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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사진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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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봄, 꽃 한 송이 피우고 가는 일

가늠
어떤 시간
비울 수 없다면 고요히
산고
꽃의 기도
십자가의 길
소명
닭의장풀
다시 시절은 없다
생명의 부양자
새벽 기도
나를 키운 너의 틈
물방울 테라피
무지개나비를 찾아서

2부 여름, 가뭇없이 밀려나는 먼 곳

수국이라는 북소리
분홍의 시간
죽화경 넝쿨장미
여기 보세요
맹목
허공족
파랑 친 세월
빈집
인연의 구간
엄마의 마음

꽃마중
걷는 사람들

3부 가을, 어둔 맘 그러모아

걸음 중 의지 부분
슬픔의 바깥
스티그마
불새
갈대, 이별의 형태
만추
노스탤지어
가을볕을 줍는 오후
아름다운 동행
오리 가족
빛으로 들어가는 문
너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사이의 물리학

4부 겨울, 내가 걸어야 할 당신이라는 길

목련 촛불
보이지 않는, 길
설도항
노독을 씻다
궤적
눈 다람쥐
기억이 먼 곳을 더듬는 동안
타워크레인
금강송 오작교
저녁으로의 감정
덧없음의 친구

다시 봄, 눈부신 찰나를 가지고 있는

오늘로 말미암은, 첫
나무의 주름
생명은 무엇으로 사는가
수련
빨래하는 날
하트의 연금술
오래된 친구
흑백사진
남은 자의 기도
로고스
썰물 이후
신을 벗다
돌아보면,
은륜의 시간
돌탑
오월의 등

발문

통찰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김인자(시인)

저자 소개 1

본명 김형미. 2007년 《기독공보》 신춘문예, 2017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하였다. 백교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열린시학상, 목포문학상 본상을 수상하고 2021년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시집 『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 사진 시집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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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228g | 130*210*20mm
ISBN13
9791192333663

책 속으로

나를 이곳에 두기로 했어요

산다는 건
꽃 한 송이 피우고 가는 일이니
버려진 땅에 꽃을 심는 일이니

당신은 가던 길을 가면 됩니다
---「소명」중에서

산 그늘 내려오는
숲길에 앉아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나무들 물 삼키는 소리
연둣빛 가쁜 숨소리에 가슴이 뛰는 계절
찔레꽃 꽃 진 자리에 그리움이 커가는데
그대는 잘 있는지요
봄 햇살 깊게 스미는 그곳에
몸빛 고운 영산홍 몸을 열어 보이고
성급한 낮달 머쓱하여 돌아앉는 해거름
먼 데서 흘러온 구름에 마음을 실어 봅니다
지금 돌아갈 길에는 조용히 흘러내리는 노을
그리움은 얼마나 긴 목을 가졌는지
그대여, 물이 괸 곳에 물안개 피거든
끄지 못한 내 마음인 줄 아세요
---「여기 보세요」중에서

모두 떠나고 난 뒤에야
당신도 바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련과 해탈 사이로
무리 지어 방황하던 청춘의 한때가
작은 씨톨에서 시작되었을 나무의 꿈들이
떠밀려가고 있습니다

바스락, 마지막 한 줌 뼛조각 바스러지는 소리로
이젠 모든 바람의 기억을 지웁니다
---「만추」중에서

간신히, 골짜기를 지나왔으나
빛은 부재중이었네
무성해진 절망에 압도되어
어둠의 살을 발라 먹고 동굴 속에 머물까도 했네
하지만 내 슬픔은 굴광성
결핍의 날을 견디자 어둠은 길 하나를 내어줬네
이제 나 당신의 깊이를 지나왔으니
빛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겠네
---「빛으로 들어가는 문」중에서

어둠이 날 가려줬으면 하던 때가 있었지
짓고픈 죄가, 덮고픈 죄가 많아,
모포처럼 날 둘러줬으면 하던 때가 있었지

나뭇가지에 걸린 채 그렁이는 저 눈동자
그 앞에, 어떤 날은 한없이 가벼워 괴롭고
어떤 날은 한없이 무거워 괴로운
빛이 지는 이즈음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과
지우기 싫어도 지워지는 것들로 버거운 마음으로
저녁이 와서
눈 감아 주는 신의 자비 같은
어스름이 내려와서

덮어놓은 것들을 들추는 아침이 올 때까지

한 점 평안의 쉼표에 나를 누이지
---「저녁으로의 감정」중에서

물 빠진 포구에 나 서 있네
한동안은 물 없이 살아야 하는 것들과
한순간도 물 없이는 살 수 없는 것들이
펄떡이며 초연하게 조금을 견디고 있네

물결은 어디쯤 흘러서 갔겠는데
썰물을 따라잡지 못한 보리숭어 한 마리
돌 틈에 끼인 채 밀려가는 것들 바라보고 있네

까만 씨앗 같은 두 눈을 뜨고
이렇다 할 소리 들을 수 없는
무망한 깊이에 홀로이 잠기고 있네

---「썰물 이후」중에서

출판사 리뷰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마음이 자랐습니다
귓불에 닿는 숨결이 발끝을 들어 올릴 때
파르르 떨리는 시간의 눈꺼풀”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 담긴 시적 이미지
생의 숭고함과 그 너머의 삶의 진리를 조감하다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새로운 시리즈를 독자들 앞에 선보인다. ‘걷는사람 사진 시선’은 이름 그대로 사진과 시를 한 권에 엮어낸 것으로, 시인이 걸어온 삶과 보아 온 풍경과 느껴낸 정서를 한데 모은 작품집이다. 독자들에게 시인이 마주한 일상의 풍경과, 그 안에 함의된 시상을 한번에 선사하여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시리즈다.

걷는사람 사진 시선의 첫 걸음을 내딛는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은 총 67편의 시와 사진을 고루 담아내고 있다. 67편의 시선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다섯 개의 부로 나뉘어 생명의 순환과 그 너머의 삶의 진리를 조감한다. 일련의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은 오롯이 김휼의 시선으로 담아낸 일상, 자연, 풍경, 정서, 신앙을 속속들이 만나볼 수 있다.

‘봄, 꽃 한 송이 피우고 가는 일’ ‘여름, 가뭇없이 밀려나는 먼 곳’ ‘가을, 어둔 맘 그러모아’ ‘겨울, 내가 걸어야 할 당신이라는 길’ ‘다시 봄, 눈부신 찰나를 가지고 있는’ 총 다섯 개의 부제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 담긴 풍경을 통해 생의 숭고함과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담아낸다. “헤아리는 마음으로 피사체를 오래 들여다보면 신비 아닌 것이 없고 기도 아닌 것 없”다는 시인의 말처럼 김휼은 꽃이 진 자리를 환한 연둣빛으로 채우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마음의 흉터도 무늬가 될 수 있음을 반추한다.

김휼 시인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 소재를 취하여 결코 사소하지 않은 미학과 시상을 사진과 시로 표현한다. 가령 단풍이 우거진 가을 풍경을 두고 “한나절 쓸어봐도 마음은 비워지지 않”(「비울 수 없다면 고요히」)는다고 표현하거나 아스팔트 사이에 피어난 들꽃을 두고 “산다는 건 꽃 한 송이 피우고 가는 일”(「소명」)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새벽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의 굽은 등을 “어둔 맘 그러모아 십자가 아래 두고 가는 길”(「걸음 중 의지 부분?새벽기도를 마치고」)이라 매만져주기도 하고, 낙조의 파동을 보며 “어느 사이/시간의 물결은 여기까지 날 데려왔구나” 회한하기도 한다.

김휼이 담아낸 사진 속 풍경은 길을 걷다 한 번쯤 마주칠 법한 일상의 모습이지만, 시인은 이를 놓치지 않고 순간을 포착해내었다. 그 시선은 미시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시심으로 나아가 시인만의 언어로 세상의 이치를 잠언처럼 조명한다. 김휼은 다채롭고 풍요로운 삶의 외연을 분명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이미지와 문자의 융합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나는 지금껏 한 가지를 오래 생각하는 것을 ‘기도’라 정의해 왔다. 하면, 시인이 시를 쓸 때의 마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 (…) 그에게 시란 그분의 심장에 귀를 기울이고 나누는 영혼의 대화에 가깝다. (…)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 극도로 말을 아낀 한 편의 시 앞에서 나는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거기 그분이 계셨다.”
-발문 「통찰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중, 김인자(시인)

시인의 말

한 걸음 물러서면 보이는 길
풍경을 좇다 그만 그 길을 놓쳤네
하지만 이쪽도 그리 나쁘진 않네
헤아리는 마음으로
피사체를 오래 들여다보면
신비 아닌 것이 없고
기도 아닌 것이 없으니
당신 걸어간 그 길과
적요 무성한 이 길도
경계가 생략된 첨탑의 끝에서
이내 곧 만나게 될 터이니
남은 길 가야겠네

2023 봄
김휼

추천평

사진은 촬영자와 대상(피사체)과의 만남이다. 찰나의 순간으로 교감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한참을 관찰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다. 이를 영상화시키는 것이 사진 미학이다. 사진 미학에는 모더니즘 시기를 거치며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했다. 첫 번째는 서사를 담고 있는 사진이다. 가령 오래된 사진을 보거나 앨범을 펼칠 때면 어김없이 추억이 소환된다. 한 장의 사진에서 고구마 줄기처럼 이야기가 끌려 나온다. 우리는 이것을 회상이라 한다. 두 번째는 작가의 내면의 세계를 형상화시키는 사진이다. 즉,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대상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시각화한다. 이는 회화의 순수시각 방식과 닮아 있다.

그러나 사진은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변하는 것과는 달리 객관적으로 실재의 대상을 언제나 동일하게 기계적인 시각을 반복한다. 회화는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변하는 것과는 달리 사진은 객관적으로 실재의 대상을 언제나 동일하게 기계적인 시각을 반복한다. 회화의 순수시각 방식과는 닮아 있지만 대상이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사과를 그리게 되면 간혹 사과인지, 토마토인지 복숭아인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지만 사진은 회화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이 구체성은 어느 시각 매체보다도 말에 가장 가까운 매체로 만들어 준다.

역설적이게도 김휼 시인의 시집 제목이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이다. 사진은 말과 가장 가까운 매체이지만 시를 통해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을 담아냈다.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은 어떤 세계일까. 말에 가장 가까운 사진과 은유의 세계인 시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시인은 왜 사진을 선택했을까. 몇 가지 물음의 끝에 하이데거가 쓴 한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하이데거는 “회상은 근원을 지시하면서 시의 본질 근원 속에 자기를 확립한다. 즉 회상은 시의 본질적 근원을 따라가고 이렇게 따라가는 것, 그것이 바로 발현의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김휼 시인의 시와 사진에서는 이러한 회상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사진은 회상의 은유가 되었고 시는 회상의 근원을 쫓아간 것이다.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이란 근원을 파고드는 회상의 순간이 아닐까.

시를 읽고 사진을 보든 사진을 보고 시를 읽든 어느 것이든 좋았다. 서로의 종속 관계가 아닌 사진과 시가 펼쳐진 세계에 빠져들어 침묵의 시간을 즐기기를 바란다. - 박찬호 (광주가톨릭교육원 사진교실 담당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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