걷어 올렸다. 실로 ‘덕그물’은 마라도다운 그물이었다. --- p.322 ‘무지개’는 ‘물허벅’을 지어 나를 때 쓰는 물받이다. ‘무지개’는 헝겊을 여러 겹으로 촘촘히 누벼 배자처럼 만든 것이다. 빨래하러 가면서 구덕을 등에 질 때 옷 위에 걸쳤다. 그래야 물을 등에 지고 걸어가는 동안에 웬만큼 물이 ‘허벅’에서 튀어나오더라도 ‘무지개’에 스며들어버려 옷이 젖지 않았다. --- p.414 ‘이바지차롱’은 큰일을 치르고 나서 사돈집 등에 음복용 음식을 담고 가는 대그릇이다. 이것은 제주시 삼양동 변규서(1938년생, 남) 씨가 만든 것이다. ‘이바지차롱’은 씨줄 대오리인 ‘고른놀’은 15개, 날줄 대오리인 ‘선놀’은 13개로 구성되었다. ‘이바지차롱’은 ‘맨촌차롱’ 중에서는 가장 큰 것이다. 혼사 때 손님에게 대접할 삶은 돼지고기 썬 것을 담아두는 그릇으로도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아바지차롱’ 하나 값은 김매기 4일 노동으로 계산하는 수도 있었다. --- p.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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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는 일할 때 쓰는 연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래도 이 글에서는 옷과 신발 따위도 도구의 범주에 넣는다. 이 책에서 다루는 도구는 원초 경제사회 때의 것들이다. 원초 경제사회란 백성들이 삶에 필요한 자원을 자연에서 마련하며 살았던 시대이다. 제주도에서 원초 경제사회는 언제까지 이어져 왔을까. 1968년 9월 21일, 제주도농촌지도소에서는 제1회 경운기 교육수료식이 있었다. 이때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하나둘 쟁기 대신 경운기로 밭을 갈기 시작하였다.
쟁기가 원초 경제사회 시대의 도구라면, 경운기는 개발 경제사회 시대의 도구였다. 쟁기는 자연에서 마련한 소재로 한 농부가 처한 농토에 맞게 만든 것이라면, 경운기는 한국의 경운기 공장에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똑같은 구조로 만든 것이었다. 제주도 도구는 제주도 사람들이 원초 경제사회 때 제주도 풍토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제주도 자연에서 마련한 것들이다. 그러니 원초 경제사회의 도구는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당당한 유산이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 〈의생활과 도구〉에서는 쓰개와 모자, 옷, 바느질 도구와 빨래 도구, 신발, 비옷, 옷감 짜는 도구로 분류하였다. 제2장 〈식생활과 도구〉에서는 음식의 재료나 음식물 저장에 따른 도구, 취사 도구, 식기, 양조 도구, 담배에 따른 도구들이 담겨 있다. 제3장 〈주생활과 도구〉에는 ‘주먹돌’과 정주석, 지붕 이기와 도구, 청소 도구, 난방 도구, 조명 도구로 분류했다. 제4장 〈생산?생업과 도구〉에서는 산야의 생활에 따른 도구, 사냥도구, 가축 사육 도구, 밭갈이와 파종 도구, 밭매기 도구, 거름에 따른 도구, 수확과 탈곡 도구, 그물질 도구, 낚시질 도구, 해녀들의 도구와 어부들의 도구, 잔손질에 따른 도구를 수록했다. 제5장 〈운반과 도구〉에서는 육상 운반 도구의 해상 운반 도구로 분류했다. 제6장 〈사회생활과 도구〉에서는 계량 도구와 놀이 도구를 살폈다. 500쪽이 넘는 분량에 300점이 넘는 도판을 수록한 이 책은 각 도구의 형태와 쓰임뿐만 아니라 제주만의 독특한 환경에 따른 지혜로운 생활사를 살피고 있다. 방대한 조사와 충실한 기록, 그리고 제주 전통사회 서민들의 삶에 대한 존경과 애정에서 비롯한 결과물로서 ‘제주 도구 사전’이라 할 만하다. 2022년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총서 발간사업의 지원을 받아 출간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