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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너와 나의 점심시간 9
1부. 어쨌든 오늘도 교실로 맞춤법의 기쁨과 슬픔 17 초여름 벤치에서 나눈 대화 23 나는 너의 본모습을 알고 있다 28 모두가 좋아하는 시간은 아냐 34 내가 제일이다, 어림없구나 40 놀이는 목숨 걸고 44 선생님이 결석한 날 50 1학년이라는 우주 55 성장의 쑥버무리 61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65 수학이라는 걸림돌 70 어쩐지 과학자가 된 기분 75 그날 아침 우리가 읽었던 『모모』 80 어른의 세계로 달려가고 싶다 85 2부.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어린이 민원 상담실 친구가 혼나면 기분이 좋거든요 93 어린이들의 채무관계 99 일인 일역할 없는 유토피아 106 축구장을 사수하라! 110 너한테만 주는 마이쮸 116 나는 너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 122 빈틈없는 교실의 이면 129 이해와 오해 사이 134 즐거운 체험학습 142 진짜로 즐거운 체험학습 147 대화에는 체력이 필요해 151 마니또를 합시다 156 화도 먼저, 화해도 먼저 161 3부. 너도나도 애쓰는 삶의 현장에서 외로운 아이도 계속 외롭진 않다 169 그럼 언제 놀아? 난 그냥 놀고 싶은데 175 치료받는 아이들 180 우리가 놀면 다 놀이터 186 올해의 한 아이 191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96 비닐하우스 앞의 두 아이 201 자세히 보면 평화롭다 207 불평등의 진화 212 겸손하고 뻔뻔하게 살아갈 수밖에 218 스승 찾기 222 너의 졸업, 나의 졸업 227 에필로그 계속되는 점심시간 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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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급식 먹는 어린이를 처음 제대로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매 순간 저런 노력이 어린이의 학교생활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내 자리에서 애쓰듯이 아이들은 아이들 자리에서 온몸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을. 나 또한 그런 시간을 거쳐 이렇게 어른이 되어 서 있다는 것을.
--- p.12 사람은 나로서 충분한 시절, 내 감각이 주목받고 내 표현이 전부인 시절을 벗어나 나와 같이 빛나는 존재였을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글쓰기로 말하자면 맞춤법이나 호응관계나 문장부호 따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신기한 맞춤법의 세계에서 매끈한 법칙의 세계로 인도한다. 언젠가 이 밋밋한 학교를 떠나 울퉁불퉁하고 멋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기를 기대하면서. --- p.21 교실에서 생활하다보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아이들이 진지한 대화의 상대가 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린이와 대화하는 것은 결코 사소하거나 유치한 일이 아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자잘한 노하우가 학년별로 여러 개 있다. 누가 뭐래도 이것은 당당한 전문성이다. --- p.43 “아파서 그래?” “슬퍼서 그래?” “불편한 거야?” “기분이 나빠?” 수없이 건너오는 이런 말들 속에서 어린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좁은 교실 속 딱딱한 의자에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학교생활에 적응해나간다. 1학년 교실은 우주선 같다. 인생의 긴 항해를 시작한 우주인들이 가득한 우주선. --- p.60 그랬다. 4학년, 5학년, 6학년 아이들은 1학년, 2학년, 3학년을 그냥 거쳐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짜증부리면서 자기 욕구를 이야기할 때마다 가르침을 받아왔던 것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존댓말 쓰기, 내 욕구를 솔직하게 말하되 담백하게 전하기, 다른 사람에게 화내면서 말하지 않기 등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수많은 매너들을 배워왔기에 6학년에 이르러서는 선생님을 감동시키는 초등교양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 p.68 저렇게 놀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체육관과 본관 사이, 에어컨 실외기가 있는 그 비좁은 공간에서 축구를 하기 위해 아이들은 규칙을 만들어내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축구를 한다. 우리가 아니고는 이곳이 그렇게 소중한 축구장이라는 걸 절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 p.114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과 의도를 정확히 모른 채로 행동할 때가 많다. 앞날에 대해 예견하는 것도, 경험에 비추어 다른 사람의 의도를 짐작하는 것도 서투르다. 같은 말과 행동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할 때도 많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마음을 되도록 좋게 해석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 p.140 아이들을 단체로 데리고 학교 밖으로 나와보면 세상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각박한지 알 수 있다. 대중교통에서 마음껏 떠들던 어른들도 아이들 목소리에는 유난히 엄격한 듯하다.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윽박지르고, 담임인 나에게 아이들을 잘 지도하라며 눈을 부라린다. 다른 어른이 떠들 때는 한마디도 못 하면서 아이들 목소리가 모이면 꾸짖고 화를 낸다. 이럴 때는 나도 모르게 아이들과 같은 마음이 되어 어른들을 미워하게 된다. --- p.149 어쩌면 아이들이 마니또를 하자고 하는 이유는 선물이나 맛난 간식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책상 위 음료수, 가방고리에 달린 알 수 없는 쇼핑백, 누군가로부터 날아온 예쁜 쪽지, 사물함에 놓인 작은 선물상자는 우리 모두에게 설렘과 행복의 또다른 이름이니까. 누구나 이름 모를 누군가로부터 조건 없는 친절을 받아보고 싶은 법이다. --- p.159 혹시 오늘 혼자이진 않았는지 묻고, 억지로 친구를 연결해주고,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준 것 같은 친구에게 날을 세우는 것은 결국 어른들의 불안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의 이런 불안을 어린이들은 금방 눈치챈다. 바뀌고 또 바뀌는 관계에 지친 아이들이 쉴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는 것, 당장은 막막하겠지만 지나고 나면 조금 자유롭고 편안한 순간이 찾아온다고 말해주는 것, 그도 아니면 그저 모른 척해주는 것. 어쩌면 어른의 역할은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 p.173 교실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편견과 차별은 일상을 꾸려가는 데 많은 방해가 된다. 아이들은 그런 귀찮은 것들은 걷어내고 얼른 놀기에 바쁘다. 차별도 특별대우도 안 한다. ‘편견 없다’는 말이 아이들에게는 기본값이다. --- p.178 오래된 계단 난간도, 야생 그대로의 언덕도 놀이터로 바꾸어 행복하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럽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러나 분명 내가 거처했던 네버랜드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만들어낸 그 행복을 늘 깨뜨리는 사람이 나인 것 같아서 미안하다. --- p.190 사회의 약자를 대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인식을 벼리지 않으면 언제라도 퇴보의 길로 가기 쉽다. 타자와 자리를 바꿔 내가 쓰는 말을, 내가 쓰는 공간을, 내가 누리는 것들을 낯설게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비교해야 할 것은 옛날과 지금이 아니라 오늘, 나와 타자의 자리다. --- p.217 ‘사랑해요’라는 말이 대뜸 적힌 수많은 카드와 편지. 조금만 친해지면 그려줬던 내 얼굴. 색색의 종이로 접어준 하트와 꽃. 통크게 나눠준 정체불명의 간식. 손등에 붙여준 스티커. 내 건조한 설명이 무색할 만큼 눈부시고 놀라웠던 수업시간 작품들. 이런 것들로 학교에서의 내 일상은 다채롭고 화려했다. 솔직하고 겸손하며 나쁜 일을 잊는 데 선수인 작은 사람들 덕택에 나는 천성적인 우울과 비관을 잊고 많은 순간 낙관적일 수 있었다. --- p.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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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게는 일터, 어린이에게는 삶터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며 함께 무럭무럭 성장한다는 것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어린이 민원 상담실로 출근해 그 대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끝없이 잔소리를 하는 사람. 초등 교사인 저자는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소개한다. 제각기 다른 성격의 어린이들을 한데 모아 딱딱한 의자에 앉혀 매일 반나절의 일정을 함께 보내야 하니, 교실생활이란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만만치 않은 과업의 연속이다. 훌륭한 선생님처럼 능숙하게 수업을 이끌고 싶지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날은 잘 없다. 주목받고 싶어 자꾸 엉뚱한 질문을 하는 아이, 자기 눈에 거슬리면 무엇이든 고발하는 아이, 선생님이 말할 때 똑같은 속도로 혼잣말을 하는 아이 등 교실 속 아이들은 다양한 행동으로 선생님을 시험에 빠뜨린다. 가끔 체력이 올라오는 날에는 어린이의 심리적 허기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하고 아이들과 각축전을 벌이다 씁쓸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후회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다음날 실패와 후회를 또다시 반복하며 어쩐지 완벽한 선생님의 모습과는 점점 멀어져 간다. 교실생활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속 시원한 결말이나 해답이 없다. 툭하면 불거지는 돈 문제부터 점심시간 운동장 축구 자리싸움,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문제, 바뀌고 또 바뀌는 관계의 양상에 지치는 마음까지,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사실 하나하나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다. 이때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어른이 해야 할 일은 그 사정을 헤아려주는 것, 아이 스스로도 몰랐을 마음과 의도를 좋은 쪽으로 해석해주며 다음으로 나아가자고 손 내미는 것이다. 때로는 장난기 가득한 친구의 모습으로, 때로는 엄격한 선생님의 모습으로 상황에 따라 자리를 바꾸어가며 교실에서 일어나는 각종 민원 사건들을 차근차근 해결하는 저자의 진중한 태도에서 신뢰가 느껴진다. 사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회에 적응하며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간다. 그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 아이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폭도 넓힌다. 결코 헛되고 무용한 견딤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교실은 그것을 배우는 곳이니까. (195쪽) 그렇게 교실에서 부대끼다보면 아이들과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때도 있다. 이때 교사로서 느끼는 어려움과 부끄러움 또한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솔직하게 드러난다. 아픈 시행착오를 거치며 경력이 쌓여도 아이들 마음에 다가가는 일은 늘 조심스럽고, 모두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교실생활이란 결코 쉽지 않음에 대해 털어놓는다. 어린이의 사정을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해 꾸짖거나 말뿐인 격려로 사건을 일단락하지 않고, 함께 생활하는 어른의 책임을 다하는 저자의 모습에서 교사 또한 하루하루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친구 없이 혼자인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교실 내 역할분담, 온갖 치료를 받아 교실로 편입되는 아이들 등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지내는 어른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봤을 주제들에 저자의 경험치가 더해져 여러 생각할 거리들을 안겨준다. 지금도 교실생활자이거나, 한때 교실생활자였던 우리 모두를 학교로 데려가는 책 90년대 후반에 교사가 되어 코로나 팬데믹 시대까지 학교에서 일하며 학교 문화와 교실 풍경의 변화를 몸소 느껴온 저자이기에 풀어낼 수 있는 학교 이야기의 스펙트럼 또한 넓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가정방문과 ‘놀토’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는 달라진 환경에서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고, 학교폭력이 난무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오늘의 불평등을 더 예민하게 감각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한다. 한편 세월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점심시간의 풍경과 마니또를 향한 열광, 정신없는 체험학습과 뭉클한 졸업식의 스케치는 우리에게 익숙한 감정을 일깨우며 옛 추억들을 소환해 웃고 울게 한다. 김성라 작가의 포근한 일러스트와 함께 교실생활자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보면 한동안 잊고 살았던 교실생활의 기억들이 방울방울 떠오를 것이다.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는 현실적인 공감을 선사하고, 한때 어린이였던 모든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 이해받고 싶었던 진심들을 살뜰히 짚어주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학교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애쓰며 성장한 우리 모두에게 수고했다고, 그리고 지금도 애쓰고 있을 어린이들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자고 말을 건네는 책이다. “지금도 나는 꿈속에서 자꾸 학교로 간다. 어떨 땐 학생이고 어떨 땐 선생이다. 선생님 심부름을 하다가 불현듯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기도 하고, 정신없이 수업 준비를 하다가 교실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학교는 한 사람의 인생 깊은 곳에 이렇게 오래오래 자리하는가보다. 쓸쓸함 없이, 헤매는 일도 없이 그저 익숙한 마음으로 학교를 떠올리고 싶다. 한때 가장 중요했던 교실 속 내 자리에 언제라도 가뿐한 마음으로 놀러가고 싶다.” _김선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