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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서문 15
나의 시에 대한 여행 21 1장 시골 소년 25 2장 도시의 방랑자 65 3장 세계의 길 103 4장 빛나는 고독 137 5장 가슴속의 스페인 185 6장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 229 7장 멕시코, 꽃과 가시의 땅 257 8장 암담한 조국 283 9장 망명의 시작과 끝 323 10장 여행과 귀환 365 11장 시는 직업이다 409 12장 희망과 고난의 조국 545 부록 579 작가 노트 637 파블로 네루다 연보 663 옮긴이의 말(박병규) 685 |
Pablo Neruda,본명 :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이에스 바소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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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산림과 끝없는 해변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 영혼, 바꿔 말해서 내 시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땅 사이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벌써 아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 시작된 교류, 그때 얻은 깨달음, 그때 땅과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도 내 삶 속에 남아 있다.
---「1장 시골 소년」중에서 “작가의 작업은, 적어도 시인의 작업은, 신비하거나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작업, 대중을 위한 작업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해 왔다. 시와 가장 유사한 것은 빵이요 질그릇이요 서투른 솜씨로나마 정성껏 깎은 목각품이다.” ---「2장 도시의 방랑자」중에서 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시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 왔다. 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휴머니즘이 현대문학에서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존재의 염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6장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중에서 내 보잘것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 그러자 세상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영원해졌다. 이제 우리는 대지 위에 당당히 발을 딛고 서 있다 ---「6장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서」중에서 고통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 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 ---「8장 암담한 조국」중에서 참혹한 전쟁이 발밑에 다다랐을 때, 침략자들이 민중과 문화를 파괴하려 했을 때, 소련의 작가들은 싸우고 쓰러지고도 또 싸우고 승리하면서 10월 혁명의 숭고한 휴머니즘과 그대의 유산을 지켜 내기 위해 자신의 피와 말과 사랑과 열정을 바쳤다네. 책은 강해졌고 도시와 시골과 마을을 침범했으며 도서관과 길과 집과 병원과 공장을 채우며 먼 지역까지 다다랐네. ---「9장 망명의 시작과 끝」중에서 사람은 사람일 뿐, 그 외의 어떤 규칙이나 호칭이나 딱지를 붙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누구나 성당에 들어갈 수 있고, 인쇄소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체포하거나 추방하려고 시장을 면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누구나 웃는 얼굴로 시청을 드나들 수 있기를 바란다. 곤돌라를 타고 도망가는 사람도, 오토바이를 타고 뒤쫓는 사람도 없기를 바란다. 또 대다수 사람들이, 아니 모두가 말하고 읽고 듣고 번영하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 나는 지금까지 오로지 한 길을 추구해 왔는데, 그 이유는 이 길이 우리 모두를 영원한 사랑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0장 여행과 귀환」중에서 나는 독창성을 믿지 않는다. 독창성이란 급속도로 몰락해 가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미신에 불과하다. 나는 개성을 믿는다. 예술 창조에서 어떤 언어와 형식을 사용하든, 또 예술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개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독창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관념은 근대의 발명품이자 속임수의 산물이다. 시인들 가운데는 한 국가나 한 언어권이나 전 세계의 계관시인으로 등극하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선거인단이나 찾아다니며 경쟁자가 될 만한 사람을 음해하기 일쑤이니, 제대로 된 시가 나올 리 없다. ---「11장 시는 직업이다」중에서 그대들에게 말을 건네면서, 그대들과 함께하면서, 나의 시와 투쟁이 그대들의 생각과 마음과 마주하게 하면서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그대들의 그 어떤 꿈도 깨지 않기를 바랐다. 그대들의 가슴을 옥죄는 숨겨진 의문에 대한 답을 나의 말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새로운 질문과 또 다른 불만족이 그대들에게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삶과,기쁨과 세상이 주는 고통이 매일 대문을 부수고 우리의 집으로 들어오길 희망한다. 삶은 밤이면 죽고 새벽이면 다시 태어나는 신비로운 실체로 이뤄져 있다. 그러니 이제 갓 찾게 된 해답과 더불어 새로운 질문이 태어나길 바란다. ---「12장 희망과 고난의 조국」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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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라틴아메리카의 최고 시인
1904년 칠레에서 태어나 열 살 때부터 시인을 꿈꿨던 네루다는 1924년 출간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가 큰 사랑을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이 책의 1장 「시골 소년」과 2장 「도시의 방랑자」에는 네루다가 처음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기까지 일생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후 1927년 낯설었던 지역인 랑군(지금의 미얀마 양곤)에 영사로 임명받으며 네루다는 아시아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미얀마, 인도, 내국,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네루다는 귀족과 외교관 사회에 신물을 느끼고,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 주변에 둘러앉아 노래 부르고 시를 낭송하는 시인들은 이런 비참한 순례자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중략) 인도 전역에서 만난 이 젊은 시인들의 근심 어린 눈동자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방금 감옥에서 나왔는데 어쩌면 다음 날 다시 감옥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이유는 비참한 현실과 억압적인 신을 뒤엎으려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실상이다. ―4장 「빛나는 고독」 중에서 이때 느낀 고독을 담아 『지상의 거처』를 발표한 네루다는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을 겪으며 불우한 일들을 겪어야 했다. 아내와 딸과 이별했으며, 친구 로르카가 암살당했다. 이후 네루다는 “나에게 스페인 내전은 한 시인의 실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곧이어 내 시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회고했다. 자연과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적인 시로 유명했던 네루다는 한 걸음 나아가, 민중의 삶과 투쟁을 아우르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블룸은 네루다를 "모든 시대를 통틀어 서구의 가장 고전적인 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았고,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네루다의 시적 모험 없이는 현대 라틴아메리카 문학도 없다."라고 평했다. 네루다의 송가를 모은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기본적인 송가』는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의 송가 형식을 계승하지만 소박한 사물에 대한 경의를 표함으로써 엄숙함과 권위를 몰아내고 간결함의 미학을 이루어낸 혁신적인 시로 꼽힌다. 1971년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운명과 희망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시”를 썼다는 평을 받으며 네루다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민중시인… 이것이 내가 받은 진짜 상이다.” ―파블로 네루다 1950년, 멕시코에서 자연과 역사, 문화에 대한 비전을 담은 시집 『모두의 노래』를 출간한 네루다는 같은 해에 파블로 피카소, 폴 로브슨과 함께 레닌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세계 평화 대회에 참석하고, 스탈린 평화상의 국제위원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네루다의 이름은 높아져만 갔지만, 네루다는 민중시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장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 (중략) 어려운 미학적 연찬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 민중 시인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내 글이나 시집도 아니고, 시어를 해석하거나 해부한 비평서도 아니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힘겨운 노동으로 얼굴이 상하고 먼지 때문에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광부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로타 탄광의 갱도에서 나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투박한 손을 내밀고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묵직한 순간이 바로 내가 받은 상이다. ―8장 「암담한 조국」 중에서 1973년, 네루다가 지지했던 아옌데 정권이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고 10여 일 후인 9월 23일 네루다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네루다가 거처했던 ‘이슬라네그라’, 산티아고의 ‘차스코나’, 발파라이소의 ‘세바스티아나’는 네그라가 수집한 독특한 선수상(船首像)과 조개껍데기들로 유명한 명소가 되었다. |