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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고추의 시간 장맛 뽈깡 그람 되얐다 숨구멍 짐과 밥 문과 마음 향교리 참빗 단골 갯벌 염전 2부. 김치전의 봄날 마늘밭 대박과 한 삽 그냥 되는 건 없응께 정자와 나무 타작 기린과 할머니 김치전의 봄날 살아난 길 할머니의 먹물 뻘 해녀 할머니 3부. 잡을라믄 잡을라믄 거름꽃 김못난 대나무 멸치 중한 건 쓰임새여 품다 꽃 동그라미 뿌리 신발 밥 사이 4부. 몸꽃 몸꽃 곶감 나무 농사꾼 자라는 힘 초록숨 기적이 만든 기적 담양 죽물시장 빈집 쓰겄다 할머니의 투망 비단고둥 지지 않는 꽃 _시인의 산문 내 유년의 골목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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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처음에는 마늘 한 개 심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여러 개가 달려 나와요? 고것이 고로코롬 신기허냐? 헐헐 아, 커갈수록 제 몸 나누는 법을 아는 것이겄제 신기해요, 할머니 자기 몸을 나눴는데 더 많아졌어요 풍성하게 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거시제 ---「마늘밭」중에서 할아버지 정자가 나무에 기댄 거예요 아님 나무가 정자에 기댄 거예요? 서로 의지하고 사는 거제 나무는 정자를 품고 정자는 나무를 품고 할아버지와 저처럼요? 허허, 이라고 살믄 비바람 쳐도 절대로 안 쓰러지제 ---「정자와 나무」중에서 와, 할머니 꼬막 팔고 받은 돈이에요? 어찌 알았누? 그걸 누가 몰라요 돈에 뻘이 다 묻었는데 돈 세던 할머니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뻘 묻은 돈은 뻘로 쓰믄 안 되는겨! ---「뻘」중에서 갯벌로 꼬막 잡으러 갔다 빠질 것 같아 옷 다 버릴 것 같아 오도카니 있는데 먼저 들어간 할머니가 소리쳤다 빠져야 잡제! 버려야 잡제! 그라고 멀쩡하믄 암 것도 못 잡는다잉 잠시 망설이다 갯벌로 들어갔다 뻘로 범벅이 된 내 손안에 꼬막이 한가득이다 ---「잡을라믄」중에서 멸치를 말리는 할아버지 따라 꼬물락 꼬물락 멸치들을 펼친다 이 할애비가 바다맛 보여주랴? 멸치 한 개를 내미는 할아버지 에게게 요 조그만 멸치가 바다예요? 바다의 깊은 맛이 요 멸치 한 개에 통째로 들어 있는 겨 그런가 아닌가 자 묵어봐 ---「멸치」중에서 할머니가 내놓은 일바지 여러 벌을 본다 모두 다 꽃무늬다 에이, 할머니 촌스럽게 어째 몽땅 꽃무늬에요? 몸꽃이 사그러지니 입는 옷에라도 꽃이 만발하면 좋제, 헐헐 ---「몸꽃」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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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청소년시, 동시에서 동화까지 전방위적인 문학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오일 시인의 그림 없는 동시집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뽈깡』의 모든 시편들은 삶에 관한 질문과 응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른이 희박한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우리에게 녹록지 않은 삶을 몸소 겪어낸 어르신들의 따스하지만 서늘한 가르침의 말들이 차분하지만 당차게 들어있다. 그 목소리는 때로는 힘이 있으면서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어조로 듣는 이로 하여금 삶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열어보게 만든다. 그동안 안오일 시인이 발표한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시선 가운데에서도 역사성과 시대성을 간과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그냥 단순한 경험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긴 노동의 시간과 삶의 바닥에서 건져 올린 실패와 그 지난함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은 질기고 억센 근육이 만져진다. 찬바람에 터지고 갈라져 거칠어진 이 모든 말씀들의 두 손에는 노동이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다. 모든 말들은 몸을 움직여 생산해내는 동안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면서 그 자체로 몸을 갖게 된 말들이다. 여기 등장하는 ‘김못난 할머니’는 이름에서 벌써 삶의 고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평생 자신은 뒤로 하고 살며, 하늘로 돌아갈 때 고생해서 모든 돈을 마을에 모두 주고 홀홀 하늘로 떠났다는 김못난 할머니. 정말 김못난 할머니는 속을 텅텅 비우고 대나무가 돼 서늘한 바람 소리로 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흙 한 톨에도 뽈깡, 물 한 방울에도 뽈깡, 헐헐하면서 말이다. 여기에 더해 『뽈깡』의 끝자락 〈시인의 산문〉에는 안오일 시인 유년의 골목길이 조붓하게 나 있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유년의 그곳. 그렇게 시인은 한 시절을 건너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말 할머니, 할아버지와 돌돌돌 풀어낸 말들 엮고 엮어 여러 모양의 이야기가 되었어요. 서로를 들여다보는 창이 되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