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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자살이란 무엇인가? 제1부 어떤 방법으로 죽는가? 죽음도 기술이다 자살도 전염된다 집단 자살은 왜? 제2부 무엇 때문에 죽는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치욕 혹은 수치 명예와 군법 희생적 자살 사약 같은 자살 명령 지나친 충성, 과도한 신념 전쟁과 혁명의 와중에서 카지노 도박과 파산 부당한 대우 정신병 미신과 주술 죽음으로부터의 초대, 신의 심판 제3부 어떤 사람들이 자살하는가? 제4부 어떤 장소를 물색하는가? 제5부 자살 충동을 유발하는 사회 예방 대책이 있는가? 자살 도우미가 된 사람들 자살을 억제하는 법률 자살과 돈 얼마나 많이 죽는가? 제6부 참 불가사의한 일들 자살에 영향을 주는 요소 자살자의 유언 동물의 자살 제7부 범죄를 감추기 위한 자살 자살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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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는 귀를 면도칼로 잘라 창녀에게 준 것으로 봐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자살을 정신착란 때문이라고 해야만 할 것인가. 이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은 저널 〈퐁투아즈〉의 짧고 간단한 문장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1890년 7월 27일, 일요일. 37세의 반 고흐라는 네덜란드인 풍경 화가가 밭에서 자신의 몸에 총을 쏘았다. 부상을 입은 채 집으로 돌아간 그는 다음 날 사망했다.”
역사를 대강 훑어보더라도 어느 시대에나 늙는다는 것은 최고의 불행이라고 생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살하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설명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딸과 사위 폴 라파르그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 부부는 70살이 넘어서는 살지 않겠다는 데 의견이 일치해서 자살했다. 그들이 마지막에 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나는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다. 삶의 기쁨을 모두 빼앗고, 육체적 정신적인 힘을 잃게 하는 늙음이 나의 에너지를 마비시키기 전에 나는 자살한다.” 1960년대 초 파리에는 〈자살 실패자 클럽〉이 있었다. 그 클럽의 신조는 삶의 의욕을 되찾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 클럽에서는 자살에 실패한 사람들이 모여서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만남의 기쁨을 즐기고 서로 개인적인 자살 체험을 이야기하고, 아직까지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그 클럽의 입회 조건은 오직 한 가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일요일 밤, 회원 중에서 특히 건강 상태가 나쁜 사람 집에 모입니다. 그리고 4시간 동안, 건강 상태를 회복시켜 달라고 신께 기도합니다. 건강이 나아지는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자살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사람을 죽일 사람을 뽑습니다. 지난 4월 26일에는 조지 불루테인백이라는 회원의 집에 모였습니다. 기도를 해도 그 사람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에 그는 지하실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 전주 일요일에, 우리는 우리 오빠 집에서 모임을 갖고 오빠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화요일에 나는 오빠에게 회원으로서의 의무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오빠는 총으로 머리를 쏴서 자살했습니다.” 사랑을 얻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던 마릴린 먼로는 자살하기 전에 많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녀의 고뇌에 가득 찬 호소를 듣고서 상황이 급박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첫 번째 남편 디마지오와도, 두 번째 남편 딘 마틴과도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함께 밤을 지내기로 약속했던 홍보 담당 패트 뉴캄도 없었다. 프랭크 시나트라와는 통화를 했지만, 그는 “횡설수설하지 마”라고 소리 지른 후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날 밤 내내 마릴린 먼로는 수십 명의 친구와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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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끊은 자리엔
살아 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삶과 죽음이라는 동전의 양면에 도사리는 어두운 그림자, 자살. 자살은 말 그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음’이다.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 생명의 태동과 가슴의 고동, 머리를 들이밀고 마주쳤던 눈부신 세상과의 모든 끈을 끊어버리는 행위다. 세상은 자살을 끊임없이 경계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들을 통해 살아 있는 ‘나’를 본다. 살아 있기에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동정할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 빛이 있기에 어둠이 존재하듯 우리는 자살을 통해 삶과 죽음을 반추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살을 생각하고 그중 누군가는 굳은 마음으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 모두가 결심을 직접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실행에 옮긴이들, 세상은 그들을 향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자’라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살자라는 꼬리표 뒤에는 그가 살아 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존재한다. 나와 같이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울고 웃고 떠들던 사람. 떨어지는 꽃잎이 슬픈 건 그것이 아름답게 피어 있던 과거의 기억 때문인 것처럼, 죽은 자를 향한 슬픔은 살아생전 그에 대한 생생한 기억 때문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살률 1위 대한민국에서 자살은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기억 속 ‘그’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시대와 세대와 인종을 넘나드는 자살. 그늘 속에 숨겨 감추는 것이 아닌 그 속으로 들어가 자살의 생생한 속살을 들춰보는 작업은, 10년 연속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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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나는 읽으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고,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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