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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서문 1장.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2장. 거짓말의 윤리 3장. 나에게 하는 거짓말 4장. 거짓말과 우정 5장. 거짓말의 정치 6장. 우리 안의 거짓말 참고 문헌 감사의 말 역자의 말 추천사 |
Lars Svend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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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거짓말한다. 모두가 거짓말을 비난한다. 우리는 거짓말이 잘못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한다. 실제보다 잘나 보이고 싶거나 못나 보이기 싫어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 또는 곤란과 불편을 면하기 위해서 거짓말한다. 때로는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거짓말을 한다. 특히 상대가 기분 상하는 일을 막기 위한 거짓말을 많이 한다. 타인을 위한 거짓말인지 자신을 위한 거짓말인지 구분이 어려울 때도 많다. 그 경우 우리는 남을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일 때가 많다.
---「서문」중에서 진실성의 반대말은 한 가지가 아니라 셋이다. 트루시니스, 개소리, 거짓말. 이 책의 주된 초점은 이 셋 중 마지막 것을 파헤치는 것이다. 다만 거짓말의 많은 측면이 트루시니스와 개소리에도 해당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1장. 거짓말이란 무엇인가」중에서 그런데 예수회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약속은 약속한 시점에 약속을 지킬 의도가 있었을 경우에만 구속력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내가 “XX를 하겠다고 약속합니다.”라고 말해 놓고 몰래 혼잣말로 이렇게 덧붙인다면? “내키면.” 그러면 나는 그 약속에서 완전히 풀려난다. 하지만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발뺌 전략에 불과하다. 거짓말은 용납 불가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고안된 것이라지만, 사실상 거짓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2장. 거짓말의 윤리」중에서 누군가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현실 접근을 차단하는 일이다. 착한 거짓말, 못된 거짓말 모두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거짓말은 상대의 자유를 박탈한다. 거짓말은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된다 해도 상대가 주변이나 자신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통찰을 막는다. 반면 진실은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진실은 그가 인생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보여 줄 수 있다. 때로 진실은 우리에게 고통스럽거나 심지어 파괴적인 결과를 부른다. 그래도 상대가 진실을 감당하기 역부족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2장. 거짓말의 윤리」중에서 앞서 언급했듯 거짓말은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가져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즉 실상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것이 거짓말과는 어떻게 다른지 따져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거짓말을 믿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 하면 된다. 자기기만이 자신에 대한 기만만은 아니다. 배우자가 실제로 바람을 피웠고, 냉철하게 봤을 때 배우자의 불륜을 말하는 증거들이 명백한데도, 배우자의 결백을 믿는 경우도 있다. 이런 지식은 흡수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환상에 매달리는 것이 더 편하다. 사실 이런 유형의 자기 기만도 비록 간접적이지만 자신에 대한 것이다. 타인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것이니까. ---「3장. 나에게 하는 거짓말」중에서 예컨대 미국이 베트남전 확전의 명분으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이 사실은 조작이었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국방부의 기밀문서,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가 극비에 붙여졌던 것은 베트콩이 베트남전의 전황을 아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베트콩이야 이미 전황을 훤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미국 국민이 아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문서의 내용이 알려지면 반전운동이 격화될 것이 뻔했다. 이때의 비밀주의는 행정부 통제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할 대상에 관한 대중의 알권리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5장. 거짓말의 정치」중에서 ‘모두가 언제나 거짓말하는’ 사회가 가능할까?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과장된 표현이다. 하지만 아렌트의 요점은 이것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거짓말이 너무나 만연해져서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어지고, 개인들은 현실감각을 잃는다. 전체주의는 사회적 공간을 허물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분도 없앤다. 아렌트는 이것을 ‘집단적 고독(organized loneliness)’이라 부른다. ---「5장. 거짓말의 정치」중에서 자기 말이 허위라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 트럼프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비판을 제기한 사람을 아무 근거 없이 믿지 못할 사람으로 몰아가는 전략을 폈다. 즉 자기 말이 틀렸다는 비판 역시 믿을 수 없으며 따라서 무효라는 식이었다. 알다시피 이 전략은 본인의 신빙성 증진을 위한 전략이 아니다. 비판적 목소리의 신빙성을 꺾기 위한 전략이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면, 《워싱턴포스트》를 믿는 만큼 트럼프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5장. 거짓말의 정치」중에서 일상의 어느 평범한 날을 상상해 보자. 우리는 가족, 친구, 동료와 대화하고, 이메일을 받고, 신문을 읽고, TV를 보고, 가게 직원에게 주문한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우리는 무엇이 이렇거나 저렇다는 막대한 양의 주장들을 접한다. 이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 우리는 사람들이 당연히 사실을 말하려니 생각한다. 우리는 호시탐탐 거짓말로 서로를 속이려 들지 않는다. 이것이 서로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태도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것이 힘들어진다. 사람들이 대체로 부정직하다고 가정할 경우 평범한 날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 보라. 타인과 뭐라도 함께 도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6장. 우리 안의 거짓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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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란 무엇인가? 빌 클린턴은 사실을 말했지만 거짓말을 했다.
1998년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부적절한 관계는 없다.”고 답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 말은 사실이었다. 클린턴이 이 대답을 한 시점에는 그와 르윈스키 사이에 더는 부적절한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 그러자 기자가 대놓고 물었다. “과거에 이 여성과 어떠한 성관계도 갖지 않았나요?” 클린턴이 다시 대답했다. “성적 관계는 없다. 그건 정확한 사실이다.” 클린턴은 과거의 행동을 특정해서 묻는 질문들에 꿋꿋이 현재 시제로 대답하는 전략을 썼다. 그의 답변은 문자 그대로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진술의 목적은 본인도 허위임을 아는 내용을 대중에게 사실로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진술은 거짓말로 보는 것이 맞다. - ‘1장. 거짓말이란 무엇인가’에서 ‘거짓말이란 무엇일까?’ 거짓말은 진실하지 않은 말일까? 빌 클린턴은 단지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짓말의 반대 개념은 진실(truth)이 아니라 진실성(truthfulness)이다. 바꿔 말하면 이렇다. 내가 거짓말하는지 여부는 내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달려 있지 않다. 내가 내 말을 참으로 믿는지 거짓으로 믿는지에 달려 있다. 왜 그럴까? 진실이지만 거짓말인 경우도 있으니까. 내가 총리와 제1야당 당대표가 바람을 피운다고 말한다 치자. 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로 믿기를 바란다. 이 경우 설사 훗날 두 사람이 (…) 실제로 불륜 관계였음을 밝힌다 해도, 그날의 내 말은 여전히 거짓말이다. 이때의 거짓말은 ‘진실한 거짓말’인 셈이다. - ‘1장. 거짓말이란 무엇인가’에서 저자 라르스 스벤젠은 언뜻 생각하기에 당연해 보이는 ‘진실 혹은 거짓’이란 이분법의 오류를 충분한 이론과 다양한 예시를 들어 부숴 나간다. ‘거짓말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에서 시작해 진실성이 없는 여러 현상들, 진실스러운(truthy) 신념들만 존재하는 트루시니스(truthiness), 진실에 무관심해 보이는 개소리(bullshit) 등을 파헤친다. 거짓말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어떤 이들은 상황에 따라서 거짓말이 허용 가능하며, 심지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스웨덴계 미국인 철학자 시셀라 복의 말처럼, 진실을 말하는 데는 어떠한 정당화도 필요하지 않은 반면 거짓말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정당화해야 한다. 그것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마누엘 칸트는 이유 있는 거짓말 따위는 없으며 ‘하얀 거짓말’이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칸트에 따르면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거짓말도 허용되지 않는다. 칸트의 관점은 우리가 피해자보다 살인마를 배려해야 한다는 말일까? 이 책의 2장에서 다루는 윤리철학의 여러 견해에 귀기울여 볼 만하다. 살인현장이라는 극단적인 경우 말고도 우리는 친구, 배우자, 동료에게 ‘하얀 거짓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순간이 꽤 자주 찾아오니까. 예들 들어 옷차림에 대해, 저녁 식사에 대해, 사장님의 지루하고 눈치 없는 농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을까? 임종을 앞둔 부모님께 그 사실을 감추는 건? 그런데 그게 정말 남을 위한 거짓말일까? 내가 나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뭐 하러 그런 짓을 하는 걸까? “그노티 세아우톤(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져 있던 말이다. 《국부론》의 저자인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기만은 인류의 치명적 약점이다. 인간 삶에 일어나는 혼란의 절반은 이 자기기만에서 비롯된다. 만약 우리가 남들의 시선에서 자신을 본다면, 다시 말해 자초지종을 모두 아는 타인이 우리를 보는 시선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면, 스스로 마음을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그런 시선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자기기만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한 가지 상황을 믿으면서 동시에 믿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어째서 가능한 걸까? 철학자 중에 악명 높은 거짓말쟁이로 판명된 장자크 루소의 사례를 보면, 그가 가장 확실히 속여 넘긴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루소는 아이 다섯 명을 태어나는 족족 보육원에 보내며, 아이들을 위한 결정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속이기도 했다. 루소처럼 심한 거짓말쟁이는 결국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고독이 루소의 회고록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중심 테마다. 라르스 스벤젠은 친구에게 하는 거짓말에 대해 ‘4장. 거짓말과 우정’에 할애해 다뤘다. 친구 사이의 거짓말에 대한 성찰은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에도 유효하다. 가까운 사이의 거짓말은 너그러이 용서될까? 아니다. 신뢰에 기반한 돈독한 관계일수록 거짓말의 형태를 한 신뢰 위반은 심각한 배신행위가 될 수 있다. 거짓말쟁이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플라톤의 견해는 맞는 말이다. 우선, 사람들은 누군가를 거짓말쟁이로 감지하면 그 사람을 기피한다. 사람들은 믿음이 가는 사람들로 주위를 채우고자 한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둘째, 거짓말쟁이도 자신을 남들로부터 차단한다. 남들에게 자신의 내적 자아를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 ‘4장. 거짓말과 우정’에서 국가의 거짓말을 위한 변명들, 그리고 트럼프만 거짓말쟁이는 아니다. “우리의 통치자들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 허위와 기만을 상당히 사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런 수단의 사용이 의술의 범주에 든다고 믿는다.” (플라톤) 진실함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자신에게 유리할 경우 거짓말하고 속일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마키아벨리, 1469~1527) 정치가 진실에 우선하며, 국가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해도 된다. (토머스 홉스, 1588~1679) 정치는 더러운 사업이라서 그 세계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기꺼이 손을 더럽힐 각오를 해야 한다. (막스 베버, 1864~1920) 민주국가의 시민은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당할 권리가 있다. (글렌 뉴이, 1961~2017) 지미 카터는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 카터는 적어도 상습적 거짓말쟁이는 아니었지만 절대로 예외적인 존재가 되진 못했다. ‘5장. 거짓말의 정치’에서 정치세계에서 거짓말이 점하는 자리를 살펴본다. 여기서 플라톤, 마키아벨리, 홉스, 베버, 아렌트 등의 사상가들이 두루 거론된다. 역사에서 현실 정치로 눈을 돌려 대통령 임기 4년간 3만 건이 넘는 거짓 주장을 일삼은 도널드 트럼프를 중심으로 국가수반의 거짓말을 냉철히 따져 본다. 그럼에도 본능적 신뢰는 우리가 인간이기 위한 기본 요건이다. “처음부터 상대에게 도둑질과 거짓말의 혐의를 둔다면 삶의 영위가 힘들어지고, 우리의 삶은 망가지고 시들어 버릴 것이다.” (K. E. 뢰그스트루프, 1905~1981) “신뢰는 사회에 내재하는 가장 중요한 합성력 중 하나다.” (게오르크 지멜, 1858~1918) “말이 우리를 속인다면 모든 교류와 소통이 부서지고, 우리가 세운 정치체의 유대가 풀려 버린다.” (몽테뉴, 1533~1592) “사람들은 대체로 믿을 만하다는 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함으로써 이 진실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날린다. 또한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자신의 세상이 점점 더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는 경험을 한다. 이는 좋은 삶이라고 할 수 없다.” (라르스 스벤젠) 끝으로 퀴즈.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짧은 답은 이것이다. OO의 경우 OO의 사람들. 철학자 스벤젠은 거짓과 진실에 대한 이 명민한 책에서 ‘평생 만성적 불신 속에 사는 것보다 그냥 가끔씩 속는 게 낫다.’고 말한다. 또한 사람들은 때로 부정직할 뿐, 상습적 거짓말이 변칙이라는 희망을 유지한다. 그의 성찰은 섬세하고, 결론은 영민하다. 그는 이것을 복잡한 학술용어 없이 해낸다. 철학적인 독자들은 이 책에서 즐겁고 동시에 계몽적인 생각거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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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솜씨 좋은 철학 에세이를 읽는 내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떠올랐다. 만약 밀이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나 《자유론》에서 자신이 예고한 사회의 도래(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를 보았다면, 바로 이런 책을 쓰지 않았을지! 이 책이 우리에게 넌지시 일깨워 주듯이 거짓말은 의도적 기만이라기보다 무지의 소치에 가깝다. 거짓말은 정확성을 기하지 않는 것, 무언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별다른 검증 노력 없이 믿는 것에 기인하니까. 탈진실의 시대 한복판에서, 여전히 우리가 진실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당신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 송민경 (《법관의 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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